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inagadadavida
la petite fille de la mer
어디메,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매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박용래
아마도 내가 열일곱, 열여덟 때였을 것이다.
늦은 밤 라디오에서 해상 일기예보를 전할 때 이 곡이 나왔다.
“이즈하라, 소나기 / 눈.”
나는 방에 앉은 채 어딘지 모를 먼 바다를 떠도는 것 같았고
이국의 낯선 지명이 겨울 바다 너머로 따스하게 들렸다.
조그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내 가슴을 적시던
물방울 같은 일렉트릭 피아노의 느낌을 잊은 적은 없었다.
결코 알지 못한 바다의 작은 소녀를.
+이 곡은 (좀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stranger than fiction에도 나왔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경우처럼 상당히 특이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2015. 10. 16. 1:05
peace of……
내게 워터보이즈란 재미없는 이름을 알게 해준 첫번째 노래였다.
인트로는 조금 식상한 느낌이었지만
디자이어 앨범을 연상케 하는 집시풍의 바이올린에
마이크 스콧이 길게 길게 이어가며 노래하는 섬의 이름은
알지 못할 섬의 역사와 그 속에 얽혀있을 숱한 사연인양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여운을 내게 남겼다.
내 마음에 무엇이 맺혀 풍파를 잠들게 하고 싶은 것인지
가끔은 아이오나를 내 이름처럼 기도처럼
닿지 못하거나 풀리지 않는 마음의 한 조각처럼 여기며
이 노랠 듣곤 했다.
/peace of iona, waterboys
데들리 시리어스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 처음 봤을 적의 답답한 느낌 때문인지 그 영화를 다시 보고픈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그 답답함이 무지무지 생각이 나서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나 자신 시리어스 맨의 상태가 되었는가 싶었다.
스탠리 엘린의 단편에 나오는 ‘애플비’처럼 ‘질서바른 세계’를 사랑하는 평범한 물리학 교수인 래리 고프닉에게 연이은 시련이 닥친다. 테뉴어 트랙 심사를 앞두고 음해의 투서가 날아오고, 한국인 학부모는 학점 매수를 시도하고, 백수인 동생 아써는 도박과 여타의 범죄들로 골치를 썩인다. 아들은 대마초 피우기에 여념이 없고 딸은 코 수술을 원하는데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아내가 그도 잘 아는 이와 살기 위해 이혼을 요구하며 고프닉을 모텔로 쫓아내는 대목에서였다. 레코드 회사에서는 돈을 독촉하는 연락이 쉴새없이 오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상담하고 싶은데 랍비를 만나기는 너무 어렵고, 그 와중에 안테나 고치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이웃 여인을 발견하고서는……
그다지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련을 당하는 래리 고프닉의 피곤한 나날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일 때 갑작스레 토네이도가 불어닥치고 검진을 했던 의사로부터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을 할 뿐, 하지만 알 수는 없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또는 살아 가거나.
영화 속에는 세 사람의 랍비가 등장하는데 주차장의 비유(?)를 설파하던 젊은 랍비(상좌스님)와 어떤 치과 환자의 이 안쪽에 새겨진 글자들의 비밀에 관해 들려주던 랍비 나크너(주지스님), 그리고 랍비 마르샥(조실스님)의 제퍼슨 에어플레인 이야기는 사고의 깊이와 폭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 흥미로웠다.
그리고 생각은 단출한 주석을 좋아했다는 랍비 라쉬의 경구를 인용한 영화의 첫 화면으로 돌아간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라.”(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너무도 지당한 말씀인데 그 단순함을 받아들이기에 영화를 보는 이는 그 어떤 해결의 능력도 없으면서 실없이 시리어스하기만 했다. ‘멘타쿨루스’라는 이름을 지닌 아써의 복잡한 노트처럼.
“믿었던 진실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네 안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까?”
이루어진 적 없는 그의 욕망이 담긴 꿈에서, 그리고 래리 고프닉이 결국 만나보지 못한 랍비 마르샥이 성인식을 치룬 그의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노래가 어떤 이의 허공을 삐라처럼 붉게 흩날렸다.
When the truth is found to be lies
And all the hope within you dies
Then what?
