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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事虛辭

한시간 가량 지하철 타고 처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대신 받은 처방전에는 여섯 개의 약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네 개의 알약은 날짜별로 포장되어 있었다. 둘은 따로 종이곽과 플라스틱 케이스로 받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두 종류는 드시지 않는다. 약 먹기 전부터 사진 찍고 또 사진 찍고 뭔가를 폰에 메모한다. 이쑤시개로 조심조심 신중하게 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 점심을 넘겨서야 약을 드시고 빈봉지 사진을 또 찍는다. 때로는 저녁때까지 약이 남아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진만 찍다 아예 약을 드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누가 빈 약봉지를 버리는 바람에 난리가 났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약상자에서 옛날 봉지 하나를 찾아 그곳에 새로 날짜를 기입해서 사진을 찍으셨다. 이유인즉 늘 어딘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그걸 작품이라고 하신다. 약 드실 것을 재촉하니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작품…… 헛웃음이 났지만 작품…… 그러나 통할 길 없는 세계를 향해 엉뚱하니 보고만 하다가 급기야는 작품이라 우기는 것이 그만의 일은 아니다 싶어 나는 황급히 웃음을 거두어야 했다. 만사 귀찮은 상태로 하루를 보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혼자만의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포기

지난 늦가을 베르가못 꽃씨를 구해 두 개의 종이컵에 심었었다. 철이 맞지 않은 것은 알았으나 집안이어서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베르가못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이다. 어릴 적에 어쩌다 마셔봤던 홍차 ― 한참 뒤에야 어느 세심한 손길을 통해 알게 된 그 이름 얼 그레이 때문인지 베르가못은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금세 자랄 줄 알았지만 정말 깨알 같은 새싹들은 몹시도 더뎠다. 한 달, 두 달이 가도 키가 자라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푸른 빛은 여전하였으나 자라지는 않았다. 50여 개의 씨앗에서 30개의 싹이 나왔지만 결국엔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지난 6월, 시들은 콩나물처럼 비칠대던 마지막 한 포기마저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허다한 일, 천만의 말과 글을 뱉어내었지만 그 무엇도 시가 되지 못했고 천억의 번민들만 끊임없이 울렁거렸다. 끝도 없이 신기루에 속았으면서도 여태 포기할 줄 모르는 어떤 한 포기, 그 어떤 싹도 보이지 않는 화분에 언제까지 물을 부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비슷한 하루 척박한 작은 우주를 헤매인다.

“카카오 씨앗”에 관한 부연

내가 쓴 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사설 늘어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에 대해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우연히 구글 바드 테스트하다 카카오 씨앗의 초기 버전을 올렸더니 시라고도 하지 않았고 해석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심지어 제목도 빠트렸다) 시로 이해하고 나름의 설명을 하였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데 우선 AI의 해설을 살펴보고 내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 구글 바드의 해석

시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는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시의 화자는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며,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바람에 의해 사라져 버린 만남을 생각합니다. 화자는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지만 그 너머의 하늘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어느 날 남아 있는 책을 펼치다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를 발견합니다. 화자는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다 먹은 초콜렛 한 조각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남겨두곤 했었습니다. 화자는 초콜렛의 향기가 오래된 책 냄새 너머 속절없이 흩어졌지만, 짙은 빛깔은 여태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그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카카오 빈이 향기를 얻기까지 대략 열 다섯 날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의 여정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내 책꽂이 어딘가 또는 무한의 서가 어딘가 향기 깨울 바람뿐인 열 다섯 날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천상의 열 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 내 이야기

바드의 해설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으로 하지만 소극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럼에도 시가 지향하는 바는 일정 부분 파악하였다. 마지막의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에서 그것은 꽤 분명했다.(바드는 “녹록한”의 뜻을 몰랐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 <다 녹은 초콜렛>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여년 전의 그 시에서 내가 말하지 못한 것을(또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을) 말하고 있음에서 의미를 달리한다. 완성도에 관해서는 물론 별개다.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졌다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어도 그 너머 하늘빛은 변함이 없다
형상을 잃어버린 초콜렛의 맛처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책속의 초콜렛 포장지처럼

 

2017년 3월 10일에 쓴 글은 전날에 일어난 “아주르 윈도우 붕괴”의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소소한 이야기 끝자락에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그래서 나는 지난 6년간 게시판에 쓴 이 글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달 전에 문득 초콜렛 포장지와 그리움에 대한 시를 쓸 생각을 했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이 넉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넉줄이 그 자체로 시가 되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시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님은 먼 곳에” 이래로 내가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17년의 글을 떼놓고 생각한다면 아주르 위도우가 사라진데 대한 나의 소감은 <다 녹은 초콜렛>에서 그러하였듯 형상보다는 본질에 의미를 둬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삶과 존재에 대한 내 생각을 담은 것이었다.

