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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い恋人, 시로이 코이비토

Principal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던 연주곡 가운데 “하얀 연인들”이 있었다.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의 공식 다큐멘터리 테마곡 “13 Jours en France”인데 (일본의 영향인지) “하얀 연인들”로 알려졌던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 프랑시스 레)의 작품이다. ‘세미 클래식’이란 쟝르에 어울릴법한 그런 류일 수도 있지만 그 해의 동계올림픽은 이 곡으로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옛시절 내 유치했던 글들을 좋아했던(내가 유치한 것일 뿐이다) 어떤 분은 그 곡을 배경으로 낭송을 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조금은 흔한 느낌의 곡조이지만, 지금도 이 곡 들으면 어설프기만 했던  스무살의 기억들이 부끄러움과 그리움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언젠부터인가 “하얀 연인들” 은 북해도의 과자로 해서 또 다른 이미지를 내게 가져다 주었다. <白い恋人, しろいこいびと>다. 오래 전 모친께서 몇번 사오신 것이 계기가 되었나 보다. 어쩌면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지만 깔끔한 포장과 이미지로 해서 더 기억에 남아 있는 과자다. 이후에는 종이상자 제품만 몇번 보았는데, 기분 탓인지 종이상자에서는 예전의 느낌도 맛도 나질 않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양철상자 제품이 나오는가 싶어 찾아봤더니 실없이 비싸긴 해도 판매하고 있었다. 삿포로의 이시야제과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 오래된 양철상자 하나는 구급약품 상자가 되어 아직도 내게 있다. 나는 이 모두에 어울리는 어떤 느낌, 어떤 기억을 여태 갖고 있다. 그 모든 시간을 다 합쳐도 ’13 Jours’가 될련지, 오갔던 길이 가릭 슈카체프의 노래처럼 ‘10,000km’나 될련지 모르지만 삶의 어떤 순간엔 머리속이 아무 생각도 없이 하얗게 되어버린다던 오래된 편지의 한줄을, 그 느낌을 함께 마셨던(Tea for Two) 어려웠던 중국차의 이름처럼 여전히 기억한다. 시로이 코이비토, 값으론 따질 수 없을 순백의 구급약품 상자는 오래전에 비워졌으나…….

 

 


/13 Jours en France, Francis Lai

 

 


/10,000km, Garik Sukachev

 

 

/2023. 8. 15., 私の……

虛事虛辭

한시간 가량 지하철 타고 처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대신 받은 처방전에는 여섯 개의 약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네 개의 알약은 날짜별로 포장되어 있었다. 둘은 따로 종이곽과 플라스틱 케이스로 받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두 종류는 드시지 않는다. 약 먹기 전부터 사진 찍고 또 사진 찍고 뭔가를 폰에 메모한다. 이쑤시개로 조심조심 신중하게 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 점심을 넘겨서야 약을 드시고 빈봉지 사진을 또 찍는다. 때로는 저녁때까지 약이 남아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진만 찍다 아예 약을 드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누가 빈 약봉지를 버리는 바람에 난리가 났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약상자에서 옛날 봉지 하나를 찾아 그곳에 새로 날짜를 기입해서 사진을 찍으셨다. 이유인즉 늘 어딘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그걸 작품이라고 하신다. 약 드실 것을 재촉하니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작품…… 헛웃음이 났지만 작품…… 그러나 통할 길 없는 세계를 향해 엉뚱하니 보고만 하다가 급기야는 작품이라 우기는 것이 그만의 일은 아니다 싶어 나는 황급히 웃음을 거두어야 했다. 만사 귀찮은 상태로 하루를 보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혼자만의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Everywhere You Are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것 이외에 John Lefebvre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그는 작가이자 기업가이며 요즘의 폭염에서 실감하게 되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무명의 신인가수(?) 앨범에 대단한 연주자들이 몰렸는지는 조금 미스터리하지만 에밀루 해리스의  남편이었던 프로듀서 Brian Ahern의 공이 컸던 것 같다.