Grace Slick, Marty Balin, Paul Kantner Jorma(Kaukonen)
These are the members of Airplane!
/Rabbi Marshak
/Rabbi Marshak Scene.
/Mrs. Samsky Scene에 나른하게 깔렸던.
subconscious-lee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가 궁금해하는 기억 속의 많은 것들을 지난 수십년간 pc통신/인터넷/모바일폰을 통해 찾아내었다. 무척 반가운 것들도 꽤 있었지만 이들의 복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은 여기 합당치 않겠지만, 알지 못함과 찾을 수 없음이 때로는 더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전 오래 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대목으로, 쓰레기더미가 쌓인 바람 부는 섬(?) 같은 곳에서 주인공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휘날리며 앉아 있던 모습이었다.(단지 내 기억일 뿐, 실제로 이런 장면이 있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영화 속의 애니메이션은 그만큼 극단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어딘지 <더 월>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유치함이 뒤섞인 어린이용 모험영화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무척 좋았고 무엇인가 멋진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이 오래 전에 봤던 것이라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렵사리 찾아내어 오늘 그 영화에 관해 ‘읽은’ 바로는 알랭 들롱이 애니메이션 작가로 나왔고 마치 에셔의 그림에서처럼 만화의 세계를 들락거리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줄거리로 하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패시지>였다.
그리고 subconscious-lee+, 나는 최근에 이 영화가 갑작스레 생각난데는 나 안의 어떤 숨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retrospection(회고)’인지 ‘tautology(유어반복)’인지 아니면 조금 서글픈 이유이거나 합리화일지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고초를 겪을 때 ㅡ.
le passage, the passage, 1986 / alain delong
+
lee konitz
채워지지 않는 허기 : 고완형의 이빨
고완 형은 날마다 술을 먹는다.
고완 형의 이빨은 동훈 형보다도 더 나쁘다.
아직도 창창한 청춘일 뿐이었는데
그의 앞니가 몇이나 남아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무엇이 험한 그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는지
부끄러움보다 더한 무엇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었는지
망가진 모습 그대로 썬글라스를 끼고
술마시며 술주정처럼 노래를 한다.
무엇이 포크 음악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고
어떤 것이 펑크인지 애써 나눌 필요도 없다.
공장+의 담벼락에서 첫 키스를 했던 곳,
불길 속에 도끼날을 제련하던 곳,
나의 살던 고향인양 오래된 꿈인양
고완 형이 흥청망청 노래하던 맥콜의 지저분한 옛 동네에
귀 기울인다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먼 산울림, 옛 서부영화 속의 이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게 전혀 다른 모습의 셰인이 다가왔다. 클래쉬 공연장에서 귀를 물어뜯겨 데뷔도 하기 전에 매스컴을 탔던 사람(가해자는 여성 펑크락 그룹의 베이시스트였다~), 노래보다 그 사람의 이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 하지만 엉망진창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도 당당하게 노래하던 사람……
오죽하면 그가 이 전체를 새로 했다는 것이 뉴스로 나왔고 그의 이를 소재로 한 노래까지 있다. 밥 딜런은 앞니 몇개 빠진 사람이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all along the watch tower를 멋지게 불렀지만 그의 이는 멀쩡하였고 멀쩡한 듯 노래하지만 어딘가 그런 느낌이 있는 셰인 맥고완은 그 반대다.
