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지요, 그리고 해가 지지요. 그리고 또 뜨지요, 그러고는 또 지지요…
붉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가는 동안, …
당신, 기다릴 수 있겠어요?” Read More
[작성자:] 무치
아이즈 와이드……셧!!
ssh……patriamea Read More
별자리처럼
멀거나 가깝거나
어제거나 억만년 전이거나
마음 가는대로 이어놓은
2020. 3. 16.
마이 스윗 페퍼 랜드
중고등학교 시절의 마이 스윗 페퍼 랜드라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십년의 시간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 유튜브에서 향신료가 너무 많이 사용된 듯한 이란의 어느 노래를 들었을 적에 그 배경에 있는 어떤 얼굴이 몹시도 인상적이었고 그것은 실크로드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여인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누군지 모를 그 얼굴의 주인공을 용케도 찾아내었는데 그녀는 그 전에 보았던 <패터슨>의 여주인공이었던 골쉬프테 파라하니였다. 묘하게도 그녀 덕분에 나는 이란 음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살펴보게 되었고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모흐센 남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묘한 소리를 지닌 항 드럼 연주도 하고 모흐센 남주의 라이브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마이 스윗 페퍼 랜드 또한 파라하니가 나왔던 영화이지만 대략 살펴만 본 수준이라 특별히 남은 느낌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의 멋진 연주곡을 나는 잊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이미지는 내게 있어 아주 잠깐 스쳐간 얼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잠깐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고 생각하며, 인적 찾기 힘든 곳이라 한들 그곳이 바로 ‘마이 스윗 페퍼랜드’임을 안다. 내 모든 유치했던 시절의 한줄 가사처럼, “언제나 우리가 만나던 그곳”.

muhteşem ses / golshifteh farahani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그는 기타 연주자였다. 지방 방송국의 기타리스트였는지 어느 이름모를 클럽의 얼굴없는 반주자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지막 병상에서 그의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들의 요리법을 여기저기 메모했다. 광고전단의 뒷면에도 썼고, 백지에도 썼다. 얼룩진 사연도 있었고 찢어진 종이도 있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그녀의 마음 속에서 남편을 위한 요리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것은 사랑 그것은 행복, 상상 속에서 간결하고 정성 가득하였다. 수목장으로 그녀를 떠나보낸 남편은 사진을 코팅해서 나무에 달았다. 너덜너덜한 요리 메모 쪽지들도 코팅을 했다. 아내 없는 부엌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정신없이 문을 닫고 길을 나섰지만 빌라의 문이 꼭 닫히지 않은 것을 알지 못했다. 몇시간 비워뒀을 뿐인데 그 사이 도둑이 들어 백수십만원의 현금을 잃어버렸다. 그날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내게 왔었다. 잃어버린 돈에 괴로워하고 떠나보낸 아내에 힘들어 했다. 그를 본 마지막날에도 그는 사진을 코팅했다. 경찰은 도둑도 잡아내지 못했고 돈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내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요리법을 코팅했을 뿐 요리하는 아내를 그렸을 뿐 요리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실, 그것은 무기력, 불가해로 가득한 세상에서 남겨진 대책없는 그리움 ― 내 시도 비슷하였다.
나머진 전부 상상
아래의 가릭 이고르 슈카체프의 경우도 그랬지만, 브라질, 쿠바/멕시코 등을 돌아 이스라엘, 이란, 알제리 등등으로 흘러가서 베리 사카로프, 달레르 나자로프, 모흐센 남주, 그러다 페랏 이마지겐(?)에 이르러 그들의 문자(카발리에 문자?)를 보면 거의 암호 같은 느낌에 맞딱뜨린다. 겨우 제목의 발음 내지 뜻이나 알면 다행, 아니면 그저 느낌만 있을 뿐이다. 얼마전 샌디에고서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분을 잠깐 만났다. 그는 내가 관심가져 듣는 나라의 아티스트들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거의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름은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얼른 떠올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라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가져다준 어떤 정서, 느낌들이 내 안에 있음을 안다. 그리고 때로는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상상하는 것이 나같은 사람에겐 더 짜릿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오늘은 에프랏 벤 주르의 어떤 노래를 들었다. 하바 알버스타인의 1970년대 노랠 다시 부른 것인데 노랠 들은지는 몇해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노래 제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뜻도 물론. 하지만 그 노랠 듣는 동안 묘한 향수에 휩쓸리곤 한다.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찔리는 듯한 느낌,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찾아봤다. 할라일라 후 쉬림. 번역기가 풀어낸 벤 주르의 노래 가사 한줄은 “yes, sometimes, tonight is beautiful songs“였다. 그리고 좀 더 살펴본 보다 정확한 번역은 “yes sometimes, the night is pretty songs”였다.)
/2020. 1. 21.
바이 바이 미스터.리 ◎
때는 1957년, 제목도 mr. lee였다.
i shot mr. lee라니 bobbettes의 터프한 노래를 장난삼아 자랑삼아 테마송처럼 한때 사용하였다.
