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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 Preciso Perdoar

알다시피 보싸노바의 트로이카 가운데 그 리듬을 만들어낸 사람은 조앙 질베르뚜였다. 그럼에도 ㅡ 몇몇 상큼한 노래가 없지 않지만 ㅡ 그의 초기 곡들은 지나치게 매끄럽고 가벼워서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다. 보싸노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게츠/질베르뚜 콤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는 과대평가된 것 같고 또 어떤 면에서 그는 과소평가된 가수이자 연주자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양면성은 게츠/질베르뚜의 곡들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나의 노래 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곤한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가수로서의 장애가 장점으로 승화된 듯, 그의 저음이 껄쭉해지고 단조로운 기타 리듬만이 들려올 때 그의 음악은 관조적이고 보다 사색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 같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면 뽀얗게 흩어지는 빗줄기처럼 잠이 쏟아질 뿐.

(‘É Preciso Perdoar’는 ‘당신은 날 용서해야 해’란 뜻이다. 신파조로 용서를 빌던 마리노 마리니의 옛노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또는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나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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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토이 인 디 애틱

노래 속의 이름은 ‘리자’였고 이야기 속의 이름은 ‘리사’였다. 그게 같은 철자의 다른 발음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Lisa’라는 이름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실 그 얼굴이란 내가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또는 상상 속의 얼굴이다. 그녀는 대단한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였고 리사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몇시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던.

어떤 청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녀의 ‘제작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녀 가슴에서 박동 대신 들려오는 시계바늘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였고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약간의 죄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이후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읽던 시점에서 말한다면 일종의 ‘미래의 기억’, 또는 ‘미래에 일어난(나는 이것을 과거형으로 썼다) 잘못에 관한 선험적인 죄의식’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그저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라면 더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리사의 심장이 짹각대듯이 내 가슴엔 감당하지 못할 버거움이 쿵쾅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체스터튼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뭇잎이 되어 숲에 묻혔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삭아가는 장난감이 되었고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에서 전혀 눈에 뜨일 없는 볼품없는 이야기책이 되었다. Sad Lisa, 하지만 슬픈 것은 리자가 아니라 와전된 한 줄처럼……

“Tell me what’s making you sad, Li?”

 

 

Sad Lisa / Marianne Faithfull

달 뜨지 않는데 달뜨는

“Sin amor la luna no brilla en mí…”

칼렉시코의 노래는 그 이름처럼 경계선에 있다. 조이 번즈의 목소리는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지만 노래는 멋지다. 앨범 버전에선 상큼한 목소리를 지닌 까를라 모리손과 듀엣을 했으나 평범한 팝 스타일처럼 들렸던 까닭에 라이브가 더 마음에 든다. 마림바, 그리고  가브리엘라 모레노(과테말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듣는 이는 절로 ‘달뜨는’ 마음이 된다. “신 아모르 라 루나 노 브리야 엔 미”, 사랑 없이 달은 날 비추지 않는다지만.

 


moon never rises / calexico

누군가의 詩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부셔져라 기둥에 부딪혀 딸의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만들었지요. 딸은 누구에게도 아버지가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역시 늘상 무지막지하게 맞곤 했다지요. 아들 낳지 못한 죄로 설움 더 많았던 그녀는 딸을 향해 원망과 증오를 불태우며 또 그렇게 모질게 매질했더랬지요. 그녀가 어린 딸의 마음에 전해준 가장 오래된 기억도 바로 그것이었죠. 옥아… 아버지는 그러다가도 읍내 다녀오면 다정한 목소리로 딸을 불러 세우곤 했습니다. 두 손 펼치게 하고선 도매상에서 떼온 생과자 가운데 비싸고 맛나는 것들만 한가득 담아주었다네요. 수십년 가슴 속에 어떤 시간들은 암염처럼 굳어 있었겠지만 지금도 손 내밀던 그때가 잊히지 않는다는 그녀, 세상에 빛나고 설레이던 그 순간을 누가 알고 기억하고 옮길 수 있을까요. 마음 풀어진 어느 저녁 그녀에게서 내 귀로 들어온 촌스런 이름 하나가 온갖 사연을 머금은 시처럼 들렸습니다. 수십년 전 세상을 떠난 그녀 아버지가 한 줄을 썼고 작년에 눈을 감은 그녀의 어머니가 여전히 쓰린 한 줄을 덧대었죠. 나머지 구구절절 저려오는 행과 연은 모두가 한 사람의 것이었고 그것이 마침내 한 단어로 이루어져 낭송되던 짧은 시간을 나는 몰래 베끼고 베꼈습니다.

