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허리 아래에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 구겨진 삶을 힘없는 어깨로 펴보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늘어트린 그녀의 머리칼처럼 기운 없는 하루가 끝없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아
청색시대는 이미 저물어버렸을 그녀, 그녀에게 준비된 새로운 캔버스가 있다면 믿기 힘든 추상같은 현실일 것이야 사연 없어 사연 많은 고된 하루, 남달라서 할말 없을 지루한 삶이 끝이 없을 것만 같아
그녀의 다림판엔 아무래도 펴기 힘든 주름만 널려 있을지 몰라 그녀의 어두운 얼굴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가에 잔주름 가득할지도 몰라 그녀의 다림판엔 이미 다 태워버린, 너무 보드라운 그리움만 널브러져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의 허리 아래에는 무엇인가 환한 빛이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배경이 그렇게 어두운 것,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어두운 것, 그토록 고개 숙인 것은 오직 그 때문임을, 그 때문임을
믿고
또 믿고
또 믿어야 할 것 같아
[작성자:] 무치
그릴 연 꽃을 찾아
당시에 부쳐
장강이 심산으로 흐른다던가
달빛이 불야성을 흐린다던가
한시 두시 옛 시절로 밤 깊어가니
그때 당시 분간할 마음 마냥 저어하네
봄날 다 가고서야 매화 반겨 핀다던가
아쉬움이 임을 이 밤 모신다던가
한시 두시 읊조리다 눈 부빌 때면
미련한 심사인양 꿈결로 저어가네
얼어붙은 강을 따라 새겨둔 마음
이 밤에사 다 풀리어 소식 당도했던가
저 하늘에 걸리운 그릴 연 줄을 타고
내 마음도 따라 훨훨 떠돌아 간다한데
길 없음도 길이라 끊어져 간다던가
맺을 연 마음길로 이어져 간다던가
눈 빛
눈 씻고 다녀도 눈 만나기 어려운 곳
앞에 두고 눈 그리라 하십니다
마저 치우지도 못한 잠자리
눈부신 어지러움 아직 남아 있는데
제 눈의 잘못일랑 젖혀 두시고
눈 온 아침 애꿎은 풍경더러
구차하다 하십니다
북방에 있는 어여쁜 사람+
한 사람의 빛깔이 세상 기울인다더니+
깜빡이던 간밤에는
눈빛도 그윽하였습니다
+이연년 李延年의 시 한 구절.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이연년의 시에서 유래한 경국지색(傾國之色)을
작자 멋대로 ‘詩義適切’하게 해석한 것임.
왜냐면 비코즈
비코즈는 가을, 가을은 비코즈
무그 신쎄사이저의 풍성하고도 느릿한 흐름처럼
잡힐 듯 아득한 파아란 하늘의 뭉게구름이여
비코즈는 이별, 이별에는 비코즈……
왜냐면 그 노래는 우리가 아주 어린 아이였거나
별자리 저 너머에 숨겨져 있는 꿈이었을
1969년 9월 1일에 녹음 되었고
이후 그들은 뿔뿔히 흩어졌으니까
왜냐면 비코즈, 가을이니까
한 가지에서 나고도 가는 길 모르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묻혀서+
더 이상 조화로울 수 없는 아르페지오, 분산의 화음
스스로 오늘을 가꾸었으되 처음으로 맡아보는
거둘 것 없는 텅 빈 가을의 냄새여
뒤늦게 귀 기울이며 곱씹어보는 모든 이별의 순간이여
왜냐면 왜냐면 비코즈니까
새파랗게 질린 가을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이유들이니까
+제망매가
+박인환
/2015. 9. 9.
