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Roy “the Breast-bone” Harper 

<Stormcock>, Roy Harper
● 1971

 

Producer : Peter Jenner
Sound Engineers : John Barrett, Peter Bown, John Leckie, Phil McDonald, Alan Parsons, Nick Webb
Additional musicians : David Bedford, Jimmy Page

Stormcock is arguably Roy’s finest achievement. It contains four long songs, and to me it shows the very best of both Roy’s writing and playing ability. The songs are so strong that they are still played in live sets today. The album includes some very appropriate arrangements by David Bedford, and guitar by S. Flavius Mercurius, also known as Jimmy Page.

 

경솔한 마음의 잘못으로
어느새 죄를 이몸에 지녔도다
청정하신 신이여,
어여삐 여기시어 연민을 베푸소서.
<물종기에 걸린 사람이 바루나에게 용서를 비는 노래, 리그베다>

 

Roy Harper. 그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쉽지가 않습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때로 부드럽고, 때로 격렬하고, 아름답게 울려퍼지다 추악한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Donovan의 목소리처럼 처량하게 울려퍼지는가 하면 Albert Hammond처럼 껄쭉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하지만 더 깊은 목소리라고나 해야 할까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David Gilmour처럼 노래하는가 하면 Roger Waters처럼 뒤틀린 삶을 공박합니다. 장정일은 또다른 로이 – 로이 뷰캐넌을 가리켜 “그 자신이 기타였던 로이”이라고 했지만 난 그걸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 로이 하퍼는 자신의 기타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현을 울립니다.

 

 

Hors d’Oeuvres (8:37)
잔잔한 슬픔과 아름다움이 있는 노래입니다. 무심한듯 한음씩 낮아져 가는 기타 소리가 반복되며 무게를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저음에서 가성까지 Harper의 목소리가 참 슬프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약함과 강함, 슬픔과 정열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스캣 창법으로 부르는 대목이 참 듣기좋은 곡입니다.

The Same Old Rock (12:25)
비장한 느낌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ㅡ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특히나 빛을 발합니다. 보컬 파트는 한동한 장조의 잔잔한 멜로디로 이어지다 점차 단조로 바뀌어 갑니다. 보컬 시작 부분은 영국 민요 같은 느낌이 있는데, ‘슬픔과 평안’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노래가 급격히 단조로 바뀌어가면… 미칠 것 같은 슬픔.
이 노래의 후반부는 꽤 격렬한 포크 기타와 보컬을 들려주는데 그것은 결코 ‘기승전결’의 절정이 아닙니다.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감정의 폭발같은 격렬함이며, 내 마음도 그 폭발을 따라가는 기분을 갖곤 합니다.
이 앨범의 모든 노래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적절한 베이스와 드럼이 사용되었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기타와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입니다. My breast bone harper…

One Man Rock and Roll Band (7:23)
반드시 성공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특이한 사운드를 가진 곡입니다. 블루스 록 풍의 곡임에도 보코더를 사용하여 목소리는 변조된 채 약간은 기계적으로 들립니다. 지미 페이지의 기타는 Led Zepplin을 연상케 합니다. 역시 드럼과 베이스를 사용하고 정상적인 세팅으로 녹음되었다면 상당히 멋진 블루스 넘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아쉬움이 있더라도 무엇이든 용서가 가능한(!) Stormcock입니다. Harper 자신은 이 곡에서의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에 대단히 만족해 했습니다.

Me And My Woman (13:01)
슬픔 속의 Stormcock.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Neil Young이 사춘기적 감성으로 날카롭고도 깊은 외로움을 노래한다면 Harper의 노래 속에는 주체하지 못할 슬픔과 무르익은 열정이 배어 있습니다. 낮은 읊조림에서나 거친 고음에서나 텅빈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는 그의 아픈 목소리…… 가성으로 높게 올라가며 “Me and my little woman”이라고 노래하는 그 목소리를 듣노라면 그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우는 게 아니라 내가 우는 듯한 느낌입니다. “Whatever Happened to Jugula” ㅡ 내가 그를 노래합니다.

 

그대 노래하는 이는
물속 한가운데 서있어도
갈증은 그로부터 사라질 줄 모르니,
어여삐 여기시어 연민을 베푸소서.
<물종기에 걸린 사람이 바루나에게 용서를 비는 노래, 리그베다>

 

1999. 6. 7.

PS.
(Peter) Jenner로부터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Her Breast-bone Harp

<Cruel Siste>,  Pentangle

 