그는 T Bone Burnett(기타리스트/제작자)을 연결시켜 줬고 잇달아 Jim Keltner(존 레넌, 밥 딜런, 케일의 드러머!), Hutch Hutchinson(베이스 세션맨), Greg Leisz(페달 스틸 기타의 대가), Al Kooper(키보드/기타, 슈퍼 세션!), Matt Rawlings (피아노, 키보드) 등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환상적인 세션 밴드가 이루어져서 2007년 <Psalngs> 앨범이 만들어지게 되었다.(2009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Initial>도 있다.)

Everywhere you are는 이 앨범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었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어이없이 묻혀버린 앨범이지만 <이작자 여인숙>이 끝나갈 무렵이었기에 이 노래의 느낌은 내게 있어 더더욱 각별했다. 절제된 곡조와 목소리가 오히려 심금을 울리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곡이다. 그렉 리즈의 페달 스틸 기타를 비롯하여 대단한 세션맨들의 연주가 배경에 깔려있지만 나는 (조금 무난한 버전의 Wish you were here 기타 같은) Lefebvre 본인의 기타가 제일 좋게 들린다. 내가 모든 곳에 있는지, 또는 당신이 그러할지는 알 길 없으나 때로는……

 

May you find a place a place to rest
foxes have their dens and birds their nests
wander where you will valley o’er the hill
where you love the best

May you find the one take a hand
be in love make that wish upon a star
just remember when you’re in love
you’re everywhere everywhere you are
everywhere everywhere you are

 

 

곤충綱 나비目

이래저래 거듭거듭 바꿔도 보았으나
알록달록 봄날의 짧은 꿈인양
날아다니는 꽃이 되진 못했네
봄도 아닌데
여긴 밤이 아닌데
거센 빗줄기 오가는 아침
작은 나방 하나
비슷한 색깔의 담벼락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가지 못한 길
찾지도 못한 길
여긴 밤이 아닌데
영영 밤이 아닌데
온통 밤인양
눈부신 어둠인양
깨치지 못한 어설픈 羽化

 

 

그러나, 그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근본적은 아니었다.
감정으로만 살아나가는 가엾은 한 곤충의 내적 파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또한 나로서도, 또 나의 주위의 – 모든 것에 대하여 굉장한 무엇을 분명히 창작(?)하였는데,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 무엇인지 등은 도무지 기억할 길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病床以後병상이후, 이상

 

 

/2023. 7. 18.

포기

지난 늦가을 베르가못 꽃씨를 구해 두 개의 종이컵에 심었었다. 철이 맞지 않은 것은 알았으나 집안이어서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베르가못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이다. 어릴 적에 어쩌다 마셔봤던 홍차 ― 한참 뒤에야 어느 세심한 손길을 통해 알게 된 그 이름 얼 그레이 때문인지 베르가못은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금세 자랄 줄 알았지만 정말 깨알 같은 새싹들은 몹시도 더뎠다. 한 달, 두 달이 가도 키가 자라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푸른 빛은 여전하였으나 자라지는 않았다. 50여 개의 씨앗에서 30개의 싹이 나왔지만 결국엔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지난 6월, 시들은 콩나물처럼 비칠대던 마지막 한 포기마저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허다한 일, 천만의 말과 글을 뱉어내었지만 그 무엇도 시가 되지 못했고 천억의 번민들만 끊임없이 울렁거렸다. 끝도 없이 신기루에 속았으면서도 여태 포기할 줄 모르는 어떤 한 포기, 그 어떤 싹도 보이지 않는 화분에 언제까지 물을 부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비슷한 하루 척박한 작은 우주를 헤매인다.