착한 애인 찾기
*어떤 시/집에 부쳐
선생님, 그런데요 착한 애인이 없네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잘생기고 좀 모자란 도움이 필요한 남자니까 한번 봐주시구려. 아무리 뒤져봐도 착한 애인은 없다네가 없어요. 어중간한 늦여름 날씨에 도서관 안쪽 귀퉁이에 십분 너머를 쪼그리고 앉아 땀 범벅이 되도록 찾아 헤맸으나 그것만은 찾지 못했다오. 수십년 동안 보고 겪은 것 또한 비슷했다오. 책 집어들면 원하는 페이지 척척 펼쳐주는 도서관의 천사는 내게 없다오. 하지만 선생님, 한번 움직이시니 그 애인 마술처럼 금세 제 앞에 모습 보이네요. 作者가 없다고 하니 더 찾고 싶었던 그녀, 이젠 그 속살을 들여다봐요. 지금은 책 속에서 다른 한 줄을 찾아 헤매고 있지요. 아 내 얕은 눈을 또 다른 페이지가 가득 채우네요. 그 페이지만은 물기 가득한 거울이었지요. 그곳으로부터 고래 한 마리가 소리없이 튀어나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뭍으로 올라온 고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잠시 그 고래였으면 했더랬습니다. 미안해요. 죄송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를 고래의 눈이 한순간 촉촉해졌었지요. 그런데 인터넷 충동구매 하듯 가져온 몇몇 책은 ‘반품’하고 싶네요.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도서대출/반납 시스템 사용법을 배운 것은 조금 서글픈 소득이었어요. 내가 뭍으로 올라온 고래라는 걸 알았다는 건요.
밤의 어떤 것
따사로운 봄볕 아래
가늠키 힘든 그늘 자라고 있어
내 차라리 밤을 그렸네
점멸하는 별처럼
수많은 이름을 지닌 바램 가운데
단 하나, 출구를 향하여
빛의 기운이 몰리어 갈 때
마냥 깊어지고
시간과 우주의 고독한 종말을 향해
속절없이 팽창하던
밤, 그리고 밤의 어떤 것
2016. 3. 29.
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
- 수요일과 관련하여 긴 세월에 걸쳐 소소한 글을 몇번 썼었고 몇해 전엔 거의 완결의 의미로 <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을 썼었다. 그런데 ‘웬즈데이 차일드’에 관한 또 한번의 반전이 있어서 원래 글을 그대로 옮기고 끝에 사족을 달았다.
‘Wednesday’s child is a child of woe.
Wednesday’s child cries alone, I know.
When you smiled, just for me you smiled,
For awhile I forgot I was Wednesday’s child.
소니 카세트의 라디오 밴드 불빛이 캄캄한 방의 한 벽을 환히 밝히던 시절, 전파상 유리문에 ‘라듸오’라는 글자가 촌스럽게 붙어 있던 시절 웬즈데이 차일드를 들었다. 첩보영화의 테마라고 했으나 그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살짝 신파조가 느껴지는 곡조며 가사가 심금을 울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트레몰로 느낌이 나는 연주까지도.
그리고 어느 날 내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해봤더니 19XX년 어느 여름날의 수요일이었다. 그래… 나는 그 노래 가사에 딱 어울리는 웬즈데이즈 차일드였구나. 피치 못할 운명처럼 “본 투 비 얼론”이라던. 그녀의 품에서만 웬즈데이즈 차일드임을 잠시 잊는다던. 그래서 수요일은 나름 내 삶의 어떤 상징 가운데 하나처럼 여겨지곤 했다.
웬즈데이즈 차일드가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던 영화 제목 같은 “(퀼러) 메모랜덤”이 아니라 제멋대로 골라잡는 “미스터리 랜덤 메모리”였던 것일까. 몇 해 전 어느 날 수요일에 관한 어떤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생각의 끝이 어딘지를 확실히 집어내고 나니 여태 내가 왜 그 엄연한 사실을 거의 잊어버린 채 편한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오히려 신기할 노릇이었다.

외가 동네에서 태어난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그 다음 날을 생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그리 바꾸었던 것이고, 그것을 고려해서 계산해보니 실제로 내가 태어난 날은 화요일이었다. (양력으론 틀림없이 ‘쥴라이 모닝’이다.) 지금도 여전히 외조부께서 정하신 그 날을 생일로 하고 있으나 내가 태어난 날이 화요일인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그저 스스로의 못난 심사 또는 그 참담한 결과물을 그렇게 갖다 붙이고 싶었던지도.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수요일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이도 아니건만 신성로마제국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와도 별 관련이 없듯, 잉글리시 혼이 잉글리시와도 혼과도 별로 상관이 없는 오보에의 한 종류이듯(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범양사) 그 날이 ‘스윗 튜즈데이 모닝’이든 아니든 어떤 이가 웬즈데이 차일드란 실없는 믿음 내지 현실은 딱히, 그리고 딱하게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Now you’re gone, well I should have known,
I am Wednesday’s child, born to be alone.
