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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 te enfeitar : morena do mar

바닷가에 사는 어느 아가씨를 위해 물고기 몇마리를 잡고 예쁘장한 조개껍질을 주워 가져온 어떤 이의 이야기, 내가 아는 몇몇 가수들이 이 노랠 나름의 방식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작곡자를 포함한 그 누구의 노래도 나라 리오 만큼 마음에 닿지는 않았습니다. 보싸노바의 뮤즈라고들 하지만 사실 음악적으로 그녀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몇몇 노래만은 절로 마음이 이끌립니다. 특히나 그녀가 모레나를 노래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프게까지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곡조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가사가 그렇고 모레나 두 마르를 노래하는 분위기도 그렇지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듯한 한밤중에 한 사람 앞에 두고 고적하니 노래하는 느낌입니다.

모레나 두 마르가 자신이 노래한 최고의 곡 가운데 하나라고 그녀가 서두에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 자신이 가사에 나오는 ‘예만자 여신의 은과 금’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석을 그렇게 빨리 잃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노래는 한박자 쉬고 들어가는 형식인데다 발음도 어려워 생각만큼 노래하기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몇번이고 듣고 들으며 낮은 톤으로 따라 부르곤 합니다.

 


/nara leão

 

morena
e as estrelas do mar
ai, as pratas e os ouros de iemanjá

 

포르투갈어 morena는 여자를 뜻하는 단어지만 여기서는 그냥 소녀나 아가씨가 아니라, 피부가 까무잡잡한 여자를 의미합니다. 바닷가의 새카만 아가씨.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아주 오래 전  내가 지냈던 바닷가 마을의 그녀, 박정자를 생각나게 합니다.

산언덕 하나 넘어 차도 들어가지 못하던 곳, 이름도 예쁜 무지개 마을에 살았던 아가씨……. 그 새카만 얼굴과 몹시도 야윈 몸, 촌스런 퍼머 머리에 가늘고 날카로왔던 목소리가 어제처럼 떠오릅니다. para te enfeitar(to please you), 노래에서와는 달리 바지락도 그녀가 씻어와서 삶아주곤 했지요. 그녀를 사귄 것도 사랑한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 이상하게 아프고 미안한 마음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보고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게 있어 모레나는 그 새카만 얼굴 너머 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고 그리게 합니다. here, there, and everywhere, 여기 저기 내 좁은 세상과 많지 않은 기억의 모퉁이에서 그리운 얼굴이며 마음이며 목소리를 불러오고 그런 의미에서 모레나는 내게 있어 포르투갈어의 보석 같은 ‘saudade’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이 곡은 자신의 고향이자 쌈바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바이아의 바다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도리발 까이미의 작품입니다. 내가 이 노래를 들은 것이 2001년쯤일 듯 싶은데 처음 들었을 그때나 지금이나 느낌은 하나 변함이 없고 어떤 날에 누군가 나를 위해 이 노랠 기억해준다면 틀림없이 기쁠 것입니다. 예만자 여신의 은과 금은 모레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갖고온 물고기와 조개껍질이었을까요, 아니면 바닷가의 모레나 그녀였을까요, 또 어쩌면 이름모를 어부의 마음이었을까요. 어떤 시적 영감도 아닌 어찌 못할 그리움을 불러다 주는 뮤즈, 그녀의 목소리에 낮게 키를 맞춰가며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오 모레나 두 마…….

 

 

 

 

/2017. 11. 12. 일.

 

 

 

바람의 열두 방향

그게 2000년대의 중반이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르귄의 단편집이 나온 것을 보고 곧장 구입했다. 아마도 세부 쯤 구해서 하나는 선물을 했고, 잘 펼쳐지지 않는 작은 책이 불편했던 나는 책을 잘라 링으로 묶었다.(선물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어딘가에 원본 그대로의 책이 또 하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여전히 다 읽지 못했다. 나처럼 책읽기에 서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녀의 책을 읽는데 뭔지 모를 어려움이 있다.