 

어느 날 남아 있는 책 펼치다 책갈피인양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어서 한 조각 초콜렛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간직하곤 했던 것이다 찰나였다 순간이었다 오래된 책 냄새 너머 향은 속절없이 흩어졌으나 짙은 갈색의 포장지는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초콜렛 포장지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는 허망한 상실에 관한 것이다. 나중에라도 가능하다면, 이 부분은 더 줄였으면 싶다.

 

카카오 씨앗을 醱酵(발효)시켜 향을 얻기까지 대략 열다섯 날, 내 책꽂이 어딘가에서 무한의 서가 알 길 없는 한 모퉁이까지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天上의 열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風化―바람이 만들었으나 바람이 되어버린 風景에 대한 바람이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시를 쓰면서 나는 향이 없는 카카오 씨앗이 대략 15일의 발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초콜렛의 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보름의 시간을 찰나인지 억겁인지 티끌 같은 유한의 존재로서는 알 길 없는 천상의 열 다섯날로 연결시켰다. 그립고도 익숙한 향을 다시 만나는 날 말이다.

이 시는 <다 녹은 초콜렛>. <다음 이 시간에…>와 같은 그리움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오늘처럼 비루한 영원>은 그리움을 테마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상은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 동생에 대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마음을 담고 있다. 다만 <다 녹은 초콜렛>과 달리 이 시는 내 모든 상실과 이별, 단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과 재회의 시간을 기약하고 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사실 이 시는 마지막 한줄이 전부다. 기본적으로는 구글 바드의 해석처럼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다음 이 시간에…>”와는 달리 이를 굳이 과거형으로 한 것의 의미까지 파악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고, 이것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AI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과거형이 된 것은 모든 이별과 상실 너머 이어진 알지 못한 어떤 시공에서의 만남의 순간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것에 관한 터무니없고도 분명한 믿음, 어쩌면 불가능한 바람에 대한 어이없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에는 물론 그리고 당연히, 당신도 있다.

존 레넌, 하이쿠, 궁금한 너의 창가

다만 그 그늘에 놀며 풍우에 쉬 찢겨짐을 사랑할 뿐이로다.
/마츠오 바쇼

 

존 레넌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밥 딜런 보다는 그 사람을 훨씬 좋아한다고 느낀다. 음악에 국한해서라면 (그의 노래들이 내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존 레넌보다 딜런을 더 즐겨 듣는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생각은 한참 다르다.

오늘은 오노 요코를 통해 하이쿠에 대해 처음 소개 받았을 때에 관한 존 레넌의 언급을 보았는데 하이쿠와 롱펠로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코멘트를 읽은 내 느낌은 그가 하이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무 탁자 위 하얀 그릇에 담긴 노란 꽃”처럼 하이쿠는 전체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그와 궤를 달리한다.

 

Original pages from Lennon’s sketchbook: “Wabishii” and “Sabi.” Photos by Yamanaka Shintarō (Qsyum!). (Courtesy the Double Fantasy: John & Yoko exhibition in Tokyo)

 

비틀즈 연구가 히로타 칸지에 의하면 존 레넌이 일본에 왔을 때 기무라 토스케를 통해 바쇼와 잇사의 하이쿠를 알게 되었고, R. H. 블리쓰의 하이쿠 책을 읽었으며 료칸에 숙박하기도 했다. 그는 비쇼의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보라 소리(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가 새겨진 기무라 토스케의 탄자쿠(와카, 하이쿠 등을 붓으로 쓰기 위해 사용하는 길게 자른 종이, 일반적으로 36×6cm)를 좋아했으며 그와 함께 가부키 공연도 보았다고 한다.