때는 1999년, 또는 2000년……
i met my sweetie
his name is mr. lee
he’s the handsomest sweetie
that you ever did see Read More
그러나 잊혀질 그의 이름
(보내지 않은 글)
quetzalcoatl입니다.
께짤꼬아뜰. 케찰코아틀.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어요.
께짤은 깃털, 꼬아뜰은 뱀.
그러니까 깃털달린 뱀, 날개달린 뱀이랍니다.
아주 먼 훗날, 희미하게나마 나를 기억한다면
그 단어를 생각하세요.
반은 인간 절반은 물고기였다던 중동의 오안네스나
잉카의 콘티키 비라코차 같은 이름이에요.
날개나 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희생을 갈망하던 피의 전설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전해주고 사라져버린,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했지만
실은 눈물로 떠나가버린
형상 없는 마음의 이름입니다.
/2019. 11. 12.
말해버린 그것에 관한 약간의 자책 +
말할 수 없는 그것이란 제목으로 처음 쓴 것을 찾아보니 2010년의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애초의 그것은 ‘시’였다.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그것이었고, 말하기 힘든 그것이었고, 형언하지 못해 형언하지 못할 괴로움을 내게 주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게 처음은 아니었고 나는 여태 시에 관한 시를 꽤 여러 편 썼다. 한참 예전에 장난처럼 쓴 누구…시온지…가 그랬고, 절망과 헛된 희망이 교차하는 내가 쓴 가장 좋은 시, 쓰라린 포기각서 같았던 이하의 마지막 말이나 라면은 보글보글도 어쩌면 그렇다. 제대로 쓰진 못했지만 미련스런 할 수 없는 노릇도 그랬다. 이하의 마지막 말을 썼을 때 나는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심히 서글픈 심정이었지만 그 굴욕의 시간을 오늘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내가 시를 쓴다는 꿈 또한 이하의 마지막 말의 깨어나지 못한 꿈 같은 서글픈 변종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말할 수 없는 그것이란 제목으로 또 다른 시를 썼다. 처음엔 ‘더 말할 수 없는 그것’, ‘영영 말할 수 없는 그것’ 등으로 붙였지만 결국엔 ‘말할 수 없는 그것’으로 환원되었다.
이 시는 앞선 것들과는 달리 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꼭 그만큼이나 ‘말할 수 없는 무엇’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초라하고 서글픈 마음이었음에도 나는 시를 쓰고서 좀 기뻤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조금 자랑스러웠다.(그 느낌으로 “보내지 않은 메시지”를 썼고, 거기서 간지러운 몇줄을 빼서 실행한 것이 보낸 메시지다) 사실을 들여다보면 심히 아픈 이야기지만 내 마음에 관하여 가능한 만큼 제대로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것은 의미를 알려줄 수 없는 “메르우트”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히에로글리프로 쓴 한줄은 ‘메르우트, 엔 메르우트’라고 읽을 수 있다. 다만 발음은 조금 미묘한 차이를 두고 슬쩍 다르게 표기했는데, 의미를 찾기 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뜻을 알고자 애를 쓴다면 전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몇 글자가 심오한 의미를 지닌 문자이거나 비밀은 아니다. 평범하고도 위대한 무엇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그 시는 히에로글리프 한줄이거나 끝의 네줄이 전부다.
4행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첫번째 줄은 잇사의 인용으로 시제만 과거형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줄은 나의 시점, 셋째줄은 잇사의 시점이기도 하지만 형식상 그것을 빌렸을 뿐, 내 시각이라 할 수 있으며 (“눈에” 다음에서 좀 뻔하고 감상적인 글자 세자는 생략했다) 마지막 줄은 100퍼센트 내가 보는 것이다.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은하수+
암흑과 광년의 세상을 가로질러
남루한 그 옛날의 눈에 맺힌
당신이라는 이름의 눈부신 오늘이어요
하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이 시를 배신했다. ‘말할 수 없는 그것’에 관해 하루아침에 깡그리 다 설명해버리고 말았다. “○○는 하되 XX는 하지 않는다”던 방중술의 오래되고 미심쩍은 어떤 금언을 지키지 못한 느낌 같은 것,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허탈하고 참담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평소의 조심스러움, 소심함이나 신중함과 달리 나는 대책없이 직선적인 사람이고 그런 쪽으로 마음을 감추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느꼈기에 가만 있기가 더 힘들었다. 사실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비할 수 없이 온당치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약간의 소소한 이야기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은 하루만에 ‘말해버린 그것’이 되었다.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이라 했지만 내 마음보다 슬프지는 않다.
+잇사.
+뭔가 빠진 시가 하나 있었는데 왜 그걸 빼먹었던지 모르겠다. 내가 시를 쓴다던 꿈, 이제사 생각이 나서 한줄 집어넣었다. 매일같이 그 캄캄한 화면에서 뭔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2019.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