보르헤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고 해도 한줄 한줄 새겨 읽을 수 있었지만 르귄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다. 허사처럼 보이는 묘사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면 스스로도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멜라스에 대해 가졌던 나의 오래된 어떤 거부감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Ursula K. Le Guin, Acclaimed for Her Fantasy Fiction, Is Dead at 88 - The New York Times

 

그리고 좀 비루한 변명 같은 그 결과,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은 여기저기 구멍난 스폰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십수년에 걸쳐 피셔킹을 보았고 다른 몇몇 영화와 책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하기는 좀 곤란한) 비슷한 과정들을 경험했다.

르귄에서도 그럴지는 십여년의 시간을 보낸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그 열두 방향 가운데 하나였던 <파리의 사월>을 여전히 좋아한다. 고독한 어떤 마법사가 꿈같은 마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친구를 만들고, 애인을 만나고, 친구의 애인까지 엮어서 파리의 사월을 즐거이 거니는 이야기다. 부러운 심정으로 그 이야기를 처음 보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르귄의 단편집보다는 한참 이전이었다.

나는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슈롭셔의 젊은이를 옛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분이 대신해서 올려주는 형식으로. 그 시가 지닌 문학적 의미에 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내 마음 같았던 시간을 나는 알고 있다.

 

 

/2017. 11. 4.

길모롱이 +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길은 그다지 막히지도 않았고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나는 전부터 나름의 준비를 했었고 그 가운데 하나는 차 안에서 들을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터널로 진입하기 전에 있는 번잡한 교차로에서 정지신호에 나는 조심스레 차를 멈추었다. 어쩌다 겪게 되는 잠깐의 정적 속에 귀에 익은 감상적인 플라멩코 스타일의 기타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멋진 목소리로 포르투갈어 낭송이 시작되었다.  또낑요가 브라질의 시인이자 가수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를 만나 한껏 고양되어 있던 초기 시절의 작품이자 그들의 가장 멋진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 할 노래였다. 나는 그 내용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충분했고 그녀가 내 곁에 앉아 한 공간을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핸들에서 손을 떼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눈을 맞추며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마침내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살짝 그녀에게서 손을 빼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노래는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다 도착하였다. 그녀는 내가 손을 뺀 것을 조금 원망스러워 했다. 나로선 곡선의 도로를 한 손으로 불안하게 주행하기보다는 그녀와의 길이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었고, 그 짧은 시간에 비할 수 없는 세월을 그녀와 나누는 것을 꿈꾸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지 못했던 그 짧은 시간… 정지 신호가 다시 주행 신호로 바뀌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있다. 보르헤스의 <비밀의 기적>에서 홀라딕이 신께 간구하여 찰나를 연장하고 또 연장해가며 자신의 희곡을 집필하기 시작해서 완성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총탄이 격발되는 순간부터 그의 몸을 관통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말이다. 그 총탄은 우리들 모두가 예상하거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간을 뛰어넘어 그녀의 가슴을 관통하였고, 다시 오랜 세월을 돌아 누군가의 가슴에 박힌 채 남아 있다.  홀라딕처럼 극적이고 충족된 결말을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그런 순간이 있다면 바로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목소리가 느릿하니 흘러나오던 그때였을 것이다. 그것을 ‘소유’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고 그 어떤 영속성을 상상할 수 없음에도 나는 그렇다. 삶에는 너무 많은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은 ‘그녀’라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노래했는데 그 어떤 위태로움이 거기 있었는지 가끔 생각해본다. 이제 나는 거의 매일 그 교차로에 멈추곤 하지만 다른 쓰라림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위태로움 또한 내 곁에 없다.

 

 

/2017. 10. 17.