레넌은 자신의 노래 My Mummy’s Dead가 하이쿠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소감도 피력했지만(외형상으론 그러하다) 어린 시절 그 노래에 꽤 마음이 쏠렸던 내게 있어서도 그닥 공감이 가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젖소, 절벽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헐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 대한 그의 농담조 낙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 노래의 感傷은 스스로의 상처에 대해 “노출이 너무 심한”의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그가 말한 ‘노란 꽃’에 대한 언급이 하이쿠일까 해서 생각도 해보고 검색도 해봤지만 찾지는 못했다.(적어도 하이쿠의 정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에겐 늘 시적인 분위기와 시 같은 노랫말이 존재한다. 존 레넌이 쓴 가사에서 하이쿠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을 고르자면 얼른 생각나는 것은 내가 늘 좋아하고 인용하곤 했던 아래의 두 줄이다.

 

Half of what I say is meaningless
But I say it just to reach you
/Julia

 

 

오래도록 나는 Julia를 그리움을 간직한 시처럼 생각했고, Strawberry Fields Forver나 Across the Universe 등에도 ― 그것이 하이쿠의 이미지를 가졌든 아니든 상관없이 ― 인상적이고 시적인 대목들이 있음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덧붙여 좋은 하이쿠에 대한 내 짧고 모자란 생각을 하이쿠 운율로 표현하자면 이러하다 ;

 

풍경이라면
절반 너머 감춰진
애타는 창가

 

 

/2023. 6. 29.

뭔데

그런 넉달 그런 4년 그런 20년……. 지나서 지나가다 찔
러보는 것도 아니고 뭔데 먼데 있는줄 알았는데 눈앞이었다는 것 슬
그머니 알려줘서 어떡하라는 건데 행복한지 힘겨운지 그리운지
괴로운지 어떤 사연 숨어 있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어 마냥 기다렸는데
남아 있는 나날 돌아 보면서 행복한지 힘겨운지 그리운지 괴로운지
안절부절 생각하는데 다시 한번 상처주길 기다리는지 다시 한번
상처받길 기도라도 해야하는지 피가 날지 안나는지 그냥 한번
찔러보고 가는 것인지 도대체
뭔데?

 

 


/Live in Dublin, 1978. 4., Christy Moore

 

유려하지 못한 스타일로 편곡된 썸머타임을 생각나게 하는 하미시 이말치의 원곡을
보다 단순하고도 깊은 느낌으로 노래하였다.
(하지만 이 노랠 따라 부르기는 만만치가 않다.)
여러 버전 가운데서 더블린 라이브가 심금을 울린다.
꽤 오래도록 이 노랠 좋아했고, 한참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 깨어났다.
진실로 이 노래가 그러하였으나 이 노래가 아니라…….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s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I love my love and well she know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goes
I wish the day it soon would come
When she and I could be as one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s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I go to the Clyde and I mourn and weep
For satisfied I ne’er can be
I write her a letter just a few short lines
And suffer death a thousand times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d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Gee whiz, I’m……

몇해만에 <스타맨 Starman>을 다시 봤다. 1984년의 SF영화는 더욱 촌스러웠다. <브라질>(1985)이나 <블레이드 러너>(1982)와 비교하면 더 그런 느낌이다. 제프 브리지스를 꽤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외계인 연기는 (인간으로의 적응 과정이라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행동하는 것이 좀 어색해 보였다. 차라리 표정 없는 ‘스타맨’ 데이빗 보위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소박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 허술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가 묘하게도 마음을 끈다. 제프 브리지스와 상대역인 캐런 앨런이 노래한 <All I have to do is dream> 또한 비슷하니 엉성함에도 나는 그 대목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외로움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로이 오비슨 버전을 좋아하지만 영화 속의 노래엔 풋풋한 느낌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제프 브리지스는 더 허술한 액션 영화 <R.I.P.D.>에서도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영화의 발단이 되었던 보이저호는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났다. 머지 않아 기능이 정지된 채 가없는 우주를 항행하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All I have to do is dream, Jeff Bridges & Karen Allen

 

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
When I want you in my armsWhen I want you and all your charms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dream, dream
When I feel blue in the nightAnd I need you to hold me tight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Anytime, night or dayOnly trouble is, gee whiz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I love you so and that is why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dream, dream, dream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Anytime, night or dayOnly trouble is, gee whiz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I love you so and that is why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Dream

 

 


/도입부에 나오는 ‘현실’.

