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줄 누가 내어놓았는지
강아지 한 마리 위태로이 찻길 따라 걷는다
바쁠 것 없는 걸음 괜스레 재촉하다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다
(알지 못하는 셋이 길에서 마주쳤는데
그 가운데 二人이 느낀 것을
어느 一人이 쓰다.)
/2015. 3. 22.
그 목줄 누가 내어놓았는지
강아지 한 마리 위태로이 찻길 따라 걷는다
바쁠 것 없는 걸음 괜스레 재촉하다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다
(알지 못하는 셋이 길에서 마주쳤는데
그 가운데 二人이 느낀 것을
어느 一人이 쓰다.)
/2015. 3. 22.
: Johnny Cash
The needle tears a hole
The old familiar sting
Try to kill it all away
But I remember everything
― Hurt, Nine Inch Nails
자니 캐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TV쇼와 Ghost Riders in the Sky, 그리고 딜런의 <내쉬빌 스카이라인>에서
그의 목소리를 조금 들었을 뿐이다.
어딘지 살짝 불편하고 뭔가 유들유들한 이미지였으나 그렇다고 그게 아주 싫지도 않았던.
그리고 우연히 그가 말년에 노래한 Hurt를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노래도, 얼굴도, 그리고 그 노래가 인더스트리얼 록 그룹의 것이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Heart of Old’라고나 할까.
그는 정말 그 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나인 인치 네일즈의 것과 캐시의 곡은 가사만 동일한 전혀 다른 노래 같았다.
또 엄밀히 말하자면 똑같은 가사조차도 다른 무엇처럼 보였다.
똑같은 문장을 나열해놓고 전혀 다른 의미의 해설을 달았던
보르헤스의 어느 단편처럼
그의 가슴 속에 박힌 ‘9인치 짜리 못’은 참으로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삶의 무게일지 죽음의 무게일지 그것의 총합으로 상징되는 무엇일지 모르지만
세상 많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겪으며 황혼에 다다른 한 노인의 모든 것이
노래 속에, 화면 속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젊은 날의 모습들, 수많은 트로피, 깨어진 레코드 액자들, 식탁 위에 쏟아지는 포도주……
예수의 고난과 한 노인의 회상/회한을 뒤섞어 보여주는 것도
이 노래에 또 다른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Closed to the Public,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들……
Hurt를 노래한 다음 해 그는 세상을 떠났다.
(P.S. 이 동영상의 전반적인 모습이 누군가의 그림을 빼다박은 것 같은데 딱 집어내지는 못하겠다.)
/2014. 11. 10.
꽃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 이장희
나는 미안했다.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해온 까닭이다. 사실이 그랬다. 단 한 번의 만남, 그리고 전화로 숱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그녀는 즉각적으로 알아챘고 곧장 반응하곤 했다. 그리고 몇 걸음 훌쩍 더 나아갔다. 그럴 때 그녀 자신의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지 가끔은 궁금하다.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은 별로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생각했고,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수많은 꿈과 욕망을 가진 그녀에게 그 어떤 종류의 충족감이나 충만감을 줄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자책감으로 뒤척이다 어느 순간 그는 깨어났다. 깨어났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묘하게 몸은 가벼웠고 나는 낯선 이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몸은 가벼웠고 나는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그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은 문을 슬쩍 밀고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방에는 아무런 조명도 켜져 있지 않았고 창밖도 거의 캄캄한 듯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방의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리맡 한쪽에 펼쳐져 있는 잡지의 본문까지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 벗은 것은 아니었다. ‘La Maja Desnuda’ 보다는 ‘La Maja Vestida’에 가깝다고나 할까… 하얀 브래지어와 속이 살짝 비치는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나는 흰 색 아니면 검정색이지. 어쩌면 하얀 색이 아닐지도 몰라. 밝은 분홍이나 크림 색깔일 수도……’ 하지만 내게 보이는 모든 것은 색감이 거의 사라져버린 흑백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흑백의 톤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고 드문드문 희미한 빛깔의 흔적이 있었으나 대부분 흑백에 가까웠다.
밤새 너무 뒤척였던 탓일까. 어떤 간절한 꿈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일까. 왼쪽 브래지어가 조금 위로 올라가 유두에 걸쳐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너무도 선명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떤 짐승의 발이 그녀의 가슴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짐승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대체 저기서 뭘 하는 것일까. 제 홀로 그루밍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래의 숏헤어인지 스팟이 인상적인 뱅갈인지 모르지만 드문드문 흰빛이 보이긴 해도 거의 틀림없는 잿빛 고양이였다.