포크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어릴 땐 막연히 70년대 청바지를 떠올리며 통기타나 어쿠스틱 악기들을 사용하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여길 것이며, 그것이 전혀 틀린 생각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포크 음악이라는 것은 민요와 구전가요의 전통을 이어받은 음악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옛음악의 계승이나 재현, 또는 발전이라는 형태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어쿠스틱 악기들을 사용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한 전자악기나 드럼을 사용한다고 해서 포크음악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역시 편견이라고밖에 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포크음악은 ‘포크가수’로 불리우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오해와 왜곡을 불러일으켰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의미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민요의 전통은 너무 많은 곳에서 ‘그대로 따라하기’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외면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경우라 다른 면들도 많겠지만 Pentangle은 바로 그런 점에서 민요의 본질을 잘 파악한 포크 그룹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의 네 장의 앨범을 들었습니다만 어느 앨범에서나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결같았습니다. Pentangle에 관한 그러한 느낌들은 Omie Wise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내 머리 속에 박혀버렸습니다.
Spirogyra나 Magna Carta, Mellow Candle, Clannad 같은 포크 그룹들의 특출함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Pentangle처럼 철저하게 포크의 전통을 이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Spirogyra는 흔히들 말하듯 art rock적인 성격이나 록큰롤의 분위기를 함께 갖고 있으며, Magna Carta는 팝적인 성향이 많습니다. Mellow Candle이나 Clannad는 켈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면서 뉴에이지적인 성향과 팝적인 성향을 가지다 보니 때로는 얄팍한 면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Fairport Convention은 비교적 Pentangle과 비슷하지만 보다 현대적인 느낌이지요. 그런 면에서 Pentangle은 가장 영국적인 포크 그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ruel sister 앨범 또한 민요와 구전가요의 전통을 잘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타이틀곡 Cruel sister는 유럽의 동화에서 가끔 발견할 수 있는 ‘엽기적’인 대목을 포함하고 있지만 슬픔과 비장함의 확대를 위한 장치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자매간의 이야기를 그린 이 곡에서 언니(Cruel sister)는 욕심과 질투로 동생을 바다 구경 시켜준다며 데려가 물에 빠져 죽게 합니다. 두사람의 음유시인이 해변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좀 끔찍합니다만) 그녀의 breast bone과 three locks of yellow hair로 하프를 만듭니다. 그 슬픈 악기를 가지고 그녀의 집으로 가니 하프가 혼자서 구성지게 울려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Pentangle판 공무도하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누군가 Cruel Sister 앨범에 관한 리뷰에서 타이틀곡 Cruel Sister를 듣는데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내공이라는 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지만 반복되는 리듬임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 네 줄의 노랫말(그것도 두줄은 늘 똑같은 것)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같은 곡조가 무려 열아홉번이나 반복되지만 악기가 추가되면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와 함께 가끔씩 등장하는 시타의 환상적이고도 미묘한 애드립이 그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John Renbourn이 연주하는 시타는 이 곡에서 동양풍이 아닌 어쿠스틱 기타 스타일의 음계를 들려주는 것도 특이합니다. 더불어 Danny Thompson의 더블베이스는 단순하게 연주되면서 서러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Terry Cox의 dulcitone(dulcimer의 변형?) 연주도 대단히 아름답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물론 Jacqui McShee의 보컬은 변함 없이 구성진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이 곡의 단순함과 지루함에 식상해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들의 빼어난 악기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즐겨 들을만한 Cruel Sister일 것입니다. 제가 들어보았던 Pentangle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 곡마다의 색채가 부족한 앨범이었지만, Cruel sister만으로도 나는 이 앨범을 가끔 듣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나의 자매 같은 느낌 – 하염없이 파도 속으로 잠기어 가던 breast-bone harp의 울림을 함께 나누며.

 

 

 

There lived a lady by the North Sea shore
(Lay the bent to the bonnie broom)
Two daughters were the babes she bore
(Fa la la la la la la la la la)

As one grew bright as in the sun
So coal black grew the elder one

A knight came riding to the lady’s door
He’d travelled far to be their wooer

He courted one with gloves and rings
But loved the other above all things

Oh sister will you go with me
To watch the ships sail on the sea?

She took her sister by the hand
And led her down to the North Sea strand

And as they stood on the windy shore
The dark girl threw her sister o’er

Sometimes she sank, sometimes she swam
Crying sister reach to me your hand

Oh sister, sister let me live
And all that’s mine I’ll surely give

It’s your own truelove that I’ll have and more
But thou shalt never come ashore

And there she floated like a swan
The salt sea bore her body on

Two minstrels walked along the strand
And saw the maiden float to land

They made a harp of her breast bone
Whose sound would melt a heart of stone

They took three locks of her yellow hair
And with them strung the harp so rare

They went into her father’s hall
To play the harp before them all

But as they laid it on a stone
The harp began to play alone

The first string sang a doleful sound
The bride her younger sister drowned

The second string as that they tried
In terror sits the black-haired bride

The third string sang beneath their bow
And surely now her tears will flow

 

/1999. 5. 10. 월.

압점

그녀가 사다준 조그만 지압기
지하철에서 샀을까 아니면 길거리 좌판에서 샀을까
말랑말랑한 고무 재질에 뭉툭한 바늘이 가득하다
가끔씩 그녀를 생각하며 그걸 손에 꼭 쥐어본다
약간은 시원하고 약간은 아픈 느낌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만지고 싶은 느낌
손바닥을 펴면
압점마다 박혀 있는
수많은 그녀

 

1999. 4. 7

 

지금 이 기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한대 얻어 맞았나 봐요
금방이라도 코피를 쏟을 것 같은 아찔한 기분
나도 모르는 사이 가슴 위에 기왓장이 쌓여 있었나 봐요
누군가 격파술을 보이는 기분
나는 그의 손맛을 같이 느끼나 봐요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한대 얻어 맞았나 봐요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
그냥 그대로 휩쓸리고 싶어요
눈감고 휘두른 칼에 자비로운 상처를 입었나 봐요
실컷 얻어맞고 걸어가는 통쾌함을 알고 싶었나 봐요
물먹은 종이처럼 물먹은 스폰지처럼
풀어지고 지쳐버리길 바랬나 봐요
당신도 알 것 같은 지금 이 기분
언젠가 당신도 느꼈을 것 같은 지금 이 기분
어디선가 당신도 느끼게 될 지금 이 기분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
그 반갑고도 슬픈 꼬리처럼
내 마음이 그처럼 흔들리고 있어요

 

 

/1999. 3. 1.

 

브라질로 가요

“쌔앰 라우리이이이이이이……”

바비 빈튼의 블루 벨벳을 좋아하나요
그럼 브라질을 보세요
잔디밭의 잘려진 귀를 좋아하나요
그럼 브라질에 귀를 기울이세요
데이빗 린치의 하이웨이에서 길을 잃었나요
그럼 브라질로 가는 트럭을 타세요
이카루스의 꿈이 있고 사무라이의 어둠이 있는 곳
1984의 악몽이 솜사탕처럼 달콤한 곳
함께 브라질로 가는 거예요
블레이드 러너의 영상이 맘에 드나요
그럼 브라질로 가는 로킷을 타세요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초감각 헤드셋을 갖고 싶나요
그럼 브라질에 가서 구입하세요
THX1138의 이름을 가진 실험인간이 되고 싶나요
그럼 샘 라우리의 꿈을 꾸세요
듄의 사막풍경이 마음에 드나요
그럼 브라질의 날개를 가져 가세요
세상의 비디오 가게로 달려 가세요
영화전문점이라면 브라질을 찾으세요
그냥 허름한 동네 가게라면 여인의 음모를 찾아보세요
그 무슨 음모인지 모르겠지만 제목이 여인의 음모라네요
그 무슨 음모인지 알 것 같지만 여인의 음모는 아니겠지요
테리 길리엄이라는 위대한 감독의 작품이지요
복잡한 서류 때문에 삶이 숨막힌 적이 있었나요
그럼 브라질에 고발하세요
정의의 이카루스 어둠의 사무라이
샘-라우리의 멋진 한쌍이지요
자유의 배관공이 꿈을 꾸는 곳
텔레스크린 컴퓨터의 힘이 있는 곳
브라질이 당신이 원하는 걸 알게 해줄 거예요
이레이저 헤드의 흑백 악몽을 사랑하나요
그럼 브라질에서 이레이저 마인드를 실행하세요
러브레터 인 더 샌드를 좋아하시나요
그럼 브라질과 츔을 추세요
당신은 꿈의 날개로 사랑을 찾을 거예요
원자로 고문실에서 행복하게 죽을 거예요
브라질 브라질 우라질 브라질
온갖 빌어먹을 세상이 거기 있어요
온갖 꿈의 조서가 당신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세상이어요

