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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b.

알 파치스타일지 씨루 파치노일지 조금 삭은 알 파치노를 생각나게 하는 파서 출신의 이 타악기 연주자는 슬라이드/페달스틸 기타의 그렉 리즈처럼 숱한 앨범과 라이브에 참여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실험적이고 상큼하면서도 정열적이다(가끔은 정신과 합동치료 같이도 보인다.ㅎㅎ). 역시나 예측 불허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존 존/마크 리봇과 오래도록 함께했으며 뉴 자이언 트리오와의 협연도 인상적었고 요요마에서 스팅, 허비 핸콕, 데이빗 브로자, 폴 사이먼 등에서부터 독특한 퍼포먼스를 포함한 자신의 밴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대역은 꽤 넓다.

아래 곡은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뉴 자이언 밴드와의 협연으로 이디쉬 스타일과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며 꽤 상큼하다. 그의 이름을 파서 식으로 부른다면 씨루 밥찌스따에 가까울 듯도 싶지만 국적을 뛰어넘은 타악기 연주자인만큼 시로 밥티스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cyro babtista

 

라 칼리푸사, 안토니오의 노래

오래도록 나는 ‘라 칼리푸사’가 술집 내지 클럽의 이름이거니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la, california, usa’의 아나그램이었다.

마이클 프랭스의 antonio’s song은 달달하기만 하고 그 노래가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빙의 음악을 잘 표현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별로 없다. ‘프레부'(헤시피 축제의 쌈바/리듬) 같은 삶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더불어 ‘mpb’, 그러니까 ‘무지까 빠뿔라르 브라질레이라’로 불리우는 브라질 대중 음악의 수준을 한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간 ‘마이스뜨루’임에 틀림없지만 쌈바를 작곡하고 노래한 ‘쌈비스따’라고 부르기는 적절치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그 노래의 한 대목에 끌리곤 했다.”내 희망의 대부분이 사라졌을 때 안토니오의 쌈바가 날 아마존으로 이끌었네(when most of my hope was gone antonio’s samba led me to the amazon)”라는 소절이다. 그리고 한때는 내게도 ‘안토니오’의 것이 아닌 ‘안토니오의 노래’가 있었다만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딘지 모를 ‘라 칼리푸사’를 배회하며 most of가 아니라 all of인 것처럼 느끼고, 고통이 잉태한 즐거움이란 ‘虛辭’라고 여기며 안토니오의 노래로부터 아득히 떨어져 있을 뿐.

느리고 뜨겁고 무거운

노래+는 오수처럼 겨드랑이 밑에 간지럽다.
이미지는 멀리 바다를 건너 간다.
벌써 바다소리마저 들려온다……
그리곤 언제나 어느 나라인지도 모를 거리의 십자로에
멈춰 서 있곤 한다.
/첫 번째 방랑, 이상+

 

<비야 비야>에서 <하크티바>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진 어떤 나라의 노래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들 노래처럼 유서깊다. <비야 비야>는 어찌 그리도 마음 아프게 들렸는지, <망향>을 처음 들었던 날 그 촌스런 번안가사를 수없이 불러대며 외워버린 것은 어째서였는지……

하지만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을 통해 이 나라의 음악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 것은 몇해 전의 베리 사카로프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의 처음에 <monsoon>이 있었고 그것은 느리고 뜨겁고 무거운 바람이 부는 또 다른 세계였다.

터키의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난 베리 사카로프(1957년~)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록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관되게 록 음악을 해왔지만 속도감과 격렬함을 표출하기보다는 느리고도 함축적인 강렬함을 추구해왔다. 그는 쟝르를 달리하는 꽤 다양한 가수와 노래했으며 자신의 음악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넣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몬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일종의 정형성을 지닌 락 발라드라기보다는 엑조틱한 아트락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몇해 전의 어느 날 지구 저편으로부터 내게로 불어온 바람은 시간을 거슬러 지금 다시, 나를 지나가고 있다. 마음 같은 바람, 마음 같은 노래 ㅡ slow hot wind가 묵직하니 마음을 뚫고 지나갈 때 바로 여기를 가장 낯선 이국이라 여기며.

