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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가장 좋은 시

행 없이 행을 늘이고

끊어진 연으로 연을 이어 가지만

쓴 맛 없는 쓴맛뿐, 쓴 것은 없네

단 것도 없네

대개 짐이고 번민만 가득한데

내가 쓴 가장 좋은 시란

잠깐의 희망이 수십년 헛꿈으로 남은

아직 쓰지 못한 시

 

 

 

+<시인합니다>가 그랬듯 시 쓰기에 대해 나는 가끔 끄적여 왔다.
그때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지금, 하지만 비슷하기도 한 지금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얼마전에는 할 수 없는 노릇이란 제목으로 또 그랬다.
무엇인지 어디인지 모를 중심(그런 게 있다면)의 언저리를
여전히 기웃거리면서 말이다.

지난 날의 소리들

소리에 관해서 제일 오래된 기억 가운데 하나라면 어릴 적 할아버지의 외딴 방에 있던 크고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던 “눈물젖은 두만강”의 전주다. 금속성의 큼지막한 소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도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향수가 뭔줄도 모르고 ‘퍼퓸’인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오늘 시간이 있어서 옛날에 쓰던 이어폰들을 좀 찾아봤다. 뒤져보니 나도 참 미친 짓 많이 했었나 보다. 숱한 엠디 플레이어와 이어폰들. 그것들을 뒤지게 된 것은 요즘의 커널형 이어폰이 너무 불편했고 그래선지 소리도 좋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이어폰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고 폰에 딸려온 (튠즈 바이) akg / b&o 제품들만 들어봤지만 나는 두 이어폰 모두 불편해서 잘 쓸 수가 없었다. 예전의 이어폰들도 솜을 끼우지 않고는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아무튼 심히 편치 못했다.

그래서 옛날 이어폰들이랑 비교하면 소리가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제일 먼저 mdr-e888을 찾아봤다. 내 희미한 기억에 틀림없이 어디 하나 있긴 있을 듯 싶어 서랍 여기저기 찾아보니 뭔가 좀 끈적해진 선을 지닌 이어폰이 거기 있었다. 워크맨과 mdp의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이어폰이다.

내게는 본래 두 개의 888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적인 3.5mm 구경의  lp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소니의 되먹지 못한 차별화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mp(미니 플러그) 방식의 것이었다. 하지만 두 제품 공히 즐겨 쓰지 않고 있다가 lp는 오래 전에 누군가에게 줬고 mp만 있었는데 다행이 mp를 sp로 바꿔주는 변환짹이 하나 있어 연결이 가능했다.

그래서 akg, b&o(하지만 그들이 만든 제품은 아니다)라는 이름들이 새겨진 두 이어폰과 비교해서 들어봤는데 착용감이나 소리나 내게는 888이 맞는 것 같았다. 리메이크 버전의 love is the drug을 틀었다가 감이 잘 오질 않아 데이빗 브로자의 하이 눈을 들었다. 내가 꽤 좋아하는 ‘타는 목마름’의 노래다. 그래서 (내 기억에 저음이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독특한 모양새의 mdr-ed136과 mdr-ed238로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238이 꽤 편하게 들렸다.  이 두가지 이어폰은 이어폰의 한 부분이 돌출한 것이 아주 작은  커널(?) 같은 느낌이 있었다.

