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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와이어리스의 저주, 저주받은 와이어리스

 

 

 

작년 초가을쯤, 누군가 내 시집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건 저주받은 시집이라고 말했다. 순전히 내 입장이라면 몇가지 다른 이유들을 갖다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말한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허술한 글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이지 끊어져버릴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그 시집을 받는다면 그 당사자는 머지 않아 나와 끊어질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그래도 괜찮다면……” 했더니 고개를 저었고 나는 시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무형의 시집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pdf 파일로 시집을 만들었다.(옛 시집은 아니고 ‘칼리지’ 어딘가에 올려져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나름 공을 들여 편집을 했고(제목도 물론 다르다) 앞쪽의 빈 페이지에는 한줄의 인사글을 쓰고 스캔해서 넣었다. 받은 사람은 기뻐했고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그 페이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Read More

올 더 론리 피플

어릴 적에 출근하는 아버지 따라 시장통 골목 끝집에서 나와 재미없는 학교를 향해 길을 나서면 가게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제목도 몰랐는 그 곡의 현악기 소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긁고 지나가는 듯 했다.

4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모친이랑 연배가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제나 같이 오고 가며 지내던 그분들 부부. 한번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아파트 안에서 걸어가는 내게 냅다 경적을 울려서 굉장히 불쾌했던 순간도 생각이 난다. 이후로도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저 시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정해보였던 그집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이후로 그분은 모습은 정말이지 쓸쓸해 보였다. 모친도 한번은 각별히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후로 그분 보면 좀 더 따뜻하게 인사를 드리곤 하지만 그분은 한참 더 말씀도 많이 하시고 미안할 정도로 반가워 하신다.

약간의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을 둔 오래된 이웃도 계신다. 유명한 서예가의 며느리였건만 그분의 삶도 편치는 못하셨다. 아들은 결혼도 못한 채 어머니 곁에서 살았고 딸은 결국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다 길에서 나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 하시고 어른들 안부도 꼭 물으신다. 나를 붙잡고 끝도 없이 말씀을 하지만 나는 억지로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한두해 전엔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달리 태어났더라면 참 총명했을 사람은 어느 하루 허망하게 가버렸고 나는 이후로 그분을 뵌 적이 없다. 뵙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든다.

일로 해서 알게된 아주머니 한 분은 늘상 집안 일을 말씀하신다. 그분 어르신도 잘 알고 있으니 안부를 묻지만 아주머니의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치매이신 어머니와 까다로운 아버지를 홀로 모시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몇달만에 뵈어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정신이 없을 정도로 그간의 사건들을 축약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저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쌀알을 줍거나 양말을 깁고 먼지를 터는 대신 어떤 이는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삶의 하찮은 한 구석을 이렇게 구구절절 글로 옮긴다. 그는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 비슷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지만 그릴 수 있는 그 눈매 또한 외롭고 쓸쓸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긁고 지나간다.

 

 

 

 

 

2020. 5. 20.

3618

38년전 어떤 책을 읽었다…… 퍼센티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저 남들 눈치로 마스크를 쓴다. 줄곧 마스크의 무용성을 주장하던 친구도 별수없어 면마스크 하나 주머니속에 넣어다니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간다. 또다른 이국의 길거리에서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경찰이 몽둥이로 두들겨패고 심지어 발포도 한다. 확진자가 돌아다니면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구속시키는 곳도 있다. 그 와중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감시사회를 힐난하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도 있다. 구비서류 챙겨 주민센터 방문하면 5만원 준다고 안전문자가 온다. 손씻기 열심히 하라고 안전문자가 붉게 빽빽댄다. 어쩌면 이렇게 이렇게 생긴 인간을 조심하라고 문자가 올지도 모른다. 이 길로 가면 안되고 저쪽 선을 넘으면 안된다고 문자가 올지도 모른다. 사라에 대해 즐거워 하는 이는 누구였을지 사드와 파솔리니는 어떤 형벌을 받아야 할지 어린이보호구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는 인디언보호구역에라도 갇혀 살아야 하는지 38년전 36년 전에 대한 책을 읽었다. 38년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글자로만 씌여져 있다. 끌 수조차 없었던 텔레스크린보다 천만배쯤 절묘한 욕망의 발광다이오우드, 레티나와 아몰레드에 온통 영혼을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더이상 그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난독증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읽을래야 읽을 수도 없다. 더이상 독재자라 지탄받는 독재자는 없으니까. 텔레스크린과 빅 브라더는 그저 그저 그저 36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 1948년의 깡그리 잊혀져버린 악몽일 뿐이니까.

내일은 까리니또

어제.
창녕의 강가에는 내내 답답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북적거렸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대어놓은(주차가 아니다!) 차들에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가고 싶어도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창녕집에서 맥주 조금 마시며 늦도록 이런저런 음악을 틀었다.
……데카메론 같은 사연은 없이. Read More

마이 스윗 페퍼 랜드

중고등학교 시절의 마이 스윗 페퍼 랜드라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십년의 시간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 유튜브에서 향신료가 너무 많이 사용된 듯한 이란의 어느 노래를 들었을 적에 그 배경에 있는 어떤 얼굴이 몹시도 인상적이었고 그것은 실크로드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여인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누군지 모를 그 얼굴의 주인공을 용케도 찾아내었는데 그녀는 그 전에 보았던 <패터슨>의 여주인공이었던 골쉬프테 파라하니였다. 묘하게도 그녀 덕분에 나는 이란 음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살펴보게 되었고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모흐센 남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묘한 소리를 지닌 항 드럼 연주도 하고 모흐센 남주의 라이브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마이 스윗 페퍼 랜드 또한 파라하니가 나왔던 영화이지만 대략 살펴만 본 수준이라 특별히 남은 느낌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의 멋진 연주곡을 나는 잊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이미지는 내게 있어 아주 잠깐 스쳐간 얼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잠깐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고 생각하며, 인적 찾기 힘든 곳이라 한들 그곳이 바로 ‘마이 스윗 페퍼랜드’임을 안다. 내 모든 유치했던 시절의 한줄 가사처럼, “언제나 우리가 만나던 그곳”.

 

 

 

 


muhteşem ses / golshifteh farahani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그는 기타 연주자였다. 지방 방송국의 기타리스트였는지 어느 이름모를 클럽의 얼굴없는 반주자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지막 병상에서 그의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들의 요리법을 여기저기 메모했다. 광고전단의 뒷면에도 썼고, 백지에도 썼다. 얼룩진 사연도 있었고 찢어진 종이도 있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그녀의 마음 속에서 남편을 위한 요리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것은 사랑 그것은 행복, 상상 속에서 간결하고 정성 가득하였다. 수목장으로 그녀를 떠나보낸 남편은 사진을 코팅해서 나무에 달았다. 너덜너덜한 요리 메모 쪽지들도 코팅을 했다. 아내 없는 부엌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정신없이 문을 닫고 길을 나섰지만 빌라의 문이 꼭 닫히지 않은 것을 알지 못했다. 몇시간 비워뒀을 뿐인데 그 사이 도둑이 들어 백수십만원의 현금을 잃어버렸다. 그날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내게 왔었다. 잃어버린 돈에 괴로워하고 떠나보낸 아내에 힘들어 했다. 그를 본 마지막날에도 그는 사진을 코팅했다. 경찰은 도둑도 잡아내지 못했고 돈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내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요리법을 코팅했을 뿐 요리하는 아내를 그렸을 뿐 요리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실, 그것은 무기력, 불가해로 가득한 세상에서 남겨진 대책없는 그리움 ― 내 시도 비슷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