 

 


/”B급리뷰” 채널의 요약판.

그 밤의 이야기, 미장아빔(Mise en Avyme)

그것은 코엘료의 어설픈 우화에 대한 글쓰기에서 시작되었다. “꿈을 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천일야화>의 어디에 나오고 보르헤스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여기저기 책을 뒤졌다. 그것은 351번째 밤이 아니라 범우사 버턴판 기준으로 그것은 352번째 밤의 이야기였다. Read More

치과 다녀오는 길

어제 하루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 같더니 오늘은 날이 풀리었다. 본래도 약한데다 한동안 피하기만 하다 뒤늦게 찾은 치과에서는 고칠 일도 많아 일주일에 한 두번 치료를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소개받은 치과가 어린 시절의 학교 근처여서 걸어서 갈 때마다 감회가 있었다. 이제는 모두 다른 건물에 다른 간판이 들어섰지만 가는 길엔 ‘대원호텔’+이 있었고 전교 부회장을 하던 예쁘장한 여학생이 살던 곳, “극동예식장”도 있었다.

거기서 얼마 가지 않아 3학년 때 전학 와서 졸업한 초등학교도 있다. 그나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곳, 이 동네에서 보낸 셈이다. 오늘은 신경치료를 받은 날이다. 마취주사를 맞는 통증 같은 것은 그닥 문제가 없었는데 묘하게 숨쉬기 힘든 상태는 상당히  괴로워서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숨을 잘 못쉬는 상황을 특히나 못견뎌 하는 편인데, 예를 들자면 겨울철의 만원버스가 그렇다. 말이 좋을 뿐, 신경치료라는 것은 신경을 죽이고 이를 죽인 후  보철을 더하는 것일 뿐이었다. 금요일에 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 화요일로 미뤄 예약하고 나왔다. 돌아올 때는 늘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타고 오곤 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사무실까지 걸어서 왔다.

치과 거의 맞은편엔 지금은 모 대학교의 일부가 되어버린 옛 경남도청 건물이 있다. 부산 와서 아버지께서 근무했던 곳이다. 도청은 결국 창원으로 이전하였고, 그곳과 주변 건물들은 한동안 법원과 검찰청사로 사용되다 결국 대학교 일부 캠퍼스가 들어서서 지금까지다. 치과 가던 시간에는 학생들이 꽤 많이 보여서 이곳이 작은 규모라도 대학가 분위기가 없지 않았지만 내가 그 곳에 속해 있는 동안 몹시도 치를 떨었던 사람인지라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프레쉬한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지금은 대학교 건물로 바뀐 도청 본관건물을 지나 초등학교 앞 큰 길가의 제과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어릴 적엔 그렇게 고급스럽게 보였던 티파니 제과점이 이제는 허름하고 오래된 다른 이름의 ‘빵집’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정문 건너편은 대학교 부속건물로 바뀌었지만 학교를 조금 지나가니 낡고 허름한 문방구가 눈에 들어왔다. 문방구 앞에는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낯이 익은 느낌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문방구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계실 리는 없을텐데 말이다. 서너 개의 문방구가 드문드문 열린 채 아침마다 북적대던 거리가 이제는 참 한산하였다.