 

 

/1999. 2. 24.

핑크의 TV

핑크의 텔레비전엔 13개의 채널이 있어요
그의 방에는 기타가 있고, 어딘가 새카만 공책도 있지요
까만책에 시를 쓰다 선생님께 맞았어요
하지만 착하게 살면 때로 뼈다귀를 얻을 수도 있었지요
핑크의 채널은 끊임없이 돌아가거나 영원히 멈춰 있지요
언제나 통화중, 마음의 모뎀은 어디에 있나요
직관적 인터페이스와 플러그 & 플레이는 어디에 있나요
존경하는 벌레씨가 찢었다고 말했어요
대장장이 망치가 그를 나뭇잎으로 만들었지요
그는 새카만 세상을 떠도는 마지막 잎새이지요
하지만 그의 어둠은 24시간 꿈을 켤 수 있어요
그의 TV가 유리창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핑크의 유리창은 깨어지지 않고 TV를 반사시킵니다
핑크의 방은 허상이어요
하지만 핑크의 꿈은 총천연색 홀로그램이어요
핑크의 눈이 카메라가 되었네요
핑크의 TV가 망막이 되었군요
그의 꿈이 방안에 펼쳐집니다
연애를 좋아하시나요, 전쟁을 좋아하시나요
만화영화가 맘에 드시나요, 광고에 흥미를 가지셨나요
음악을 즐기시나요, 시를 사랑하시나요
다 지루해져 더이상 의태를 보여줄 수 없으면
화끈한 에로영화나 피터지는 세기의 자살소동을 보여 드리지요
핑크의 채널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핑크의 방은 끊임없이 줄어듭니다
모든 신선한 아침
당신은 피의 왕관 현상을 본 적이 있나요
모든 신성한 밤
당신은 핑크의 방을 켠 적이 있나요
그의 창에서 24시간 생방송되는
당신의 가슴을 찢어놓는 저주를 시청한 적이 있나요
그 속에 숨겨놓은 한 가닥 희망같은
입체퍼즐의 컨택트 메시지를 수신한 적이 있나요
핑크의 가슴에는 13개의 고장난 채널이 있어요

 

 

/1999. 2. 24.

 

엘리제를 위하여

: 만돌이의 엘러지(Jealous Guy)

 

국민학교 6학년때 만돌이는 머슴이었습니다. 그때 키가 좀 크기도 했습니다만, 담임선생님은 시골에서 전학 오고, 키가 큰 아이들을 4명 뽑았습니다. 만돌이처럼 밀양에서 전학온 친구도 하나 있었고, 나머지 두 친구도 모두 고향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연필을 참 예쁘게 잘 깎는 친구도 있었고, 필기할 때 연필 아래에 자를 대고 ㄴ이나 ㄹ을 희안하게 편하고 재미있게 그어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담임은 학교 내의 온실, 화단에 관한 관리책임자였고, 우리는 그의 머슴이 된 것입니다.(사실 만돌이는 시골에서 전학왔지만 게으른데다 별로 일은 잘 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체력도 꽝이었지요.) 그는 칭찬 보다는 일하기 싫어하는 우리를 꾸짖어가며 볶아댔고, 거의 날마다 화단에서 잡초를 뽑으며 온실도 관리하던 우리들이 바로 그의 잡초였습니다.(완전히 “The Wall”입니다.) 죽은 비둘기를 발견하고 우리 ‘머슴애들’이 묻어준 기억도 있으며, 졸업식날에서야 학교에 오신 어머니께 “왜 좀 자주 오시지 않고…” 하던 담임선생님의 야비한 말투가 아직 생각납니다.

어쨌거나 그 피곤한 머슴살이에 시달리면서 부산 와서 처음으로 과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집안의 과외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선생님(DJ)의 집은 아주 조그만 2층 판자집이었고, 길 곁에는 복개되지 않은 하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돌이는 천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SH였습니다.

만돌이는 머슴이었고, 그녀는 전교부회장이었는데 과외수업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아마 더 좋은 곳에서 과외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집이 워낙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그리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집은 공교롭게도 예식장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 운동장에서 우러러보던 그녀였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부회장으로서 애국가를 할 때마다 흰 장갑을 끼고 나와 지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지휘하는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는 것은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성스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바로 탁자 하나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같이 이야기 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머슴 만돌이로서는 가슴 아려오는 기쁨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다니는 피아노 교습소 역시 바로 맞은편에 있었는데 만돌이는 그녀가 연주하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돌이는 베토벤이 아닌 머슴이었습니다만, 그녀의 피아노 연주는 그야말로 엘리제의 것이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그렇게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 자신이 나의 엘리제였습니다.

만돌이는 그녀의 피아노를 듣기 위하여 몇시간씩이나 일찍 과외선생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볼 때까지 그녀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습니다. 판자집 2층의 아주 작은 창으로 보이던 피아노 교습소가 지금도 눈에 선한 것 같습니다.

