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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화 흥

꽃 화, 버들 류
쉬 꺾을 수 있는 꽃이며 버들이라지만
그런 류만 넘쳐나지는 않는 법

실바람에 버들가지 흔들리듯
하찮은 이의 소원에도 귀 기울이시니
자비로운 그 분 곁에 심어놓기 위해
스님께서 식목원에 물었다

처사님,
그 버들이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처럼 축 늘어지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요
그 분 대답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화류춘몽에 은하 작교 무너졌으니+
곁에서 듣고 있던 나는
속으로만 답했다, 스님……

 

 

/2016. 3. 17.

 

+천안 삼거리.

타는 그 가락

바람결에 하늘거리면
속이라도 비칠 것 같은 커튼
그리고 여인의 얄따란 치마
어찌 못할 그 가락

 

+
아래처럼 고치기도 했으나 조금 난한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애가 타는’과 ‘내가 타는’을 어떻게든 넣어보려 했으나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그 둘이 생략되어 있다 말하고 싶은) 제목이었다. 좀 더 적당한 ‘가락’이 있을지에 관해서는 두고두고 더 생각해봐야겠다. 애초에 그랬듯,  ‘여인’이 아니라 페달 스틸 기타의 소리를 생각하며 썼다는 것은 말해두고 싶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면
속이라도 비칠 것 같은 커튼
그리고 어찌 못할 여인의 얄따란 치마
타지 못할 그 가락

 

잊었던 장소, 잊었던 그녀

엊그제, 갑자기 도서관엘 가고 싶어졌다. 적어도 두 계절 이상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곳인데 갑자기 금단현상이라도 찾아온양 가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우리 안에 있고 그 밖은, 도서관은 자유가 넘쳐나는 잊혀진 세계 같았다.

여섯시가 되자마자 마땅히 빌릴 책도 생각지 않은 채 무작정 도서관을 향했다. 그날 도서관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음에도 그랬다. 장서 정리를 위해서 3일간 휴관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이 첫날, 나는 어둠이 깔린 도서관 주변을 빙빙 돌다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벤치 옆에 잠시 앉았다 빈 손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재개관을 기다리며 몇권의 대출 리스트를 작성한 후 도서관 바로 옆 공원길을 잠시 산책하다 왔다. 그리고 오늘은 여섯시까지 참을 수가 없어 네시쯤에 자리를 비우고 도서관을 갔다. 책 몇권을 찾아서 무인대출기에 카드를 읽혔으나 비밀번호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데스크에 가서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책을 빌렸다.

민음사에서 나온 신간 두 권을 빌렸는데 책 장정이 참으로 불만스럽다. 이 유력한 출판사는 읽히는 책을 찍는 것이 아니라 카피하기 곤란한 형태의 책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듯 세로로 무지 홀쭉하여 펼치기 힘든 형태로 책을 만들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매번, 욕이 나올 만큼 불만스럽다. 정말이지 두 손으로 책을 잡지 않으면 읽기가 어려운 형태다. 어쩌면 책을 편히 읽기 위해서 카피라는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빌린 책 가운데는 <그 여자의 재즈 일기>가 있다. <그 남자의 재즈 일기>를 꽤 여러 번 읽었던 사람인지라 작년 언젠가도 이 책을 빌리려 애를 썼지만 (대출 가능하다고 나와 있음에도) 음악 섹션에서 그녀의 일기를 찾을 수가 없어 직원에게 문의도 했었다. 그때 여직원의 말인즉, 책이 이 서가 어딘가에 있는 것은 맞지만 아마도 전혀 다른 곳에 꽂혀 있는 듯 싶다. 언젠가 찾으면 연락 드리겠다고 했으나 나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까지의 3일 동안 도서 정리를 위해 휴관을 했다는 점에 근거하여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일기를 찾아 보았고 마침내 제자리에서 그녀의 일기장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 몇 페이지 살펴보니 지나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의 일기를 더 알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무슨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도 이러한 결말을 맞게 되리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펼치기 힘든 책 가운데 하나와 또다른 음악책은 내 잠자리를 즐겁게 해줄 것 같다. 뭔지 모를 허기를 책으로 때우고 도서관 자주 오가며 걷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야 쓰겠고 쓸 것 같다.

지금, 그리고 여기

어느 날엔가 바빌론으로 가는 길목에 덩그러니 문 하나가 생겼다. 하나 둘 사람들은 점점 그 문을 통해 바빌론으로 들어가길 좋아했다. 이런저런 구경거리도 있고 목적지에 아주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었다. 문앞에 가게도 차리고 좌판도 차리고 살림도 차렸다. 조금 돌아가면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으로만 들어가길 좋아했다. 오가는 이 모두가 비슷한 장사꾼들을 봤고 같은 소식을 들었고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반응들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다수는 각기 특별한 사람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구의 것도 아닌데 문의 주인들은 거대해진 관문 너머의 풍경을 지옥의 모습으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인들에겐 그들이 그 지옥의 박해받는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은근히 알려주고 싶어 했다. 오웰의 텔레스크린엔 감시와 처벌이 따랐지만 그들은 스스로 원하고 온갖 부정과 불의와 모순에 분개하는 무대 위에서 오직 잘못은 이 문이 보여준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친절하게도 알려줬다. 침과 욕망을 섞어 만들어낸 허영의 집에서 모두가 정의로 불을 태우는가 싶지만 실은 헛된 정념이 끓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는 많지 않았고 복두장이의 비밀을 말해주는 이는 더욱 없었다.

바빌론의 문 너머엔 온갖 좌판들이 펼쳐져 있고 광대들과 상인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소식과 웃음을 팔고 있었다. 문의 주인들은 순서를 만들고 점수를 매기고 그리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비밀스런 족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었다. 주인들은 지옥처럼 보이는 무대 저 편에서 그들의 눈물로 진주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욕망하고 더 많이 분노할수록 그들의 비밀스런 보석상자는 더 거대해지고 무대 위의 고통은 더 적나라해진다. 오멜라스의 어떤 사람들처럼 그곳을 떠나거나 멀리하고 있을 뿐 메이드 인 차이나를 떠나 살 수 없듯 그들을 떠나 살기도 쉽지 않다. 스스로 눈먼 노예가 되었으나 눈 번뜩이며 홀로 깨어 있는 투사인줄 알고 있으니 끓어오르는 분노와 욕망을 금으로 제련하는 비의는 그 뒷편 숨어 있는 주인들의 것일 뿐이었다. 더 높아지고 더 빛나는 금강의 세계가 당신보다 높은 곳을 보여주면서 그곳에 살지 못하는 당신을 나락이라 하였다.

조금 돌아가면 되는데 거기 돌아간 그만큼 조금 달리 보이는 풍경이 있는데 그 문으로 가지 않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결코 주인으로 불린 적 없는 주인들이 은밀한 폭력을 휘두르는 곳, 온갖 권세와 타락이 그 반대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바빌론의 문 저 너머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면, 블랙홀의 내부가 어떤 형상인지 알고 싶길 원한다면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없어도 될 문이 없어지기를 원한다면.

 

/2016.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