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J. Cale을 따라 흥얼거리다
보시다시피 주어섬기기 어려운
그 참 쌍스런 이름이에요
아시다시피 무척이나 길고도 긴 강이라지요
늘 그랬다시피 흐린 날 황혼녘이면
더 그리운 얼굴
멀고 먼 이역 땅인들 무슨 상관인가요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길 아닌 곳인들 어찌 잊고 가겠나요
짝을 이룬 글자들 마냥
비켜가고 돌아가도 쌍쌍이라니
그렇게 굽이굽이 따라 흐르렵니다
+김종삼
/2001. 12. 8.
: JJ. Cale을 따라 흥얼거리다
보시다시피 주어섬기기 어려운
그 참 쌍스런 이름이에요
아시다시피 무척이나 길고도 긴 강이라지요
늘 그랬다시피 흐린 날 황혼녘이면
더 그리운 얼굴
멀고 먼 이역 땅인들 무슨 상관인가요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길 아닌 곳인들 어찌 잊고 가겠나요
짝을 이룬 글자들 마냥
비켜가고 돌아가도 쌍쌍이라니
그렇게 굽이굽이 따라 흐르렵니다
+김종삼
/2001. 12. 8.
(Chega de Saudade : No Tempo da Bossa Nova)
1. 파서의 꿈
地球는 吾人의 住居하는 世界니 亦 遊星의 一이라.
ㅡ 서유견문, 유길준
‘希罗多德희라다덕’이라는 희랍의 학자가 입버릇처럼 즐겨 말했듯이 “나로서는 잘 믿기지 않지만” 직경이 이만육천십리나 된다는 박처럼 둥글게 생긴 지구의 저 건너편에는 ‘南亚美利加남아미리가’라는 별유천지가 있어 巴西파서라는 나라가 있다.
南亚美利加에서도 그 영토가 가장 넓은 이 나라는 남미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葡萄牙포도아의 말을 쓰고 있으나 많은 국민들이 글자를 깨치지 못한 설움을 안고 살고 있다. 수도는 파서리아巴西利亚이지만 里约리약, 그러니까 ‘里约热内卢리약열내로’라는 이름의 풍광 좋은 도시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백성의 대부분은 천주신앙을 지극정성으로 믿고 있으나 멀리 아불리가에서 유래한 무독(파서에는 이를 ‘마고파’라고 이른다)이라는 종교의 해괴한 풍속도 아직 남아 있다.
파서 사람들은 콩을 볶아 만든 咖啡가배라는 이름의 신묘한 차를 즐기는데 그 향이 워낙 짙고 독하여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헤어나오기가 힘든 것이 마약과 같다고들 한다. 또한 桑巴삼파라 불리우는 음악과 더불어 가무를 즐기는 습속이 있는데 咖啡나 桑巴나 그 맛을 본 사람들이 흠뻑 빠져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저 세인들에게는 글월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미개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사는 야만의 땅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지구의 허파라 불리우는 애마존 지대의 원시림과 伊瓜苏大瀑布이과소대폭포의 장관에다 里约의 아름다운 해변과 삼파축제, 위대한 삼파와 巴萨诺瓦파사낙와의 가인들로 해서 더욱 이름 높은 나라다.
그리고 그 숱한 파서의 별들 가운데서도 진정한 한량이 있었으니 시인이자 파서의 사신으로, 평론가로 가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이름은 费尼希邬斯비니희오사 迪摩赖斯적마뢰사다. 约翰列侬약한열농과 披頭合唱團피두합창단에서 시작된 나의 음악적 여정이 적마뢰사를 만나 그의 시가에 귀를 기울이니 내 삶의 행운이며 복이라 여긴다.

적마뢰사는 여느 가인과는 한참 다른 경력을 지닌 사람으로 일찌기 영길리의 우진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19세의 나이에 이미 노래를 쓰기 시작했고 만 20세가 된 1933년 <노정 路程 O Caminho para a Distancia>이라는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33세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아미리가 합중국의 도시 낙삼기의 부영사가 되어 파서의 사신으로 그 소임을 다 하였다.
