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처럼 늦은 가을이었지 싶다. 20년쯤 전, 어느 날의 우울을 나는 기억한다. 심하게 가라앉았던 그날의 심정이 어째서인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생각도 나질 않는다.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이었을 것이고, 다르지 않은 매일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던 이상의 말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절망 말이다.
마음 챙기는데 언제나 열심이었던 그녀는 내 가라앉은 심사를 위로하고자 작은 선물을 보낸다고 했는데 Read More
어떤 사연 더 붙여야 할지요…
제목 잊어버린 옛노래입니다
곡조 생각나지만 떠오르지 않는 노랫말입니다
아무렇게나 흥얼거려도 괜찮을까요
가사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계명 알지 못한들 또 어쩌겠나요
우습지도 않은 음정을 길게도 뽑아보았습니다
아물거리는 기억의 파도 너머
갈 길 없는 위태한 섬이 떠오릅니다
고이 간직한 사연이거나 마음밖에 있거나
잊혀지고 묻혀도 못다부른 그 대목이
두고두고 떠오릅니다
/2007. 10. 29. k에게.
때는 1957년, 제목도 mr. lee였다.
i shot mr. lee라니 bobbettes의 터프한 노래를 장난삼아 자랑삼아 테마송처럼 한때 사용하였다.
때는 1999년, 또는 2000년……
i met my sweetie
his name is mr. lee
he’s the handsomest sweetie
that you ever did see Read More
(보내지 않은 글)
quetzalcoatl입니다.
께짤꼬아뜰. 케찰코아틀.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어요.
께짤은 깃털, 꼬아뜰은 뱀.
그러니까 깃털달린 뱀, 날개달린 뱀이랍니다.
아주 먼 훗날, 희미하게나마 나를 기억한다면
그 단어를 생각하세요.
반은 인간 절반은 물고기였다던 중동의 오안네스나
잉카의 콘티키 비라코차 같은 이름이에요.
날개나 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희생을 갈망하던 피의 전설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전해주고 사라져버린,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했지만
실은 눈물로 떠나가버린
형상 없는 마음의 이름입니다.
/2019. 11. 12.
그녀가 붕대 감은 팔로 넘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마치 자기 몸이 당하는 고통처럼 느껴졌었다./1984년
스무살 즈음에 쥴리아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1984년>에서 ‘청년반성동맹’의 상징인 진홍색 허리띠를 두른 채 텔레스크린 앞에서 윈스턴 스미스에 어떤 쪽지를 전해준 젊은 여자의 이름이다. 거기 적힌 짧은 문장을 본 순간은 그의 운명을 바꾸었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것이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도 틀림없이 그랬다. 마치 내가 그 쪽지를 받기나 했던 것처럼.
거기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1984년 Read More
(21년만에 다시, “donovan, 그리고 행복“에 덧붙여.)
맛에 대해 거의 무지한 편이다. 그저 짠것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미료 많이 들어간 음식 먹으면 구토증세가 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혐오식품류(?)는 전혀 안먹는다는 것 정도.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맛에 관해서 무뎌서 가리지 않고 잘 마신다. 커피믹스, 아메리카노, 연하게 탄 인스턴트 블랙커피, 베트남 커피, 게다가 상당히 달고 느끼한 베트남 커피믹스까지도 잘 마신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라떼다. Read More
precious memories, how they linger
how they ever flood my soul
in the stillness of the midnight
precious, sacred scenes unfold
/precious memories, j.j. cale.
케일의 정규 앨범들은 거의 cd로만 가지고 있고 그 대부분은 20년쯤 전에 구입한 것들이다. #8 앨범은 국내판을 구입했는데 불행히도 reality가 빠져 있다. 하지만 파일들이 있으니 굳이 그것을 아쉬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유일하게 lp로 갖고 있는 앨범 하나가 okie다. Read More
오늘은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를 꺼냈다가 잭 티가든에 관한 글을 끄적였습니다.