튀어나온 발톱 두 세 개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 발톱의 주인공은 오른 발을 지긋이 눌러 발톱은 그녀의 젖가슴을 파고들었다. 고양이 발톱이 그렇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뾰족한 두 발톱이 지긋이 그녀의 가슴을 누르는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해서 감촉이 내게도 느껴질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조금 아프겠다 싶을 만큼이었고, 오른발이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자 가슴에는 몇 개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어디서 키우던 고양이인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고양이는 왼쪽 발톱만 다듬어져 있었고 오른쪽 발톱은 아무렇게나 자란 채 그 하나는 일부가 깨어진 채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고양이의 발은 다시 그녀의 가슴을 향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가슴에 두 줄의 상처를 내었고 나는 희미한 신음소리를 들었다. (들었다고 생각했다.) 몹시도 듣고 싶었고, 스스로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소리다. 그게 아픔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간의 쾌감을 동반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었다. 그저 고양이의 눈이 불타오르는 듯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움직임으로 그녀의 몸이 좀 더 확연히 드러났고 크지 가슴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이윽고 작고 까칠까칠한 돌기 가득한 혀는 희미한 상처를 핥다 젖꼭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낮게 가르릉거렸고 그녀는 잠시 몸을 움직이며 이전보다는 좀 더 분명하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새파란 수염이 어둠 속에 가늘게 떨리었다.
나는 마음이 다급했고 이 순간을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지금 모습 그대로 흑백이 좋으리라 싶어 그렇게 세팅을 하고 플래쉬 대신 밝은 렌즈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직접 셔터를 누르고 싶지는 않아 자그마한 삼각대를 세우고 셀프타이머를 맞추고는 셔터를 눌렀다.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의 갑작스런 상황이라 그런지, 아니 모든 게 꿈이라 그런지 스위치 만지고 누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한 순간이었다.
다행이 고양이는 내 뜻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너무도 잘 움직여줬다. 누가 그랬는지 그녀의 팬티는 허벅지 조금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고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숨소리, 아주 조금 빨라진 심장의 박동소리도 들렸고 모든 것이 분명해진 듯한 그 순간 셔터 음이 울렸다.
소리에 놀란 고양이는 그녀의 가슴에서 앞발을 떼었고 그녀는 뒤척이다 옆으로 누웠다. 그녀의 손이 거의 닿기 힘든 곳, 등의 가운데에도 희미하니 복선이 사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그녀는 다시 엎드려 누웠고 고양이는 그녀의 엉덩이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끈적이며 나를 유혹하는 또다른 어떤 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틈새로,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희미한 각성 너머로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편으론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으나 또 어쩌면 바로 내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도 같았다. 그녀 곁에 붙어 있던 고양이의 울음은 분명 아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주위를 둘러보다 나는 조금씩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엉덩이로부터, 그녀의 고양이로부터, 그리고 내 마음의 카메라로부터.
깨어나니 거의 사용한 적이 없는 삼각대는 내 방에 그대로 서 있었다. 창문 아래 화단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꿈이 너무도 선명하여 나는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카메라를 갖고 와서 다시 누웠다. 어떤 사진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잠시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잠결에 카메라 만지다 그리 되었는지 검지 손톱 한 귀퉁이가 살짝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비가 본 것을 나는 여태 보지 못했고 나비가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나는 보았다는 것, 그래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2013. 4. 13.
*거의 이십여년 전에 썼던 노래의 몇줄을 떠올리다 호접몽(胡蝶之夢)이 ‘나비’의 꿈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묘접(猫接)’이란 단어를 생각해냈다. 묘접의 접은 ‘사귈 접(接)’이다.
*네거티브 사진은 프란츠 로흐의 <고양이가 있는 누드>를 반전시킨 것이다.
