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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점

레몬타임, 로즈마리, 라벤더… 책상 위에 나란히 허브 화분 셋을 갖다 놓았던 날엔 라벤더 언덕의 꿈을 꾸었다 살짝 손을 갖다대기만 해도 풍겨오는 향기가 상큼하기도 하였다 물과 햇살 그 어디서 그런 향이 만들어지는지 참으로 신기한 마법이었다 박테리아 하나의 조직이 웬만한 중소도시에 맞먹는다던데 그럼 이것은 얼마나 대단한 역사인가 생각날 때마다 잎을 흔들며 초록빛 인생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갈수록 별다른 재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놔두면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 그 화분 속에 어떤 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누군가의 하루는 그럼 어떠한가 흔들리는 그의 마음은 또 어떠한가 잠시 비 내리다 햇살은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풀잎 하나 삐죽하니 화분을 들여다 보고 있다

 

2002. 12. 28. 미스터.리

 

+
<압점>에 대해 약간 자조적인 포즈로 붙였던 제목이어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시

옥상에있는그
녀를생각하다목에가시가걸리었다
언제였던지시간흘러가니바싹바싹목이탄다
그러나당장죽을일도아니고가슴쥐어뜯을일도아니다
조심스레침을삼키며기다리거나한땀한땀풀어헤쳐가는눈물
바늘이다담배연기를한껏깊이들이마시거나물도마셔보고
절식을하거나토할지경으로밥을먹어도본다
하지만아주아주많은시간이필요할것이다
가시를생각하다옥상에서있던그녀는내려갔다
내일도그렇게목구멍으로직통하는눈물
방울이다
한걸음디딜때마다그녀의발바닥이아프다
그녀가계단을내려온다그녀가계단을내려간다
자꾸날더러어둡다고한다
그가계단을올라온다그가계단을올라간다
그녀의목에걸리어있는
그옥상에있는그
가시다
생선가시하나목이막히어나는그자리가평생인양
벙어리처럼바보처럼
그리고표독스럽게

 

/2000. 4. 25. mister.yⓒmisterycase.com

제목을 생각했으나 붙이지 아니함.

다만 홀로 허덕였을 뿐,
수없이 많은 말을 건넸으나 답은 없었다
땀과 숨이 뒤섞일 때
숨과 숨이 거칠게 맞닥뜨릴 때
오늘도 봉긋한 그 가슴에 오르다

 

/2006. 1. 28.

 

 

++
제목을 사용했다면 좀 썰렁했을 것이다.
영상이 상상을 제약하듯, 제목이 많은 것을 가두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붙이지 않은 제목 때문에 붙이지 않은 다른 제목이 붙었다.
마음대로 생각하기 바란다./2016. 7. 25.

 

 

+
꽤 오래 전이다……
굳이 제목을 붙이지 않은데는 당연히 저의가 있다.
거의 오해하고(5할) 아주 조금 이해하길(2할) 바라며.
자연스레 상상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지만
이 글은 역시나 두 개의 트랙을 지니고 있다.
나머지 3할이란, 이해가 오해이거나 오해가 이해일 수도 있다는 것,
사실은 나도 뭐라고 단정짓지 못하겠다는 것./2016. 5. 22.

 

 

End of the Line

‘스타바운드’와 더불어 그의 소식을 들었던 여름날이 벌써 3년이 지났나 보다. 어쩌면 아주 짧았던 것도 같고 어쩌면 그보다 한참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듯한 느낌도 든다.  또 어쩌면 光年의 세월만큼……

Short and sweet , 너무 짧고 단출해서 허전했던 그의 노래 한 곡을 들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모든 노래를 알고 싶어 했고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에 그리 되었다.

시작도 끝도 희미하고 절정도 없는 읊조림
가끔씩 눈에 띄는 놀랍도록 직설적인 표현들
그리고 마치 물위를 걷듯 현을 스치는 듯한 기타 소리에
얼마나 매료되었던지……

지금도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어찌하여 에릭 클랩튼의 After Midnight은 히트를 하고 그의 버전은 거의 묻혀버렸냐는 것이다.(케일이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들었던 자신의 노래는 에릭 클랩튼이 노래한 것이었다).