mp 플러그를 일반으로 변환하는게 mp1s인지 mp2s인지 가물가물한데 그건 하나 밖에 없고 사제품이라 조심스러웠다. 반대로 변환하는 짹은 세개나 있는데 말이다. 그런 문제들 해결하느라 부산의 덕성전자를 틈만 나면 오가고 서울 낙성대(지금도 영업을 하는지 좀 불분명하지만 ‘낙성대av’라고 한다)에 주문을 해서 택배를 받던 시절이었다. 내친김에 샤프 번들 이어폰과 (내가 제일 편하게 사용했던) 켄우드의 번들 이어폰(mx-400 또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oem 제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도 감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888, 136, 238에서는 데이빗 브로자의 반대편에서 나오는 또다른 목소리, 내가 몹시 좋아하는 이의 음성이 꽤 선명하게 들렸다. 그의 노래를 아주 많이 듣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어딘지  특별한 영혼을 지닌 이라는 막연하면서도 꽤 분명한 확신이 드는 그런 사람이다. 하이 눈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이어폰 챙기다 보니 어떤 것은 이어폰을 감쌌던 솜이 문드러져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것은 일부 사용하지 않고 넣어뒀던 이어폰 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중으로 지퍼백에 넣어뒀던 몇몇은 용케 괜찮아서 888에 끼울 수 있었다. 문드러진 이어폰 솜과 까마득히 잊고 지낸 오래된 기기들이 21세기의 도끼자루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에, 아마도 4월 이후 쯤엔 시간을 내어서 mdp와 몇몇 카세트도 한번 챙겨봐야겠다. 멋지게만 들렸던 켄우드의 베이스가 지금도 그렇게 들릴지 궁금하다. 당시 소니 워크맨의 최전성기 대표작이었던 fx5 카세트는 조카에게 줘서 없지만 카세트 플레이어도 몇몇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즐거움일 뿐이고 어리석고 모자란 이의 잔재 같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내 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어폰이라던 내 오래된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이제 확신할 수도 없지만 외할아버지의 라디오에서 나오던 소리, 전파상에 적혀 있던 ‘라듸오’ 수리라는 글자는 별다른 플레이어나 도구가 필요치 않고 내 마음에서 지워지는 법이 없다.

 

 

+확인해보니 미니플러그를 일반플러그로 변환하는 짹의 정확한 명칭은 pc-mp2s다. 지금도 일본서는 드물게 판매하는 것 같은데 2만원을 넘어가기도 하는 것 같다.

할 수 없는 노릇

1년이 지났는지 2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장난 전광판인양 글 한줄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네요. 풀죽은 마음이 바늘 끝에서 안절부절입니다. 韻 타고 나지 못한 생이 運이라도 있고 없고 시인하기 힘든 일이지만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요, 이제 더는 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안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10년이 지났는지 20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걷지도 멈추지도 못한 채 한 발 들고 잠시 잠깐 생각을 합니다. 어찌 못할 노릇으로 내게 날아온 당신, 붙들지 못한 당신을 평생토록 생각합니다.

 

 

/2019. 2. 13.

 

 

퀸 메모랜덤

그러고 보니 queen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하면 좀 까마득한 느낌도 들고.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보헤미안 랩소디>도 나는 무덤덤했다. 어릴 적에야 퀸의 노래도 나름 좋아했지만 나로선 그 영화를 통해 추억을 반추할만큼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억을 통해 퀸에 대해 잠깐 돌아보았다.

내가 처음 퀸을 알게 된 것은 열넷, 열다섯 쯤이었지 싶다.  <월간팝송>에서 보았던 흐릿한 흑백의 퀸의 사진들은 (이제 와서 보면) 약간은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는 모자와 가죽 재킷 같은 패션들도 있었나 보다. 그때 내가 알았던 노래라곤 we will rock you와 다른 두어곡 정도였던 것 같고, 우연히 카세트 테잎에 녹음된 빌리 조엘의 the stranger를 들으며 혹시 퀸의 노래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조금 더 듣긴 했으나 ‘아주’는 아니었다. 그때 영어 과외를 했는데 선생님의 딸도 같이 수업을 했다. 그 집에서 (그녀가 틀어줬던) 퀸 노래를 몇 번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 가운데 하나는 bicycle race였던가 싶다. 내가 태어나서 이성과 처음으로 컨택(‘4종 근접 조우’는 물론 아니었다!)한 것이 그녀였는데 우습게도 내가 아니라 그녀쪽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서울로 이사가기 직전에서야.

어느 날엔가 우리집이랑 매우 가까운 곳에 살았던 그녀가 집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게 카드인지 편지인지 사연을 담아 전해줬고 방학때 내려와서 보자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녀가 you are my best friend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 나도 가끔 그 노래를 통해 그녀를 그려보곤 했다. “whenever this world is cruel to me……”.

 


/you are my best friend

 

여름방학이 되어서 그 친구는 정말 부산으로 내려와 연락을 했으나 나는 그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너무도 당황스러웠던 까닭에 만나는 것도 다음 날로 했었다. 나는 버벅대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이해 못할) 뜬금없는 소리에 엉뚱한 행동만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몹시 실망했을 것이다.