우리 6학년의 과외시간 전에는 1학년의 수업이 있었고, 만돌이는 그 1학년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아이들(물론 만돌이도 아이였지만)은 만돌이를 ‘삼촌’이라 불렀고, 무척이나 잘 따랐습니다. 이창진, 장??(장진호였던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 이름이 생각납니다. 진호는 나중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내가 가진 돈 탈탈 털어 아이스크림 사줬던 것이 아직 기억에 있습니다. 그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에 마냥 즐거워했지만, 만돌이는 그가 영영 기억하지 못할 이별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두들 참 보고 싶습니다. 지금쯤은 스물 여덟, 아홉쯤 되었을테고 아마 다들 나보다 어른들일 것입니다.

DJ 선생님의 동생뻘로서 ‘조교’로 활동하던 ‘빤쭈아저씨’도 있었는데, 만돌이는 그에게서 버스 안에서 물건 파는 만담을 열심히 배워 써먹을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도 않은 ‘쌍권총은 두개다’라든가 ‘라이타돌에 맞아죽은 사나이’ 같은 희한한 소재들이었습니다. “차 안에 계시는 신사 숙녀 여러분, 흔들리는 차 속에서 잠시 말씀 드리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만돌이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 수첩에 적어놓고 달달 외우고 다녔습니다.

어쨌거나 만돌이는 SH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그녀와의 신분적 차이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고, 학교엘 가면 SH와 몇반 반장이 좋아한다더라 같은 가슴 아픈 소문들만 들었습니다. 만돌이는 반장은 커녕 분단장도 아닌, 아침마다 남보다 일찍 나와 낫을 들고 밭을 가는 촌놈 머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돌이는 그녀를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하였습니다.(“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냐”던 만돌이와 비슷한 성을 가진 만적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연히 알지 못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들 공부가 게으르다고 꾸짖던 과외 선생님이 드디어 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고, 틀린 갯수대로 때릴 것이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는 재미있고 괜찮은 분이었습니다. 같이 폭음탄 만들다 만돌이 손에 제법 심한 화상을 입은 적이 있긴 했습니다만,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님 또한 좋은 분으로 만돌이를 손자같이 대해주셨습니다. 나는 그 할머니의 사시가 무섭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드디어 시험을 보았습니다. 만돌이는 문제를 풀면서도 SH를 걱정하였습니다. 그녀가 틀리면 어쩌나, 그녀가 만약 맞게 된다면…… 운명의 시간, 시험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의 기원은 아랑곳없이 SH도 제법 여러 문제를 틀려서 맞게 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만돌이는 구제불능, 귀가 빨개진채 엉덩이를 팍팍 맞았습니다. 그리고 SH가 손바닥을 맞는 일생일대의 비극적 장면을 과연 제대로 보아낼 수나 있을까 걱정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가호가 있었을까… DJ 선생님 왈, 여학생은 때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만돌이는 진심으로 마음으로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바로 그 순간 전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왜 여학생은 때리지 않나요?”

‘들킨 마음의 두려움’과 약간의 질투도 있었나 봅니다. 순간 선생님 또한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SH 역시 난감하고 슬픈 표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순간 얼어붙어버린 만돌이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불의의 일격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만돌이 말에 마음이 상한 탓인지 DJ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매를 들고 SH의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녀가 몇대의 매를 맞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든 것이었는지, 또 그녀보다 몇백배나 더한 아픔을 만돌이가 받고 있음을 누가 알고 느낄 수 있었을까요. 그 고통스런 느낌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고, 고백할 수 있고, 하소연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 속이 시원하냐?”던 DJ 선생님의 말이 내 가슴을 베고 지나갔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I was swallowing my pain, I was swallowing my pain… I didn’t mean to hurt you…” 내가 만약 그때 Jealous Guy를 알았다면 그 노래를 수천, 수만번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똑같은 어린 마음의 독백이 끊임없이 가슴속을 흐를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변함없이 엘리제를 위하여는 만돌이의 마음속을 흘러갔지만 꼭 그 노래의 마디 만큼의 깊은 상처를 가슴에 담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그녀와 예전처럼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끝.

 

/1999. 1. 4.

 

+SH는 “승희”, “이승희”입니다. 초등학교 졸업후 본 적도 없고, 소식 들은 적도 없지만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긴 합니다. 그녀의 집이 있던 건물은 아직 남아 있지만 물론 예식장은 아닙니다.

폼페이에 관한 단상

당신의 기침 소리“와 “pink floyd의 pompei live“에 관한 부언

 

나는 한권의 책을 통하여 <당신의 기침 소리>를 썼다.(폼페이에 관한 자료들은 여러 권 갖고 있지만 시를 쓸 때는 폼페이 발굴에 관한 단 한권의 책만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시 속의 집이나 직업, 풍속 등 그 모든 내용과 이름들은 거의 실재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폼페이에서의 7월은 선거의 달이었으며, 아셀리나의 술집 역시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 술집의 벽에는 팔미라, 아글라이, 마리아, 즈미리나 등의 이름이 낙서로 남아 있었다. 또한 이들이 행정관에 출마한 폴리비우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자 그는 난감한 상태가 되어 화를 내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도 그는 평소 ‘아셀리나의 특별한 술집’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기침 소리>의 비장한 분위기에 약간의 유머를 주기 위하여 나는 폴리비우스를 언급하였다. 기타 내가 언급한 모든 이름과 장소는 실재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약간의 ‘시적 진실’이 포함되긴 했지만 거의 넌픽션인 셈이다.

 


빵가게 부부의 초상

 

이들이 <당신의 기침 소리>에 등장하는 스타티아와 페트로니아 부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빵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인 것은 확실하다. 불행히도 시에서  언급한 스타티아의 빵가게는 너무 작은 곳이어서 폼페이 복원지도에도 나와 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임의로 조금은 후미진 스타비아 목욕탕 부근에 빵가게가 있는 것으로 상정하였다.
내가 읽은 한 책에서는 이 벽화를 ‘장부와 첨필을 든 꼼꼼한 부부’로 묘사하였고, 또다른 책에서는 신혼의 의식을 기념한 그림이라고 하였다. 물론 나는 학술적인 고찰에 상관없이 빵가게를 운영하던 신혼부부의 언약이 담긴 초상이라 믿는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여덟조각으로 나눠진 빵

 

이것은 실제로 빵가마에서 발견된 2000년된 빵이다. 빵공장에는 응회암으로 만들어진 맷돌이 있었는데, 노예가 돌리는 것과 노새나 말을 부려 돌리는 두 가지가 있었다.
시 속의 저녁식사에서 언급한 ‘가룸’은 소스와 소금을 뿌린 물고기 요리로 모두가 즐기는 식품이었으며, 가룸의 생산은 몇몇 부유한 가문에 의해 독점되었다고 한다. 포도주 역시 폼페이의 유명 생산품이었다.