*Butterfly / Crazy Town
감히 말할 수 없는 그것 - 카르투슈에 둘러싸인 파라오의 신성한 이름처럼 섣불리 발음조차 할 수 없는 그것 텅 비어 있는 왕의 자리처럼 감히 그릴 수 없는 그것
새벽 꿈길에 흔적 없이 왔다 가고, 폭풍처럼 한 순간에 나를 채우곤 했네 어떤 전통은 그것을 14행으로 노래하려 했고, 어느 나라에선 세 줄이거나 한 줄만으로도 충분하였다네
어떤 이의 이야기 속에서는 뭔지 모를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꿈꾸었고, 다른 이는 300행에 달하는 재나두의 꿈을 끝내 옮겨 담지 못했네
그 속에 형상 없는 재료로 이루어진 유구한 사원이 있으나 진실한 믿음은 결단코 흔치 않은 법, 적어도 내 안에서는 흘러간 적 없는 옛 시인의 노래는 연인의 눈동자에서 그것을 본다고 했네
미다스의 이발사처럼 복두장이의 비밀처럼 주체할 수 없는 답답함을 내게 주는 그것 그 어떤 한적한 갈대밭도 찾지 못해 세상 많은 이들을 방황케 하는 그것
그대 있으니 나 또한 있고 그대 없으면 나도 또한 없음이라 말로 이루어진 사원을 꿈꾸었으나 有와 無를 모두 세우지 아니한다 했으니+ 쉽사리 발설했다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면서도 말하지 못해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바로 그것
/2010. 5. 27.
+爾有我亦有(이유아역유) 君無我亦無(군무아역무)
有無俱不立(유무구불립) 相對觜盧都(상대취로도) /冶父 頌
<金剛經五家解>에서 변용하였고, 相對觜盧都 또한 “말할 수 없는 그것”이어서 넣지 않았다.
+”텅 빈 왕의 자리처럼 감히 그릴 수 없는 그것” 2025년 9월에 수정하였다.
2009년의 마지막 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역에선가 황급히 일어나던 아저씨 주머니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것을 본 듯 싶었다. 출구를 향해 달려가던 분을 불렀으나 못들었는지 그냥 가시기에 목소리를 좀 더 올려 열쇠가 떨어진 것을 알려줬다.(이럴 경우 부르는 사람이 더 부담스럽고 무안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나이를 먹으면 이런 부끄러움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도 그쪽으로는 도대체가 발전이 없는 인생이다.)
듬성듬성 자리가 빈 객차의 맞은편에는 살짝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아가씨 내지 아주머니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복장에다 70년대 단발머리 같은 촌스런 머리에 촌스런 머리핀을 아무렇게나 꽂고 있었다. 거기다 몇번씩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나는 괜스레 시선을 다른데로 돌려야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내에서 내렸고, 자리는 점점 더 여유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녀가 갑작스레 내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더니 잠시 눈치를 살피다 귀에다 대고 말을 걸었다. 그녀의 표정이나 복장과는 달라 보이는 멀쩡한 목소리며 억양이었다.
당황한 탓에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있다 또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 유리창에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그녀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진주 쪽에서 왔는데 차에서 졸다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오빠가 모텔에서 재워주면 안되나요? 갈 데가 없어 하루종일 지하철만 타고 있어요.”3분쯤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차비에 보태도록 2천원만 주시면 안되나요?”. 그게 일종의 수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의 저녁은 그렇게 저물었고 열쇠를 잃어버린 어떤 고단한 삶이 한참을 내 귀속에 머물러 있었다. 귀(ear) 또는 누군가의 세월(year) 속에.
/2010. 1. 2. 19:28 ![]()
우리들 모여 밤새 이야기 나눌 적엔
화장실 가는 것도 참 미안하였다
그 마음 한 조각 어디로 달아났는지
하루 빠짐없이 일었다 스러지는 그리움
아스라히 별빛처럼 달려
아직은 깨어나지 않은 어느 행성의 아침에게로
+
1968년 9월,
그리고 모든 그리운 해에 바침.
/2009. 7. 17. 2:13
지난 여름에 이어 다시 한번 경주를 다녀왔다. 연꽃이 만개했던 연못은 가뭄 탓인지 바닥을 보였고, 새카맣게 말라버린 연밥은 고장난 전화기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도 비슷하니 그렇게 살고 있다.
별은 그토록 낮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던지 꿈은 나날이 터무니없이 졸아들었으나 월성과 계림의 풀밭과 숲은 계절을 느끼며 걷고 즐기기에 충분하였다.
