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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핸사드, 나 없는 날에

셰인 맥고완으로 해서 알게 된 이름이었다. 그의 삶으로 해서 내  귀에 들어왔고, 그의 죽음으로 해서 내 마음에 영영 남게 되었다. 뜻밖에도 그는 우리에게도 꽤 알려져 있는데  <Once> 때문이다. 그 영화와 노래(Falling Slowly)에 대해선 덧붙일 소감이  별로 없지만…… (만약 그가 이 땅에 태어났다면 민요풍의 노래들을 막걸리風으로 껄쭉하게 노래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셰인 맥고완 장례식에서의 노래(Fairytale of New York)와 더불어 “이별주”라면 나는 오직 맥고완과 핸사드를 기억할 것이다. 보르헤스/델리아의 이별과는 많이 다르지만 누구와도 마셔본 적 없는 이별주를 대신하기에 이들보다 어울리는 노래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해리 딘과 함께, 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일지 모를 나 없는 날에 더 있었으면 싶은.

 

 


/Parting Glass, Glen Hansard

 

 


/Falling Slowly, Glen Hansard : <Once>

‘Biutiful’ and Blue

Biutiful (2010) (3/4) : A dying man struggling in his seedy world | Seongyong's Private Place

 

<비우티풀>은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 가운데 하나였다.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의 우울한 모습도 일조를 했다.
중독, 불륜, 가난, 10여명의 사망, 얼마 남지 않은 생명, 터무니없이 어린 아이들……
너무도 극단적인 상황의 연속인 까닭에
<버드맨>과 달리 나는 도무지 감독의 주장에 설득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냐리투의 영화는
마그리트의 화풍을 닮은 커버를 지닌 매직 크리스찬 뮤직 앨범의
노래 하나를 생각나게 했다.
루시 또는 미스터 카이트.
비틀즈의 싸이키델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어린 분위기의 이 노래는
왠지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하곤 했다.
영화와 노래에 내 마음이 겹친 듯,
뷰티풀하지 못한 어떤 이의 삶과 뷰티풀하다 알려주려 애쓰는 영화 사이에서
온종일 나는 우울하였다.
그리고 이 영화더러 아름답다고 하는 평이 심히 역겨웠다.

 

She feels so unhappy, she no longer cares for life
Has these thoughts of ending all her strife
The world doesn’t know her
It’s so hard and cold and cruel,
she wonders why she’s such a fool……
/Beautiful & Blue, Badfinger

 

 

그 집 앞 : Ask me why

재개발 플래카드로 어수선한 아파트 위쪽 입구 오른편에는 작은 편의점이 있고, 한 칸 건너 아담한 가정집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이 동네 전체가 한적한 주택가였으나 이제는 주변에 원룸 빌딩이 너무 많이 들어서서 좀 삭막한 분위기다. 그래서 몇해 전 그 집을 새로 단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위태로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것이 너무 낯설어져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고 아담한 집이었던 까닭이다. 집 앞에는 자갈이 깔린 공터가 있어 차 2대 가량을 주차 가능하게끔 해두었고 그 너머에는 철골로 이루어진 하얀 담장과 아치형 대문이 있다. 집 입구에도 큼지막한 화분들이 있고 하얀 담장을 따라 넝쿨이 자라는 집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가끔 그 집 앞에 멈추어 천리향 향기 맡으며 화분 바라보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었나 보다.

열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비틀즈에 푹 빠져 살았어도 그들 노래 전부를 알지는 못했다. 정규 앨범/싱글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금지곡들을 위시해 빠진 곡도 꽤 있었다. 특히나 데뷔 앨범의 곡들은 모르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특이하게 좀 일찍 들은 것이 있다면 1962년 함부르크 스타 클럽에서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초기 락앤롤의 스탠다드 넘버들과 비틀즈 오리지널이 섞인 희귀한 앨범이었지만 정식 레코딩이 아니라 비틀즈가 유명해지자 누군가의 조악한 녹음본으로 제작된 앨범이어서 음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카세트 테잎 2개로 만들어진 그 앨범을 참 열심히도 들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서 빌려 테잎으로 녹음해 듣던 <1962-1966>, <1967-1970> 컴필레이션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 Strawberry Fields Forever나 Sgt. Pepper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Alles zur Geschichte der Beatles in Hamburg. - hamburg.de
/Star Club, 1962

 

그런 열여섯의 어느 날, 아파트 옆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꽤 괜찮은 목소리였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잘은 모르지만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사람 같았다. 귀에 익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가물가물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비틀즈의 Ask Me Why였다. 당시 내겐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이 없었지만 바로 함부르크 테이프를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곡이었다. 美感이나 멋에 관한 감각이 부족한 나는 그 노래가 그렇게 낭만적인 곡인지 몰랐다가 그날에서야 희미하게 알게 되었다. 노래 속의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작고 아담한 집이 있는 바로 그 곳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지만 저녁이면 자그마한 차 두 대가 다소곳이 서 있는 그 집의 주인장이 예전 그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바라고 믿곤 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Ask Me Why, Beatles
(데뷔 앨범 모노 버전을 좋아하는 나는 심플하고 극단적인 스테레오가 불편하게 들린다.)