왜 그렇게까지 엉망이 되었고 그토록 방치했었는지에 관해선 잘 모른다. 다만 그가 굳이 그걸 숨기려고도 고치려고도 애쓰지 않았음에서 괴롭지만 묘한 호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무성의하게 툭툭 내뱉는 듯한 창법에 포크와 펑크라는 얼핏 매우 이질적인 두 쟝르를 오가는 음악도 특이하다. 하지만 우리가 펑크 음악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섹스 피스톨즈가 그 출발점에서부터 일정 부분 패션과 연계되었듯) 어쩌면 ‘이미지’로 이루어진 것이고 현실 속의 펑크 음악이란 바로 셰인 맥고완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건달이거나 구제불능의 ‘꼴통’처럼 보이기도 하고 세기말 예술가의 이미지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술주정뱅이처럼, 아니 술주정뱅이의 모습 그대로 아무렇게나 노래하지만 나는 그의 노래와 노래하는 모습에서 어떤 진정성을 느끼곤 한다. dirty old town이 마음으로부터 나를 울렸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셰인 맥고완의 이를 바라보는 느낌은 동훈형의 이를 바라보던 내 느낌과 좀 비슷하다. 누군가의 상처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멍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한다. pogues ㅡ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生을 향한 ‘엄청난 허기’++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셰인 맥고완과 함께 술을’++, 그의 술주정 같은 노래는 마음으로부터 떠나는 법이 없을 것이다. 나의 살던 옛 동네가 그다지 더티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
글공장이거나 이공장, 동훈형의 이빨.
++
셰인 맥고완에 관한 다큐멘터리.
+++
클래쉬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서 조 스트러머와 같이 노래하기도 했고, 짧은 한때는 조 스트러머 자신이 셰인 맥고완을 대신하여 포그스의 보컬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6. 1. 15.
dirty old town / pogues
i met my love by the gas works wall
dreamed a dream by the old canal
kissed a girl by the factory wall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clouds a drifting across the moon
cats a prowling on their beat
spring’s a girl in the street at night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heard a siren from the docks
saw a train set the night on fire
smelled the spring on the smoky wind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i’m going to make me a good sharp axe
shining steel tempered in the fire
will chop you down like an old dead tree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i met my love by the gas works wall
dreamed a dream by the old canal
kissed a girl by the factory wall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dirty old town
yokoversesara
Yoko vs. Sara
존 레논이나 밥 딜런에 대해 알고 싶은 만큼은 알고 있다. 그들이 언제 무엇을 했고 어떤 사생활을 가졌고 어떤 미발표곡이 있고…… 처럼 깨알같은 지식이 아니라 어떤 느낌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에겐 뮤즈가 되어준 아내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름이 들어간, 내가 오래도록 좋아해온 두 노래가 있어 개인적인 느낌으로 비교를 해봤다.
Oh Yoko!는 1971년 9월에 발매된 <imagine>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Sara는 1976년 1월에 나온 <Desire>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두 앨범 모두 자신의 얼굴을 커버로 하고 있는데 존 레논의 이미지는 몽상적이고 밥 딜런은 집시(‘래글태글 집시’는 아니지만 그 노래 가사처럼 영주의 부인이 달아나는 사건이 날 것 같기는 하다)처럼 보인다. <imagine>의 뒷면엔 앨범 타이틀과 연결되는 “imagine the clouds dripping dig a hole in your garden to put them in”이라는 오노 요코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Desire>의 뒷면엔 꽤 많은 사진들이 있는데 대개는 딜런과 뮤지션들의 것이고 The Empress라고 적힌 타로 카드(‘fertility’를 상징한다고 한다)가 Sara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새라는 이국적이면서도 비장하고 오 요코는 화사한 애조를 띠고 있는데 두 곡 모두 그들이 직접 연주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열기 가득한 폭풍의 고요한 정점인지(A messenger sent me in a tropical storm) 딜런의 하모니카는 바이올린과 더불어 애조띤 ㅡ 그러나 어딘지 공허한 ㅡ 정열을 보여주는 반면 존 레논의 하모니카는 인적 끊어진 거리의 풍경처럼 쓸쓸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한다고 해도 나는 그녀와 함께 하겠노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연주에 있어 딜런에서는 스칼렛 리베라((딜런 자신이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의 바이올린이 빛을 발했다면 존 레논에겐 니키 홉킨스(She’s a rainbow의 모짜르트 피아노!)가 들려주는 섬세한 피아노의 선율이 있었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새라의 경우 ‘radiant jewel, mystical wife’, ‘glamorous nymph with an arrow and bow’ 같은 식의 찬양이나 ‘Loving you is the one thing i’ll never regret’, ‘You must forgive me my unworthiness’ 등등 연애시절에나 가능할 것 같은 과장된 표현들이 눈에 띄는 반면, oh yoko의 가사는 매우 단출한 방식으로 환상(In the middle of cloud/dream I call your name)에서 현실을 오가는데 ‘In the middle of shave i call your name’ 같은 대목에서는 ‘생활밀착형(!)’의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딜런의 가사는 떠나려는 새라를 붙들려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레논은 그 점에서 매우 편안하고 여유롭다. 딜런의 정열적이고도 비장한 찬양이 마지막 애원인지 한 발을 빼려는 소극적인 액션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레논의 경우엔 그의 다른 노래처럼 ‘Grow old me’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Oh Yoko는 어딘지 미숙하고 몹시 여린 사춘기적인 감성을 느끼게 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반면, Sara는 절절함이 넘쳐나지만 그의 하소연이 설령 거짓이래도 넘어갈만큼 능란하고 노회하다.
