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noon burned gold into our hair

8월 하고도 24일, 여름도 이제 거의 끝자락이고 우리들 셋의 생일도 모두 지나갔다. 늦은 밤과 새벽의 공기는 전에 없던 차가운 기운도 느껴진다.

핑크 플로이드도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도어즈 노래도 그렇게 자주 듣진 않는다. 마음 속에서 지워진 것은 아닌데 감정적인 겨를(?)이 없다고나 할까. 서글픈 일이지만 이제는 내 나이가 그들 음악의 나이를 한참 뛰어넘은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it’s better to burn out than it is to rust

 

라던 닐 영의 노랫말처럼 한때 마음을 흔들던 멋진 가사들이 나의 일이 아닌 것과 비슷한 무엇이다. 아니면 이상의 이야기처럼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칠…… 화물 자동차에나 질컥 치여 죽어 버리지. 그랬으면 이렇게 후텁지근헌 생활을 면허기라두 허지.”
하고 주책없이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짜장 화물 자동차가 탁 앞으로 닥칠적이면 덴겁해서 피하는 재주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능히 빠르다고는 못해도 비슷했다.(공포의 기록)

 

하지만 그렇게 자조하던 이도 ‘rust’로 ‘fade away’ 하지는 않았지만 하루 하루 땜질 하듯 사는 사람은 녹슬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어찌 할 도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때 쯤이면 도어즈의 노래 하나는 늘 내 마음을 다시 흐르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 노래는 앨범의 소프트한 분위기가 아닌 피아노 연주가 전면에 등장하는 그들 초기의 데모 버전+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마음을 매혹시키는 한 줄을 기다린다. “noon burned gold into our hair”이다.

이상하게도 그 한줄에서 나는 가진 적 없는 빛과 열정의 순간들과 그 벼랑끝에서 맞딱뜨릴 허무함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데이빗 린치가 또박또박 발음하며 들려주는 일기예보에서 golden sunshine이라는 단어가 아주 잠깐 내 마음을 밝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but also hopefully those beautiful skies and golden sunshine, 2020. 8. 23). 그 무엇도 없는데 우습게도 허무한 느낌만은 비슷한 시늉을 하고 있으니 나의 썸머타임은 그렇게 실없이 떠나갔다. “noon burned gold into our hair”의 순간들을 꿈처럼 그리면서.

/srs.

 

 


/summer’s almost gone, doors

 

 

+오래도록 내가 좋아해온 이 버전은 1965년 9월 2일 로스엔젤레스에서 녹음되었다. 모두 6곡의 데모가 만들어졌으며, 레이 만자렉의 형제들이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했다.(로비 크리거는 참여하지 않았다.)

煞풀이, 어떤 이를 살…

여기저기 일상용어처럼 쓰이는 역마살, 망신살 같은 단어들… 도화살이나 백호살의 경우도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밖에도 ‘십이신살(十二神煞)’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살(煞)들이 피곤한 삶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몇몇 특정한 煞에 대해서만 정리를 했다. 이것은 운명이나 횡액 등에 대한 모호한 경고의 의미보다는 성향 또는 성품에 포커스를 맞춰서 어떤 이의 속살(?)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에 더 근접해 있다. 煞풀이 한마당으로 煞을 풀어내는 재주는 없으니 그저 말풀이만 끄적이면서. Read More

Epitaph

괜찮아
그냥 단어들일 뿐이야
물로 쓴……+

 

세상의 숱한 묘비명들 가운데 딱히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없다. 킹 크림슨의 Epitaph처럼 Confusion이 내  Epitaph이 될 수도 없다. 존 키츠의 묘비명에 깊이 공감하였고, 묘비명은 아니었지만 “Ames Point”라는 이름이 붙은 표지석을 나는 기억한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2000년의 여름, 위스칸신의 위네바고 호수 제방 끝자락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읽었으나 나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서야 작은 동판에 새겨진 글 전부를 알게 되었고 거기 새겨진 궁금했던 한 줄은 아래와 같다. Read More

일기예보를 하는 노인

반지하처럼 어둑한 방에서 백발의 노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라라랜드의 어딘가, 언제나 검은 셔츠를 입은 그는
자신의 집처럼 보이는 곳에서 아침의 일기를 알려준다.
연도와 날짜, 요일을 알려주고 화씨와 섭씨로 현재의 온도를
느리고도 또렷한 발음으로 들려준다. Read More

업이 무엇인지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게 만화책에서 봤던 마법사의 주문이 아니라 정구업진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적에는 그저 우스웠지요. 하지만 입으로 지은 업을 씻는 진언이라니 끝까지 웃을 일은 아니었지요. 생각해보면 수십년, 흐리멍텅한 업을 지니고 살아왔지요. 10대적부터 막연히 시를 쓰고자 했으나 내내 형편없는 것들만 그렸습니다. 아마도 수십곡, 20대 초반에는 노래도 지었지만 하나같이 어설픈 잡곡이었지요. 업이랍시고 편집일도 하고 조판일도 하고 인쇄일도 하고 더 하찮은 것들도 했지만 제대로 돈을 번 때는그리 많지 않았지요. 그러니 내게 있어 업이 무엇인지는 늘 답없는 이야기였지요. 아침, 점심, 저녁 빠짐없이 설거지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내 업은 무엇보다 가정주부라 생각도 했지요. 설거지를 하면서 죄와 속죄에 관한 시를 그리기도 했지요. 절반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절반쯤 자식들 데리고 살고 있으니 절반쯤 자식으로 살고 있으니 그들 일 살피느라 시간 보낼 적에는 부모가 업이고 자식이 업 같기도 합니다. 오늘 사무실엔 그다지 일이 없습니다. 오신다던 손님이 찾아 오실지도 알 수 없네요. 그러니 업이라고 하기엔 참 모자라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이게 바로 업인가 싶어집니다. 지은 업이 넘쳐나고, 풀지 못한 업은 끝이 없으니 진언 따위는 알지 못해도 수리수리수리수리 고치고 업데이트 해야 할 내 분명한 업인걸요.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와이어리스의 저주, 저주받은 와이어리스