셰인, 셰인, 셰인

‘아이리쉬 맨’ Shane MacGowan이 세상을 떠났다. Pogues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아일랜드 포크 음악과 펑크 스타일이 교차하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 밴드였고 이들의 거의 모든 이미지는 맥고완(He Is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으로부터 왔다. 그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봤을 때는 누구처럼 시들시들해도 아직 괜찮구나 했는데 퇴원 일주일만의 일이다. 한 달 쯤 전에는 병원에서 코줄을 끼고 험한 몰골로 있는 가족 사진을 본 적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했지만 셰인 맥고완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빠진 앞니를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노래하던, 그런 류의 부끄러움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고 묘하게도 그것은 맥고완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노래와 노랫말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도 맥고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나는 몹시도 마음이 끌리곤 했다. 그는 비슷한 수준의 지독한 주당이자 꽤 긴 시간을 앞니없이 비칠대며 살았던 동훈형을 생각나게도 했다.

 


/맥고완으로 뒤덮인 더블린의 신문 가판대
(Rainy Night in Soho의 한 대목을 고친 타이틀이 눈에 들어온다 : And you’re the measure of my dreams.)

 

그의 아내의 추모글을 보면 구구절절 지극한 사랑이 넘쳐났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뉴욕 동화’가 절로 떠오르곤 하지만 아무래도 맥고완의 상징은 ‘Dirty old town’ 같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곱씹으며 눈물 글썽인 적도 한 두 번이 아닌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What a wonderful world 또한 맥고완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다. 필 세브론, 카이트 오리오던, 그리고 셰인 맥고완…… 영상 속의 풋풋했던 모습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를 위한 추모곡이라면 포그스의 멤버들과 Clash의 조 스트러머까지 출연했던 영화(스트레이트 투 헬)에서 오리오던이 노래한 “Danny Boy”도 빼놓을 수 없다.(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매력적인 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제 운전하는 길에 랜덤으로 나온 노래 가운데 이 곡이 있었다. “뉴욕 동화“의 노랫말에서처럼 그는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했지만 맥고완과 포그스의 시끌벅적하면서도 아픈 곡조들은 내 안에서 멈추는 일이 없다. 그가 노래하는 “The Parting Glass”를 들으며 셰인, 셰인, 셰인…… 아득한 그 옛 시절의 “먼 산울림“처럼.

 

 


/Dirty Old Town, Pogues

 

 


/Danny Boy (Straight to Hell)

 

 

 

/2023. 12. 1.

노래

-by H to H

 

짧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단순하면서도 함께 하긴 쉽지 않은 노래
상실과 그리움의 노래
모든 시간이 끝에 이를 때까지 노래하고 있다면
노래는 나를 부를 것이야
노래는 어김없이 누군가를 그릴 것이야
실낱같은 연이 영영 침묵 속에 잠들지라도
노래는 내 불면과 평안과 망각 너머 함께 하네
시간의 조수 속에 놓쳐버린 형제에서 연인에까지
모든 잃어버렸거나 갖지 못한 것들에까지
오래된 민요 속 뼈와 머리칼로 만든 하프인양
가슴을 울리는
내 모든 그리움의 총합 같은 노래
데이비, 오 데이비

 

 

/2023. 11. 29.

Everywhere You Are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것 이외에 John Lefebvre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그는 작가이자 기업가이며 요즘의 폭염에서 실감하게 되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무명의 신인가수(?) 앨범에 대단한 연주자들이 몰렸는지는 조금 미스터리하지만 에밀루 해리스의  남편이었던 프로듀서 Brian Ahern의 공이 컸던 것 같다.

그는 T Bone Burnett(기타리스트/제작자)을 연결시켜 줬고 잇달아 Jim Keltner(존 레넌, 밥 딜런, 케일의 드러머!), Hutch Hutchinson(베이스 세션맨), Greg Leisz(페달 스틸 기타의 대가), Al Kooper(키보드/기타, 슈퍼 세션!), Matt Rawlings (피아노, 키보드) 등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환상적인 세션 밴드가 이루어져서 2007년 <Psalngs> 앨범이 만들어지게 되었다.(2009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Initial>도 있다.)

