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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빛

눈 씻고 다녀도 눈 만나기 어려운 곳
앞에 두고 눈 그리라 하십니다
마저 치우지도 못한 잠자리
눈부신 어지러움 아직 남아 있는데
제 눈의 잘못일랑 젖혀 두시고
눈 온 아침 애꿎은 풍경더러
구차하다 하십니다
북방에 있는 어여쁜 사람+
한 사람의 빛깔이 세상 기울인다더니+
깜빡이던 간밤에는
눈빛도 그윽하였습니다

 

 

+이연년 李延年의 시 한 구절.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이연년의 시에서 유래한 경국지색(傾國之色)을
작자 멋대로 ‘詩義適切’하게 해석한 것임.

왜냐면 비코즈

비코즈는 가을, 가을은 비코즈
무그 신쎄사이저의 풍성하고도 느릿한 흐름처럼
잡힐 듯 아득한 파아란 하늘의 뭉게구름이여
비코즈는 이별, 이별에는 비코즈……
왜냐면 그 노래는 우리가 아주 어린 아이였거나
별자리 저 너머에 숨겨져 있는 꿈이었을
1969년 9월 1일에 녹음 되었고
이후 그들은 뿔뿔히 흩어졌으니까
왜냐면 비코즈, 가을이니까
한 가지에서 나고도 가는 길 모르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묻혀서+
더 이상 조화로울 수 없는 아르페지오, 분산의 화음
스스로 오늘을 가꾸었으되 처음으로 맡아보는
거둘 것 없는 텅 빈 가을의 냄새여
뒤늦게 귀 기울이며 곱씹어보는 모든 이별의 순간이여
왜냐면 왜냐면 비코즈니까
새파랗게 질린 가을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이유들이니까

 

 

+제망매가
+박인환

 

 

/2015. 9. 9.

착한 애인 찾기

*어떤 시/집에 부쳐

 

선생님, 그런데요 착한 애인이 없네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잘생기고 좀 모자란 도움이 필요한 남자니까 한번 봐주시구려. 아무리 뒤져봐도 착한 애인은 없다네가 없어요. 어중간한 늦여름 날씨에 도서관 안쪽 귀퉁이에 십분 너머를 쪼그리고 앉아 땀 범벅이 되도록 찾아 헤맸으나 그것만은 찾지 못했다오. 수십년 동안 보고 겪은 것 또한 비슷했다오. 책 집어들면 원하는 페이지 척척 펼쳐주는 도서관의 천사는 내게 없다오. 하지만 선생님, 한번 움직이시니 그 애인 마술처럼 금세 제 앞에 모습 보이네요. 作者가 없다고 하니 더 찾고 싶었던 그녀, 이젠 그 속살을 들여다봐요. 지금은 책 속에서 다른 한 줄을 찾아 헤매고 있지요. 아 내 얕은 눈을 또 다른 페이지가 가득 채우네요. 그 페이지만은 물기 가득한 거울이었지요. 그곳으로부터 고래 한 마리가 소리없이 튀어나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뭍으로 올라온 고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잠시 그 고래였으면 했더랬습니다. 미안해요. 죄송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를 고래의 눈이 한순간 촉촉해졌었지요. 그런데 인터넷 충동구매 하듯 가져온 몇몇 책은 ‘반품’하고 싶네요.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도서대출/반납 시스템 사용법을 배운 것은 조금 서글픈 소득이었어요. 내가 뭍으로 올라온 고래라는 걸 알았다는 건요.

 

 

 

밤의 어떤 것

따사로운 봄볕 아래
가늠키 힘든 그늘 자라고 있어
내 차라리 밤을 그렸네
점멸하는 별처럼
수많은 이름을 지닌 바램 가운데
단 하나, 출구를 향하여
빛의 기운이 몰리어 갈 때
마냥 깊어지고
시간과 우주의 고독한 종말을 향해
속절없이 팽창하던
밤, 그리고 밤의 어떤 것

2016. 3. 29.

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

 

  • 수요일과 관련하여 긴 세월에 걸쳐 소소한 글을 몇번 썼었고 몇해 전엔 거의 완결의 의미로 <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을 썼었다. 그런데 ‘웬즈데이 차일드’에 관한 또 한번의 반전이 있어서 원래 글을 그대로 옮기고 끝에 사족을 달았다.

 

‘Wednesday’s child is a child of woe.
Wednesday’s child cries alone, I know.
When you smiled, just for me you smiled,
For awhile I forgot I was Wednesday’s child.

