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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높여라, 카루소

그렇게 멀지 않은 나의 적막한 밸리 포지+, 일찍부터 움직여 차를 달렸다. 이제는 좀 쌀쌀한 날씨라 차창을 열고 운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밸리 포지를 향한 나의 길은 그 영화 제목 같은 “침묵의 질주”는 아니다.

창문을 제법 열고 운전을 한다.(하이브리드 차량 운전자로서 아직 히터는 잘 켜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지나가는 차나 정차시 옆에서 들으라고 차창 여는 것은 아니다. 차가 달릴 적에 더 크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 나는 그 바람 소리보다 더 세게 노랠 듣는 걸 좋아할 따름이다. 좀 추워서 후드를 덮어썼다. 룸미러로 보이는 꼴이 가관이다만 누가 볼 일도 보여줄 일도 없으니 상관은 없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음악실은 자동차이고 최고의 오디오 또한 그런 것 같다. 플레이는 언제나 랜덤, 영 기분에 맞지 않으면 넘겨가며 듣는다. 때마침 마음 맞는 노래가 나온다면 그건 세상 최고의 음악이다. 예를 들면 카루소 같은 곡이 그렇다. 그 노래에는 듣는 사람을 (뭔지 모를 스토리의 주인공인양) 멋지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마력이 있다.

 

애써 카루소인 척은 하지 않아
그리고 난 넘버 원도 아냐
만약 내가 노래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만 다른 곡을 틀도록 해

 

라고 낮고 묵직하게 노래하는 그 대목은 늘 나를 감격케 한다. “‘스트레이트’라고 불리우는 거리”에서 언제나 나도 그런 마음이다!! 텔레캐스터의 명장이라는 그의 기타보다도 자신이 카루소 같은 가수는 아니라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봄에 더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내게 알려준 시냇물의 한줄처럼 그렇게.

 

아무도 몰라주는
단풍 꽃은
님의 붉은 심장처럼
/시냇물

 

 

 

+영화 <침묵의 질주>에 나오는 우주정거장 형태의 식물원.

 

 

/2019. 11. 17.

 

어떤 것은 삶이고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그것은 유구한 팰럼세스트palimpsest에
두 존재의 이야기를 더하고 고쳐 쓰는 일 ――
결국 잠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화장실 불을 켜니
아슬아슬한 문틈에 쌀나방 두 마리
죽은 듯 잠들은 듯 꽁지를 맞대고 있다
어떤 것은 삶이고 또 어떤 것은 시늉이다

 

 

/2019. 11. 2.

 

쥴리아, just to reach you

그녀가 붕대 감은  팔로 넘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마치 자기 몸이 당하는 고통처럼 느껴졌었다./1984년

 

스무살 즈음에 쥴리아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1984년>에서 ‘청년반성동맹’의 상징인 진홍색 허리띠를 두른 채 텔레스크린 앞에서 윈스턴 스미스에 어떤 쪽지를 전해준 젊은 여자의 이름이다. 거기 적힌 짧은 문장을 본 순간은 그의 운명을 바꾸었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것이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도 틀림없이 그랬다. 마치 내가 그 쪽지를 받기나 했던 것처럼.

 

거기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1984년 Read More

다음 이 시간에…

우리들 모여 밤새 이야기 나눌 적엔
화장실 가는 것도 미안하였지
그 마음 한 조각 달아난 자리
여태 깨어나지 못한 어느 행성의 눈부신 아침
별빛의 끝까지 어둠의 끝까지 아스라히 달려
다시 그날 밤
어떤 미안함도 없이
밤새 또 밤새 이야기 나눌
우리들의 다음 이 시간

 

+
이 시를 처음 쓴 것은 2009년이었다.
생각은 물론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겠고.
나름 끝을 맺었지만 늘 탐탁치 않았다.
그냥은 그럴듯해도 내 심정일랑은 상당한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절대 잘못 써서는 안될 시이기 때문에 계속 마음에 걸렸다.
최근 시편들을 정리하는 작업의 와중에 며칠 뜯어고치다
부족한대로 또 마무리를 했다.
내 심정에 조금은 가까워졌을 뿐
여전히 구질구질해서 답이 아니다.