학교 뒷쪽의 길에는 과외수업 하던(극동예식장에 살던 그녀, “엘리제를 위하여“의 쓰린 추억도 거기서 있었다) 판자집 같은 2층이 있었다. 나는 <1984년>을 읽으며 채링턴 문방구의 2층을 상상할 때마다 늘 이곳을 떠올리곤 했다. 이제는 더이상 판자집이 아니지만 그 작은 건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쪽으로 해서 곧장 사무실로 오지 않고 부산 와서 처음 살던 집 근처라도 가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정문 앞은 고요하였고, 운동장 저편에서 체육수업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처음 전학 와서 친구 없던 시절, 울타리에 갖혀 있는 칠면조며 다람쥐며 동물들을 바라보던 기억도 있다. 6학년 때는 시골서 전학 온 키큰 아이 넷에 뽑혀 온실과 화단 관리를 해야 했다. 담임이 우리를 대하던 태도 때문이었는지 나는 6학년 내내 우리가 머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단 한번, 아버지 일하는 사무실을 구경 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초여름이었던 것 같고, 뭣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학교 마치고 도청으로 오라고 하여 사무실로 찾아갔었다. 여직원이 환타를 따라줘서 나는 몹시 맛있게 먹었는데 그러다 음료를 흘려서 하얀 반소매 셔츠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인 생각도 난다. 도청 뒷쪽으로는 언젠가부터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바뀐 옛도지사 관사가 있었고 그쪽 길에서 벨 누르는 장난을 미친 듯이 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마도 불장난에 도취된 방화범의 심정과 비슷한 사춘기 소년의 느낌이었다.

내 샤프를 도둑맞고 친구 하나와 함께 점심시간마다 다른 아이들 윗주머니에 꽂힌 샤프를 훔치던 한때도 있었다. 구내식당의 라면집이 너무 붐볐는데 어쩌다 알게 된 문방구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거기서 라면 끓여서 먹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어둑한 문방구 한켠에 있던 성인잡지도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무리하게 냄비를 교실까지 들고와서 불어터진 라면을 먹던 날도 있었다.

학교를 지나오니 우리 가족이 처음 모여서 살던 동네가 나왔다. 낮은 언덕배기 골목의 입구엔 이름도 참 낯설게 느껴졌던 “갱생이용원’이 있었고 조금 옆에는 자그마한 슈퍼도 있었다. 그곳을 떠올리면 나는 밀양에서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부라보 아이스크림'(콘은 아니었다)과 슈퍼 주인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처음엔 그 언덕쪽 골목을 찾기가 어려워 한두번 돌아보고 나서야 그곳이려니 했다. 이 거리와 집들과 오래된 골목들은… 말하자면 나의 “Strawberry Fields”이고 “Penny Lane”이었다. 부산 이사와서 처음 집앞에 나와 근처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렸던 어색했던 날이 아직 기억난다. 슬프게도 그 어색함은 방학때 고향으로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 지금까지도.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이 모든 기억 속의 풍경들은 페니 레인보다는 스트로베리 필즈에 더 가까웠다.

부산에서의 초등학교 시절은 몹시 외로웠고 그 외로움은 중학교에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전학 온 부산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망향의 설움을 안고 사는 노인의 느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 재일교포들의 방문이 러시를 이루면서 <옛동산에 올라>란 가곡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나는 그게 내 느낌 같았다.

 

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특히나 이 대목을 겨울 열서넛의 나는 타향의 노인과 비슷한 심정으로 공감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내 설운 마음 같았던 노래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고향 생각>이라는 처량한 가곡이었고, 늘 내 마음 같다고 생각했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자나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하던, 은희가 노래한 같은 제목의 “고향 생각(Flee as a Bird)”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 평범한 농촌을 무슨 성지인양 생각하다보니 훗날 고향 쪽을 둘러본 내 친구는 그 평범함에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고향은 내 마음에만 사무쳐 있었다. 이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삼촌 돌아가신 이후는 유산 다툼에(우리 가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툼이었다) 실망하여 외사촌 동생들과 소원해진 이후로는 고향을 거의 가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정서적으로 말하자면, 거의 수몰지구의 실향민 같은 느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묻혀버린 나의 살던 고향은, 경남 밀양 수산이다. 옛날 국사 시간에 배운 저수지 ‘수산제’가 있었다던 그곳이다. 이제 와서 보면, 강변을 끼고 있고 오래된 길다란 다리 하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골 동네일 뿐이다.

봄날의 햇살은 점점 따사로와졌다. 거기서 사무실 쪽으로 조금씩 걸어가다 보니 잠깐은 여기가 어딘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대흥약국”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언덕배기 2층의 전세집에서 다시 이사온 골목 끝집에서 학교올 때 늘 보던 약국이었다. 정말 그때의 가게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 같았다. 생각해보니 근처에서 예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쇠락했지만 아직도 열려 있는 “서대신동 골목시장”을 제외하고는 “오세민 안과”와 “정내과”니까 약국 아니면 병원인가 싶었다. 대흥약국 근처는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다. 아마도 구덕산에서부터 흘러온 물이 이것저것 섞여가며 흘러서 자갈치까지로 가지 않았나 싶은데 골목시장 근처의 골목 끝집에 사는 4~5년간 나는 늘 그 길을 오가며 지냈다.