“카카오 씨앗”에 관한 부연

내가 쓴 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사설 늘어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에 대해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우연히 구글 바드 테스트하다 카카오 씨앗의 초기 버전을 올렸더니 시라고도 하지 않았고 해석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심지어 제목도 빠트렸다) 시로 이해하고 나름의 설명을 하였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데 우선 AI의 해설을 살펴보고 내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 구글 바드의 해석

시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는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시의 화자는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며,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바람에 의해 사라져 버린 만남을 생각합니다. 화자는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지만 그 너머의 하늘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어느 날 남아 있는 책을 펼치다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를 발견합니다. 화자는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다 먹은 초콜렛 한 조각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남겨두곤 했었습니다. 화자는 초콜렛의 향기가 오래된 책 냄새 너머 속절없이 흩어졌지만, 짙은 빛깔은 여태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그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카카오 빈이 향기를 얻기까지 대략 열 다섯 날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의 여정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내 책꽂이 어딘가 또는 무한의 서가 어딘가 향기 깨울 바람뿐인 열 다섯 날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천상의 열 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 내 이야기

바드의 해설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으로 하지만 소극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럼에도 시가 지향하는 바는 일정 부분 파악하였다. 마지막의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에서 그것은 꽤 분명했다.(바드는 “녹록한”의 뜻을 몰랐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 <다 녹은 초콜렛>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여년 전의 그 시에서 내가 말하지 못한 것을(또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을) 말하고 있음에서 의미를 달리한다. 완성도에 관해서는 물론 별개다.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졌다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어도 그 너머 하늘빛은 변함이 없다
형상을 잃어버린 초콜렛의 맛처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책속의 초콜렛 포장지처럼

 

2017년 3월 10일에 쓴 글은 전날에 일어난 “아주르 윈도우 붕괴”의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소소한 이야기 끝자락에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그래서 나는 지난 6년간 게시판에 쓴 이 글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달 전에 문득 초콜렛 포장지와 그리움에 대한 시를 쓸 생각을 했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이 넉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넉줄이 그 자체로 시가 되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시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님은 먼 곳에” 이래로 내가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17년의 글을 떼놓고 생각한다면 아주르 위도우가 사라진데 대한 나의 소감은 <다 녹은 초콜렛>에서 그러하였듯 형상보다는 본질에 의미를 둬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삶과 존재에 대한 내 생각을 담은 것이었다.

 

어느 날 남아 있는 책 펼치다 책갈피인양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어서 한 조각 초콜렛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간직하곤 했던 것이다 찰나였다 순간이었다 오래된 책 냄새 너머 향은 속절없이 흩어졌으나 짙은 갈색의 포장지는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초콜렛 포장지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는 허망한 상실에 관한 것이다. 나중에라도 가능하다면, 이 부분은 더 줄였으면 싶다.

 

카카오 씨앗을 醱酵(발효)시켜 향을 얻기까지 대략 열다섯 날, 내 책꽂이 어딘가에서 무한의 서가 알 길 없는 한 모퉁이까지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天上의 열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風化―바람이 만들었으나 바람이 되어버린 風景에 대한 바람이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시를 쓰면서 나는 향이 없는 카카오 씨앗이 대략 15일의 발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초콜렛의 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보름의 시간을 찰나인지 억겁인지 티끌 같은 유한의 존재로서는 알 길 없는 천상의 열 다섯날로 연결시켰다. 그립고도 익숙한 향을 다시 만나는 날 말이다.

이 시는 <다 녹은 초콜렛>. <다음 이 시간에…>와 같은 그리움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오늘처럼 비루한 영원>은 그리움을 테마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상은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 동생에 대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마음을 담고 있다. 다만 <다 녹은 초콜렛>과 달리 이 시는 내 모든 상실과 이별, 단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과 재회의 시간을 기약하고 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사실 이 시는 마지막 한줄이 전부다. 기본적으로는 구글 바드의 해석처럼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다음 이 시간에…>”와는 달리 이를 굳이 과거형으로 한 것의 의미까지 파악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고, 이것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AI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과거형이 된 것은 모든 이별과 상실 너머 이어진 알지 못한 어떤 시공에서의 만남의 순간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것에 관한 터무니없고도 분명한 믿음, 어쩌면 불가능한 바람에 대한 어이없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에는 물론 그리고 당연히, 당신도 있다.