 

 

+
이 글의 제목을 ‘길모롱이’라 붙인 이유는 그 도로가 휘어진 오르막길인 까닭도 있지만 어릴 때 <빨강머리 앤>에서 본 그 단어를 오래도록 좋아했기 때문이다. 앙숙이었던 길버트와 앤이 졸업하는 즈음엔가 둘이 가까워지면서 끝을 맺는 장면에 붙은 작은 제목이 바로 ‘길모롱이’였다. 어렸던 나는 그들의 뒷 이야기를 알지 못했지만 어떤 느낌은 있었다.(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으나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책이어선지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모롱이’의 사전적 의미는 ‘산모퉁이의 휘어둘린 곳’을 뜻하고 모퉁이보다 범위가 좁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길모롱이’란 단어는 내 마음과 달리 사전에 따로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B

저들의 비행을 어찌 막을 것인가
지겹게도 모질게도 밤새도록 쏟아지네1)

 

A는 혈액형일 뿐이고 내 인생은 플랜 B도 만들 수 없는 형편이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 몇몇 B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왔다. 예전처럼 ‘미쳐서’ 푹 빠진 것은 아니어도 쉬엄쉬엄 긴 길을 같이 간다고나 할까. 쉽사리 그 연결이 끊어지지는 않을 나의 B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모든 것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존재할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오직 B뿐이라고 한다면 그건 억지스런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세상의 숱한 철자들 가운데 우연찮게 내 곁에 모인 B에 관하여 아주 짧은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 첫 번째 B가 있다.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내 청춘의 B는 오직 단 하나였다. 그들에게 귀 기울일 적에 세상에 그 B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여년 전 어느 여름날, 바닷가 근처 교회의 사택에 살고 있던 친구 집에서 갔다 얻어왔던 테잎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Abbey Road>의 표지 사진이 들어 있었으나 이런 저런 그들의 노래, 심지어 솔로곡까지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던 테잎이었다. 지금처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외로움의 한 부분이기도 했고 또 그 반대의 어떤 심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구했던 청춘이 평생을 갈 수는 없었으니 어느 날엔가 전혀 새로운 땅으로부터 B가 내게로 왔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에서 시작된 B에의 인연은 같은 제목의 시를 쓰게 하였고, 도서관의 천사는 내게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빙을 통해 브라질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내 삶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평화와 함께.
아꽈렐라 두 브라질 ㅡ 브라질의 몽롱한 속삭임은 결코 드러난 적이 없는 불꽃이었고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유혹이었고 나는 초록과 노랑(브라질 국기의 색깔)으로 온통 물들고 말았다.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숱한 노래와 리듬과 신의 이름들이 더불어 내게로 왔다.

그리고 결코 출입한 적 없는 도서관의 방대한 책 사이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이 B가 내게로 왔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어린 시절부터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의 원형이 바로 그의 글 속에 있었다. ‘꼰스띠뚜시온 광장의 담배 광고 간판이 바뀐데서 느낀 슬픔’2)에 진심으로 동조하면서,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에 관한 그의 짧은 글에 마음 움직이면서 B는 더욱 나를 많은 책과 이야기들로 이끌고 있었다. 어지럽고 함축적이며 상상 저 너머를 달리는 그의 세계에 생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고찰 같은 것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득한 그 느낌들로 해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곤 했고, 그의 미로 속으로 즐거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연을 지닌 B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을 채우고 (아주 조금은) 비우게도 했다. 또 다른 어떤 B가 그랬듯 이 B에 관해서라면, 내가 사랑하는 B이면서도 여전히 거의 알지 못하는 B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있기에 더욱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심히 게으르고, 안다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수록 더 생각하게 되는 B이다. 도대체 어디에 길이 있다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가르침을 가리켜 그것이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놓아버리는 것도 간직하는 것도 아니고 그 둘 다를 함께 지니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미로이면서 직선이고 절대적이다 싶다가도 금세 굽이치는 그 길을 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는 미지의 눈처럼 아주 조금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전혀 몰랐고 지금도 알지 못하는 어떤 B에 관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B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죄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변명이 가슴 속에 넘쳐나지만 나는 그 어떤 한마디도 꺼낼 수 없다. 께짤꼬아뜰이나 오아네스처럼, 콘티키 비라코차처럼 내게 많은 길과 단서를 알려주었건만 나는 어리석고 못난 모습 이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다 ㅡ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나는 무한의 페이지로 이루어진 책을 도서관에 몰래 꽂아두고 달아나버린 주인공3)처럼 그를 떠났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 결코 태울 수 없었던 신비로운 책처럼 B는 어딘가에, 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잊혀지고 지워지고 사라졌더라도 ㅡ.

