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임즈 포인트, 1999에서 2024까지

호수 사이로 이어진 길의 끝에는 표지석이 있었고, 동판에는 “에임즈 포인트”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호수는 1999년 12월에 잠시 들렀으나 에임즈 포인트까지 간 것은 다음 해 여름 걸어서였다. 이상하게도 표지석 제일 첫줄에 적힌 문장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영영 되살리지 못할 기억인양 가물가물했으나 나는 꼭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2000년 여름에 찍었던 사진조차도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Read More
그 집 앞 : Ask me why
재개발 플래카드로 어수선한 아파트 위쪽 입구 오른편에는 작은 편의점이 있고, 한 칸 건너 아담한 가정집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이 동네 전체가 한적한 주택가였으나 이제는 주변에 원룸 빌딩이 너무 많이 들어서서 좀 삭막한 분위기다. 그래서 몇해 전 그 집을 새로 단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위태로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것이 너무 낯설어져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고 아담한 집이었던 까닭이다. 집 앞에는 자갈이 깔린 공터가 있어 차 2대 가량을 주차 가능하게끔 해두었고 그 너머에는 철골로 이루어진 하얀 담장과 아치형 대문이 있다. 집 입구에도 큼지막한 화분들이 있고 하얀 담장을 따라 넝쿨이 자라는 집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가끔 그 집 앞에 멈추어 천리향 향기 맡으며 화분 바라보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었나 보다.
열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비틀즈에 푹 빠져 살았어도 그들 노래 전부를 알지는 못했다. 정규 앨범/싱글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금지곡들을 위시해 빠진 곡도 꽤 있었다. 특히나 데뷔 앨범의 곡들은 모르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특이하게 좀 일찍 들은 것이 있다면 1962년 함부르크 스타 클럽에서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초기 락앤롤의 스탠다드 넘버들과 비틀즈 오리지널이 섞인 희귀한 앨범이었지만 정식 레코딩이 아니라 비틀즈가 유명해지자 누군가의 조악한 녹음본으로 제작된 앨범이어서 음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카세트 테잎 2개로 만들어진 그 앨범을 참 열심히도 들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서 빌려 테잎으로 녹음해 듣던 <1962-1966>, <1967-1970> 컴필레이션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 Strawberry Fields Forever나 Sgt. Pepper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Star Club, 1962
그런 열여섯의 어느 날, 아파트 옆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꽤 괜찮은 목소리였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잘은 모르지만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사람 같았다. 귀에 익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가물가물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비틀즈의 Ask Me Why였다. 당시 내겐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이 없었지만 바로 함부르크 테이프를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곡이었다. 美感이나 멋에 관한 감각이 부족한 나는 그 노래가 그렇게 낭만적인 곡인지 몰랐다가 그날에서야 희미하게 알게 되었다. 노래 속의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작고 아담한 집이 있는 바로 그 곳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지만 저녁이면 자그마한 차 두 대가 다소곳이 서 있는 그 집의 주인장이 예전 그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바라고 믿곤 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Ask Me Why, Beatles
(데뷔 앨범 모노 버전을 좋아하는 나는 심플하고 극단적인 스테레오가 불편하게 들린다.)
과학이 아닙니다
부슬부슬 이른 봄비
동네 담벼락에 매트리스 하나 덩그러니 기대어져 있다
어느 누구의 잠자리였을지
어쩌면 멀쩡한 듯 어쩌면 다 삭은 듯
매일 오가는 부식가게 한 귀퉁이에 바나나 한 송이
검게 물들어 있다
스스로 自 그럴 然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행간인양
폐지 사이에서 비에 젖었다
/2024. 2. 20.
F. M.
A. 딸들은 자라면 다 그렇다. 눈치나 안보면 다행이다.
B.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아빠라기보다 나는 엄마로 살고 있으니까.
그곳은 부엌이거나 화장실 같았다. 타일의 벽은 몇 갈래로 금이 간 채 부서져 있었다. 그 누군가 — U. A.는 기발하게도 그곳에 액자를 걸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풍경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타일의 균열을 액자 안에 가뒀다. 오른쪽 한 귀퉁이에 자그맣게 붙어 있는 제목은 “F.M .”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에 대해 나는 소재일 수도 있고 작품일 수도 있다.
/2024. 1. 23.
Central do
오랫동안 못 부칠 편지만 써왔습니다.
모든 것이 그립다지만+ 전하지 못할 마음만 그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짧은 편지 또한 진실과 그럴 듯하게 꾸며낸
또다른 진실 사이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피치 못할 마음의 한가운데,
하지만 애써 한켠으로 비켜 두근대는
내 마음의 正中央입니다.