존 레넌, 하이쿠, 궁금한 너의 창가

다만 그 그늘에 놀며 풍우에 쉬 찢겨짐을 사랑할 뿐이로다.
/마츠오 바쇼

 

존 레넌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밥 딜런 보다는 그 사람을 훨씬 좋아한다고 느낀다. 음악에 국한해서라면 (그의 노래들이 내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존 레넌보다 딜런을 더 즐겨 듣는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생각은 한참 다르다.

오늘은 오노 요코를 통해 하이쿠에 대해 처음 소개 받았을 때에 관한 존 레넌의 언급을 보았는데 하이쿠와 롱펠로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코멘트를 읽은 내 느낌은 그가 하이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무 탁자 위 하얀 그릇에 담긴 노란 꽃”처럼 하이쿠는 전체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그와 궤를 달리한다.

 

Original pages from Lennon’s sketchbook: “Wabishii” and “Sabi.” Photos by Yamanaka Shintarō (Qsyum!). (Courtesy the Double Fantasy: John & Yoko exhibition in Tokyo)

 

비틀즈 연구가 히로타 칸지에 의하면 존 레넌이 일본에 왔을 때 기무라 토스케를 통해 바쇼와 잇사의 하이쿠를 알게 되었고, R. H. 블리쓰의 하이쿠 책을 읽었으며 료칸에 숙박하기도 했다. 그는 비쇼의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보라 소리(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가 새겨진 기무라 토스케의 탄자쿠(와카, 하이쿠 등을 붓으로 쓰기 위해 사용하는 길게 자른 종이, 일반적으로 36×6cm)를 좋아했으며 그와 함께 가부키 공연도 보았다고 한다.

레넌은 자신의 노래 My Mummy’s Dead가 하이쿠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소감도 피력했지만(외형상으론 그러하다) 어린 시절 그 노래에 꽤 마음이 쏠렸던 내게 있어서도 그닥 공감이 가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젖소, 절벽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헐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 대한 그의 농담조 낙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 노래의 感傷은 스스로의 상처에 대해 “노출이 너무 심한”의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그가 말한 ‘노란 꽃’에 대한 언급이 하이쿠일까 해서 생각도 해보고 검색도 해봤지만 찾지는 못했다.(적어도 하이쿠의 정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에겐 늘 시적인 분위기와 시 같은 노랫말이 존재한다. 존 레넌이 쓴 가사에서 하이쿠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을 고르자면 얼른 생각나는 것은 내가 늘 좋아하고 인용하곤 했던 아래의 두 줄이다.

 

Half of what I say is meaningless
But I say it just to reach you
/Julia

 

 

오래도록 나는 Julia를 그리움을 간직한 시처럼 생각했고, Strawberry Fields Forver나 Across the Universe 등에도 ― 그것이 하이쿠의 이미지를 가졌든 아니든 상관없이 ― 인상적이고 시적인 대목들이 있음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덧붙여 좋은 하이쿠에 대한 내 짧고 모자란 생각을 하이쿠 운율로 표현하자면 이러하다 ;

 

풍경이라면
절반 너머 감춰진
애타는 창가

 

 

/2023. 6. 29.

카카오 씨앗이 香을 얻기까지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졌다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어도 그 너머 하늘빛은 변함이 없다
형상을 잃어버린 초콜렛의 맛처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책속의 초콜렛 포장지처럼

 

어느 날 남아 있는 책 펼치다 책갈피인양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 하나를 발견했다 한 시절이었다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어서 미련과 아쉬움에 흐릿한 香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찰나였다 순간이었다 오래된 책 냄새 너머 향은 속절없이 흩어졌으나 짙은 갈색의 포장지는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카카오 씨앗을 醱酵시켜 향을 얻기까지 대략 열다섯 날, 내 책꽂이 어딘가에서 무한의 서가 알 길 없는 한 모퉁이까지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天上의 열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風化―바람이 만들었으나 바람이 되어버린 風景에 대한 바람이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2023. 6. 26. (+2017. 3. 10.)

+2017년에 쓴 4행을 바탕으로 했다.