 

소니 카세트의 라디오 밴드 불빛이 캄캄한 방의 한 벽을 환히 밝히던 시절, 전파상 유리문에 ‘라듸오’라는 글자가 촌스럽게 붙어 있던 시절 웬즈데이 차일드를 들었다. 첩보영화의 테마라고 했으나 그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살짝 신파조가 느껴지는 곡조며 가사가 심금을 울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트레몰로 느낌이 나는 연주까지도.

그리고 어느 날 내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해봤더니 19XX년 어느 여름날의 수요일이었다. 그래… 나는 그 노래 가사에 딱 어울리는 웬즈데이즈 차일드였구나. 피치 못할 운명처럼 “본 투 비 얼론”이라던. 그녀의 품에서만 웬즈데이즈 차일드임을 잠시 잊는다던. 그래서 수요일은 나름 내 삶의 어떤 상징 가운데 하나처럼 여겨지곤 했다.

웬즈데이즈 차일드가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던 영화 제목 같은 “(퀼러) 메모랜덤”이 아니라 제멋대로 골라잡는 “미스터리 랜덤 메모리”였던 것일까. 몇 해 전 어느 날 수요일에 관한 어떤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생각의 끝이 어딘지를 확실히 집어내고 나니 여태 내가 왜 그 엄연한 사실을 거의 잊어버린 채 편한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오히려 신기할 노릇이었다.

 

The Quiller Memorandum (1966) - IMDb

 

외가 동네에서 태어난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그 다음 날을 생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그리 바꾸었던 것이고, 그것을 고려해서 계산해보니 실제로 내가 태어난 날은 화요일이었다. (양력으론 틀림없이 ‘쥴라이 모닝’이다.) 지금도 여전히 외조부께서 정하신 그 날을 생일로 하고 있으나 내가 태어난 날이 화요일인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그저 스스로의 못난 심사 또는 그 참담한 결과물을 그렇게 갖다 붙이고 싶었던지도.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수요일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이도 아니건만 신성로마제국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와도 별 관련이 없듯, 잉글리시 혼이 잉글리시와도 혼과도 별로 상관이 없는 오보에의 한 종류이듯(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범양사) 그 날이 ‘스윗 튜즈데이 모닝’이든 아니든 어떤 이가 웬즈데이 차일드란 실없는 믿음 내지 현실은 딱히, 그리고 딱하게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Now you’re gone, well I should have known,
I am Wednesday’s child, born to be alone.

 

/2013. 7. 11. 0:41 (“화이트룸”에서).

 

  • 그런데 다시 한번 반전이 있었다. 모친에게 정확히 알아본 바, 내 기억과는 정반대로 본래 수요일이었는데 음력 생일을 그 다음 날이 아닌 하루 전으로 앞당겨서 바꾸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외손자가 훗날에 겪을 ‘孤’와 ‘苦’를 헤아리셔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수요일이라고 한다. 그 누구의 품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한 줄처럼, “For a while I forgot I was Wednesday’s child.”였다.  / 2016. 7. 12.

 

 

+
상징적인 의미에서나마 웬즈데이 차일드를 면하고자……
(어차피 음력으로 생일을 한다보니 제 날짜는 절대 아니다)
올해는 외할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날로 지낼 생각이다.

When Doves Cry

어릴 적 팝송이란 걸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사실은 내것도 아니었던) 단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엔 ‘팔로마 블랑카’란 노래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 가사를 보며 즐거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봄날의 작은 새처럼 조잘대던 새하얀 비둘기는 너무 쉽게 날아가버렸고(88올림픽 성화대에서 한순간 사라져버린 비둘기들처럼!) When doves cry의 기타가 잠시 마음을 흔들고 <더 월>의 한 장면처럼 비둘기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꾸꾸루꾸 꾸꾸루…….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의 노래처럼 이야기처럼 빨로마 네그라, 검은 비둘기가 내게로 날아왔다. 차벨라 바르가스와 프리다 칼로 ㅡ 내 것이 아니라 한들 아니 내 것이 아니기에 멋진 사진, 멋진 노래, 그리고 고난의 멋진 시절이었다. 철없는 비둘기는 서럽지만 즐거이 비에 젖고.

 

 

Paloma  Negra / Chavela Vargas

장사익 모친의 한수

장사익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리 열심히 노랠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분 이야기 나오면 빠짐없이 보는 편이다. 나 같은 이가 배울 점이 많아서 더 그렇다.

이분 주름살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나오던데 노래하는 모습은 어쩐지 까이따노 벨로주와 비슷한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주름살도 그렇고. 어떤 다른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결국 노래를 하게 될 사람들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모친께서 아들 서울로 보내고 딱 한번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데 짧은 그 내용이 그대로 시였다.