 

   
신비의 별장에서 발견된 세멜레의 입문의식(좌)  / 비너스와 마스의 벽화(우)

 

폼페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외에 있는 ‘신비의 별장’은 디오니소스에게 봉헌된 프레스코 벽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별장의 예배실에는 모두 29명의 인물상이 실물 크기로 그려져 있는데 한 신부가 디오니소스의 비교에 입회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의식의 클라이막스는 물론 성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세멜레의 입문의식은 핑크 플로이드의 폼페이 라이브 필름에서 로저 워터스가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부를 때 상세히 보여주는데, 세멜레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다.

 


고대의 포르노그라피

 

폼페이에서는 이런 류의 퇴폐적인 벽화가 많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외설적이고 관능적인 그림들을 대단히 즐겼다. 약사 베티우스의 집에서 발견된 위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이며, 과장된 신체를 지닌 남자의 모습을 그린 또다른 그림이 베티우스의 현관에 그려져 있었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주인 가운데는 발레리아 헤도네라는 여인도 있었는데, 그녀의 성-헤도네는 그리스어로 쾌락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티우스나 헤도네와는 전혀 다른 취향의 인물도 있었다. 바로 아리우스 크레센티우스인데, 그의 집은 통상 ‘도덕주의자의 집’으로 통한다. 그의 식당에는 “말다툼과 논쟁을 자제할 수 없다면 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라든가 “다른 사람의 아내를 욕망의 눈으로 보지 말라.”는 경구들이 적혀 있었다. 그의 식탁에서는 유리병과 청동항아리, 국자, 사슬 달린 램프, 커다란 사발 등이 온전히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도덕주의자의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폭격으로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아이러니 속의 아이러니 ㅡ 포르노그라피는 영원하고 도덕주의자는 사라진 셈이다.

 

 

폼페이의 건물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시가지의 복원도를 보면 오늘날의 건물들이 얼마나 비미학적인 것인가 새삼 느끼게 되고 도대체 무엇이 발전했는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난방장치(보일러) 마저도 그 자체로서 우아한 작품이었다.

공공목욕탕 역시 대단히 예술적인 것이었는데 냉탕, 온탕, 그리고 증기탕에 탈의실까지 갖추어진 매우 화려한 건물들로서 남탕과 여탕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절대다수의 현대인들조차도 이 정도의 고급스런 목욕탕을 이용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는 이 대중탕의 나른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를 <Tepidarium (증기목욕실, 목욕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며 몸을 말리는 폼페이 여인들)>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폼페이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아마도 시신들일 것이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신은 화산재에 뒤덮인채 그대로 석화되어 오늘날 석고상으로 온전히 복원되기도 했다. 상태가 좋은 시신의 경우 본뜬 석고상에서조차도 얼굴 표정이나 옷의 주름 부분까지 세밀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번민과 고통에 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비극적 예술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자연학 문제집>을 통하여 폼페이의 재앙을 묘사하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온세상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디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의 말대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이 땅이 쪼개지고 흔들린다면, 무엇이 그 토대가 될 것이며, 어디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인가?”

‘파괴가 만들어낸 영원’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 번민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을 것이다.

 

 

/1998. 12. 18.

당신의 기침 소리

페트로니아에게 : let’s do some living after we die.

 

 

서기 79년 피라무스와 페트로니아+의 다정한 빵가게였지.
폼페이의 작은 거리, 스타비아 목욕탕 앞 이름없는 조그만 빵집이었지.
이두정치가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든 우린 마냥 행복했어.
7월의 선거에서 누가 행정관이 되든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게 없었지.
아셀리나의 특별한 술집엔 단 한번도 가질 않았지.
오리엔트 출신의 요염한 팔미라, 그리스에서 넘어온 사연 많은 아글라이,
유대 출신의 속 깊은 마리아,
변방에서 건너온 야성적인 즈미리나가 기다리고 있었건만
진실로 그들의 비법을 알고 싶진 않았어.
폴리비우스는 그들이 자신을 지지한다며 화를 내었지만
우리가 만드는 빵은 모두가 나눌 수 있는 것이었지.
검투시합 구경으로 당신 속을 썩였지만 오직 그것뿐이었지.
노새를 부리며 큰 맷돌로 밀을 빻았지.
그동안 당신의 노래는 나의 땀을 식혔어.
가룸과 우리가 만든 빵, 그리고 베수비오의 포도주로
포근한 저녁을 함께 했다네.
62년의 지진으로 친구들은 떠나버렸지만
우린 그 아픔을 딛고 행복한 꿈을 꾸었지
신비의 별장에 화려한 비의가 넘쳐났어도 우린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어.
우아하고 고귀한 사비나 포파이아조차도 당신과 비할 수는 없었지.
베레쿤두스 같은 표백쟁이 부자가 우리의 꿈은 아니었지.
유쿤두스의 은행에 가져갈 돈은 별로 없었지만
잔돈을 교환하면서도 당신은 행복했지.
오직 하나 가슴 아픈 게 있었다면
일주일에 한번 당신이 베티우스의 약국에서 약을 타와야 하는 것이었어.
당신의 아픈 가슴만은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이었지.
약 타러 가는 길에도 당신은 미소 지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헤르쿨라니움에서 온 장님에게 1아스 동전을 쥐어 주었지.
그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79년 8월 24일.
황금의 나라가 흔들리고 있었어.
불덩이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고, 화산재가 비처럼 세상을 뒤덮고 있었지.
여사제 에우마키아 조차도 살아날 순 없었어.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원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었고
大플리니우스 조차도 목숨을 보존할 순 없었지.
목숨이 경각이었건만 유쿤두스의 은행에선 사람들이 돈을 쓸어 담았고,
펠릭스의 집안에선 노예들이 허겁지겁 짐을 싸고 있었지.
하지만 우릴 태워다줄 배는 없었네.우린 갈 곳이 없었네.
당신과 나, 그 밖엔 아무것도 가져갈 게 없었지.
오직 쥬피터와 이시스 여신의 뜻을 따르는 수밖엔.
우린 마냥 손을 잡고 함께 있을 뿐이었네.
지금도 기억하는 건 목메인 당신의 기침소리 뿐.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든 여덟 조각의 빵처럼,
그렇게 갈라져버린 꿈이었지. 그렇게 굳어져버린 영원이었지.
하지만 그것은 베수비오산 포도주의 피같은 사랑이었어.
찰나가 석화된 영원한 포옹이었지.