/2013. 7. 11. 0:41 (“화이트룸”에서).
- 그런데 다시 한번 반전이 있었다. 모친에게 정확히 알아본 바, 내 기억과는 정반대로 본래 수요일이었는데 음력 생일을 그 다음 날이 아닌 하루 전으로 앞당겨서 바꾸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외손자가 훗날에 겪을 ‘孤’와 ‘苦’를 헤아리셔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수요일이라고 한다. 그 누구의 품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한 줄처럼, “For a while I forgot I was Wednesday’s child.”였다. / 2016. 7. 12.
+
상징적인 의미에서나마 웬즈데이 차일드를 면하고자……
(어차피 음력으로 생일을 한다보니 제 날짜는 절대 아니다)
올해는 외할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날로 지낼 생각이다.
멜랑콜리의 묘약
: 약을 잃고 약을 찾다
그들은 춤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춤을 추었다.
ㅡ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베리
그 책은 어느 약장에 꽂혀 있었을까요. 밤 늦도록 멜랑콜리의 묘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 책엔 발이 달렸는지 며칠 잊고 지내면 벌써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곤 합니다. 아니면 “마개뽑힌 가슴”에서 약이 다 달아나버린 것이었을까요.
약이 없어 약이 올랐습니다. 약이 보이질 않아 어리석게 약발을 받았습니다. 기억의 모랫벌에 새겨진 그림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나는 몰랐습니다. 밤마다 꿈마다 굉음을 울리며 나를 쓰러트리던 화룡+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계절을 잃어버린 장롱속의 옷에서 희미한 약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거의 부스러질 것 같은 옛 가요책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김수영 시집에 그어진 밑줄과 비닐 커버 사이에 끼워져 있는 이름도 모를 배우의 젊은 날 사진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느 밥집에서 가져온 성냥갑이나 지금은 도수가 맞지 않은 촌스런 안경, “리듬 파래이드 제8집” <헤졌을때와 만났을때>라고 적힌 낡은 ‘레코-드’의 노래보다 더한 잡음 마다에도 흐릿하니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으나 낡은 문고판 책 하나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매번 책을 잃어버릴 때마다 어쩌면 그 책 다시는 찾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잃어버린 것이라면 그 약 구해다 주겠노라는 말이 고맙고도 미안하였습니다. 멜랑콜리의 묘약. 백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것만 같은 가슴뼈 사이에 꽂혀 있는 것일까요.
어느 노곤한 잠결에 꿈결에 놓쳐버린 멜랑콜리의 묘약. 침대와 탁자 사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 소리없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쏟아지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캐밀리어+가 얻은 것을 나는 잃었을까요. 멜랑콜리의 묘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딸기빛 유리창+ 너머로 아득히 먼 별을 바라봅니다. 그 아련한 약냄새는 어디로부터 이 밤을 향해 쏟아지고 있을까요. 나는 약을 잃고 또 약을 찾아 기뻐합니다. 그 어리석음이 기뻐합니다.
2001. 11. 8.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
+ <멜랑콜리의 묘약>의 주인공 이름.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
When Doves Cry
어릴 적 팝송이란 걸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사실은 내것도 아니었던) 단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엔 ‘팔로마 블랑카’란 노래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 가사를 보며 즐거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봄날의 작은 새처럼 조잘대던 새하얀 비둘기는 너무 쉽게 날아가버렸고(88올림픽 성화대에서 한순간 사라져버린 비둘기들처럼!) When doves cry의 기타가 잠시 마음을 흔들고 <더 월>의 한 장면처럼 비둘기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꾸꾸루꾸 꾸꾸루…….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의 노래처럼 이야기처럼 빨로마 네그라, 검은 비둘기가 내게로 날아왔다. 차벨라 바르가스와 프리다 칼로 ㅡ 내 것이 아니라 한들 아니 내 것이 아니기에 멋진 사진, 멋진 노래, 그리고 고난의 멋진 시절이었다. 철없는 비둘기는 서럽지만 즐거이 비에 젖고.
Paloma Negra / Chavela Varg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