내가 열여덟에 읽었으나 결고 잊혀지지 않는 (이후로 본 적이 없어 제목도 잊었고 내용도 까마득히 잊었다!) 석주명의 나비에 관한 짧은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것이 있으니 말할 필요도 말할 수도 없는 당연하고도 깊디 깊은 감정 말이다.

 

                      볍모가지가 나풀나풀한데
                      건강 조심허구 맛난 거 사먹어라

 

모친께서 글자에 서툴렀다고 했으니 ‘형언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더더욱 짧은 줄에 담아 표현해야 했었나 보다.

그래서 이 글은 참으로 많은 생각 끝에 나온 두 줄이고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질 수 있는 많은 느낌과 사연의 필연적이고도 절박한 함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느낌으론 광화문에서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앞에까지 걸려 있는 몇몇 짧은 시편들에 결코 부족하지는 않다 싶었다.

어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들 보고 읽고 듣고 느끼는 이에게는 시가 아니어도 틀림없는 시인 것이다. 이게 왜 시냐고/시가 아니냐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어떤 경우라도 불변이며, 나의 아주 작은 시론은 그렇다.
…내 마음이 변치 않는 한.

 

+

기자 또한 당연히 그 글을 시처럼 느끼기는 했으나 마지막 문장으로 볼 때 그의 느낌은 그저 ‘시적 표현’으로 여긴 듯한 느낌이 든다. “볍모가지가 나풀나풀 할 것 같은 오후”란 표현으로 글을 끝맺은 것이 그랬다. 그것은 모친의 많은 생각이 담겨 있는 한 줄을 단순히 ‘가을’이라는 시점으로만 환원시켜버릴 소지가 있는 것이었기에 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2015. 10. 26.

1999-2009, 변함없이

아주 아주 오래전…  어느 시인 흉내를 내며 시 몇편 끄적인 적이 있다.
그때 쓴 것 가운데 일년 전에 보았던 바다에 관한 글이 있었다.
‘변함 없음’에 관한 한켠의 부러움과 한켠의 탄식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 노래는 1년 아닌 10년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메시지가 사회적인 것인지 또는 개인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인 의미로 돌아다 본다.
1999년의 겨울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내 부족함에 관한 알지 못할 신랄함으로
이 노래에 대한 중독성은 더욱 강렬한 것이 된다.
누군가의 앨범 제목처럼 인후부가 어찌 어찌 되든.

 

1999-2009

 

2009. 12. 7.

 

 

 

호랑이가 있었다

금슬의 정이 비록 중하나
산림(山林)에 뜻이 스스로 깊다
시절이 변할까 늘 근심하며,
백년해로 저버릴까 걱정하누나*

 

일로 해서 <삼국유사>를 펼쳤다가 또다시 읽고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남녀의 목욕과 성불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도 미처 생각못한 일이었으니 ‘金물’ 아닌 ‘禁物’로 하여(처녀로 현신한 관음보살과 함께 金물에 목욕하고 성불했다) 무엇인가 초현실적인 감각도 없지 않아 보였다.

유사에 수록된 향가들도 인상적이지만 말미마다 은근슬쩍 붙어 있는 그럴듯한 풍월로 해서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이상하게 그것에 관해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절에서 만들어내는 작은 책자에 넣기 위해 선택한 삼국유사의 한 편은 <김현감호 金現感虎>였다. 오늘 어디엔가 이 땅의 야생호랑이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만 나로 말하자면, <이생감호>의 한 시절에 관해 믿지 못할 경험담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줄 안되는 축약으로라도 이야기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정말 호랑이였으나 나는 허당 같은 ‘이생(李生)’일 뿐이었다. 호랑이는 내게 목을 맡겼으나 나는 찌르지도 못했다… <김현감호>의 후반부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또 좀 다른 類다. 한 세월을 부부로 살다 옛 고향집에서 호랑이 가죽을 발견하고선 남편도 자식도 잊어버린 채 달아나버렸다. 어쩌면 나는 호랑이 아내의 가죽을 훔쳐서 숲속으로 숨어버린 또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김혼공의 딸에게 반해 낙산사 관음보살 전에 그녀와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다 평생 같은 헛꿈만 꾸다 끝이 났거나.(세규사의 스님에 비할 길 없어 나는 깨어나지도 못했다.)

지금도 어쩌다 탑돌이를 나가지만 결코 호랑이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했다고 믿은 어떤 선택이 참 어리석고 못난 짓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호랑이가 있었다. 불꽃 속에 연꽃이 있었다.

 

홀아비는 미인을, 도둑은 창고를 꿈꾸네
어찌 가을날 하룻밤 꿈만으로
때때로 눈만 감아 청량에 이르리*

*삼국유사

 

2010. 1. 23. mister.yⓒmisteryca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