 

 

1998. 12. 12.

 

 

+이후에 더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다면 두 사람의 이름은 바뀌어야 했다.
‘피라무스’나 ‘칼부스’, ‘제니알리스’가 마땅해 보였다.
‘시적 진실’로서 “스타티아와 페트로니아”로 남겨둘 수도 있었지만
P로 시작하는 두 사람, “피라무스와 페트로니아”로 고쳤다.
물론 이 모든 이름들이 폼페이 빵가게 벽에 적혀 있었다.

 

 

안개 속의 거울

내 믿지 못할 경험을 세상에 밝히도록 격려해준 P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글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도 되지 못한 이 글을 내어놓는다. 나 또한 진실을 확신하지 못한채…

 

실재 reality : 
약간 머리가 돈 철학자가 꾸는 꿈 
만일 사람이 환영이라는 것을 분석 시험한다 하면, 
도간 속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 
공허의 핵심 
ㅡ A. 비어스, <악마의 사전>에서. 

 

 

글머리에.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별다르게 쓰라린 삶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운명의 계시나 지배를 받아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체험했거나 아니면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던 조용하면서도 특이한 사건들의 기록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기괴한 현상들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했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간단하고도 확실하다. 나처럼 한번의 그런 이상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치 그물이 던져진 것처럼 연속적인 체험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것은 융의 공시성처럼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인 모양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러한 우연의 그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신비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그런 우연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나는 결코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초자연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고 있기에)에 무관심하던 나는 조금은 다른 사고방식들을 가지게 되었고, 내 경험들을 글로서 남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짧은 글솜씨에 그 이야기들을 조금도 가감없이 적고자 무척이나 고심하고 노력하였다. 아니, 짧은 솜씨이기에 가감이 없음이 가능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기도 하고, 내게 그 체험들을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글재주 없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사실을 기록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아는 게 없는 사람이고, 글을 지어내는 것은 더욱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내가 겪었던, 또는 겪었다고 믿는 어떤 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결코 소설이 아니라 실재로 내가 겪었던 일이며, 조금의 가감도 없음을 분명히 고백한다. 
적어도 그것은 내 삶의 어느 한순간에 실재한 사실이거나 또는 착란에 의한 도착과 환영 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가에 대해선 이 글을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맡길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로 경험한 일이라는 것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1993. 10. 2. 토. 초고.

 

나는 언제나 적당히 쪼들린 채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뛰어난 재능이나 능력이 없는 나의 밋밋한 삶처럼 별로 특별한 게 없는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단 한 시절,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 시절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한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또는 시절이 여태 나를 묶어두고 있다. 알 수 없는 자책감 속에 나는 그 포박을 운명과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하는 방법도 배워왔다. 이제 그 믿어지지 않는 일에 관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내가 그 낡고 허름한 목욕탕에서 무엇인가 보게 된 것은 지금부터 4년 전, 정확히 말해서 오늘이다. 오늘같이 심하게 흐린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낮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나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1달씩 교대로 밤근무를 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것은 밤근무 후 돌아와 늦잠을 자고 낮에 목욕탕엘 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내 하숙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목욕탕은 변두리 동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목욕탕이었다. 늙은 아저씨가 박스 카운터에 앉아 돈을 받고, 시장 아주머니가 말 안 듣는 어린 아이들을 질책하며 황급히 몰아세우고, 술취한 아저씨가 목욕탕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몇몇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탈의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평범한 목욕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날 목욕탕엔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부대끼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약간의 되먹지 못한 결벽증이 있어, 그들이 머리를 감을 때 튀는 비눗방울이나 물을 본의 아니게 뒤집어 쓰기가 싫어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목욕을 했다. (나는 목욕탕 위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보이는 그날 낮 하늘의 이상스런 어둠과 조용한 목욕탕에 간혹 들리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의 독특하고도 음울한 느낌들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다!) 
그리 긴 시간을 목욕탕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혼자 조용히 목욕을 마치고 이제 탈의실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섰다. 탈의실과 탕 사이에는 큰 미닫이 유리문이 있었는데 그 문 유리창에 목욕하는 사람들이 비쳤다. 

