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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진 전부 상상

아래의 가릭 이고르 슈카체프의 경우도 그랬지만, 브라질, 쿠바/멕시코 등을 돌아 이스라엘, 이란, 알제리 등등으로 흘러가서 베리 사카로프, 달레르 나자로프, 모흐센 남주, 그러다 페랏 이마지겐(?)에 이르러 그들의 문자(카발리에 문자?)를 보면 거의 암호 같은 느낌에 맞딱뜨린다. 겨우 제목의 발음 내지 뜻이나 알면 다행, 아니면 그저 느낌만 있을 뿐이다. 얼마전 샌디에고서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분을 잠깐 만났다. 그는 내가 관심가져 듣는 나라의 아티스트들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거의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름은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얼른 떠올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라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가져다준 어떤 정서, 느낌들이 내 안에 있음을 안다. 그리고 때로는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상상하는 것이 나같은 사람에겐 더 짜릿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오늘은 에프랏 벤 주르의 어떤 노래를 들었다. 하바 알버스타인의 1970년대 노랠 다시 부른 것인데 노랠 들은지는 몇해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노래 제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뜻도 물론. 하지만 그  노랠 듣는 동안 묘한 향수에 휩쓸리곤 한다.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찔리는 듯한 느낌,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찾아봤다. 할라일라 후 쉬림. 번역기가 풀어낸 벤 주르의 노래 가사 한줄은 “yes, sometimes, tonight is beautiful songs“였다. 그리고 좀 더 살펴본 보다 정확한 번역은 “yes sometimes, the night is pretty songs”였다.)

 

/2020. 1. 21.

볼륨을 높여라, 카루소

그렇게 멀지 않은 나의 적막한 밸리 포지+, 일찍부터 움직여 차를 달렸다. 이제는 좀 쌀쌀한 날씨라 차창을 열고 운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밸리 포지를 향한 나의 길은 그 영화 제목 같은 “침묵의 질주”는 아니다.

창문을 제법 열고 운전을 한다.(하이브리드 차량 운전자로서 아직 히터는 잘 켜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지나가는 차나 정차시 옆에서 들으라고 차창 여는 것은 아니다. 차가 달릴 적에 더 크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 나는 그 바람 소리보다 더 세게 노랠 듣는 걸 좋아할 따름이다. 좀 추워서 후드를 덮어썼다. 룸미러로 보이는 꼴이 가관이다만 누가 볼 일도 보여줄 일도 없으니 상관은 없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음악실은 자동차이고 최고의 오디오 또한 그런 것 같다. 플레이는 언제나 랜덤, 영 기분에 맞지 않으면 넘겨가며 듣는다. 때마침 마음 맞는 노래가 나온다면 그건 세상 최고의 음악이다. 예를 들면 카루소 같은 곡이 그렇다. 그 노래에는 듣는 사람을 (뭔지 모를 스토리의 주인공인양) 멋지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마력이 있다.

 

애써 카루소인 척은 하지 않아
그리고 난 넘버 원도 아냐
만약 내가 노래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만 다른 곡을 틀도록 해

 

라고 낮고 묵직하게 노래하는 그 대목은 늘 나를 감격케 한다. “‘스트레이트’라고 불리우는 거리”에서 언제나 나도 그런 마음이다!! 텔레캐스터의 명장이라는 그의 기타보다도 자신이 카루소 같은 가수는 아니라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봄에 더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내게 알려준 시냇물의 한줄처럼 그렇게.

 

아무도 몰라주는
단풍 꽃은
님의 붉은 심장처럼
/시냇물

 

 

 

+영화 <침묵의 질주>에 나오는 우주정거장 형태의 식물원.

 

 

/2019. 11. 17.