외교관으로 일하던 40세 무렵에는 오비이사와 우려적희(Orpheus and Eurydice)라는 희랍신화에 근거하여 <오비오적의상(Orfe da Conseicao)>이라는 희곡을 세상에 내었는데 그가 음악과 연을 맺은 것은 이 희곡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오비오적의상의 음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무명의 작곡자 동교빈(본명 은동유 카루사 교빈)을 만나 평생의 친우가 되었고 두 사람은 더불어 숱한 가사를 지어 오늘날까지 널리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예술적 여정은 자신의 기념비적 작품 “성찬삼파”에 잘 묘사되어 있다.)

1958년에 세상에 알려진 노래 “만회사념(Chega de Saudade)”은 적마뢰사가 동교빈과 더불어 만든 최초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그 곡이 지금에 와서 파사낙와로 불리우는 가사형식의 시초가 되었다. 파사낙와의 교종이라 불리우는 길패두가 비파를 뜯고 애리채기 카도수가 노래하였다. 이 곡이 수록된 애리채기의 시가집은 지애적가, 즉 지극한 사랑의 노래라 불리운다.
바야흐로 느린 삼파가(Samba Cancao)의 전통에 작사악(Jazz)을 가미하여 한층 세련된 형식과 리듬으로 다듬어진 파사낙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동교빈이 곡을 짓고 만동사가 가사를 쓴 “주조(Desafinado)”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신경향’이라는 뜻을 지닌 파사낙와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어 이때부터 이러한 종류의 음악을 파사낙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음치’라는 제목의 노래가 파사낙와를 세상에 알린 셈이다.

한편 마헐 카류라는 법국의 감독은 <오비오적의상>을 바탕으로 <흑인 오비오>(1959년)라는 활동사진을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로역자 방법(루이즈 봉파)이 곡을 쓴 “가년화청신(Manha de Carnaval)”과 동교빈/적마뢰사의 “쾌락(A Felicidade)”이라는 시가가 파서의 음악을 육대주에 알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또한 작품성을 인정받아 풍광좋은 법국의 도시 감성(Cannes)에서 열리는 감성전영축제 대상작이 되었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적마뢰사는 1966년의 전영축제에서 심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교빈과 적마뢰사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이파니마의 여해(Garota de Ipanema)”라는 파사낙와 형식의 시가였다. 어느 날 이파니마에서 만난 애로의사(Heloisa)라는 낭자에게 반해버린 동교빈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던 적마뢰사는 그를 위해 “이파니마의 여해”라는 시를 썼고 거기 동교빈이 곡을 붙인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파사낙와 가락이 되었다. 애로의사에 관한 동교빈의 연정은 결실을 맺지 못했으나 노래만은 남아서 옛 사랑의 전설을 오늘도 전해주고 있다.(동교빈은 애로의사의 혼인식에까지 동부인 하여 참석하였다니 양반이 할 노릇은 아니었던가 싶다.) 하지만 애로의사는 추후 자신의 딸과 더불어 어느 도색화집에 나체의 초상화를 실어 동교빈의 순정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니 애로의사의 애로가 그런 것이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기억함인지 지금도 파서의 리약이나 아미리가합중국의 장안 화성돈에 가면 이파니마의 여해를 기리는 “여해루”라는 반점과 “적마뢰사”라는 이름의 요리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음주가’를 몹시 즐겼던 적마뢰사는 보리로 만든 술(碑酒)을 마시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만고의 명언을 남겼다.
꽃다운 청춘이라 하염없이 지내려니
쓸쓸한 이 내 마음 밤이 되면 잠 못 이뤄
파서 노래 듣는 객을 님인 줄 모르다니
언제나 좋은 기약 고운 님을 만나볼까+
ㅡ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만회사념(滿懷思念)”은 Chega de Saudade의 한역.
