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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

사무실 오는 길에 세탁소에 들러 옷 두개 드라이 맡겼다. 아파트 바로 위에 세탁소가 있어도 굳이 옷을 들고 이곳까지 온다.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이분께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고 최근에 할머니가 안보이는 날이 많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그저 인사나 하고 아무 때나 천천히 찾으면 된다고 재촉하지 않을 뿐이다.

몇몇 가게가 잇달아 폐업을 했던 자리에 들어선 빨래방 앞을 지나면 늘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금세 목욕하고 나오는 사람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개업하던 날 이곳의 주인과 친지들이 조그만 원탁에 둘러앉아 성경책 펼쳐놓고 기도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데(나는 그 앞을 지나가며 그 기도에 동참했다 생각한다) 한동안은 세탁기 돌아가는 모습을 보기 어렵더니 최근 들어선 손님들이 오가는 것이 자주 보였다.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화학식으로 표기될 수 있는 세제의 첨가물일 뿐이라도 빨래방을 지날 때 나는 향기는 뭔가 상쾌한 느낌이었다.

오늘 멀찌감치서 보니 빨래방 앞에서 누군가가 어떤 할아버지께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한참을 상세히 설명하는 이는 그곳 주인이었다. 기도하던 그날의 모습이 어찌 좀 마음을 쓰리게 했는데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영업 준비를 하는 것이 노래 속의 ‘미싱’처럼 세탁기도 잘도 돌아가는가 싶었다.

글도 안되는데 서버가 애를 먹여 닷새 가량을 답답한 심정으로 피곤하게 지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 싶지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향기는 풍기지 못할지라도 그저 빨래방의 세탁기처럼 돌아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계”를 조금 고쳐서 말한다면,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는데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를 나는데.

해결하지 못한 에러

사흘 정도 홈피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제는 그 절정인 듯, 거의 온종일 작동이 되지 않았다.
서버를 이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워드프레스만 먹통이었다.

현재 원인으로 추측되는 세가지는
1. 케이보드 게시판의 문제
2. 게시판 자료가 포함된 데이터베이스의 문제
3. 워드프레스 현재 버전의 문제(설치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좀 이상했다)
4. 바이러스
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자 할 때 사이트 로딩이 극단적으로 느려진 것은 사실이어서
지금도 어떨지 몰라 게시판에 쓸 글을 포스트로 대신하고 있다.
1~3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엔 그 해결까지 시간을 기약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바이러스일 경우가 오히려 제일 간단할 것이다.
(실제로 바이러스가 활동했는지는 모르지만 감염된 파일 몇몇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백업작업과 더불어 서버 하드디스크를 초기화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계속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거나 ‘팩토리 리셋’을 해야 할 상황일 때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블로그를 ‘임시 케이스’로 쓸 생각이다.

+
현재는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이 해결된 것으로 보이는데
내 추측이 맞다면
wp super cache라는 플러그인의 오류로 인하여
캐쉬 파일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로딩이 무한정 느려진 듯 싶다.
현재는 문제가 되었던 플러그인을 제거했고
여타의 플러그인 프로그램들도 많이 삭제하였다.

