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이라고들 자랑스런 인사를 합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어제의 나를 잊지 못할 무엇으로 새겨준… 저는
저대로 못난대로
저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거기 제가 없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기 당신이 없기에 지금 이곳,
제가
있습니다.
2009. 6. 20.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이라고들 자랑스런 인사를 합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어제의 나를 잊지 못할 무엇으로 새겨준… 저는
저대로 못난대로
저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거기 제가 없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기 당신이 없기에 지금 이곳,
제가
있습니다.
2009. 6. 20.
<글공장>에서 <이작자 여인숙>으로,
또 몇번씩 블로그를 들락거리다 새로 차린 워드프레스 사이트.
하지만 솜씨도 없고 별 다를 것도 없는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그런데, 그 나물에 그 밥은 감칠나는 맛에 질리지도 않는데
어떤 이의 밥상, 아니 속상은 탈잡힐 일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비비다 만(?) 그 나물에 그 밥을 다시 집어들었습니다.
양푼이도 참 작습니다.
이리 비비고 저리 비벼도 그게 그것
깊어지지 못한 속 누굴 탓하랴만
봄꽃들이 피고 지는 시절 밥상에는 봄이 활짝 피었다
미나리와 참나물 무나물 콩나물에다
찰진 고추장 넣어 비벼 먹으니
달리 필요한 것은 없었다
매일같이 그 나물에 그 밥 먹은 속이 변치 않음에
쓰린 느낌이야 어찌 할 길 없으나
어떻게 생각해도 탈잡을 수 없는 그 맛
어떻게 생각해도 책잡힐 것 밖에 없는 그 속
무엇과도 비져지지 못한 채,
비비지도 못한 채
그 나물에게 그 밥에게 그 이름에게
피치 못하고 면키 어려워
빨개진 그 속.
2016. 4. 12. 13:32.
잠시 기다려주오
위난의 바다 속 섬 같은 그곳
나 이 모래성 허물고
그대 마음대로 나고 들 세상 다시 지으리
그리고 등 돌린 채 그 자리서 잊혀져버린 세계
끝내 담을 수 없었던 未知
바다는 천길만길 물러나 자취를 감추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돌아오지 못할 이름 주었네
2015. 10. 13.
알다시피 보싸노바의 트로이카 가운데 그 리듬을 만들어낸 사람은 조앙 질베르뚜였다. 그럼에도 ㅡ 몇몇 상큼한 노래가 없지 않지만 ㅡ 그의 초기 곡들은 지나치게 매끄럽고 가벼워서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다. 보싸노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게츠/질베르뚜 콤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는 과대평가된 것 같고 또 어떤 면에서 그는 과소평가된 가수이자 연주자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양면성은 게츠/질베르뚜의 곡들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나의 노래 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곤한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가수로서의 장애가 장점으로 승화된 듯, 그의 저음이 껄쭉해지고 단조로운 기타 리듬만이 들려올 때 그의 음악은 관조적이고 보다 사색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 같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면 뽀얗게 흩어지는 빗줄기처럼 잠이 쏟아질 뿐.
(‘É Preciso Perdoar’는 ‘당신은 날 용서해야 해’란 뜻이다. 신파조로 용서를 빌던 마리노 마리니의 옛노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또는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나름으로……)

노래 속의 이름은 ‘리자’였고 이야기 속의 이름은 ‘리사’였다. 그게 같은 철자의 다른 발음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Lisa’라는 이름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실 그 얼굴이란 내가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또는 상상 속의 얼굴이다. 그녀는 대단한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였고 리사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몇시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던.
어떤 청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녀의 ‘제작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녀 가슴에서 박동 대신 들려오는 시계바늘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였고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약간의 죄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이후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읽던 시점에서 말한다면 일종의 ‘미래의 기억’, 또는 ‘미래에 일어난(나는 이것을 과거형으로 썼다) 잘못에 관한 선험적인 죄의식’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그저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라면 더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리사의 심장이 짹각대듯이 내 가슴엔 감당하지 못할 버거움이 쿵쾅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체스터튼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뭇잎이 되어 숲에 묻혔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삭아가는 장난감이 되었고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에서 전혀 눈에 뜨일 없는 볼품없는 이야기책이 되었다. Sad Lisa, 하지만 슬픈 것은 리자가 아니라 와전된 한 줄처럼……
“Tell me what’s making you sad, Li?”
Sad Lisa / Marianne Faithfull
어떤 것이었다
가세요 어서 가요 노랠 불렀다
내게 있는 단 한 줄 알아보지 못하고
마침내 소원 이루고 나니
부를 노래가 다시 없었다
내 모든 것이었다
2016. 4. 21.