2024년 1월 4일
돌아가지도 속하지도 못한 시간과 기억의 변방에서,
무치.

Central do Brasil, Central do Meu Coração
+ 사진보다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갖지 못한 사진보다 더 선연한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었다.
중앙의 앙(央/㡕)은 ‘선명한 모양'(훈독 ‘영’)을 뜻하기도 하며
어떤 이유에선지 영상의 영映은 ‘희미하다’는 뜻(훈독 ‘앙’)도 가지고 있다.
서두의 두 줄은 Central do Brasil 끝대목에 나오는 도라의 편지 일부를 변용하였다.
조슈에,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네 말이 맞아. 너희 아버지는 분명히 나타나실 거고, 네가 말한 그 좋은 분이 틀림없을 거야. 나도 우리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자신이 운전하는 기관차를 태워주셨던 기억이 있어. 아버지는 어린 소녀였던 내게 기차의 경적을 여행 내내 울릴 수 있게 해주셨지. 네가 앞으로 커다란 트럭을 몰고 길을 달릴 때면, 네가 처음 운전대를 잡게 해준 사람이 나였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 그리고 네가 형들과 함께 있는 게 너한테 더 좋을 거야.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너는 훨씬 더 나은 걸 받을 자격이 있어. 언젠가 내가 생각나면,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을 한번 들여다봐줘. 이렇게 말하는 건 언젠가 네가 나를 잊어버릴까 봐 두려워서야. 나도 아버지가 그립고, 모든 것이 다 그리워. 도라.
Josué, Faz muito tempo que eu não mando uma carta pra alguém. agora eu to mandando essa carta pra você. Você tem razão. seu pai ainda vai aparecer e, com certeza, ele é tudo aquilo que você diz que ele é. Eu lembro do meu pai me levando na locomotiva que ele dirigia. ele deixou eu, uma menininha, dar o apito do trem a viagem inteira. Quando você estiver cruzando as estradas no seu caminhão enorme, espero que você lembre que fui eu a primeira pessoa a te fazer botar a mão no volante. Também vai ser melhor pra você ficar aí com seus irmãos. você merece muito muito mais do que eu tenho pra te dar. No dia que você quiser lembrar de mim, dá uma olhada no retratinho que a gente tirou junto. Eu digo isso porque tenho medo que um dia você também me esqueça. Tenho saudade do meu pai, tenho saudade de tudo. Dora.
21세기 민주공화국
사무실 오는 길,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길이라 그런지 아주 가끔 높으신 나으리가 지나가는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지 사무실 가는 큰 길에 안보이던 경찰들이 나와서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그러고보니 어제도 비슷한 시간대에 예행 연습 같은 것이 있었던 듯 싶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인도 신호등이 네 번, 다섯 번은 바뀌었을 시간인데도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은 기다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어떤 놈(?)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지만 21세기에도 이따위로 시민들을 우습게 아는가 싶었다. 기다리다 열받은 나는 (나으리 길을 막는 인도 신호를) 포기하고 차량 진행방향 따라 걸어가다 같은 방향 신호 둘을 건너 엘리베이터 타고 육교를 건너가기로 했다. 조금 걷다보니 나으리 오가는 방향이랑 같은 길에 있는 인도 또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수신호로 보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네놈들이 나를 무시하니 나도 네놈들을 무시할 수 밖에 없다는 류의 소심한 다짐을 하며 나는 경찰새끼들(!)이 보든 말든 잠시도 멈추지 않고 두 개의 직진 방향 인도 적신호등을 아예 무시한 채 그대로 건너왔다. 사람이 우선인 것은 바로 이럴 때다! 내 걸음을 방해하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횡단보도를 지나가니 한 사람이 맞은 편에서 건너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서 있었다. 다 왔을 참에 여전히 서 있던 어떤 아주머니가 옆에 서 있는 일행에게 “너무 당당하게 건너와서 파란불인줄 알았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경찰들은 차량 통제에만 정신이 팔려 정신나간 한 인간이 그들과 상관없는 루트로 지나가는 것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곧장 건너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교를 건너 사무실 쪽으로 왔다. 고작 세 사람 서 있는 그 엘리베이터에서조차 새치기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분이 내 앞에 서서 어떤 이득을 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차량들과 행인들, 수백명 수천명의 불편이 나으리에게 얼마나 대단한 안락함을 주었을지에 관해서도. 사무실 도착한지 십수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호각소리가 들린다. 세상엔 디테일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나는 디테일 때문에 살아가기 힘들다.