관제엽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postcard에 비해 이름도 얼마나 분위기 있었던가 ㅡ 문자 메시지와 sns가 없던 옛 시절에는 엽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걸로 응모도 했고 모임도 알렸고 노래도 신청했고 안부도 물었다. 누가 본다고 한들 그대 아니면 의미없노라던 그 나이브한 방식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것이었던가. 편지나 엽서나 오고 가는 속도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엽서에는 난데없는 청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어쩐지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표 붙여 보내야 하는 알록달록한 그림엽서 말고 관제엽서라는 것이 있었다. 군관민 합동작전의 시대, 등화관제의 시대, 신문과 tv에 덧칠되어진 관제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지긋지긋하고 신물나는 것이었지만 엽서만은 우표도 붙일 필요 없는 관제가 단출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엽서라는 낭만적인 호칭에 합당한 체신을 지키고자 체신엽서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자리는 전혀 다른 모양새의 엽서들이 관제를 대신하여 사제가 관제를 생산하는 놀랍고도 멋진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거기 비하면 관제엽서는 장난이었고 비행기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본인이 무조건 제일순위였던 언론과 방송을 생각하노라면 방법론에 있어 그 옛날의 우격다짐은 순진하리만큼 저차원이었고 최악이었다. 오늘날의 최첨단 사제엽서도 응모를 하고 모임을 알리고 노래도 신청하고 안부도 묻는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켜는 대신 폰에 불을 켜고 컴으로 불을 붙이면 아침 바람 찬바람에 철없이 울고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붙여서 가위 바위 보 하는 사이 어처구니없는 많은 거짓들이 사제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그대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괜찮다며 지금도 여기저기, 온사방에서 폭죽처럼 즐거웁게 터지고 있다. 기구한 내 사연은 깨알같은 글씨로도 관제엽서를 이미 가득채웠으나 아무도 눈도 깜빡 하지 않는다.

零落

꽃 榮 즐길 樂
하릴없이 쓸려나가 영락이런가
한때 봄꿈 속의 영락없는 그 꽃

 

“수고 많으십니다.” “큰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웃음으로 대답하는 경비아저씨는 아스팔트를 뒤덮은 꽃잎들을 향해 부지런히 비질을 하고 계신다. 한창이던 벚꽃이건만 연이틀 세찬 빗줄기를 만났으니 흙탕물까지 보태어 바닥에 널브러진 모양새가 참담하다. 연분홍빛 봄꿈을 전해주던 그 여린 꽃잎들은 하루아침에 쓸려나가야 할 쓰레기가 되었으니 떨어질 零에 떨어질 落, 말 그대로 零落이다. 하지만 우리가 ‘똑같은’이나 ‘떨어지지 않는’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영락없는’에서도 한자는 그대로 ‘零落’이다. 떨어지고 또 떨어졌는데 못하지 않고 변함이 없음은 가능한 무엇인가. 榮枯一炊(영고일취),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짓는 순간처럼 덧없고 부질없음이라 했으니 ‘영락이 없음’은 아무나 도달하지는 못할 경지다. 하지만 형상이 바뀌거나 사라졌어도 변함없는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한번 밥짓는’ 시간만큼이라도 짚어보았으면 싶었다. 애초에는 첫 행을 ‘떨어질 零 떨어질 落’으로 했으나 ‘동음이의어’지만 결국은 ‘동음동의어’이기도 한 ‘꽃 榮 즐길 樂’으로 바꾸었다. 그럼 잠시나마 零落의 시간을 넘어 榮樂을 꿈꾸어……

 

꽃 榮 즐길 樂
한때 봄꿈 속의 영락없는 그 꽃

/2017. 4. 6.

 

아득한 오래된 빛

깊은 밤 뜰 위에 나서
멀리 있는 애인을 생각하다가
나는 여러 억천만 년 사는 별을 보았다.
/김달진

한 두 해 전, 국내 모 자동차 그룹의 일부 차량의 전조등이 미국의 평가기관으로부터 좋지 못한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부 유수한 메이커의 다른 차량들도 비슷한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이유가 생각과는 좀 달랐다. 그것은 “XX자동차 헤드라이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환한 빛을 내는 것”이라며 “자체 커브 어댑티브 헤드라이트 시스템은 일반 헤드라이트보다 우수한 성능을 내지만, 맞은편 운전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요즘의 대부분 차량들은 너무 밝아서들 문제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는 미등도 마찬가지여서 신호 대기시 뒤쪽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곤 한다. 어떤 차는 주간 주행등이 거의 전조등 수준이어서 야간 주행시 그것만 켜도 제법 환했다.(그럼에도 터널 안에서 아예 조명을 켜지 않은 차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자동차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한때 내 글은 발광하듯 하이빔을 켠 채 제멋대로 달리고자 기를 쓰던 자동차 같았다. 자동차나 운전에 관해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이가 여차하면 급제동을 했고 마그리뜨의 기억처럼 피흘리며 끝까지 달려서 부딪히기를 꿈꾸었다. “너랑 같이 누워서 그 짓을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했을 때처럼.