 

어딘지 모를 저 건너편에서
만나고 만나고 만나고 싶다.
다음 이 시간에.
이 시간에.
/2019. 10. 27.

 

 

+
“여전한 미안함으로”를 “어떤 미안함도 없이”로 고쳤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미안했음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유한하고 일회적인 것이기에 그렇고
미안함이 없는 것은
거기 미지의 영원성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9. 10. 29.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하고 역전에서 누가 묻는다면 제일 좋은 퇴치법은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내게 그렇게 물었던 청년들에겐 ‘스미마셍’한 일이지만 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물리학의 도>에도 꽤 관심이 컸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리학에 매혹된 것일 뿐이었지만.

<코스모스>에서 시작된 관심은 프리초프 카프라에 이르러 좀 폭발적으로 되었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알게 되면서 더욱 매혹되었다. 하지만 ‘교양과학’으로 이해하기에 양자론은 내게 있어 일정 부분 불가해의 세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이래저래 가늠키 힘든 심심미묘한 불법 쪽이 차라리 편하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마음이 기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카프라의 책에서 읽었던 네줄짜리 문장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암기력이 젬병인 내가 지금껏 외우고 있을 정도다. 단어나 조사의 차이가 조금 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수천 칼파 이전에 헤어졌지만
한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소.
우리는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소.
/대등선사

we were parted many thousands of kalpas ago,
yet we have not been separated even for a moment.
we are facing each other all day long,
yet we have never met.
/zen master daito

 

이 말을 한 주인공이 ‘대등선사’로 되어 있었기에 최근 들어 구글링을 통해 영문으로도 읽어봤고, 대등선사(대등국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좀 찾아봤다. 아마도 일본에서 大燈国師대등국사라고 부르는 이가 그분인가 싶은데 그는 Daitō Kokushi, 1282년에 태어나 1337년에 입적한 일본의 고승으로 카프라의 인용에서 유추해볼 때 그의 말을 들었던 이는 당시의 천황이었던 고다이고(後醍醐天皇, 1288~1339)로 추측된다.

불법의 근본이란게 텅비고 성스러운게 없다거나 수많은 양의 보시에 딱히 공덕이 없다던 양무제를 알현한 달마의 이야기에 더한 무게감(또는 무게없음의 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몹시 드라마틱한 대비는 여전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일본어 원문 찾기를 시도해봤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일전의 “어떤 불미스런 작은 사건 속의 a시인의 정체 밝히기”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의 원작자 밝히기”처럼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묘하게도 이 문장들은 전부 영문과 번역본으로밖에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좀 의문이라면 의문이긴 하지만 라위쯔(라비치)의 <길은 멀어도>가 내게 그랬듯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이 문장을 엊그제 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다. 그 네줄처럼 나는 이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

 

 

+
카프라 번역본에는 ‘칼파스’라고 되어 있었지만
한글로 옮긴다면 겁(겁파)에 해당하는 ‘칼파’가 맞다.

어설픈 나의 라떼

(21년만에 다시, “donovan, 그리고 행복“에 덧붙여.)

 

맛에 대해 거의 무지한 편이다. 그저 짠것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미료 많이 들어간 음식 먹으면 구토증세가 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혐오식품류(?)는 전혀 안먹는다는 것 정도.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맛에 관해서 무뎌서 가리지 않고 잘 마신다. 커피믹스, 아메리카노, 연하게 탄 인스턴트 블랙커피, 베트남 커피, 게다가 상당히 달고 느끼한 베트남 커피믹스까지도 잘 마신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라떼다. Read More

아침의 쳇 베이커 : the thrill is gone ◎

아마 일주일쯤 되었나 보다.
지난 5,6년 사이 이렇게 잠을 뒤척인 적은 없었다.
따뜻한 우유도 마셨고, 심지어 과자도 먹었다.
하지만 제대로 잠들 수 없는 하루, 또 하루다.
어딘가 쓰리기만 할 뿐, 잠이 부족한 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뒤척이다 피치 못할 반가운 아침이 왔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