 

아침의 쳇 베이커 : the thrill is gone ◎

아마 일주일쯤 되었나 보다.
지난 5,6년 사이 이렇게 잠을 뒤척인 적은 없었다.
따뜻한 우유도 마셨고, 심지어 과자도 먹었다.
하지만 제대로 잠들 수 없는 하루, 또 하루다.
어딘가 쓰리기만 할 뿐, 잠이 부족한 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뒤척이다 피치 못할 반가운 아침이 왔다. Read More

바닷가의 작은 소녀 ◎

거실의 거치대로 전락한 mdf 앨범 박스 하나 뒤적이다
닐 영과 반젤리스를 찾았다.
see the sky about to rain, 닐 영 앨범은 여전히 낭랑하다.
모랫벌에 처박힌 큼지막한 장난감 같은 로켓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눈길을 끈다.
그가 직접 연주한 wurlitzer electric piano의 풍성한 여운을
나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했었다.
장현 앨범을 구입했던 것이 1987년쯤이었던가 모르겠다. Read More

노 모어 슈가 베이비

bill frisell의 맑은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
자주, 즐겨 듣지는 않아도 듣는 순간의 즐거움을 조금 안다.
프리셀의 기타가 그렉 리즈의 도브로나 페달 스틸과 어울리면
두 소리는 이백 시 양반아 속의 침향인양
나선으로 얽히면서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 델리마디 툰카라의 엑조틱한 연주가 더해진다.
그래서 슈가 베이비는 그 제목보다 좀 더 오묘한 느낌이 든다.
썸머 와인의 여인처럼 뭔가를 더한
‘acid’ sugar baby일지도 모른다.
아래는 <양반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다.
“두 연기 하나 되어 하늘까지 이를 것”임이
동떨어진 몇 줄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세상에 마음 걸리는 일 그곳에 없기에.
슈가 베이비 더는 없기에.

 

 

어디가 제일
마음에 걸리느냐고요?

그야 백문 밖
버들이지요./양반아(부분), 이백

 

 

/2019. 8. 23.

 

 

 


/sugar baby, bill frisell

 

saudades do……

자나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많은 것이 그립고 안타까운 밤, 풀장 옆에 입주자들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바베큐 코너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밤공기는 좀 쌀쌀했지만 추위는 그닥 느껴지지도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무심결에 즐겨찾기 링크를 눌렀더니 화면에 뜬 것은 옛 가요 사이트였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음악들을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또 우연히 내 귀에 들려온 것은 두 개의 다른 곡조의 <고향 생각>과 <망향>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고향 생각>은 현제명의 곡이고, 다른 <고향 생각>과 <망향>은 번안곡이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한번 떠나온 후에…”로 나가는 가사와 “물소리 새소리 들려오는…” 하던 <over and over>의 리메이크다.

<고향 생각>을 듣다 보니 또 다른 이의 <고향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바로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다. 이제는 그 열기도 많이 사그라져서 희미한 기억들, 그가 어느 해에 포르투갈을 방문했는지 정확히는 생각나지 않는다.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아마도 197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시인과 소설가, 가수와 예술가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saudades do brasil em portugal>이었다. 포터블 레코더로 녹음된 것인지 좋지 못한 음질에 어딘지 모르게 지금처럼 늦은 밤 같은 느낌에 쓸쓸함과 허무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지금 이 밤, 이 순간 나는 이 노래의 나라 이름들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두 가지 쓰린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내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겠지만 그 하나는 원제의 나라 이름을 바꿔서 넣으면 되겠고 그 반대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곳 샌디에고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뒤바뀐 제목이 주는 쓰라림을 20여년 전에 그랬듯 이미 느끼고 있다. saudades do coreia em america,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씨꾸 부아르끼가 노래한 두 곡의 ‘파도’ 사이를 오가며.

 

sou eu em solidão pensando em ti
chorando todo o tempo que perdi……

 

 


/kátia guerreiro

 


/chico buarque de hollanda

 

the thread that keeps us

플로레스와 타말레스. 조이 번과 하이로 사발라가 쓴 이 노래는 묘한 중독성을 지닌 꿈비야 스타일로 꽤 신나는 곡이다. 전부 다 알아먹을 수는 없어도 내게는 기약없는 약속, 지켜지지 않은 약속 같은 노랫말이 슬픈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곡이 실린 앨범의 타이틀 <the thread that keeps us(2018)>까지가 여태 끊어지지 않은 가녀린 어떤 ‘緣’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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