 

כנראה שזה ככה
בחלומות.
카니레 쉐제 카하 바할로못

아마도 그건 꿈속이었을 거야
(너가 내게 온 것도 멀리 떠난 것도)

 

몬순은 지역에 따라 바람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불어오는 계절풍을 뜻하기도 하고 우기를 의미하기도 하며 아랍어 mausim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그가 몬순을 노래한 이스라엘은 여러 기후가 섞여 있지만 몬순이 아닌 지중해성 기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내게 있어 몬순은 오직 베리 사카로프의 땅일 뿐이다, 결국 꿈에 불과했던, 또는 그 자체였던.

 

 

/2017. 7. 15.

 

 


ברי סחרוף / מונסון

 

 

+
이상 원문의 첫단어는 ‘노래’가 아니라 ‘글자’인데 변용한 것이다.

travelling song, 그리고 flora

“오미 와이즈”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버트 잰쉬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했었다.
대단한 노래 솜씨를 지닌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pentangle” 하면 나는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목소리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travelling song”은 라이브가 10배쯤 더 멋진 것 같다.
장미빛 뺨과 루비 같은 입술을 지녔다던 플로라,
질투와 배신감으로 플로라의 애인을 단검으로 죽이고
살인죄로 법정에 선 이로서도 그의 음성은 꽤 인상적이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꽃처럼 어여쁜 꽃순이…”의 영탄뿐인 화자에 비해
플로라를 짝사랑했던 심히 무모했던 인생의 목소리로도.
하지만 더 어리석고 무모한 인생은 travelling song의 주인공처럼
꿈꾸던 집(또는 ‘제일’하우스)을 향해 달리지 못하고
플로라의 애인이 아닌 플로라를 죽인다.

i don’t mind the drizzling rain
inside it is warm and dry……
그 느낌 잃어버릴까 점점이 잊혀져갈까 두려워하며. /srs.

 

srs #3. querência

벌써 너닷새째 골골골이다. 콧물로 해서 코밑은 헐었고 기침은 시작하면 잘 멈추지 않는다. 잠을 잘못자서인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최근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턱이 아파서 입도 잘 못 벌리겠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하루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vitor ramil 의 노래로 알게 되었던 께렌시아, 얼마 전 어느 정치인께서 고상하게도 께렌시아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관해 여지를 남겼다. 입에 담지도 못할 낯뜨거운 소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보니 일견 멋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런 느낌은 들지가 않았다. 그녀라고 께렌시아에 대해 이야기 못할 일은 없지만 어느 줄에 설지 아니면 발을 뺄지를 가지고 갖다붙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정치인은 투우였을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투우사의 잘 벼려진 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까. 아니면 어쩌다 적이 되어버린 다른 소의 뿔에 그렇게 상처를 입었을까……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지 어떨지에 관한 생각이었다면 세상이 께렌시아로 넘쳐나거나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이었다. 스페인어에서 께렌시아의 어원이라는 ‘querer’에 ‘to desire’란 의미가 있다는데 행여 그거라면 모를까. 그게 힐링의 좀 유식한 척 고상한 척 갖다붙인 이름쯤이라면 또 모를까. ‘께렌시아’는 마뚜 그로쑤에 있는 지명이며, 투우가 안정과 평안을 느끼는 투우장 속의 특정한 장소라는 의미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장소를 상징하기도 한다(헤밍웨이).

하밀의 께렌시아는 조앙 다 꾸냐 바르가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피할 곳 없는 매일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querência / vitor ramil.

봄길, 그리고 엘 꼬세체로

엘 꼬세체로는 라몬 아얄라가 쓴 옛 노래다. 소사를 포함한 가수들이 조금 옛스런 스타일로 노래했으나 아르헨티나 출신의 차로 보가린과 디에고 뻬레스가 짝을 이룬 또놀렉은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곡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목소리에서 오는 뭔지 모를 헤픈 느낌에 아련한 분위기의 피아노 소리는 몇해 전 어느 한때 약간의 중독성을 띠고 내게로 왔다. 아래의 동영상은 또놀렉의 라이브보다 이들 노래의 미묘한 분위기를 더 잘 전해주는 것 같다 ㅡ 조금 위태로운 방식으로. 노래 속의 엘 꼬세체로는 목화를 수확하는 이인 듯 싶으나……

 

모란도 시들어가는
한창의 봄날 연등길 따라
멀찌감치 엉덩이 드러낸 처자
아직은 깨닫지 못할 세월인양
걸음 바쁘다
눈도 따라가지 못할 그 길
이제는 아득한 풍경
느릿하니 노 저으며
바닥없는 배를 타고
나는,

 

 

/2017. 4. 27.

