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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타령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에요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이들이 ‘도라지 타령’을 라이브로 노래한 것은 1971년 3월 18일이었다.

 

+
산촌여정, 이상.

 

Willow Pattern
(by Robin Williamson)

The sun in the pale silence
Through the soft yellow mist
A gentle sighing
My love lies alone in guarded palace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Drifting in moonlight
I wait for soft step I know through swaying grasses
The bird will sing so sweet
The cage is broken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My skirt is long and the pink flowers tall
Oh how I love you, love you best of all
How we shall dance and sing of the day
You’re so much stronger than twice what you say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Under the plum blossoms lingering snow
Come with me love before we must go
Over the water to our secret way
Tomorrow will be our sweet wedding day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er father the Emperor has denied their right to marry
Hoi-ya-nah!
The lovers seek to escape by their secret way over the willow bridge
Hoi-yo, hoi-yo?
A spy has betrayed them, they are pursued by the palace guard
Hoi-ya!
Before their cruel spears can pierce their innocent fles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sky
Higher and higher, ever so hig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blue
Never they’ll sever a love that is true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i-hoi-ya
 


/willow pattern

 

'도자기' 타령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에요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이들이 ‘도라지 타령’을 라이브로 노래한 것은 1971년 3월 18일이었다.
 
+
산촌여정, 이상.
 
 

/willow pattern
 

설거지는 내 운명 +

당신은 흘러갔고 나는 아직 그 자리,
부족하고 텅 빈 그 자리를 물로 때웁니다.
/2009. 11. 14.

 
 

연로하신 모친이 여전히 살림을 하시니 그거라도 도와야겠다 싶어 잠깐씩 부엌을 들락거립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제일 쉬운 것은 역시 설거지, 여기저기 오가며 가끔은 삼시세끼 설거지를 하기도 합니다. 그건 운명이 아니지만 운명이기도 합니다.

설거지 하면서 지난 날 돌아보면 수세미에 힘이 들어가 잘도 박박 문질러댑니다. 흥건한 기름때나 곤란하게 냄비에 눌어붙은 흔적이나 결국은 깨끗이 벗겨냅니다. 세상에 못난이는 모든 것이 운명입니다. 세상 그 누군들 못나게 태어나지야 않았겠지만 스스로 못나게 자랐고 설거지는 내 운명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는 이의 운명입니다.

깔끔히 잘 정리하지는 못해도 그럴 때면 나는 오류투성이에 전기만 잘도 잡아먹는 식기세척기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온갖 잔해와 오점들을 향해 쉼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그다지 난감하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니까요.

하지만 요리하는 꿈을 아예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씩은 물어도 보고 수첩도 하나 마련할 참입니다. 예쁘게 계란말이도 만들어보고 싶고, 라면만 보글보글 지겹게 끓이지 말고 된장찌개에 미역국도 해볼 겁니다. 카레도 만들고 나물 쯤은 무칠 수 있어야겠지요. 넘쳐나는 부족함에 열성인 꼭 그만큼 열성이 필요한 운명입니다.

씻지 못할 오점들을 향한 한때의 설거지는 끝이 났지만 또 다른 한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살아 있음의 운명입니다. 부끄러움은 그 운명 속에 숨죽이고 있을 뿐, 설거지가 내 운명이라고 해도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나는 흘러갔고 당신은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

 
 

/2017. 2. 18.

 

포도아에서 파서를 그리워 함.

화이트 앨범이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68년의 어느 겨울 날 ㅡ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잠시 포르투갈에 들러 리스보아에 있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카를로스 아리 도스 산토스, 나탈리아 코레이아 등의 시인들과 만나 시편들을 낭송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가운데는 그 무렵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도 있었는데 saudades do brasil em portugal이 그것이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쓴 이 곡은 자신이 직접 불렀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도 노래했다. 이때의 녹음이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에도 이 노래는 포르투갈의 파두 가수들에 의해 널리 불리어지고 있고 그것은 파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칫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이 곡이 대륙을 넘나들며 이렇게 오래도록 불리어지는 것은 파두를 노래하게 하는 포르투갈/브라질의 독특한 정서 ‘saudade'(우리에게는 ‘그리움’이 있다)가 곡조 속에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치아 게레이루의 노래와 연주도 멋지지만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15년전 쯤 처음 들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조금 허술하지만 쓸쓸하고 품위있는 목소리를 그린다. 한때 그들을 지배했던 포도아를 방문한 파서의 시인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는지 어찌 알겠냐만 영국을 방문한 미국 시인의 느낌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으리라 싶다. 그리고 이 곡에 대한 나의 느낌은 파서도 포도아도 아닌 객지에서 또 다른 객지를 그리는 이의 심정 같은 것이다. 도착하지 못한 브라질의 꿈이었고 잠시 머물렀던 포르투갈이었음에 속한 곳 없는 내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돌아갈 수 없음에 관한 것이도 하고.