+말미에 인용한 글은 본시 매월당의 시인데 “남교에 지나는 객”을 글의 성격에 맞추어 “파서 노래 듣는 객”으로 바꾸었다.
+1883년 9월 유길준은 27세의 나이로 보빙사(報聘使)가 되어 미국을 돌아보고 1885년 12월에 돌아왔다. 1896년 4월 1일은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된 서유견문(西遊見聞) 1,000부가 발간되었던 날이다. 이작자의 이 글 또한 그에게서 배운 바 크다. 적마뢰사와 파사낙와에 관한 기록을 쓸 계기를 준 NCRW에도 감사한다. 다음 회에는 적마뢰사의 60년대 시가집들을 살펴볼 예정.
/2003. 3. mister.yⓒmisterycase.com
+<레코드방>에서 옮겨올만한 글이 별로 없었는데 보싸노바의 역사에 관해 무협지 풍으로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무려 13년 전에 쓴 것인데 계속 작업하려 했으나 인명, 지명, 노래 제목의 한자어 변환에 시간이 너무 들어 2편까지밖에 못썼다. 오늘 글 옮기면서도 조금 수정하고 추가했는데 만회사념 ㅡ ‘사념’을 돌아보며 적마뢰사의 시대에 관해 수정 작업도 하고 이어서 써볼까 생각도 든다./+2016. 8. 20.
<오비영>의 배경에 기타 연주를 넣었습니다.
<전망 좋은 방>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었듯 <오비영>에도 마땅한 소리를 찾아야 했지요.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어떤 곡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이 쓴 곡은 아니지만 기타를 연주한 그 역시 빼어난 작곡가입니다. 그가 이 곡을 연주하던 시절을 보면 ‘검객’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타를 들었고 가끔 노래도 했으니 가객이 더 맞겠습니다만 짧은 머리카락에 형형한 눈빛, 그리고 날카로운 연주가 검객을 생각나게 합니다. 연인의 눈동자에 어린 시를 읽어내고 그것에 관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도입부를 만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릴 만큼입니다.(기다리다 조금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같은 어눌한 목소리를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의 칼날이 시의 눈, 시의 눈빛이 되어 가슴을 베고 지나갑니다. 어느 순간 그 상처로부터 내가 놓쳤거나 버렸거나 잃어버린 것들이 멈출출을 모르고 핏방울처럼 흩어집니다. 하지만 애써 누르지는 않습니다. 어찌 쓰라림이 없겠습니까만 잠깐 그런다 해서 아물 상처가 아닌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상처가 소리가 된다면 그럴 것이고 어떤 시가 소리가 된다면 그럴 것이고 나는 또 그 소리를 베껴쓰고 싶습니다. 표절처럼 그대로 옮기고 싶습니다.
mister.yⓒmisterycase.com
+
<오비영> 카테고리는, 대부분 기존에 쓴 시로 이루어진
누군가의 시집 계획서 또는 시집인데 문턱(패스워드)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오픈이 되겠지만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너의 관자놀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머리칼아 너는 무엇을 가릴 수 있니
당산나무 지나서 골목 하나 건너고 몇 걸음만 옮기면 파랑 빨강 이발소 표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추어 있었어 흠집 투성이 자개무늬 둘러진 거울 앞에 앉자 나는 정물이 되어 있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이발사는 미련없이 가위질을 시작하였고 머리칼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어 뚜뚜뚜 뚜, 재빠른 가위질과 느릿한 졸음이 때맞춰 들려오는 정오 뉴스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지
머리칼아 너는 무엇을 자를 수 있니
비누거품아 너는 무엇을 터뜨릴 수 있니
보드랍고 하얀 천 위에 번민들이 이리저리 뭉쳐지고 있었어 상고 머리의 낡고 촌스런 얼굴이 거울 대신 자리잡고 있었지 이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한 거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물이라는 것, 꼭꼭 새겨두고 있었어 그래, 어디까지든 재빠르게 따라오너라 더벅머리는 밤톨처럼 까칠까칠 더 이상 깎을 수도 없었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으며 이발사가 웃으며 노래했지 꿈은 어디로 갔니 양철 세면대가 초록빛 연못으로 깊어만 갔지 너는 어디에 있니 수돗물 소리와 머리 감는 손길이 이발사의 꿈 노래에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였지 숨가쁜 너의 명치에 무슨 일이 있었니 꿈아 너는 무엇을 만질 수 있니
뚜뚜뚜 뚜,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억양 하나 바뀌지 않을 듯한 정오의 뉴스, 이발소 표지가 빨강 파랑 내 마음처럼 어지러이 돌아가고 있었어 몇 걸음 건너뛰어 골목 하나 지나면 당산나무, 터벅터벅 촌스런 더벅머리가 걸어가고 있었지 꿈아 너는 무엇을 잡을 수 있니 너는 무엇을 깨울 수 있니
mister.yⓒmisterycase.com, 2000. 6. 6.