고독한 환경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멋부리기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유달리 거울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탈의장 정경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내 모습을 습관적으로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나친 자아의식에서 오는 이상한 자책감으로 해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지 목욕탕 여기 저기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감고, 어떤 사람은 샤워를 하고, 어떤 사람은 탕 안에 있고, 모두가 자신들의 몸 씻기에 나름대로 몰두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모든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에 소름이 돋곤 한다. 
목욕탕 제일 안쪽 편으로는 한증실과 냉탕이 있었는데 냉탕 바로 앞에는 유리 칸막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치거나 으스대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찬물을 여기 저기 튀겨 목욕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그만 배려였다. 그런데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창의 넓은 반영 가운데 유독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탈의실의 형광등 탓으로 워낙 희미해서 정확히는 볼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냉탕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씻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몸을 씻는 그 몸짓은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를 풍겼고, 나 역시 꼭 이전에 이러한 상황을 겪은 듯한 몸 떨리는 기시감(旣視感)을 느꼈으며, 그 사람의 모습과 자세가 어딘가 어색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등을 돌린 자세라서 그런 것일 테지… 하고 나는 문을 열고 목욕탕을 나왔다. 그리고 몸을 말리고 옷을 입느라 그 일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옷을 입고, 다시 거울을 보는 순간 그 어색한 포우즈가 떠올라서 목욕탕 쪽을 바라보았다. 즉흥적인 묘한 기대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곳에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없길 바랬으며, 역시 그 바램대로 냉탕 부근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목욕탕을 슬쩍 훑어보았지만 유리창에 비친 그 모습의 주인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이겠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주일 뒤 다시 목욕탕엘 갔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되어 날씨가 꽤 쌀쌀했다. 따뜻한 물이 예전보다 더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계절이었다. 그날은 지난 번 왔을 때보다 사람이 적었다. 겨우 대여섯명 될까, 그 정도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역시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아서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문 앞에 섰다. 잠깐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다 별생각없이 문을 열려다 문득, 또는 혹시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 목욕탕을 살폈다. 
갑작스레 지난주에 잠깐 보고 느꼈던 묘한 감정이 떠올라서 나는 탈의실 유리창에 비친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유독 한 사람만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냉탕 앞에 또 다시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기시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자세는 여전히 뭔가 어색하게 보였다. 목욕탕의 습기와 열기로 인한 김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이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자세히 살폈다. 몸에 비누칠을 하는 동작도, 머리에 물을 붓는 동작도 모두가 무엇인가 어색하고 연약하게 보여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무엇일까,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몸이 무척이나 왜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등 아래, 거의 허리 윗부분에 있는 엄지손톱 만한 크기의 점까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이길래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눌러가면서 잠깐을 더 멍청히 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돌렸다. 
누구일까? 불현듯 그 냉탕이 있는 자리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 
그것은 기우였다. 밤근무로 점철되는 오랜 비정상적인 일과가 헛된 망상만을 키워온 탓이리라. 한 사람이 비스듬히 등을 돌린 자세로 냉탕 앞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한순간, 세상에 특별한 기적 같은 것은 없는 법이고, 내 삶에 어떠한 파란도 일어나지는 않으리라는 안도감과 묘한 실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허리가 굽은 초로의 사람이었고, 야위기는 했지만 분명 창에 비친 사람은 아니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몸을 돌린 각도가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가 두 번이나 보았던 유리창에 비친 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유리문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그곳엔 초로의 남자가 흐느적거리며 비누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인쇄일을 하면서 인쇄된 ‘종이들’을 읽은 적은 사실 별로 없었다. 인쇄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연판에 이상이 없는지, 또는 색상이 알맞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종이를 정리하고 시끄러운 옵셋 인쇄기 돌아가는 엄청난 소리 속에서 책의 내용을 살필 여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2절지 한장에 페이지는 얽혀 있기에 찾아가며 읽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부분 만큼은 얼른 눈에 들어와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목욕 :
종교상의 예배에 대신하는 일종의 신비적인 의식 
다만 영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지금까지 결정된 바 없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가난하게 살았고, 인쇄소에서 겨우 혼자 별다른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갈 만큼의 월급을 받고 있을 뿐이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고, 한달에 두어번 몇몇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것 말고는별다른 취미도 없다. 환영이나 귀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공포영화는 경멸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얼이 빠진 채 탈의실로 나오니 목욕탕에 일하는 사내가 나를 미친 사람 보듯이 빤히 바라보고 있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니, 부끄러움을 생각할 여유가 내겐 이미 없어져버린 것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다음 주부터는 한달간 낮시간 근무로 전환되었다. 
목욕탕을 나올 때마다 떨리는 가슴으로 유리창을 바라보았지만 냉탕 앞의 사람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 동안 네번 목욕탕을 찾았지만 한번도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결국 헛것을 보았군. 나는 그저 피곤함으로 잘못 보았겠지 생각하면서 그 일에 대해서 거의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다음달, 그러니까 처음 그 사람을 본 이후 세째달로 접어든 때였다. 이제 그 낮시간에 목욕탕엘 왔으니 어쩌면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날은 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이 무더기로 목욕탕에 오는 바람에 너무 소란스러웠고, 그들의 우람한 모습에 가려 설사 냉탕 근처에 그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볼 수 없을 판이었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서둘러 목욕탕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목욕탕이 새로 하나 생겨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자주 가던 목욕탕은 거의 사람이 없었다.
평일낮의 목욕탕은 대개가 두 세사람 뿐이었고, 어쩌다가는 혼자 목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안도의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났을까. 내가 평새토록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날의 낮은 매우 어두웠다. 찌푸린 날씨가 몹시도 을씨년스러웠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바람은 매우 심했다. 
다시 그 희미한 유리창의 이미지, 아니 그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의문을 품고 있던 거의 모든 것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가 목욕하는 동작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던가에 대하여. 왜 내가 그토록 그 환영에 관심을 기울였는지에 대하여.
탈의실로 나오던 나는 습관적으로 닫은 유리문을 살펴보았다.
그 순간 유리창에 다시 그가 보였고 나는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약간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약간 긴 머리와 섬세한 선… 그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던 것이다. 왜소한 체구의 그녀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노인의 쇄잔하고 힘없는 모습도 아니었고, 목욕탕의 열기 때문에 생긴 환영도 아니었다. 분명히 한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여긴 틀림없는 남탕이다. 바깥 풍경, 그러니까 창문으로 보이는 전봇대의 윗부분이 여기가 2층에 있는 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대개의 목욕탕이 그러하듯이 여탕은 1층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녀가 있었다.  여전히 등을 돌린 자세로. 냉탕 가까이에.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겁이 덜컹 났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령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여자 목욕탕엘 들어왔단 말인가…… 혼란스럽고, 무섭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깨고 싶었다. 유리창에 비쳤던 그 이미지가 지금 실체로 앞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야말로 평소의 나 답지 않게 용기를 낸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문을 열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한걸음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간절했다. 
한걸음.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한걸음. 
그녀가 내게 왜 나타났는지. 
한걸음. 
왜 그녀가 몸을 씻는 동작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왜 남탕에 여자가 와 있는지, 그리고 왜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는지……