 
 

saudade라 했던가
쏟아지는 그리움이라 했던가
잊혀진 땅
있지도 않은 세상
만나기 어려운 서로간의 이역인데
무엇 하나 이어진 것 없이
홀로 또 다른 역 그렸네

 
 

/kátia guerreiro

 

+
1968년 12월 19일이었다.

 

소라 껍데기나 불가사리나

지금, 소라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소라 껍데기, 이창기

 

세권의 책, 하나의 복사본 가운데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자칫하면 <블루 벨벳> 속의 잔디밭이겠으나
꼭도의 시가 희미하니 들려오는 소라 껍데기를 나는 집어들었다.

한 손엔 불가사리, 한 손엔 소라 껍데기를 쥐고 그려보았다.
“까불대는 끈질긴 껍데기”였으면 좋겠는데
목에 걸렸다가 어느 날 그냥저냥 넘어가버린 가시라면 몰라도 아무래도 아니었다.
나로 말하자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도대체 용도를 찾을 수가 없는
말라비틀어진 불가사리일 뿐이었다.
하루거나 억겁이거나 사리 나올 리 없는 마음에는.

감히 내가 <소라 껍데기>를  썼다면

 

그녀의 목에 걸려 까불대는
이 지겹고 끈질긴 껍데기

 

로 충분했겠고, 제목은 윤형주의 “라라라”(‘까불대는’과 운이 맞어떨어지는 느낌이다)나
그 노래 가사속에 여럿 있을 것 같다.
그리고 佛語란 것이 까막눈인 내게는 말이 아니다(不語) 보니
알아도 알아먹지 못할 부처님 말씀처럼 깊어 보였다.

 

mon oreille est un coquillage
qui aime le bruit de la mer
/jean cocteau

 

이래저래 수준 한참 떨어지는(‘비슷한’이라고 썼다가 황송하여 황급히 고쳤다) ‘해산물 껍데기’로서
끝으로 한 수 읊어본다면,

 

더 이상 애타게 찾는 행상도 없이 나는
전복 껍데기처럼.

 

(“전복 껍데기 파이소~” 애절하게 불러대며 전복 껍질을 사가던 시절이 한때 있었다.)

 

 

+시험삼아 블로그와 연동을 시켜봤다. 여기 글을 올리면 블로그에도 동시에 포스트가 작성되는 방식이다. 최후의 백업이란 의미도 있고, 일부 카테고리에 한해서 사용해볼까 한다.

저 하늘 저 보리밭 ◎

윗동네는 온통 눈소식인데 이곳은 파란 하늘에 바람만 좀 불 뿐, 눈씻고 찾아봐도 눈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아득한 겨울의 풍경 대신 파릇한 꿈을 돌아보았다.

<꿈을 찍는 사진관>, <요괴인간>, 그리고 <봄>은 내 마음 속에 수십년씩 남아 있는 오래된 상징들이다. 그 가운데 <봄>은 내가 20년 이상 그 제목을 <보리밭>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2001년 무렵 서울 갔다가 서점에서 제목을 제대로 확인했었다. 그때의 일에 관해 간략히 글 쓴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찾지 못하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노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음악책에 실려 있었고 이 노래 때문인지 그때의 담임선생님 이름도 생각이 난다. 애국가 열심히 부르지 않았다고 그분께 뺨 맞았던 것과 몇몇 아픈 기억도. 열살의 나이에도 나는 이 노랠 무척 좋아했었고 뭔가 남다른 깊이가 있는 곡이란 생각(뭔가 국민학교 4학년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을 했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 곡을 직접 연주해봤고 그것을 미디 파일로 수정해둔 것을 파일로 만든 것이 아직 있어 배경음악으로 넣어봤다. 조악하지만 나는 이 곡을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폰의 벨로 사용하였다. 가사나 곡이나 내겐 그닥 <봄>같은 느낌이 없지만 박화목은 윤용하가 곡을 붙인 가곡 <보리밭>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어둠에 숨어서 사는 이,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리움은 변치 않았으나 向할 곳이 없을 때 ㅡ.

 

 


작사 박화목 / 작곡 김규환

 

보리밭 파르르 하늘처럼
봄 하늘도 파르르 보리밭처럼
저 하늘 저 보리밭 그 어디설까
저 하늘 저 보리밭 그 어디설까

노고지리 한나절 지저귀는데
옛생각이 그리워 날이 저물어
찬 이슬을 밟으며 돌아갑니다
찬 이슬을 밟으며 돌아갑니다

 

 

(우측 상단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좀 어설픈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예전에 만든 미디 버전으로 고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 내겐 도구가 없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