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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ers, 또는 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불 꺼진 다리미라 쓸 곳이 전혀 없어
가만히 피릿대로 꺼진 재를 헤쳐 보네
/금오신화 이생규장전, 김시습

 

마이크 올드필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긴 듯한 튜뷸러 벨즈의 어떤 부분에 빠져들었고, 초기의 세 앨범에 대해서도 비슷하니 그랬다. 이후의 몇몇 소품들도 나름 괜찮았지만 더이상의 새로움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의 음악적 여정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도전으로 시작했으나 그를 발탁한 버진의 리처드 브랜슨과는 달리 예상된 항로를 벗어나지 않는 패턴으로 고착되어버린 듯한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guitars 앨범을 들었을 때도 꽤 실망스러웠고 피상적인 감상으로 흘러가는 듯한 embers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이 아주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 싸구려 같은 느낌에서조차도 나름의 매력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일렉트릭 기타가 신세사이저처럼 들리는, 그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인트로를 생각나게 하는 이 라이브가 그렇다. ember는 장작이나 숯이 타다 남은 것을 의미하는데 ‘잉걸불’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고 잠시 활활 타올랐으나 이후 길고 밋밋하게 사라져가는 ‘잔불’ 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노래의 느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또는 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embers, mike oldfield

 

(필요없는) 번역

가끔 “지금 이 기분”을 대신할만한 노랠 생각하는데 실없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오늘도 숱한 후보들이 있었으나 모두 사라졌고 뜨라두지르-씨 traduzir-se가 귀에 들어왔다. 이것이었다. 이 노래의 가사가 페헤이라 굴라르의 시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복잡하게 생겨먹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굴라르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으나 번역 자막이 없었던 까닭에 그에 관해서도 얼굴과 이름 정도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참으로 극적으로 굴라르에 관한 논문을 찾게 되었고 거기에 ‘번역’이 있었다. 번역할 수 없는 오늘 이 마음에 유일한 위안의 순간이 있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굴라르의 구체시에 관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번역>으로 충분하였다. 뜨라두지르-씨, 도무지 번역할 수 없는 괴로움에 일조하기 위하여.

 

나의 일부는
모든 사람이고
다른 일부는 그 누구도 아니다
끝없는 심연

나의 일부는
군중이고
다른 부분은 낯설음과
고독

나의 일부는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다른 일부는 미쳐간다……(후략)
/번역, 페헤이라 굴라르, 이승덕 역.

( 2016년 12월 ㅡ 굴라르는 내가 그의 ‘번역’을 읽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raimundo fagner

 

리듬 본

케일과 옛 친구들 ㅡ 동료 연주자들의 자유롭고도 멋진 한 순간을 잠깐 돌아볼 수 있는 곡이다. 기타 연주 하는 부분을 보면 다른 연주자들의 솔로도 꽤 멋지고 부담없이 편안한 분위기는 보는 이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rythmn bone>은 2003년 그의 고향 털사(오클라호마)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으로 언젠가는 이 곡을 포함한 일련의 세션들이 앨범으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리듬 본(rythmn bones)은 본래 장단을 맞추는데 사용되는 쌍으로 이루어진 악기인데, 이 노래의 제목이 단수인 것으로 봐서 ‘리듬을 타는 사람’, ‘리듬을 타고난 사람’ 같은 의미가 아닐까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음악도 삶 자체도 그랬듯 그는 떠나는 것도 참 단출했다.

 

/j.j. c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