몹시도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시간이 맞을 적에는 아버지, 동생과 함께 그 길을 함께 걷곤 했다. 숱한 시간의 흐름 끝에 동생은 우리 곁을 떠났고, 아버지는 흐릿한 정신과 느린 걸음으로 하루를 이어가고 계신다. 어느 크리스마스엔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탄선물로 공책과 연필을 선물받은 것도 생각난다. 이미 산타클로스에 대해선 믿지 않을 나이에 이르렀건만 밤새 내 머리맡에 나타난 선물을 보고선 그 희미했던 불신이 크게 흔들려 학교 가는 내내 동생과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마취주사를 맞은 입 안은 여전히 얼얼했고, 살짝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버스를 타기에도 정말 어중간한 거리가 되어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그래서 두번째로 이사왔던 집도 보고 싶어졌다. 골목 어귀의 닭집은 추어탕집으로 바뀐 것 같았고, 골목의 일부는 시장 거리과 그대로 트여서 예전 같은 느낌은 없었지만 골목 끝에 정면으로 보이는 대문은 비록 모양은 달라졌어도 그대로였다.

문화아파트는 내 초등학교 때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곳은 인근 학생들에겐 일종의 중심가이자 번화가였다. 그곳 1층과 지하는 학생백화점과 식당, 그리고 나중엔 오락실도 있었다. 가장 붐비는 곳은 언제나 우표/동전수집 코너였고, 나는 거기서 몇번은 우표를 샀던 것 같다. 한때 구덕야구장은 야구의 성지여서 문화아파트 1층엔 스포츠용품 매장과 트로피, 상패 가게, 유니폼 가게들이 즐비하였다. 문화아파트 옆 맘모스제과의 유리창이 어느 선수의 장타에 깨진 일도 생각난다. 이제는 야구장 자체가 사라져버렸고, 옛 영광의 트로피도 모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빛날 때나 쇠락했을 때나 나의 것은 아닌 영광이었다.

야구장의 흔적이 겨우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옛 야구장 자리 옆 도로의 화단 위에 세워져 있는, 최동원과 심재원이 공을 주고받는  조형물이 있을 뿐이다.  최동원보다 더 훌륭한 투수들은 이후에 나왔지만 최동원 같은 선수는 없었다.  육교 앞까지 오니 기운이 빠져서 앞서가는 아주머니의 걸음을 겨우 따라잡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육교에서는 잰걸음을 하기가 싫어져서 나는 천천히 걸어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길 기다려야 했다.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그러니 그저 희미한 기억 속의 스트로베리 필즈일 뿐, ‘포에버’ 같은 것은 없다. 오전의 한때, 나는 40여분 동안 40여년의 시간을 걸어 사무실에 왔다. 여전히 오른쪽 입술은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은 채 얼얼하다. 다른 곳에도 그런 치료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2023. 3. 14.

 

 

+예전 <이작자 여인숙> 시절 페이지 소개에 ‘대원호텔’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대원호텔”은 세월이 흘러 “대원장 여관”이 되었고, “글공장”은 “이작자 여인숙”이 되었다고. 이제는 그 여관조차도 허물어지고 한동짜리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카프카

거기 온갖 현학적인 추론과 해설을 갖다붙여봤자
그건 본질을 흐리고 생각을 어렵게 만드는 지방덩어리일 뿐이다.
무슨 잘못을 저잘렀는지도 모른 채 당해버린 K의 소송,
그게 무엇인지 자명하니 그는 ‘안개화법’으로 흐려놓았다.
소송에서 이길 방법은 없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울 수는 있다.
삶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당해버린 소송이다.
Entwurf는 그럴 듯한 허사일지도 모를 일,
중국 마술상자처럼 열어나간다 한들 필패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찌질함에서 위대함까지 선택의 여지를 지닌 삶의 매순간이다.
소송이라는 이름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