콜린 윌슨의 <살인의 철학> 후반부에 나오는 어떤 소년(청년?)이 여자 친구와 만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급기야 그녀를 살해해버린 사건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는 그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과 비슷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mama, just killed a gial ㅡ 결과 또한 다르지 않아 나는 그해 여름 하루에 어이없는 방식으로 그녀를 죽이고야 말았다. 사실은 그녀가 날 죽이고 떠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때의 작은 사건만큼 어이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남녀불문, 나는 비슷한 살인을 이후로도 꽤 많이 저질러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에 관한 부끄러움은 회복불능이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불가해한 미스터리에 관해 이해를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그 회복할 수 없음에 관한 미미한 변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퀸의 어느 레코드판에 내 잘못으로 만들어진 치명적인 흠집이 여전히 판을 튀게 만들고 있기에.

<hot space> 앨범까지는 거의 다 들었지만(“let me hear your body talk”라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피지컬을 좋아했듯 그 앨범의 body language 가사를 좀 좋아했었고 life is real도 가끔 들었다)  이후에 나온 느끼한 팝 스타일의 음악들은 거의 들은 적이 없었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난리법석일 때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였더라면 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더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play the game을 들을 때는 담배를 피웠고(“light another cigarette and let your self go”), save me에서처럼 나는 “naked and far from home”이라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가슴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ㅡ 이제는 딥 퍼플 만큼이나 듣는 일이 별로 없는 퀸이지만 딥 퍼플의 몇몇 곡이 가끔 마음에 어리듯 생각나는 노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옛날의 어이없는 짧은 만남에 대한 변명을 지금 읊어대는 것처럼.

묻히고 잊혀지고 지워지고 사라졌다고 한들 깡그리 묻히는 것은 없다. 오래 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로 우스개 소리 하는 것 들은 적 있다.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끝없이 봐야 하는 꺼진 불처럼 아주 가끔은 그런 것이다.

 

“don’t you hear my call
though you’re many years away
don’t you hear me calling you……”
/39

 

 

 

/2019. 2. 11.

 

밸리 포지, 애플비, 하찮은 미스터리

내가 어렸을 때 병 속에 쪽지를 넣어서…
그 쪽지엔 내 이름과 주소를 적었지.
그런 다음 병을 바다에 던졌지.
그리고 그걸 누가 발견 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어.

 

어느 하루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으니 잠꼬대 같은 소리로 대신할 수 밖에 없는가 보다.

<침묵의 질주>를 처음 본 것은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젼을 통해서였다.  여전히 인상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엉성한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 나는 외딴 우주의 작은 섬 같은 식물원 ㅡ ‘밸리 포지’에 있는 듯하다. 거기서 혼자만의 세계를 가꾸는 프리먼 로웰과 별로 다르지 않다.

 


(도입부의 우주선 모습, 프리먼 로웰이 밸리 포지에서 수확한 야채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스탠리 엘린의 ‘애플비’처럼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누군가의 세상에 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질서바른 세계를 뭉개버리는 결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끝나지 않는 세계 말이다. 프리먼 로웰이 서투른 로봇들과 벌이던 카드게임 같은 짓을 계속하면서.

 

 

 

그리고 캄캄한 하늘을 드높이 선회하는 별과 닿지 못할 아득한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떠나가는 비행선의 꿈을 꾸었다.  사무엘 우리아의 노래가 비장하게 흘러나올 때 홀로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 했을지도 모르겠고, 그 반대일지도 알 수는 없었다.

(서두의 인용은 프리먼 로웰이 자폭을 결심한 후 로봇들에게 건넨 말 가운데 일부다. 그 대사는 어릴 적에도 뭔지 모르게 허무한 느낌을 들게 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폭 직전의 우주선, 고장난 드론  휴이와 함께.)

 

 


/Aeromoço, Samuel Úria

내게도 그런 하루 ◎

십수년 전 어느 가을 날이었다. 창가 시들한 허브 화분에 이름모를 벌레 한마리 천천히 날아 들었다. 가지가 아닌 화분 옆면에 매달린 듯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아주 작은 벌레는 아니었고 휴식이라도 취하는가 싶었는데 다음 날에 봤을 때도 꿈쩍 않는 것이 곤충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특이한 모습에 나는 사진을 찍었고 묘한 모양새가 ‘좌탈’을 생각나게 해서 중의적인 의미에서 “어딘지 불법적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다.(이제 찾아보니 2004년 10월이었다.)