모든 것을 그 색으로 칠하고 싶다던 롤링 스톤즈의 노래처럼, 예나 지금이나 나를 떠나지 않는 B 가운데 하나는 색깔이다. 어떤 시인은 그것을 가리켜 “빛을 넘어 빛에 닿는 단 하나의 빛”이라고 했다. 그 B는 모든 색깔의 원형이며 총합이기도 하며, 결함 투성이의 심신을 조금이나마 숨기고 위로해주는 것이기에 나는 두렵고도 편안하다.

색깔과 연결된 B는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여기서 B는 색깔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색이거나 검정이거나 심지어 붉은색이더라도 B는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골드러시의 시대에 프랑스제 원단에 리벳을 박아서 만든 작업용 바지의 이름이다. 열아홉 시절 나는 빛이 다 바래고 밑단이 다 터져서 너덜너덜해진 그 바지를 마치 히피라도 된 기분으로 입곤 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단정치 못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그 바지의 밑단이 깔끔하게 잘려나가고 말끔히 단이 잡혀 있었다. B는 그렇게 해서 나를 떠나버렸으나 이후에도 그것은 늘 내 곁에 있었고 적어도 한 달에 25일 이상을 나는 그 B와 함께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쯤에서 되돌아보면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B가 내 곁에 있다. 검고 굵은 손가락이 들려주는 통렬한 기타의 울림과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가 어울린 B, 금세 목욕하고 나온 초여름의 저녁 바람 같은 상큼한 리듬의 이름, 운전하는 동안 오히려 더 귀 기울이곤 했던 섬세하고도 신중한 B의 피아노 연주와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애쓰는 노회한 청춘의 읊조림 같았던 B의 노래들, 나무 수저와 도마와 투박한 일부 식기들의 기름때를 씻어낼 때 사용하는 B로 시작하는 하얀 가루의 이름까지도 떠오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색깔치고 아름답지 않은 색깔이 없고 하나의 철자가 없어도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일은 힘들어진다. 나는 다만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세상의 숱한 보물들 가운데 유독 내 곁에 머물러 있는 ‘B’에 관해 잠시 돌아 보았다. 무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주에서 단 하나의 문자만을 떠올리는 것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개껍질 하나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아이의 마음처럼4) 하나 아는 것 없지만 무구함조차도 멀어져갈 때 나는 그 빈 껍질 하나를 그리고 있었다.

 

 

B를 입고
B에 귀 기울이며
지구 저편 B로 달아났다
끝없이 갈라지는 오솔길에서 B의 책을 펼치며
그 어떤 것도 아니면서 그 모두에 속한 B를 기웃거리고
주체못할 부끄러움으로 B를 기억하며
내가 여전히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도시,
B에서.

 

 

/2012, 2013. 11. 9.