 

 


el cosechero / tonolec

 

 

가릭 (이고르) 슈카체프

고란 브레고비치 때문이었다.
나이값 못하는 건달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요상하게 치장한 채 난장판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렇다고 펑크록을 하는 노장들도 아니고
나를 데려가세요 ㅡ “울릉도 트위스트”를 표절한 듯한(?)
한물간 스타일의 노래에 이토록 떠들썩하게 열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우습지도 않았다.
하지만 “뻔하고 저질스런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이 얄궂고 싼티나는 모습 속에 이상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어
이런저런 노랠 찾아 들었다.
이름부터가 암호같은 러시아어에 막혔지만 이들의 노래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노래는 참 각양각색이었다.
이상하게 쥐어짜는 목소리는 밥 딜런의 때로 거슬리는 비음을 연상케도 했고
집시풍에서 트위스트, 딕시랜드와 록 음악을 제멋대로 오간다.
“10,000km”도 거기 있었고 절망과 그리움과 후련함이 함께 있었다.

(이 노래는 대략……
호랑이, 아니 할머니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인지
할머니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할머니 집엘 가면
럼주를 마시며 즐겁게 논다는 가사로 되어 있다.)

미스터.리 케이스의 기사회생(?)을 자축하며.ㅎㅎ

 

/2017. 4. 18.

 

 

 

‘도자기’ 타령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에요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이들이 ‘도라지 타령’을 라이브로 노래한 것은 1971년 3월 18일이었다.

 

+
산촌여정, 이상.

 

Willow Pattern
(by Robin Williamson)

The sun in the pale silence
Through the soft yellow mist
A gentle sighing
My love lies alone in guarded palace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Drifting in moonlight
I wait for soft step I know through swaying grasses
The bird will sing so sweet
The cage is broken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My skirt is long and the pink flowers tall
Oh how I love you, love you best of all
How we shall dance and sing of the day
You’re so much stronger than twice what you say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Under the plum blossoms lingering snow
Come with me love before we must go
Over the water to our secret way
Tomorrow will be our sweet wedding day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er father the Emperor has denied their right to marry
Hoi-ya-nah!
The lovers seek to escape by their secret way over the willow bridge
Hoi-yo, hoi-yo?
A spy has betrayed them, they are pursued by the palace guard
Hoi-ya!
Before their cruel spears can pierce their innocent fles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sky
Higher and higher, ever so hig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blue
Never they’ll sever a love that is true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willow pattern

 

'도자기' 타령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에요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이들이 ‘도라지 타령’을 라이브로 노래한 것은 1971년 3월 18일이었다.
 
+
산촌여정, 이상.
 
 

/willow pattern
 

포도아에서 파서를 그리워 함.

화이트 앨범이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68년의 어느 겨울 날 ㅡ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잠시 포르투갈에 들러 리스보아에 있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카를로스 아리 도스 산토스, 나탈리아 코레이아 등의 시인들과 만나 시편들을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가운데는 그 무렵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도 있었는데 saudades do brasil em portugal이 그것이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쓴 이 곡은 자신이 직접 불렀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도 노래했다. 이때의 녹음이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에도 이 노래는 포르투갈의 파두 가수들에 의해 널리 불리어지고 있고 그것은 파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칫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이 곡이 대륙을 넘나들며 이렇게 오래도록 불리어지는 것은 파두를 노래하게 하는 포르투갈/브라질의 독특한 정서 ‘saudade'(우리에게는 ‘그리움’이 있다)가 곡조 속에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치아 게레이루의 노래와 연주도 멋지지만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15년전 쯤 처음 들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조금 허술하지만 쓸쓸하고 품위있는 목소리를 그린다. 한때 그들을 지배했던 포도아를 방문한 파서의 시인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는지 어찌 알겠냐만 영국을 방문한 미국 시인의 느낌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으리라 싶다. 그리고 이 곡에 대한 나의 느낌은 파서도 포도아도 아닌 객지에서 또 다른 객지를 그리는 이의 심정 같은 것이다. 도착하지 못한 브라질의 꿈이었고 잠시 머물렀던 포르투갈이었음에 속한 곳 없는 내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돌아갈 수 없음에 관한 것이도 하고.

 
 

saudade라 했던가
쏟아지는 그리움이라 했던가
잊혀진 땅
있지도 않은 세상
만나기 어려운 서로간의 이역인데
무엇 하나 이어진 것 없이
홀로 또 다른 역 그렸네

 
 

/kátia guerreiro

 

+
1968년 12월 19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