‘덕만’의 시대는 험난하였다는데 분황사와 첨성대, 황룡사 목탑이 모두 그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경주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구빗길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강원의 준령 사이를 달리는 것처럼 상쾌하였고 회로 유명하다는 감포 해변은 좀 허술하고 깔끔하지 못했다.
수중릉의 주인에게 역사적으로 눈에 띄는 죄과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축생의 과보’도 마다하지 않겠노라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묘한 동조가 일었다.
해변에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방식으로 기도하는 무속인들도 제법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천을 몸에 감아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씻고 털어내는 시늉을 하더니 그것들을 바다를 향해 날려보내곤 했다. 아득하게 북소리도 가끔 들렸다.
어쩌면 예만자 여신을 찾는 살바도르의 해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바다에서 죽는 것은 달콤한 일이라던 바이아의 영원한 水夫 까이미의 노래도 생각이 났다. 밤하늘 바다 위의 별은 예만자의 보석(은과 금)이라던. 때늦은 가을 바람에 나즈막한 낭산 기슭 다시 한번 걷고 싶어진다.
홀아비는 미녀를 꿈꾸고
도적은 보물창고를 꿈꾸는구나
어찌하면 가을 맑은 밤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경에 이를거나 (일연).
/2008. 10. 30. 0:13
<초고속 승진을 시킨 마술>에서 가장 절묘한 것은 ‘메추리를 재료로 하는 저녁 요리’라는 복선이다. 마술을 시작하는 시점에 등장하는 “메추리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만들지 말라”는 언급은 나중에 마법을 취소시키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것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복선 내지 스위치가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포함되어 있다. 윈도 xp, 비스타 등의 <시스템 도구> 항목에 있는 <시스템 복원>이 바로 그것이다. ‘시스템 복원’은 운영체계가 스스로 일정 시간마다 복원 시점을 만들어 (혹은 사용자가 수동으로 복원 시점을 만들어)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를 발생시킬 때 그 이전의 특정한 시점으로 컴퓨터 환경을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메추리 저녁식사’는 마법사와 신부의 삶에 있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마법사가 만들어둔 일종의 복원시점 같은 것이었고, 유저(마법사)의 입장에서 원치 않은 상황을 초래한 신부의 초고속 승진은 “메추리로 저녁 식사를 만들라”는 ‘시스템 복원 명령’에 의해 그 시점으로 돌아가버렸고 교황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했던 마법은 덩달아 ‘언인스톨’ 되어버린 것이다.
예전에도 ‘시스템 복원’에 대해 무엇인가 글 썼던 것을 기억한다. 내 삶에 그런 시점을 설정할 수 있다면 어디쯤일까에 관해서도. 옛노래 그린 필즈에서 늘 마음을 저리게 했던 구절 역시 가능하지 않은 ‘복원’에 관한 대목이었다.
월명리의 전설 또한 이야기 또한 복원할 수 없는 무엇에 관한, 어떤 길에 관한 생각이었다.
메추리로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는 삶, 복원 기능이 없는 삶에 있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스위치는 어쩌면 ‘현재 그 자체’일 것이다.
참고로 <초고속 승진을 시킨 마술>을 비롯한 <불한당들의 세계사> 수록 작품 대부분은 보르헤스 자신의 순수 창작이 아니라 세계 각처의 기록과 전승, 작품에 관한 ‘다시쓰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2008. 8.16. 13:22.
+
시스템 복원(system restore)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me, xp, 비스타, win7~10의 운영체제에서
시스템 파일, 레지스트리 키, 설치된 프로그램 등을 특정 시점의 상태로 되돌리는 시스템 도구.
보조프로그램-시스템도구-시스템복원.(win7 기준).
날씨는 버거울만치 무더웠고 길은 여기저기 정체가 심했다. 박물관은 그 본래의 기능과는 별 관련이 없는 무질서와 무례, 그리고 카메라 플래쉬의 경연을 관람하기 위한 장소처럼 보였다.
경주엘 잠시 다녀왔다. 집안의 일도 좀 보고 그리고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어느 옛 스님이 즐겨 피리를 불고 시를 읊었다던 장소를 찾아갔다.