 

1) 두 줄 짜리 시의 제목은 폭격기의 이름에서 따온 <비52>다. 세 가지 ‘비’에 관한.
2) 알렙, J.L.B.
3) 모래의 책, J.L.B.
4) 아이작 뉴턴

 

 

+
B에 관해서 쓸 때 빠트린 몇 가지 가운데 하나는 수십년 이상 그 이름을 알지 못한 채 그려왔던 것이다. 왜 그런지 나는 그것의 향으로부터 형언하기 힘든 향수를 느끼곤 했다. 가슴을 아리게 하고 폐부를 찌르는 무엇인가가 그 속에 있는 듯 싶었다. 찰스 그레이 백작이 그것의 즙을 첨가해서 마신 차의 이름이 얼 그레이고 어느 짧고도 달콤했던 시절 나는 그 향기를 신호인양 메시지인양 즐겼던가 싶다.  / 2015. 4. 18.

 

 

다음 이 시간에……

<이작자 여인숙>에 썼던 마지막 글
2015. 9. 16. 13:38

(게시판 복원에 성공하여 ‘화이트룸’에 올렸던 마지막 글을 가져왔다)

 

 

이작자여인숙1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허수경

 

 

최근에 있었던 몇몇 일은 일말의 미련도 의미가 없음을 새삼 가르쳐주었습니다. 날짜는 절로 가는 것이니 앉아서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 보다는 여기서 그만 끝을 맺고 싶어졌습니다.

……왠지 ‘안락사’의 느낌이 듭니다.ㅎㅎ 安樂, 글자 그대로의 편안하고 즐거운 느낌을 상상해봅니다.

<이작자 여인숙 1999~2015. 모두의 사랑받는 이로 태어났으나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끝에 고적 속에 떠나다.>

이 홈페이지가 여기 있음을 바라보며 며칠이라도 더 번민하는 것이 편치가 않아서 얼른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천리안의 서비스 종료로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함으로 하여 오늘이 왔다는 점, 무엇보다도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직 내 탓입니다. 끝까지 이 고적한 공간을 찾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몇몇 분께 각별히 고마운 말씀 드립니다.

here till here is there, 혼자만의 어떤 다짐들은 가능한 한 끝까지 지속하려 했으나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망 좋은 방에 어떤 노래가 흐르거나 멈추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그러함이 의미있는 일이겠지요.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니면 아닌대로 그러하겠지요. 이 달을 끝으로 이작자 여인숙은 사라지고, 나는 오늘로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잊어버린다는 것은 깡그리 잃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과는 좀 다른 무엇입니다. 어떤 눈먼 이가 내게 놀라운 방식으로 가르쳐준 것입니다 . 그것은 결코 지워지거나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글에서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을 보내던 그들이 그랬듯이 여인숙의 마지막 밤에도 수돗물은 잠가주시고 가벼이 정리도 해주세요.^^ 나는 바보였고 비겁했고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 (몇 번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완성을 하지 못한 내 시 제목처럼),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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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증명

전망 좋은 방의 노래 : a theme for…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거의 십수년 동안, 내 詩로 채워져 있던 곳 ㅡ <이작자 여인숙>의 ‘전망 좋은 방’에는 늘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제목이 대단한 비밀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말한 적이 없고 다른 방식으로 노래를 알린 적도 없다.

곡의 분위기와 품격은 전망 좋은 방을 위한 최선의 음악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고 어떤 이유로 해서 나는 전망 좋은 방의 노래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이유가 사라졌기에 더 바꿀 수가 없었다. 이 노래는 말하자면… 내게 일어났던 일의 증거이고, 일어나지 않았던 일의 증명이다.

노래를 듣노라면 나는 여름밤의 창가가 생각난다. 그것은 추억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상도 아니다. 말 그대로 내게 일어났던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닌 무엇이다. 노래를 듣는 동안 나는 그 방에 있었고 그 시간에 있었다. 4분 남짓한 노래에 세월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오래된 그 노래가 흐르고 있다. 끝내 갖지 못한 세월이.

 

 

 

 

 

불가사리 이야기

그 시를 썼던 게 1999년인지 2000년인지 모르겠 습니다.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 무렵이었습니다. 현재를, 심지어 미래까지도 어찌 못할 과거로 돌리며 이별을 이야기한 것이었지요.