 

 

 

작년 초가을쯤, 누군가 내 시집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건 저주받은 시집이라고 말했다. 순전히 내 입장이라면 몇가지 다른 이유들을 갖다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말한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허술한 글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이지 끊어져버릴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그 시집을 받는다면 그 당사자는 머지 않아 나와 끊어질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그래도 괜찮다면……” 했더니 고개를 저었고 나는 시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무형의 시집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pdf 파일로 시집을 만들었다.(옛 시집은 아니고 ‘칼리지’ 어딘가에 올려져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나름 공을 들여 편집을 했고(제목도 물론 다르다) 앞쪽의 빈 페이지에는 한줄의 인사글을 쓰고 스캔해서 넣었다. 받은 사람은 기뻐했고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그 페이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Read More

올 더 론리 피플

어릴 적에 출근하는 아버지 따라 시장통 골목 끝집에서 나와 재미없는 학교를 향해 길을 나서면 가게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제목도 몰랐는 그 곡의 현악기 소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긁고 지나가는 듯 했다.

4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모친이랑 연배가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제나 같이 오고 가며 지내던 그분들 부부. 한번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아파트 안에서 걸어가는 내게 냅다 경적을 울려서 굉장히 불쾌했던 순간도 생각이 난다. 이후로도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저 시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정해보였던 그집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이후로 그분은 모습은 정말이지 쓸쓸해 보였다. 모친도 한번은 각별히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후로 그분 보면 좀 더 따뜻하게 인사를 드리곤 하지만 그분은 한참 더 말씀도 많이 하시고 미안할 정도로 반가워 하신다.

약간의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을 둔 오래된 이웃도 계신다. 유명한 서예가의 며느리였건만 그분의 삶도 편치는 못하셨다. 아들은 결혼도 못한 채 어머니 곁에서 살았고 딸은 결국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다 길에서 나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 하시고 어른들 안부도 꼭 물으신다. 나를 붙잡고 끝도 없이 말씀을 하지만 나는 억지로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한두해 전엔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달리 태어났더라면 참 총명했을 사람은 어느 하루 허망하게 가버렸고 나는 이후로 그분을 뵌 적이 없다. 뵙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든다.

일로 해서 알게된 아주머니 한 분은 늘상 집안 일을 말씀하신다. 그분 어르신도 잘 알고 있으니 안부를 묻지만 아주머니의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치매이신 어머니와 까다로운 아버지를 홀로 모시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몇달만에 뵈어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정신이 없을 정도로 그간의 사건들을 축약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저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쌀알을 줍거나 양말을 깁고 먼지를 터는 대신 어떤 이는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삶의 하찮은 한 구석을 이렇게 구구절절 글로 옮긴다. 그는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 비슷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지만 그릴 수 있는 그 눈매 또한 외롭고 쓸쓸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긁고 지나간다.

 

 

 

 

 

2020. 5. 20.

3618

38년전 어떤 책을 읽었다…… 퍼센티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저 남들 눈치로 마스크를 쓴다. 줄곧 마스크의 무용성을 주장하던 친구도 별수없어 면마스크 하나 주머니속에 넣어다니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간다. 또다른 이국의 길거리에서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경찰이 몽둥이로 두들겨패고 심지어 발포도 한다. 확진자가 돌아다니면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구속시키는 곳도 있다. 그 와중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감시사회를 힐난하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도 있다. 구비서류 챙겨 주민센터 방문하면 5만원 준다고 안전문자가 온다. 손씻기 열심히 하라고 안전문자가 붉게 빽빽댄다. 어쩌면 이렇게 이렇게 생긴 인간을 조심하라고 문자가 올지도 모른다. 이 길로 가면 안되고 저쪽 선을 넘으면 안된다고 문자가 올지도 모른다. 사라에 대해 즐거워 하는 이는 누구였을지 사드와 파솔리니는 어떤 형벌을 받아야 할지 어린이보호구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는 인디언보호구역에라도 갇혀 살아야 하는지 38년전 36년 전에 대한 책을 읽었다. 38년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글자로만 씌여져 있다. 끌 수조차 없었던 텔레스크린보다 천만배쯤 절묘한 욕망의 발광다이오우드, 레티나와 아몰레드에 온통 영혼을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더이상 그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난독증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읽을래야 읽을 수도 없다. 더이상 독재자라 지탄받는 독재자는 없으니까. 텔레스크린과 빅 브라더는 그저 그저 그저 36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 1948년의 깡그리 잊혀져버린 악몽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