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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찍는 사진관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그리운 얼굴 거기 있었지요
할미꽃 꺾어들고 봄노래 부르던
아련한 추억도 거기 있었지요

눈감으면 더 가까운 그리운 그곳
동쪽으로 5리, 남쪽으로 5리
서쪽으로 5리만 가면 되었지요
일곱빛깔 무지개 너머 일곱글자 파아란 글자
꿈을 찍는 사진관이 거기 있었지요
새하얀 창문에 새하얀 지붕
꿈을 찍는 사진관이 거기 있었지요

불도 안 켠 그 방이 어찌 그리 환했나요
깨알 같은 하늘빛 글씨가 어찌 그리 눈부셨나요
1호실 3호실 5호실 지나면 꿈을 찍는 7호실
어둡지도 않은 방이 꿈 그리면 어찌 그리 캄캄했나요

꿈을 찍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꿈을 꾸는 일
허기진 마음에 미안하지만
하룻밤 그냥 주무세요 꿈을 꾸세요
그리운 이 만나는 꿈을 꾸세요
하얀 종이에 파란 잉크로 꿈을 쓰면 되었지요
그리운 얼굴 마음 속에 그리면 되었지요

책갈피에 꽂혀 있던 노란 민들레 카드
넘길 때 마다 그 얼굴 보여 주었지요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그리운 얼굴이 거기 있었지요

 

/2000. 5. 5.

 

 

16년 전의 어린이날에 동시처럼 썼지만 알다시피 이 글은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요약하고 조금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동화는 박화목의 <봄>과 더불어 내 삶의 어떤 지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나 자신의 한 부분처럼(심지어 내가 쓴 글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들의 쉽고도 놀라운 글 안에는 보르헤스가 있었고 싸이키델릭한 환상이 있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道’가 있었나 보다. 내게 있어 <꿈을 찍는 사진관>은 시집의 제목처럼 느껴지고 그 이야기는 크고 작은 상실과 그리움에 대한 시처럼 여겨지곤 한다. 순이 대신 민들레 카드만 마음 속에 품은 채.

무치

데.호따.무치

4 thoughts to “꿈을 찍는 사진관”

  1. 꿈을 꾸는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꿈을 꾸고 싶은데 어찌도 그리 어둠속일 뿐인지.
    꿈을 좇아 매일 잠이 들어도 깜깜한 방안일 뿐이네요.
    동화를 쓰는 분들은 참 대단하시죠. 어려운 일이에요. 명확히 순수하게 글을 쓴다는것.
    이글을 옮겼어요.
    이쁜 그림들이 떠오르는 글인데 어찌 글씨는 이리도 못난이가 되는지.^^
    가을길을 잠시 걷다 왔습니다.
    낙엽을 하나 주워왔는데 책갈피로 쓰려고요.^^

    1. 언제 꿈을 꾸었는지 아득합니다.
      잠자리의 꿈도 그렇고, 삶에 대한 꿈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꿈에 관한 어떤 책을 펼쳤습니다.
      세계 곳곳의 숱한 꿈과 꿈에 관한 이야기들로 빼곡한 책입니다.
      아마도 1, 2주일은 그 책이 없는 내 꿈을 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찍는 사진관>은 삐뚤빼뚤한 글씨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래야 순이도 보고 철이(?)도 만나고 그렇겠지요.^^

      1. 미스터. 리님 이라고 해야하나요? 제가 스물 몇살적부터 지금까지 젤 좋아라 하고
        가장 내마음에 가까운 글 라커룸때문에 오래도록 행복했어요..
        명절 지나서 몸도 맘도 초토화 되었습니다.
        이 페이지가 좀 낯설긴하지만 뵐 수 있어 좋아요 꿈을 찍는 사진관은 제 책장에도 꽂혀 있는 책입니다.
        봄날의 아지랑이 속에서 자다깨다 자다깨다 오래한듯 한 그 몽롱하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꿈
        좋아요~~~
        겨우 찾아왔어용 감사해요

        1. 안녕하세요… 예전에 라커룸이 있었죠. 훌훌 털고(?) 뭐든 이야기 하자던.^^ 여인숙 최후의 몇몇 게시판은 복구에 성공했는데 옛 게시판은 아직이네요. 나이든 명절은 대개 그렇게 지나가는 듯, 능력 없는 이의 몇일도 전혀 편치 못했습니다. 저는 애니님의 사이트 접속에 문제가 있는가 생각했더랬습니다. 고지식한 성격에 뭐라 소식도 드리질 못하고… 반갑습니다! (혹시 댓글이 사라져도 너무 염려하진 마세요. 기술적으로 불안정하긴 하지만 결국엔 거기, 있을 거예요. 이름은 뭐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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