 

 

/2014. 6. 5.

 

 

가령, 예를 들자면

컴퓨터는 이미 낡아 폐기처분 되었는데 있던 것 쓰느라 비닐도 뜯지 않고 그냥 뒀던 전원 케이블이나 이제는 쓰지도 않는 기능들을 화려하게 자랑하며 어딘가 가만히 모셔져 있는 텅 빈 핸드폰 박스 같은 것, 책상 설합 한 귀퉁이에 새것처럼 남아 있는 존재하지 않는 시계를 위한 보증서, 루이뷔통 문양이 새겨진 낡은 갈색 비닐봉지나 이미 도수가 맞지 않거나 부서져서 버렸거나 잃어버린 안경의 케이스, 명품 상표가 새겨져 있는 출처불명의 옷걸이거나 책장 넘기다 문득 펼쳐진 페이지에 꽂혀 있는 오래된 가나 초콜렛 포장지,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핸드폰 박스 속의 이어폰, 몇 년이 지나도 한번 펼쳐보지 않는 책, 비닐도 뜯지 않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나 어느 옷을 위해 예비된 것인지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할 단추들이 가득한 플라스틱 상자,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은행의 이름이 찍힌 오래된 적금 통장, 덜덜거리는 자동차의 금세 나온 제품 안내 같은 매뉴얼 책자, 포장도 뜯지 않았으나 설합 한 귀퉁에서 어떤 빛을 위해서도 어떤 움직임을 위해서도 어떤 명령을 위해서도 사용되지 못한 채 소리없이 닳아버린 한 쌍의 건전지, 그가 떨어졌거나 말았거나 선거가 끝난 거리 귀퉁이에 여전히 붙어 있는 웃음과 희망 가득한 현수막과 헛된 공약들, 몇 해 지난 연예잡지에 실린 빛바랜 사랑 고백, 얼어붙은 채 서서히 비상이 되어가는 냉장고 속의 청심환, 유효기간이 이미 지나버린 보험증서 같은 뭐 그런 것들 또는 그렇고 그런 것들, 무엇을 보증하는지 어디에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꿈에 귀 기울일 수 있는지 영화로움이 있었는지 알 길 없는 흔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어떤 흐릿하고 긴 그림자

 

 /2013.05.23 23:39

million miles from

하늘을 향한 트럼펫, 뺨으로 흘러내리는 땀……
크기 때문이었을까.​
검어서 더 휘황해 보였던 흑백 텔레비젼 속 금관악기의 번쩍임처럼
기억속 그 사진의 검은 부분은 보다 더 검었고 한참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아주 좋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저것 구경꾼 마냥 조금 들어보았을 뿐, 음악에 대해서도 잘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본 사진으로부터 많은 기억들이 다시, 또다시 내게로 왔다.
아주 커다란 흑백 사진의 액자가 모퉁이 세워져 있던 방과
생각하면 들려오는 듯한 뮤트된 트럼펫 소리.

​알래스카 상공이었던가 모르겠다.
까마득한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어둠 속 아주 작은 불빛들이 꿈의 조각처럼 드문드문 보였다.
밤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작은 창 아래로 보인 그 풍경들은
나로선 영영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착했던 방이 이제는 그 천길 만길 아득했던
설원의 불빛과도 비할 수 없이 먼 곳이 되었다.
그 방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고적감이나
잠시도 참기 어려웠던 칼날 같은 추위에조차 온기가 느껴지곤 한다.
오래 전 그 방에서 사라진 포스터 대신,
사라져버린 방과 그 방의 주인 대신 소리는 남아 여전히 맴돌고 있다.

​아직 다 보내지 못한 텅 빈 세월이 먼저 만들어낸 소금의 기둥이었을까.​
쓸어담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지난 날의 느낌들을
기꺼이 고쳐가며 나는 하염없이 돌아보곤 한다.
닿지 못할 아득한 불빛들을, 그 가운데 오직 하나를.

 

 

 

 

/2016. 1. 4., 미음리을.