이제 그녀와의 거리는 1m정도로 가까워졌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1초도 안되는 한 순간에 나는 모든 의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었다. 
촉촉한 눈매. 등 아래의 점. 슬픔. 
그 짧은 순간에 경악이나 당황, 충격 보다는 왠지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뒤에 충격이 왔다.  그녀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한걸음 뒤로. 하지만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한걸음 뒤로……
탈의실엔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탈의실을 지키는 젊은 청년도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옷을 입었다. 뿌연 유리창 너머로 여전히 누군가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내 하숙집이 있는 골목의 가운데 쯤에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한걸음 뒤로. 
그녀는 왼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서 제대로 앉아서 몸을 씻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한걸음 뒤로. 그녀의 몸이 움츠려들었다. 한걸음 뒤로, 뒤로, 뒤로……

나는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문 앞에 섰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고 나는 유리문을 통해서 다시 그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두려워하던 비명소리는 결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입었고, 마지막으로 욕실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한달 뒤 그녀는 이사를 갔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특별했다. 금방 눈을 돌려 버렸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친 것이었을까.
나는 그때까지 그녀의 이름을 몰랐지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렸다. 회사도 그만두었다는데 도무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 4년이 흘렀지만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 내가 미쳤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지금껏 정상적으로 살아왔고, 인쇄소의 기사로서의 생활 역시 열심히 해왔다. 말이 별로 없고, 사교성도 좋은 편이 못되지만 성실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 몇달 간의 사건을 돌이켜 볼 때내가 전적으로 미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한다. 역시 기묘한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그 목욕탕은 결국 문을 닫아 몇년전부터 인쇄소로 바뀌어 버렸고, 나는 더이상 그녀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언론인이자 특유의 풍자로 일세를 풍미했던 앰브로우즈 비어스는 남미로 여행을 떠난 이후 실종되었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분명 비어스는 남미로 떠났고,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죽었다. 그가 떠나기전에 말했듯이 그 자신은 그것을 멋진 죽음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어스의 시신 조차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의 글만이 이 세상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녀도 이제는 내가 찾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그녀가 이사를 떠난 후 나는 그 사건들을 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느 정도는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여탕에 침입했을 가능성을 솔직히 인정할 수도 있었다. 그 목욕탕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주인이 돈을 받는 카운터 박스는 여탕보다 훨씬 정문에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벌거벗은 상태에서라도 2층 남탕에서 내려와 여탕으로의 침입이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처음, 그리고 두번째로 그녀를 유리문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 다른 사람들 – 다른 남자들이 목욕탕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보았던 날, 벌거벗은 그녀(그때까지는 여자인지도 몰랐지만)에 정신이 팔려 멍청히 서있는 나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목욕탕 종업원 사내도 나는 기억한다. 물론, 이것 마저도 내 정신의 환각으로 돌려버린다면 그만이겠지만.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내 정신의 착란으로 돌린다 해도 그녀의 등 아래쪽에 나 있던 점 만큼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 내가 여탕으로 몰래 침입했다는 사실 마저도 나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그 이전에 나는 그녀의 점을 보았다. 
사실, 내가 여탕에 침입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때는 그 목욕탕이 헐리기 얼마전이었고, 새 목욕탕 때문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기에 목욕탕 입구의 계산대 박스에 있는 사람도 졸기가 일쑤였고, 박스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여탕 입구와 계단이 나란히 있었기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도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여탕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긴 했을 것이다. 단, 그 순간 1,2층 모두에 그녀와 나만 있었다는 전제하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남탕인지 여탕인지 또는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공간이었든지 그녀를 만났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단 한마디의 대화 조차도 없었었지만, 그녀와의 만남을 하나의 계시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와 나를 이어주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4년이 지나버린 지금도 나는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녀에게 어떤 초자연적인 마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녀가 내게 무엇인가 강력히 구하고 있었는지, 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나는 왜 그전에 그녀와 말 한마디 못하고, 인사 한번 나누지도 못한 것인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 아프고 후회스럽다.
그녀에게 다가선 순간에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괴로움과 자책 속에 살아왔다. 그 이유를 알아야 했고, 그 슬픔을 달래줬어야 했는데…… 아니, 그때 그녀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었는데, 분명히……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지금껏 나를 괴롭혀 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찾고 있고, 아직도 믿고 있다.

표리부동 이이제이. 가끔식 그녀를 생각하면 인쇄용 필름같은 네가티브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이미지들은 대개 의미 그대로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때로 괴기스런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네가티브의 영상이 인쇄기를 통과하면 그와는 반대의 느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만드는 빛일 수도 있고, 빛을 깨닫게 하는 어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포지티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거꾸로된 상 그대로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 그녀 또한 내 삶에 있어 빛을 인식케 하는 어둠이거나, 아니면 그녀 자체로서 빛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어둠이라면 그 광점은 너무 작고 너무 밝아 종이를 뚫고 책을 뚫고 내게로 온다. 잡은 가득한 레코드 판을 뚫고 음악을 뚫고 안개 가득한 거울 너머로도 분명하게 보인다. 어디선가 읽은 뉴트리노 입자처럼 내 눈을 뚫고 내 가슴을 뚫고도 내게 머문다. 내가 타버리거나 내 안에서 어둠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우울한 음악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안개낀 날, 오직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습한 공기가 어둔 거리를 휩싸고 도는 날, 어디선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다. 그녀의 등 아래에 있는 점은 내 믿음의 상징이 되었고, 그녀의 촉촉한 눈매는 나의 약속이 되었고, 그녀의 절뚝거리는 다리는 나의 종교가 되었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이란 말인가?
막 자정을 통과하는 마지막 시내버스의 컴컴한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며 지친 몸을 기대고 있을 때 여자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면, 아기를 업고, 무거운 짐을 든 젊은 신부가 혼자 가파른 산복도로를 올라가며 한숨을 내지른다면,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느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는 환상의 유리문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어스의 말대로 공허의 핵심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그것은 현실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1993-.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