셰인, 셰인, 셰인
‘아이리쉬 맨’ Shane MacGowan이 세상을 떠났다. Pogues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아일랜드 포크 음악과 펑크 스타일이 교차하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 밴드였고 이들의 거의 모든 이미지는 맥고완(He Is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으로부터 왔다. 그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봤을 때는 누구처럼 시들시들해도 아직 괜찮구나 했는데 퇴원 일주일만의 일이다. 한 달 쯤 전에는 병원에서 코줄을 끼고 험한 몰골로 있는 가족 사진을 본 적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했지만 셰인 맥고완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빠진 앞니를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노래하던, 그런 류의 부끄러움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고 묘하게도 그것은 맥고완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노래와 노랫말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도 맥고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나는 몹시도 마음이 끌리곤 했다. 그는 비슷한 수준의 지독한 주당이자 꽤 긴 시간을 앞니없이 비칠대며 살았던 동훈형을 생각나게도 했다.

/맥고완으로 뒤덮인 더블린의 신문 가판대
(Rainy Night in Soho의 한 대목을 고친 타이틀이 눈에 들어온다 : And you’re the measure of my dreams.)
그의 아내의 추모글을 보면 구구절절 지극한 사랑이 넘쳐났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뉴욕 동화’가 절로 떠오르곤 하지만 아무래도 맥고완의 상징은 ‘Dirty old town’ 같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곱씹으며 눈물 글썽인 적도 한 두 번이 아닌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What a wonderful world 또한 맥고완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다. 필 세브론, 카이트 오리오던, 그리고 셰인 맥고완…… 영상 속의 풋풋했던 모습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를 위한 추모곡이라면 포그스의 멤버들과 Clash의 조 스트러머까지 출연했던 영화(스트레이트 투 헬)에서 오리오던이 노래한 “Danny Boy”도 빼놓을 수 없다.(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매력적인 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제 운전하는 길에 랜덤으로 나온 노래 가운데 이 곡이 있었다. “뉴욕 동화“의 노랫말에서처럼 그는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했지만 맥고완과 포그스의 시끌벅적하면서도 아픈 곡조들은 내 안에서 멈추는 일이 없다. 그가 노래하는 “The Parting Glass”를 들으며 셰인, 셰인, 셰인…… 아득한 그 옛 시절의 “먼 산울림“처럼.
/Dirty Old Town, Pogues
/Danny Boy (Straight to Hell)
/2023. 12. 1.
노래
-by H to H
짧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단순하면서도 함께 하긴 쉽지 않은 노래
상실과 그리움의 노래
모든 시간이 끝에 이를 때까지 노래하고 있다면
노래는 나를 부를 것이야
노래는 어김없이 누군가를 그릴 것이야
실낱같은 연이 영영 침묵 속에 잠들지라도
노래는 내 불면과 평안과 망각 너머 함께 하네
시간의 조수 속에 놓쳐버린 형제에서 연인에까지
모든 잃어버렸거나 갖지 못한 것들에까지
오래된 민요 속 뼈와 머리칼로 만든 하프인양
가슴을 울리는
내 모든 그리움의 총합 같은 노래
데이비, 오 데이비
/2023. 11. 29.
연인의 이름
부베에서 루-이지-앤, 브라질의 자누아리아까지+
누군가에겐 간절했을 낯선 글자들
그 또는 그녀로 이루어진 세상이거나
그리움이 만들어낸 도시
사람일지 도시의 이름일지
영영 뜻 모를 철자
내 마음의 고장인양
알 길 없고 갈 길 없는데
결국엔
하나에 이를
하나의 이름
+
부베는 영화 <부베의 연인>에서 왔지만 마라에게 있어 부베는 도시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루-이지-앤>은 주의 이름을 의인화, 또는 ‘여인화’한 케일의 노래,
그녀는 뉴 올리언즈에 살고 있고 그가 그리는 뉴 올리언즈는 그녀 속에 있다.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도시, 또는 그녀 <자누아리아>는……
+
최근에 알게 된 어느 부부의 사연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가녀리게라도 이어지는 관계, 막장이 되어버린 사이, 무덤덤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들,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사람들, 이미 남이 되어버린 이들, 애초부터 혼자인 사람들, 그냥저냥 무난하게 함께 하는 삶, 로댕의 드라마틱하게 과장된 조각이나 그의 그림을 전부 잊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피카소의 삶이 아닌 4천년도 더 된 옛 이집트의 소박한 조각처럼 마주 잡은 손…… 모두가 어떤 순간 이 가운데 어딘가에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바라지 않고 아무도 꿈꾸지 않을 삶을 들여다 본 적이 있을지…… 그녀와 함께 하는 애플비씨의 질서바른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