 

오늘처럼 비루한 영원

시는 스님께서 서기 760년 쯤에 쓴 것이고요, 그럼 그 가지는 어디쯤 있었던 걸까요. 어리석은 현장검증에 착잡했던 여름날을 기억합니다. 절터가 있던 낮은 산길을 걸을 적에는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피리를 불어 달을 밝히던 스님, 그에게서 시가 된 그 일이 실제론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상상을 가끔 합니다. 그럼 그 시는 아주 오래된 화두이거나 또는 그날에서 오늘까지, 수천년까지의 수많은 어느 날을 위해 준비된 의미심장한 메시지 같은 것일테지요. 그리하여 나는 하염없이 마음 속에 마음을 옮겨 쓰며 그것들이 다른 글자들로 이루어진 같은 문장이 될 날의 꿈을 꾸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한자 쉼표 하나 다르지 않게 그것이 똑같은 문장이 되어도 같은 사연은 결코 아니겠지요. 어떤 이가 들려줬던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처럼요. 정말이지 분명 다른 이야기일 거예요. 만약 제대로 베껴 쓰지 못한다면 오늘처럼 비루한 영원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살이로 지내다 말 것입니다. 꿈인지 生인지 분별키 힘든 아주 아주 긴 하루를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는 스님께서 서기 760년 쯤에 지으신 말씀이고요, 그 몇줄 되지 않는 글을 나는 아직 옮겨 쓰지 못했어요. 가을 이른 바람에 날아간 잎새는요.

 

 

/2015. 11. 11.

님은 먼 곳에

가을의 도로 위를 무작위로 흐르는 노래들, 오랜만에 장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부터 그의 노래는 아니었지만 이 사람 찾아 헤매이는 그 먼 곳 생각나서 꽉 닫힌 창문 안에서 뒤늦게 목청껏 따라 불렀다 내 마음이 가는 그 곳+, 아득한 그 곳 향해 마음 몇 가닥 옮겨보려고 오랜 세월 씨줄 날줄 엮어도 보았으나 처음에 떠올렸던 어느 한 줄이 모든 것이었기에 그 어떤 살도 붙일 수가 없었다 2002년에 썼던 한 줄 매번 고친답시고 끄적일 때마다 억지로 이어붙인 가짜 갈비 같은 느낌 지울 수 없었는데 또 어설프게 포장을 했다 하지만 이제, 갈비살은 더 이상 붙이지도 떼어주지도 않을까 보다 그리고 여기, 갈 곳 없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 않은 것 없는데
한 것은 더욱 없네
님은 먼 곳에
그러나 님은 곳곳에

 

 

+
미련, 장현 노래 / 신중현 곡.
/2015. 10. 19.

my love is true(love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B2CpSL7Ztqc&feature=player_detailpage

 

이 노랠 처음 들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한다.
이름은 잊어버린 학교 앞 “음악다방”이었다. 우리는 ‘프레쉬맨’이었고
통일전선전술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길 좋아하던 어떤 친구가 곁에 있었다.
(그 다방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으로부터 몇백미터 안쪽에 있었다.
그 친구의 집도 비슷하니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거기서 우연찮게 두 노랠 들었는데 하나는 “은막의 제왕”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곡이었다. 둘 다 처음 들었고 둘 다 너무 멋졌다.
그리고 오래도록 좋아했었다.

 

my love is true.
알다시피 그런 말 굳이 필요없지만
그런 말 꺼내야 한다면 이 노래처럼 조금은 서글플지도 모르겠다.
my love is true.
(like the first star of the night)
‘love’라 발음할 때 잠시 눈부신 빛을 발하다 스러지는 심벌즈 소리처럼.

‘TRUE’라는 상표를 새긴 탄환이라도 장전한 것일까.
(it’s rooted deep in fear)
서부극의 한 장면에나 어울릴법한 울림을 지닌 기타 소리가
누군가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my love is true.

​……true.

​……false.

​……true.

​……false.

 

알수달수 없겠다던 어린 시절 ‘찍기’처럼
저 혼자 오락가락 했던 때.

 

 

(이 곡의 원작자는 deroll adams로 도노반은 그의 노래 몇곡을 리메이크 했으며
데롤 애덤스를 소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잡음 가득한 애덤스의 원곡은 촌스럽고 좀 더 쓸쓸하다.
도노반과 애덤스의 연결은 내가 램블링 잭 엘리엇을 듣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My Love is True (Love Song) / Donovan

My heart is like a flower for my love
That blooms as I hold her tenderly
But it’s rooted deep in fear
Just as heavy as a tear
That whisper low, her lover is not for me

My love is true
For her it is true
And I pray that her love is mine

My love is like the first star of the night
That brightened up the world’s first darkness
Like love stories very old
A million times been told
Her eyes are worth more than bright diamonds

My love is true
For her it is true
And I pray that her love is mine

My love is true
For her it is true
And I pray that her love is mine

Alone at night in my dark lonesome room
I like awake a-sadly dreaming
Although you’re not very near
Still I can hear
Your soft and tender heart a-beating

My love is true
For her it is true
And I pray that her love is mine

My love is true
For her it is true
And I pray that her love is mine​

(Music and lyrics by Derroll Ad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