<롤링 썬더 리뷰> 라이브에서 딜런은 분인지 치약인지 광대처럼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나와서 새라를 찾았고(이유야 어쨌든 심금을 울렸다), 존 레논은 그의 미들 네임을 ‘오노’로 바꿨다. <mind game>의 커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노 요코는 그의 삶에 있어 ‘사건의 지평선’이었다. 하지만 새라를 노래한 얼마 뒤 딜런은 새라 로운즈, 새라 딜런이었던 셜리 말린 노진스키와 헤어졌고(1977년) 오 요코를 노래한 10년 뒤 존 레논은 세상을 떠났다.(1980년)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만 내 느낌에 요코가 거기에 더 가까운 듯 싶고(새라는 라이브에서 좀 더 그렇게 들린다), 노래로는 새라를 더 즐겨 듣는다. 일편단심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지, 요코보다는 새라가 좀 더 나이를 먹은 이의 노래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라가 더 편안하고 멋지게 들린다. 그럼에도 어쩌다 하모니카 소리를 생각하면 그 아련한 곡조가 여전히 가슴에 닿는다. 등돌린 세상에서 My love will turn you on이라던.
/2016. 9. 1.
/oh! yoko
/Sara
+우측 상단 플레이 버튼 누르면 sara를 들을 수 있다.
r. k. b. ◎

얼마 전에 처음으로 본 사진 ㅡ 내게 청춘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심하지만 주민등록증상의) 청춘 시절에 나를 매혹시켰던 어떤 이의 어릴 적 사진이다. 침팬지와 나란히 앉아서 즐거워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음악 보다는 사람 그 자체, 어이없이 무너져버린 정신과 삶이 그때는 어찌 그리도 마음을 끌었는지 모르겠다.
음악을 떠난 그는 칩거하며 그림을 그리고 간단한 가구들을 직접 만들고 학창시절의 전공 분야로 돌아간듯 (책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미술사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썼다고 했다. 스스로 작곡하고 노래한 옛 음악들을 그저 시끄럽다고 여겼으며, 지나가버린 시간들과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70년대 초, 대중음악계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50마일(80km 가량)을 걸어서 어머니의 집에 당도했고, 이후 그는 과거가 없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떠난 것이다.
엊그제 우연히 본 사진, 이 환한 표정의 아이 얼굴을 보니 새삼 마음이 좀 쓰렸다. 그가 머리숱 없는 뚱뚱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헐렁한 옷을 입고 비닐 봉지를 든 채 거리를 거닐던 모습을 처음 봤었던 1998년 무렵처럼, 또는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볼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의 나머지의 삶이 자신에겐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노인 부부의 변사를 황혼의 멋진 선택으로 해석해낸 토니 스캘조나 그것을 다시 시로 만들어낸 이창기처럼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각색해낼 수 없어 뭔가 빚을 진듯한 느낌이지만.
뉴턴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업적을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이 아닌 (남들이 그만큼 알아주지 않는) 성경 연구로 믿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경우에도 자신이 진실로 원하던 것, 뒤늦게 알게 된 자신의 삶의 의미에 한껏 몰입하며 살았다고만 믿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한 상상이 있다면 그를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쓰고 싶다. 여기 있었노라고 노래하기에 ‘너무 먼 별’이었던 그의 삶을 관통하는 어떤 빛에 관하여.

sefl portrait, 196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