“Sin amor la luna no brilla en mí…”
칼렉시코의 노래는 그 이름처럼 경계선에 있다. 조이 번즈의 목소리는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지만 노래는 멋지다. 앨범 버전에선 상큼한 목소리를 지닌 까를라 모리손과 듀엣을 했으나 평범한 팝 스타일처럼 들렸던 까닭에 라이브가 더 마음에 든다. 마림바, 그리고 가브리엘라 모레노(과테말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듣는 이는 절로 ‘달뜨는’ 마음이 된다. “신 아모르 라 루나 노 브리야 엔 미”, 사랑 없이 달은 날 비추지 않는다지만.
moon never rises / calexico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부셔져라 기둥에 부딪혀 딸의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만들었지요. 딸은 누구에게도 아버지가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역시 늘상 무지막지하게 맞곤 했다지요. 아들 낳지 못한 죄로 설움 더 많았던 그녀는 딸을 향해 원망과 증오를 불태우며 또 그렇게 모질게 매질했더랬지요. 그녀가 어린 딸의 마음에 전해준 가장 오래된 기억도 바로 그것이었죠. 옥아… 아버지는 그러다가도 읍내 다녀오면 다정한 목소리로 딸을 불러 세우곤 했습니다. 두 손 펼치게 하고선 도매상에서 떼온 생과자 가운데 비싸고 맛나는 것들만 한가득 담아주었다네요. 수십년 가슴 속에 어떤 시간들은 암염처럼 굳어 있었겠지만 지금도 손 내밀던 그때가 잊히지 않는다는 그녀, 세상에 빛나고 설레이던 그 순간을 누가 알고 기억하고 옮길 수 있을까요. 마음 풀어진 어느 저녁 그녀에게서 내 귀로 들어온 촌스런 이름 하나가 온갖 사연을 머금은 시처럼 들렸습니다. 수십년 전 세상을 떠난 그녀 아버지가 한 줄을 썼고 작년에 눈을 감은 그녀의 어머니가 여전히 쓰린 한 줄을 덧대었죠. 나머지 구구절절 저려오는 행과 연은 모두가 한 사람의 것이었고 그것이 마침내 한 단어로 이루어져 낭송되던 짧은 시간을 나는 몰래 베끼고 베꼈습니다.
/2014. 6. 5.
컴퓨터는 이미 낡아 폐기처분 되었는데 있던 것 쓰느라 비닐도 뜯지 않고 그냥 뒀던 전원 케이블이나 이제는 쓰지도 않는 기능들을 화려하게 자랑하며 어딘가 가만히 모셔져 있는 텅 빈 핸드폰 박스 같은 것, 책상 설합 한 귀퉁이에 새것처럼 남아 있는 존재하지 않는 시계를 위한 보증서, 루이뷔통 문양이 새겨진 낡은 갈색 비닐봉지나 이미 도수가 맞지 않거나 부서져서 버렸거나 잃어버린 안경의 케이스, 명품 상표가 새겨져 있는 출처불명의 옷걸이거나 책장 넘기다 문득 펼쳐진 페이지에 꽂혀 있는 오래된 가나 초콜렛 포장지,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핸드폰 박스 속의 이어폰, 몇 년이 지나도 한번 펼쳐보지 않는 책, 비닐도 뜯지 않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나 어느 옷을 위해 예비된 것인지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할 단추들이 가득한 플라스틱 상자,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은행의 이름이 찍힌 오래된 적금 통장, 덜덜거리는 자동차의 금세 나온 제품 안내 같은 매뉴얼 책자, 포장도 뜯지 않았으나 설합 한 귀퉁에서 어떤 빛을 위해서도 어떤 움직임을 위해서도 어떤 명령을 위해서도 사용되지 못한 채 소리없이 닳아버린 한 쌍의 건전지, 그가 떨어졌거나 말았거나 선거가 끝난 거리 귀퉁이에 여전히 붙어 있는 웃음과 희망 가득한 현수막과 헛된 공약들, 몇 해 지난 연예잡지에 실린 빛바랜 사랑 고백, 얼어붙은 채 서서히 비상이 되어가는 냉장고 속의 청심환, 유효기간이 이미 지나버린 보험증서 같은 뭐 그런 것들 또는 그렇고 그런 것들, 무엇을 보증하는지 어디에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꿈에 귀 기울일 수 있는지 영화로움이 있었는지 알 길 없는 흔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어떤 흐릿하고 긴 그림자
하늘을 향한 트럼펫, 뺨으로 흘러내리는 땀……
크기 때문이었을까.
검어서 더 휘황해 보였던 흑백 텔레비젼 속 금관악기의 번쩍임처럼
기억속 그 사진의 검은 부분은 보다 더 검었고 한참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아주 좋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저것 구경꾼 마냥 조금 들어보았을 뿐, 음악에 대해서도 잘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본 사진으로부터 많은 기억들이 다시, 또다시 내게로 왔다.
아주 커다란 흑백 사진의 액자가 모퉁이 세워져 있던 방과
생각하면 들려오는 듯한 뮤트된 트럼펫 소리.
알래스카 상공이었던가 모르겠다.
까마득한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고
어둠 속 아주 작은 불빛들이 꿈의 조각처럼 드문드문 보였다.
밤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작은 창 아래로 보인 그 풍경들은
나로선 영영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착했던 방이 이제는 그 천길 만길 아득했던
설원의 불빛과도 비할 수 없이 먼 곳이 되었다.
그 방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고적감이나
잠시도 참기 어려웠던 칼날 같은 추위에조차 온기가 느껴지곤 한다.
오래 전 그 방에서 사라진 포스터 대신,
사라져버린 방과 그 방의 주인 대신 소리는 남아 여전히 맴돌고 있다.
아직 다 보내지 못한 텅 빈 세월이 먼저 만들어낸 소금의 기둥이었을까.
쓸어담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지난 날의 느낌들을
기꺼이 고쳐가며 나는 하염없이 돌아보곤 한다.
닿지 못할 아득한 불빛들을, 그 가운데 오직 하나를.

/2016. 1. 4., 미음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