생각해보니 그 시는 한 줄, 세  단어 정도로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전혀 시적인 문장이 아닌 구어체의 밋밋한 서술이거나 주체하기 힘들어 뱉어낸 억지일 뿐이지만 내가 속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 나는 그………………

그것을 썼을 때 나름 기뻤습니다. 이별의 시인데도 그랬지요. 나는 긴장했고 조금 자랑스러웠고 한편으론 두렵고 떨렸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를 써서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시에 가장 직접적인 영감을 준 그녀는(시 속의 그녀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어떤 누드 사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불가사리가 어딘가에 붙어 있는 누드였지요. 나는 그게 떨어지는 것과 이별을 어떻게 연결시킬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줄을 쓰고 나니 더이상 쓸 말이 없어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요. 우습고 의미없는 사족이지만(낡아빠진 중고차를 판매하는 이가 그 차의 원래 가격은 얼마였다고 말을 풀어놓는 것처럼요) 밝혀둬야 뭔가 온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가사리’를 ‘미스터리’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 의미가 ‘불가사의’에 이르러서는 더 절묘해지는데, 그 발음이 ‘불가사.이’가 되기 때문에 ‘mister.y’ 또는 ‘미스터.리’와 거의 같은 형식과 의미를 가집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세계에서……

합당한 것인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내가 붙였던 제목은 “그리움”이었지요. 경문왕의 복두장이처럼 미다스의 이발사처럼 나는 외딴 곳으로 나아가 구덩이를 팠고 그 모든 사연을 묻었으나 지금도 갈대밭에서는 흐릿한 목소리로 비밀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사는 달라진 적이 없는데 내것 아닌 노래는 매번 다른 의미로 들리곤 합니다. 말라 비틀어진 채 그대로 굳어버린 불가사리에게도요.

 

 

 

 

 

 

멜랑콜리의 묘약

: 약을 잃고 약을 찾다

 

그들은 춤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춤을 추었다.
ㅡ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베리

 

그 책은 어느 약장에 꽂혀 있었을까요. 밤 늦도록 멜랑콜리의 묘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 책엔 발이 달렸는지 며칠 잊고 지내면 벌써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곤 합니다. 아니면 “마개뽑힌 가슴”에서 약이 다 달아나버린 것이었을까요.
약이 없어 약이 올랐습니다. 약이 보이질 않아 어리석게 약발을 받았습니다. 기억의 모랫벌에 새겨진 그림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나는 몰랐습니다. 밤마다 꿈마다 굉음을 울리며 나를 쓰러트리던 화룡+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계절을 잃어버린 장롱속의 옷에서 희미한 약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거의 부스러질 것 같은 옛 가요책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김수영 시집에 그어진 밑줄과 비닐 커버 사이에 끼워져 있는 이름도 모를 배우의 젊은 날 사진에서 약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느 밥집에서 가져온 성냥갑이나 지금은 도수가 맞지 않은 촌스런 안경, “리듬 파래이드 제8집” <헤졌을때와 만났을때>라고 적힌 낡은 ‘레코-드’의 노래보다 더한 잡음 마다에도 흐릿하니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으나 낡은 문고판 책 하나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매번 책을 잃어버릴 때마다 어쩌면 그 책 다시는 찾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잃어버린 것이라면 그 약 구해다 주겠노라는 말이 고맙고도 미안하였습니다. 멜랑콜리의 묘약. 백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것만 같은 가슴뼈 사이에 꽂혀 있는 것일까요.
어느 노곤한 잠결에 꿈결에 놓쳐버린 멜랑콜리의 묘약. 침대와 탁자 사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 소리없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쏟아지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캐밀리어+가 얻은 것을 나는 잃었을까요. 멜랑콜리의 묘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딸기빛 유리창+ 너머로 아득히 먼 별을 바라봅니다. 그 아련한 약냄새는 어디로부터 이 밤을 향해 쏟아지고 있을까요. 나는 약을 잃고 또 약을 찾아 기뻐합니다. 그 어리석음이 기뻐합니다.