내가 받았을 때 이미 절판되었던 책이었기에 아마도 그것은 중고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저 십수년 전 아픈 마음과 함께 이 책이 왔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림이 딱히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는지
와다 마코토가 그린 표지의 듀크 엘링턴을 나는 자세히 본 적이 없었습니다.
책을 키보드 옆에 둔 채 검색을 하며 책 표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낡아서 생긴 상처이거니 했던 왼편의 하얀 부분이
모든 표지 사진에 똑같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보스레 나는 이 책들 제본에 문제가 있었나 생각을 했더랬지요.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엘링턴의 피아노 위, 재떨이에 얹혀 있는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였습니다. 잠깐 속으로 한숨이 흘렀습니다.
한창 부지런히 담배 피우던 때, 내뿜던 연기 같은 한숨이었습니다.
낡은 흠결처럼 새겨진 기억,
있어도 아니되고 흩어져도 안될 것 같은 하얀 그 연기
빛깔만 달리한 채 아직 내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2019. 8. 4.
: 노래와 모종 그리고 몇 줄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박용래
처음엔 여덟 줄을 읽었었지요. 내가 보내준 걸 읽고 누이는 펑펑 울었다고 했지요. 하지만 그때는 꼰스뚜시띠온 광장의 모퉁이에서 헤어졌다던 델리아에 대한 보르헤스의 회상처럼 이별에 대해서는 정녕 알지 못했었지요. 마아가렛이 그 꽃의 다른 이름인줄도 뒤늦게 알았었지요. 그리고 브라질의 어느 타악기 연주자가 만든 마르가리다의 향기란 노래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신나게 불렀고 어떤 이는 느리고 처연하게 불렀습니다. 그 모든 곡조가 마음의 통로를 따라 흐릅니다. 몇해 전엔가 시골 마당에 구절초를 심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들렀던 바닷거 어느 언덕에서도 보았고 창창한 여름의 지리산 자락에서도 본 적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무수히 피다 만 바로 그 꽃입니다. 이번엔 감국과 함께 좁은잎 구절초 모종을 함께 구했습니다. 내게 노래도 있고 시도 있고 이제 가을이 오는 길목+이면 꽃도 보고 향기도 맡을 수 있겠지요. 모종의 그리움, 결국 아무 것도 없고 무수히 피다 만 꽃, 한송이만 남았습니다. 옮기지 못한 몇 줄만 남았습니다. 내 마음 베끼지 못한 몇 줄만요.
+박용래
<라듸오 1973>을 썼던 1년 혹은 2년쯤 뒤에 나는 <라듸오 1974>도 썼다. 이전의 라듸오보다 좋은 제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니 많은 공산품의 경우처럼 그냥 해만 바꿔 출시되는 엇비슷하거나 그만 못한 물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완제품이 되기엔 부족한 시제품 같은 것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그것을 다른 사적인 공간에 올렸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다른 이의 사이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 좀 고쳐서 출하를 해야지… 하고선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내 라듸오를 둔 사이트의 주인과 트러블이 생겼다. 내가 제품을 뒀던 곳도 닫혀버렸다. 내 공간처럼 여기고 편히 생각했으나 돌아서면 남이라는 것, 잠시 머리를 스쳤다. 마음이 상해서 제품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링크 주소를 보내왔다. 다만 공개된 공간이 아니었을 뿐, 그곳에 내 라듸오는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트러블은 진정이 되었고 그곳에 내 시제품 라듸오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다시 옮겨오지도 않았다 ㅡ 어떤 믿음의 징표처럼. 그 상태로 꽤 시간이 흘렀고 결국 현실에서의 연은 끊어지고 말았다. 다시 라듸오의 링크를 찾아간 적이 없는 나는 결국 1974년의 라듸오를 잃어버렸고 그 제품의 모양새며 성능에 대해서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다시 라듸오를 만든다면 아마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에 더 모자란 성능의 조악한 제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기에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라듸오가 수신하던 전파는 여전히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형태의 수신기가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