케일을 상징할만한 또다른 에피소드로는 그와 잘 아는 기타 제작자의 소개로 죠지 해리슨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는 케일의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내츄럴리” 앨범을 늘 차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되물었던 것은 케일이 이후로 또다른 앨범을 내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죠지 해리슨이 세상을 떠나기 몇달 전의 일이었고 유명인사와 특출한 무명인사의 만남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음악에 대한 내 느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적이 없고 수없이 들어온 그 짧고 단순한 음악들이 지겹게 들린 적도 없다. 더이상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들려준 노래들만으로도 그는 충분하였다.

그날 내게 스타바운드를 들려준 이에게도,
“End of the Line”에서도.

 

 

 

 

 

Train for Busan

A night train is coming
In my sleep, in my dream, screaming without sound
She is also running toward me
Gazing outside, an endless glance
her sorrowing spirit is coming for me riding the night
Light flows without ceasing or drifting,
it’s coming, aiming at me, the blind man

 

2000. 5. 5. / 2000. 1.

 

+
역주행이라고 미련이라고 말하면 터무니없고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오다보니 잠시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모르는 소식

별이 사라진 것도 꿋꿋이 견뎌온 건물이 허물어진 것도 아니다. 1년이나 버텼을까 모르겠다. 육교 건너편 인적 드문 길, 점포 하나 문 닫은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간판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한때는 희망이었고 한때는 버겁기에 더 기대했던 빛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벌써 퇴각해버린 꿈일 뿐인데 자동 타이머가 붙어 있는 간판이 그 길을 훤하니 비추고 있다. 텅 빈 실내에 휑한 빛을 던지고 있다. 또 다른 가녀린 꿈이 자리를 채울 때까지 내 안에도 비슷한 빛이 스러졌다 또 켜지곤 한다는 것,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는 소식일 테고 별이 사라진다 한들 그 길 오고 가는 이들도 그럴 것이다.

 
/2016. 2. 20.

三行詩

그 목줄 누가 내어놓았는지

강아지 한 마리 위태로이 찻길 따라 걷는다

바쁠 것 없는 걸음 괜스레 재촉하다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다

 

(알지 못하는 셋이 길에서 마주쳤는데
그 가운데 二人이 느낀 것을
어느 一人이 쓰다.)

일러바치기 심장

귀를 대어보세요.

그녀의 가슴이 째깍거립니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리는 법

한 시간이 한순간처럼 지나갑니다.

다들 그러하듯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그곳

그냥 그대로 얼어붙은 초점입니다.

그러던 내 가슴에 손 얹어보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귀를 대어보세요.

다들 그러하듯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도무지 이길 길 없어 멈출 법도 했건만

한 번쯤 참지 못해 달아날 법도 했건만

찰나를 세월처럼 지켰습니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The Tell-tale Heart>

다림질하는 여인

그녀의 허리 아래에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 구겨진 삶을 힘없는 어깨로 펴보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늘어트린 그녀의 머리칼처럼 기운 없는 하루가 끝없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아
청색시대는 이미 저물어버렸을 그녀, 그녀에게 준비된 새로운 캔버스가 있다면 믿기 힘든 추상같은 현실일 것이야 사연 없어 사연 많은 고된 하루, 남달라서 할말 없을 지루한 삶이 끝이 없을 것만 같아
그녀의 다림판엔 아무래도 펴기 힘든 주름만 널려 있을지 몰라 그녀의 어두운 얼굴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가에 잔주름 가득할지도 몰라 그녀의 다림판엔 이미 다 태워버린, 너무 보드라운 그리움만 널브러져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의 허리 아래에는 무엇인가 환한 빛이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배경이 그렇게 어두운 것,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어두운 것, 그토록 고개 숙인 것은 오직 그 때문임을, 그 때문임을
믿고
또 믿고
또 믿어야 할 것 같아

그릴 연 꽃을 찾아

당시에 부쳐

 

장강이 심산으로 흐른다던가
달빛이 불야성을 흐린다던가
한시 두시 옛 시절로 밤 깊어가니
그때 당시 분간할 마음 마냥 저어하네
봄날 다 가고서야 매화 반겨 핀다던가
아쉬움이 임을 이 밤 모신다던가
한시 두시 읊조리다 눈 부빌 때면
미련한 심사인양 꿈결로 저어가네
얼어붙은 강을 따라 새겨둔 마음
이 밤에사 다 풀리어 소식 당도했던가
저 하늘에 걸리운 그릴 연 줄을 타고
내 마음도 따라 훨훨 떠돌아 간다한데
길 없음도 길이라 끊어져 간다던가
맺을 연 마음길로 이어져 간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