Everywhere you are는 이 앨범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었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어이없이 묻혀버린 앨범이지만 <이작자 여인숙>이 끝나갈 무렵이었기에 이 노래의 느낌은 내게 있어 더더욱 각별했다. 절제된 곡조와 목소리가 오히려 심금을 울리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곡이다. 그렉 리즈의 페달 스틸 기타를 비롯하여 대단한 세션맨들의 연주가 배경에 깔려있지만 나는 (조금 무난한 버전의 Wish you were here 기타 같은) Lefebvre 본인의 기타가 제일 좋게 들린다. 내가 모든 곳에 있는지, 또는 당신이 그러할지는 알 길 없으나 때로는……

 

May you find a place a place to rest
foxes have their dens and birds their nests
wander where you will valley o’er the hill
where you love the best

May you find the one take a hand
be in love make that wish upon a star
just remember when you’re in love
you’re everywhere everywhere you are
everywhere everywhere you are

 

 

Like a Promise?

가끔 가사를 띄워놓고 Tír na nÓg의 노래를 따라부르곤 한다.
Time is like a Promise ― 이 센티멘탈한 노래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어떤 기억은 허무하게 스러지고, 어떤 순간은 희망을 갖게 한다.

Flores y Tamales“의 꿈은 깨어진지 오래, 이어졌다고 할 것도 없는 너무도 가녀린 연결이건만
<The Thread That Keeps Us>라던 Calexico의 앨범 타이틀도 비슷하였다.

어떤 해석이 옳은지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것이 약속이든 다짐이든 바램이든,
시간의 흐름이 오히려 더 질긴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는……
“mountain”, “keep”,
이 노래 몇몇 소절의 꾸밈음들이 묘하게도 그런 감정들을 부채질하곤 한다.
쓰라림과 그리움 사이
어떤 약속도 없는데
기약도 없는데
Time is on My Side“라던 옛 시절의 호기는 시든지 오래인데.

 

 

 

If rain will fall high up here upon the mountain
Grass will grow and shepherds will be thankful
And our love will cover up all the mountain
For time is like a promise ―
It tries all your strength to keep to.

Before she came I lived alone upon the mountain
The raven heard your voice high upon the wind
Then one day you came to me upon the mountain
For time is like a promise ―
It tries all your strength to keep to.

The sun goes down and shadows soon are interweaving
But she lies so deep inside my love surrounds her
Time will outdo us, this I only know too well
For love is like a promise ―
It tries all your strength to keep to.

If rain will fall high up here upon the mountain
Grass will grow and shepherds will be thankful
And our love will cover up all the mountain
For time is like a promise ―
It tries all your strength to keep to.

피투성의 피투성이

17세기에 다정했던 사람 누구 떠올라?
하지만 그 시절 음악은 모두가 기억하지.
/콜름 도허티, <이니셰린의 밴시>

 

대척점에 서게 된 두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촌뜨기 파우릭 설리반을 연기한 콜린 파렐의 망가진 모습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콜름 도허티(브렌던 글리슨)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웠지만 영화는 끝까지 편치 않았다. 마음이 아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쓰라린 느낌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불편함을 피할 길이 없었다. 블랙 코메디라고 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황은 과하게 심각한 ‘피투성이’였다. Read More

알 메그레즈, 형광색 바다

 

북두칠성의 가장 어두운 별에 관한 짧은 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시는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함께 찾아본 다른 시편들은 너무 달라서 밑줄을 긋지 못했다. 뒤늦은 아쉬움으로 잠깐 검색을 시도했지만 다시 찾지는 못했다. 어릴 적부터 늘 헷갈렸던 북두칠성에서 가장 어두운 별은 국자의 시작에서부터 네 번째인 별, 메그레즈(Al Megrez)다. 어두워서 도리어 눈에 띄는 별이다. Read More

시레니따 보빈사나

유래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길 없어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엔 언제나 이런 류의 곡조가 피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르나 시대의 이집트에 깊이 매혹되었고 치첸이차의 엘 카스티요나 엘 카라콜은 내 오랜 꿈과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소소한 것에서 불멸의 작품까지 세상 많은 것들이 나를 솔깃하게 했지만 내 마음은 페루 남녘의 황량한 평원을 헤매이는 나그네이거나 밀림을 떠도는 화전민처럼 어찌 못할 외로움과 슬픔을 안고 있는 것 같다. 그저그런 소절을 혼자 부지런히도 따라 부르던 이름모를 뜨내기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