 

 

+이 시를 구글 바드에서 테스트해봤다. 처음엔 실수로 제목을 넣지 않고 본문만 넣은 채 아무런 요구사항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올라갔는데 바드는 이게 시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름의 평을 했다. 다음엔 제목과 본문을 다 넣은 후 소감과 의견을 구했더니 제법 그럴 듯한 답변을 했다. 챗GPT에도 제목없이 본문만 올린 결과 여기서도 시로 파악하고 나름의 해설을 했다.  다만 이 시에 대한 해설에 국한해서는 바드가 조금 더 그럴 듯 했다.

 

 

 

Gozo, Malta - The beautiful Azure Window, a natural arch on the island of Gozo has been collapsed in 9. March. 2017. On this image you can see the before-after site, as the Window is at 50% opacity

Gozo, Malta – The beautiful Azure Window, a natural arch on the island of Gozo has been collapsed in 9. March. 2017. On this image you can see the before-after site, as the Window is at 50% opacity.(from “adobe.com”)

뭔데

그런 넉달 그런 4년 그런 20년……. 지나서 지나가다 찔
러보는 것도 아니고 뭔데 먼데 있는줄 알았는데 눈앞이었다는 것 슬
그머니 알려줘서 어떡하라는 건데 행복한지 힘겨운지 그리운지
괴로운지 어떤 사연 숨어 있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어 마냥 기다렸는데
남아 있는 나날 돌아 보면서 행복한지 힘겨운지 그리운지 괴로운지
안절부절 생각하는데 다시 한번 상처주길 기다리는지 다시 한번
상처받길 기도라도 해야하는지 피가 날지 안나는지 그냥 한번
찔러보고 가는 것인지 도대체
뭔데?

 

 


/Live in Dublin, 1978. 4., Christy Moore

 

유려하지 못한 스타일로 편곡된 썸머타임을 생각나게 하는 하미시 이말치의 원곡을
보다 단순하고도 깊은 느낌으로 노래하였다.
(하지만 이 노랠 따라 부르기는 만만치가 않다.)
여러 버전 가운데서 더블린 라이브가 심금을 울린다.
꽤 오래도록 이 노랠 좋아했고, 한참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 깨어났다.
진실로 이 노래가 그러하였으나 이 노래가 아니라…….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s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I love my love and well she know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goes
I wish the day it soon would come
When she and I could be as one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s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I go to the Clyde and I mourn and weep
For satisfied I ne’er can be
I write her a letter just a few short lines
And suffer death a thousand times

Black is the colou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had the sweetest smile and the gentlest hands
I love the ground whereon she stands

Gee whiz, I’m……

몇해만에 <스타맨 Starman>을 다시 봤다. 1984년의 SF영화는 더욱 촌스러웠다. <브라질>(1985)이나 <블레이드 러너>(1982)와 비교하면 더 그런 느낌이다. 제프 브리지스를 꽤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외계인 연기는 (인간으로의 적응 과정이라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행동하는 것이 좀 어색해 보였다. 차라리 표정 없는 ‘스타맨’ 데이빗 보위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소박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 허술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가 묘하게도 마음을 끈다. 제프 브리지스와 상대역인 캐런 앨런이 노래한 <All I have to do is dream> 또한 비슷하니 엉성함에도 나는 그 대목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외로움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로이 오비슨 버전을 좋아하지만 영화 속의 노래엔 풋풋한 느낌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제프 브리지스는 더 허술한 액션 영화 <R.I.P.D.>에서도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영화의 발단이 되었던 보이저호는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났다. 머지 않아 기능이 정지된 채 가없는 우주를 항행하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All I have to do is dream, Jeff Bridges & Karen Allen

 

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
When I want you in my armsWhen I want you and all your charms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dream, dream
When I feel blue in the nightAnd I need you to hold me tight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Anytime, night or dayOnly trouble is, gee whiz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I love you so and that is why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dream, dream, dream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Anytime, night or dayOnly trouble is, gee whiz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I love you so and that is why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Dream, dream, dream, dreamDream

 

 


/도입부에 나오는 ‘현실’.

 

 


/”B급리뷰” 채널의 요약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