지금이라고 그런 생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조금은 달라졌다. 살짝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단출한 풍경… 그렇다고 그 한정된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을 강렬함이나 전자가 달아나버린 중성자성처럼 극단적인 압축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저기 아득한 곳에서 차량 하나가 부드럽게 가속하며 당신께로 가고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별 하나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 글이 그랬으면 한다. 못쓰는 이에겐 꿈일 뿐이겠지만, 나 자신도.

/2017. 4. 3.

 

곁불처럼 봄이

재개발도 쉽지 않은 낡은 아파트라 나무들도 비슷하니 오래되었다. 나름 자랑거리인 벚꽃나무는 족히 4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아파트 중앙길 양편으로 마주 서 있는 벚꽃나무들은 몇해전부터 거의가 서로 이어져 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봄소식 들리기 전에 한동안 가지치기 작업을 했다. 벚꽃은 그다지 손대지 않았으나 은행이나 목련은 처참하리만큼 많이들 잘려나갔다. 와중에도 목련은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나중이야 어떻든 한낮의 어둠을 밝히는 듯한 하얀 꽃불이 마냥 반가웠다. 모질게도 가지치기를 하고나니 봄이 왔나 보다. 자른 것도 잘려나간 것도 없는 내게 자른 것과 잘려나간 것 뿐인 내게 봄은 곁불처럼 왔나 보다. 백리향인지 천리향인지 이름도 헷갈리지만 반가운 그 향기가 지척임에 거리는 상관이 없고 늘 그런 마음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곁봄인지 옅봄인지 체감이 부족한 나는 아직 내복을 입고 있다.

설거지는 내 운명 +

당신은 흘러갔고 나는 아직 그 자리,
부족하고 텅 빈 그 자리를 물로 때웁니다.
/2009. 11. 14.

 
 

연로하신 모친이 여전히 살림을 하시니 그거라도 도와야겠다 싶어 잠깐씩 부엌을 들락거립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제일 쉬운 것은 역시 설거지, 여기저기 오가며 가끔은 삼시세끼 설거지를 하기도 합니다. 그건 운명이 아니지만 운명이기도 합니다.

설거지 하면서 지난 날 돌아보면 수세미에 힘이 들어가 잘도 박박 문질러댑니다. 흥건한 기름때나 곤란하게 냄비에 눌어붙은 흔적이나 결국은 깨끗이 벗겨냅니다. 세상에 못난이는 모든 것이 운명입니다. 세상 그 누군들 못나게 태어나지야 않았겠지만 스스로 못나게 자랐고 설거지는 내 운명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는 이의 운명입니다.

깔끔히 잘 정리하지는 못해도 그럴 때면 나는 오류투성이에 전기만 잘도 잡아먹는 식기세척기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온갖 잔해와 오점들을 향해 쉼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그다지 난감하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니까요.

하지만 요리하는 꿈을 아예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씩은 물어도 보고 수첩도 하나 마련할 참입니다. 예쁘게 계란말이도 만들어보고 싶고, 라면만 보글보글 지겹게 끓이지 말고 된장찌개에 미역국도 해볼 겁니다. 카레도 만들고 나물 쯤은 무칠 수 있어야겠지요. 넘쳐나는 부족함에 열성인 꼭 그만큼 열성이 필요한 운명입니다.

씻지 못할 오점들을 향한 한때의 설거지는 끝이 났지만 또 다른 한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살아 있음의 운명입니다. 부끄러움은 그 운명 속에 숨죽이고 있을 뿐, 설거지가 내 운명이라고 해도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나는 흘러갔고 당신은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

 
 

/2017. 2. 18.

 

소라 껍데기나 불가사리나

지금, 소라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소라 껍데기, 이창기

 

세권의 책, 하나의 복사본 가운데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자칫하면 <블루 벨벳> 속의 잔디밭이겠으나
꼭도의 시가 희미하니 들려오는 소라 껍데기를 나는 집어들었다.