 

2001. 11. 8.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
+ <멜랑콜리의 묘약>의 주인공 이름.
+<멜랑콜리의 묘약>에 수록된 단편 이름.

경운기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Pun에 관한 짧은 Pun

 

어떤 제한적인 의미에서 韻이라는 것은 일종의 고품격화된 pun이다. 많은 시인들이 제 나름대로 마음 속에 운을 띄워 보지만 그것을 제대로 부드럽게 풀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약간의 어폐가 있다고 하더라도 韻이 좋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표현이 되거나 적어도 무난한 흐름은 된다.
나의 경우, 시를 쓰는데 있어 (별스레 그런 걸 찾지도 않았다만) 그다지 품격이 없는데다 韻이 좋지 못하여 운보다는 내 말이 가는대로 달리고 휘파람 불며 떠돌다 되는대로 당근인양 pun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게 갈 곳 없는 내 글의 운명이거니 하면서…

우리말의 경우 한자어로 표현되는 단어들이 부지기수인 관계로 이래저래 동음이의어 homonym가 무진장이고 따라서 그것은 나의 나쁜 운을 위한 보고다. 때로 그것은 운을 시험하는 즉석복권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상당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꿈 잘꾸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산신령이 나타나 한 수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韻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위치에 기발한 pun이 사용된다면 약간의 논리없음은 pun에 의해 어느 정도 무마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 주제를 희석시키고 경박한 것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가능한 한 그것이 Hors d’oeuvre나 일종의 양념 이상의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pun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그 의미가 왜곡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천박함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 관한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어주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러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랄 때가 많다.

하지만 나 또한 오래도록 시를 쓰면서 行韻의 날을 항상 기다려 왔다. 내 韻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소월처럼 운이 흐르기를. 그래서 가끔은 운우지정의 마음을 간직한 채 뜬 구름 잡는 소릴 헤적여 본다. 구운몽의 꿈을 열어 젖힌다. “I see the sky, oh, I see the cloud,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
하늘에 구름이 몇 조각인지 흐름과 멈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에도 운이 있는 것인지… 산문 밖을 좀 나다녀야 운문을 열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韻作機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 나의 고물 耕韻機는 늘 삑사리만 내고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시인 사임도 韻이 나빠 사임하게 되고 “애정성”에 붙들려 가지 않았던가.
행운유수라고 어쩌다 가끔은 내게도 韻秀 좋은 날이 있어 기쁘다. 韻이 따라 준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하루, 그런 순간을 늘 기다린다. 따라서 그런 때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 될 것이다. Good luck!!!

나의 고물 耕韻機, 아무리 힘주어 돌려도
요란한 빈 소리에 매캐한 연기 뿐
척박한 이내 마음 언제나 발동 걸려
절로 운을 읊어 보려나.
마음 밭 갈고 닦아 구름 가듯 물 흐르듯
경운기 타고 떠나 보려나.

 

/2001. 3. 28.

 

PS.

<1984년>에서 사임의 잘못은 운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 ‘god’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존 레논은 “God is a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이라 했던가.^^;;
Pun이란… Donovan의 노랠 좀 바꾸어서 말한다면 Pun is a very magic fellow쯤 될 것이고, Beach Boys의 노래 제목을 고친다면 Pun, Pun, Pun이 surfing처럼 유쾌한 것이 될 테다.
그것은 또한 hippology여서 pun이 몰려 다니는 hippocampus는 나의 꿈을 일깨워 준다. 그리하여 포르노 왕국이 아닌 新애마 천국으로 가는 나는 hippophille이다. 그런 면에서 이작자는 여전히 餘福이 많아 여성운은 좋은 것 같은데 남성운이 별로 없는 것 아닌지 몰라. 韻도 없는 것이 말만 많은 이작자, 정말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좀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