어제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버리는 날이었다. 나름 절약하느라 비닐봉투를 눌러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을 사용하고 있는데 쓰레기통 두껑으로 누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두껑을 들고 입구까지 가득한 쓰레기를 누르려는 참에 보니 입구 안쪽에 손가락 한마디 만한 가느다란 벌레가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죽은 벌레인가 싶어 슬쩍 건드렸더니 느리지만 움직이는 것이었다. 쓰레기 봉투를 꺼내려면 먼저 쓰레기를 꽉꽉 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벌레를 짓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냥 두고 왔다.

오늘 사무실 나와서 보니 화장실 벽에 어제의 그 벌레가 붙어 있었다. 오래 전 화분에 날아와 앉았던 잿빛 곤충처럼 그냥 꼼짝않고 매달려 있었다. 건드리면 움직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아무 것도 합당한 것은 없고 그 무엇이 불법적인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퀘퀘한 그 세상에 매달려 있는 것이, 또는 편히 쉴 자리를 찾는 것이 그들 벌레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이 어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 유일한 이유였다. 어떤 한 세월이 내게는 그런 하루였다.

 

 

/2018. 10. 19.

 

말할 수 없는 그것

1.친구가 에러났다고 가져온 외장하드를 좀 살펴봤다. 데이터 복구회사에 가서 문의를 했더니 상당한 고액이라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면으로 그다지 경험이 많지도 않은 내가 어찌어찌 수리에 성공하여 대부분의 에러가 해소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득불 하드의 내용들을 일부 체크하게 되었는데 나름 오타쿠 기질이 있는 친구라는 것, 새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친구가 적어준 폴더만 조심스레 카피를 하고 하드디스크의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결과, 본의 아니게 110% 복원이 된 것이 실은 좀 난감하다. 그게 본래 존재했던 폴더인지 아니면 휴지통에 있던 것이 복구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10%를 그대로 줘야 하는지 아니면 삭제하고 주는 것이 맞을지 잘 판단이 서지 않지만 대부분 다 복구되었다고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2.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 삶에 몇가지 파란이 있었다. 하나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내 잘못과 책임이 있기에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절망했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사건은 나를 힘빠지게 했다.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것들임에 두가지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덧없고 기계적이다. 올해 여름 그 가운데 하나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나름 열심이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닫게 된 이후론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지내고 있다. 그저 하루를 땜질하고 있을 뿐, 2017년의 <the endless> 속 마을의 눈에 띄지 않는 한 모퉁이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대 있으니 나 또한 있고
그대 없으면 나도 또한 없음이라
말로 이루어진 사원을 꿈꾸었으나
有와 無를 모두 세우지 아니한다 했으니
쉽사리 발설했다 두고두고 후회하면서도
말하지 못해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바로 그것

 

3. “말할 수 없는 그것”을 쓸 때도 그랬지만 이제는 괴로움 마저 아득해진 것인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마음도 이젠 무디어져 무력감만 남았다. 그러니 “누구… 시온지……“와 비교한다면 극과 극 같은 차이를 느낀다. “오늘처럼 비루한……”을 쓰면서는 엉뚱한 상상 속에 헛된 다짐이라도 했으나 그 제목이 말해주는 합리화처럼 결국은 비루하게 끝이 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영  달아나버린 당신, 어쩌면 영원토록 말할 수 없는 그것,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희미해질 즈음이면 말이다.

 

 

/2018. 10. 16.

씨, 그리고 시

창녕의 이른 아침, 바짝 마른 마당 텃밭에 물을 주고 오신 모친 손에 아주 큼지막한 참외 하나가 들려 있었다. 마당 한귀퉁이에 과일 껍질 같은 것 버리는 장소가 있는데 그 주변에 언제인지도 모르게 참외 하나가 자라고 있었나 보다. 자칫 썩혔을 수도 있었을텐데 용케 찾아 오셨다. 물 주고 거름 주고 비료 줘가면서 키운 참외가 아니어서 단맛은 좀 못했지만 어른 주먹보다도 큰 크기에 갓 따온 것이어서 부드럽고도 시원한 맛이었다. 만약 참외 모종을 심어서 키웠다면 이렇게 잘 익은 참외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과한 표현이겠지만 2001년의 어느 여름날 김해 보현사 스님께 들은 그대로, 그리고 그 무렵 쓴 시 그대로였다. 영글었는지도 몰랐을 그 어떤 무심함,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 없으나 ——.

 

 

누가 뱉어낸 무심함이었는지
노란 참외 하나는 저 홀로 영글었다

/내 마음의 뒷켠, 2001.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