한 손엔 불가사리, 한 손엔 소라 껍데기를 쥐고 그려보았다.
“까불대는 끈질긴 껍데기”였으면 좋겠는데
목에 걸렸다가 어느 날 그냥저냥 넘어가버린 가시라면 몰라도 아무래도 아니었다.
나로 말하자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도대체 용도를 찾을 수가 없는
말라비틀어진 불가사리일 뿐이었다.
하루거나 억겁이거나 사리 나올 리 없는 마음에는.

감히 내가 <소라 껍데기>를  썼다면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로 충분했겠고, 제목은 윤형주의 “라라라”(‘까불대는’과 운이 맞어떨어지는 느낌이다)나
그 노래 가사속에 여럿 있을 것 같다.
그리고 佛語란 것이 까막눈인 내게는 말이 아니다(不語) 보니
알아도 알아먹지 못할 부처님 말씀처럼 깊어 보였다.

 

mon oreille est un coquillage
qui aime le bruit de la mer
/jean cocteau

 

이래저래 수준 한참 떨어지는(‘비슷한’이라고 썼다가 황송하여 황급히 고쳤다) ‘해산물 껍데기’로서
끝으로 한 수 읊어본다면,

 

더 이상 애타게 찾는 행상도 없이 나는
전복 껍데기처럼.

 

(“전복 껍데기 파이소~” 애절하게 불러대며 전복 껍질을 사가던 시절이 한때 있었다.)

 

 

+시험삼아 블로그와 연동을 시켜봤다. 여기 글을 올리면 블로그에도 동시에 포스트가 작성되는 방식이다. 최후의 백업이란 의미도 있고, 일부 카테고리에 한해서 사용해볼까 한다.

저 하늘 저 보리밭 ◎

윗동네는 온통 눈소식인데 이곳은 파란 하늘에 바람만 좀 불 뿐, 눈씻고 찾아봐도 눈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아득한 겨울의 풍경 대신 파릇한 꿈을 돌아보았다.

<꿈을 찍는 사진관>, <요괴인간>, 그리고 <봄>은 내 마음 속에 수십년씩 남아 있는 오래된 상징들이다. 그 가운데 <봄>은 내가 20년 이상 그 제목을 <보리밭>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2001년 무렵 서울 갔다가 서점에서 제목을 제대로 확인했었다. 그때의 일에 관해 간략히 글 쓴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찾지 못하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노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음악책에 실려 있었고 이 노래 때문인지 그때의 담임선생님 이름도 생각이 난다. 애국가 열심히 부르지 않았다고 그분께 뺨 맞았던 것과 몇몇 아픈 기억도. 열살의 나이에도 나는 이 노랠 무척 좋아했었고 뭔가 남다른 깊이가 있는 곡이란 생각(뭔가 국민학교 4학년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을 했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 곡을 직접 연주해봤고 그것을 미디 파일로 수정해둔 것을 파일로 만든 것이 아직 있어 배경음악으로 넣어봤다. 조악하지만 나는 이 곡을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폰의 벨로 사용하였다. 가사나 곡이나 내겐 그닥 <봄>같은 느낌이 없지만 박화목은 윤용하가 곡을 붙인 가곡 <보리밭>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어둠에 숨어서 사는 이,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리움은 변치 않았으나 向할 곳이 없을 때 ㅡ.

 

 


작사 박화목 / 작곡 김규환

 

보리밭 파르르 하늘처럼
봄 하늘도 파르르 보리밭처럼
저 하늘 저 보리밭 그 어디설까
저 하늘 저 보리밭 그 어디설까

노고지리 한나절 지저귀는데
옛생각이 그리워 날이 저물어
찬 이슬을 밟으며 돌아갑니다
찬 이슬을 밟으며 돌아갑니다

 

 

(우측 상단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좀 어설픈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예전에 만든 미디 버전으로 고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 내겐 도구가 없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