천년고도에 관광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천왕사터 도로변에는 안내판조차 제대로 없었고 믿었던(?) 네비게이션도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지는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장소에는 당간지주만 휑하니 서있었을 뿐,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도 발굴관계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고 휴일이어서 그런지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덕만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여왕의 능이 근처에 있는 까닭에 옛 절터의 전망이라도 볼 수 있을까 막연한 요행수를 바라며 무작정 샛길로 해서 언덕처럼 보이는 나지막한 산을 올랐다. 전날 무릎을 좀 다쳤으나 그 순간에는 불편한줄도 잘 몰랐다. 땀 뻘뻘 흘리며 5분쯤 쉬지 않고 걸었더니 거의 꼭대기 가까이에 이르렀고 시원한 바람이 좀 부는가 싶더니 금세 왕릉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왕의 무덤은 상당히 큰 크기였으나 기단부의 거친 돌에서 보듯 대체로 소박한 모습이었다. 왕릉에 세워져 있는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에 만들라고 했으며 그곳이 어딘지 모르는 신하들이 위치를 물었더니 낭산 기슭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낭산 기슭에 영면한지 10여년 후에(일반적으로는 이와 달리 문무왕 19년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 아래쪽 넓은 터에 사천왕사가 들어섰다고 한다.
<유사>에 이르기를, 도리천이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사천왕이 머무는 곳 위에 있다고 하니 여왕의 무덤이라는 결과가 먼저 이루어지고 그곳의 존재를 증명해줄 근거가 뒤늦게 자리를 잡았다고나 할까… 없는 향기로 해서 더 깊은 향을 보여주었던 옛 여왕의 전설이었다.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산 중턱에는 용을 든 증장천왕, 검을 쥔 지국천왕, 비파를 갖고 있는 다문천왕, 왼손에 탑을 든 광목천왕으로 불리우는 사대천왕이 머물러 도리천을 지킨다.)
결과와 원인의 미묘한 역전 때문이었을까. (내용은 좀 다르지만) 왕릉과 사천왕사에 얽힌 이야기는 묘하게도 보르헤스의 <초고속 승진을 시킨 마술>이란 단편을 생각나게 했다. 천일야화의 외전에 실렸던 이야기를 보르헤스가 ‘다시 쓴’ 것이다.
저녁 식사를 앞둔 어느 마법사의 힘으로 순식간에 신부에서 교황까지 이른 어떤 사람이 (마법을 행하기전 마법사는 저녁식사로 메추리 요리를 먹고 싶으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 약속을 저버리고 마법사의 부탁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자 (돌아갈 때 먹을 음식을 부탁하자 그마저도 주지 않겠다고 한다) 마법사는 메추리 요리를 만들라는 분부를 내리고 모든 일은 처음대로 돌아와 버린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부덕함만 마법사에게 속속들이 보여준 결과, 모든 것은 처음으로 와서 신부는 일언지하에 쫓겨난다. 도리천과 사천왕사,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역전에 대해 생각하며 능에서 내려오는 길에 검은 물잠자리 한 마리가 내 앞의 풀꽃을 오가며 한참을 따라 날아왔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 생각하며 잠시 둘러봤을 뿐인 낭산은 거문고 타던 백결선생이 거처했던 곳이고, 최치원이 책을 읽던 장소이며 월명사가 ― 도리천에 이루어진 옛 여왕의 영면처럼 원인에 앞선 ‘결과’로 느껴지는 ― 불멸의 시를 썼으리라 여겨지는 곳이다.
마법사의 저녁 요리와 같이 이미 이루어진 결과를 돌이킬 수 있는 어떤 주문, 어떤 ‘문두루’도 없기에 월명리는 여태 지도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경주 어느 마을의 이름이다. 바람결에 글 몇줄 새길 날 기약하며 홀로 그리고 또 그려보는.
(돌아오는 길에는 안압지 부근에서 연꽃 구경을 했다. 옷걸이 속에 연밥이 그려져 있던 일련의 그림들과 더불어 수화기처럼, 혹은 송화기처럼 생긴 연밥 보면 늘 어떤 불가해한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월명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은 종이돈 날려 떠난 누이의 노자를 삼게 했고
피리 소리는 밝은 달 일깨워 항아가 그 자리에 멈추었네
도솔천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 그 한 곡조로 즐겨 맞았네
(一然 讚)
/2008. 8.12. 19:11
눈길 마저 닿지 못할 아득한 거리
홀로는 가지 못할 길들을 생각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
짧은 마디 속에 점멸하는
또 다른 노래
/2008. 8. 7. 2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