오 한봉지 씨를 뿌렸네
놀라운 그녀를 온실에 심어둔 거야
그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겨 잘도 자라지
아름다운 여인이 되지
내가 원했던 것은 식물 같은 여자
아름답고 착하고 순종하는 식물 같은 여자
원할 땐 뭐든 다 들어주는 동물 같은 여자
그녀는 결혼을 위해 식물이 되지
그녀는 아기를 위해 식물이 되지
그녀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식물이 되지
내가 오직 원했던 것은 그런 식물성,
식물의 주인은 제멋대로 분재를 하네
주인은 마음대로 가지치기를 하네
주인은 잊어버리고 때론 죽여버리네
관상용 식물에 마음을 뺏기고 있지
꽃피는 난초들 속에서 담배를 끊기도 하지
하지만 꽃이 지면 또 잊고 없애버리지
오 또다른 노란 떡잎이 자라고 있네
어린 주인과 어린 식물이 형제처럼 자라고 있네
그녀는 다이어트를 위해 식물이 될 거야
그녀는 또다른 사랑을 붙들기 위해 동물이 될 거야
그녀는 또다른 식물의 엄마가 되어
또다른 어린 주인을 키워간다네
그녀의 눈물 같은 무수한 낙엽
그 희미한 잎맥만이 길의 끝을 알고 있다네
mister.yⓒmisterycase.com, 1999. 3. 1.
어디에 소용있는 그리움일까
비 쏟아지는 창가 화분이 시들하다
연일 지독하게 햇살만 내리쬐다 모처럼 후련하게 비가 쏟아졌다. 금세 그치는가 싶더니 천둥까지 보태어가며 오후 내내 오락가락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였던지 알려준다며 콩닥대던 빗방울의 리듬이 사라진 자리, 비의 노래들을 생각하며 한참을 보냈다.
사이먼 버터플라이의 비는 가볍게 흩날리고 비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마리 라포레는 조금 부담스럽게 질척인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비음의 발음을 따라 우리나라에서 다시 비가 되어 불려졌다. 쇼비 쎙빠라… 우림을 향해 끝없이 쏟아지는 조지 벤의 비에서는 이국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슬픔이 느껴지고, 발터 반달레이의 오르간은 비의 바깥인양 안온하다. 벨로주의 여름 비는 늘 내 마음 같았고 다윗의 별이 뜨는 나라의 상징인 하티크바는 희망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이 땅에 와서 연지곤지 예쁜 얼굴 빗물로 다 젖게 만든다는 서글픈 비가 되었다. 마음이 그러하면 비가 아닌 것도 비가 되었고, 이국의 희망가는 비가로 바뀌었던가 보다.
it’s hard to listen to a hard hard heart…… 그리고 패티 그리핀의 노래가 다시 귀에 들어왔다. 그녀의 앨범 제목 하나가 마음을 끌었다. 이제 비는 그쳤고 비의는 어디에도 없이 비의 자취만 남았다. 숱한 마음이, 비에 관한 수많은 노래가 강물 위의 비처럼(라일락 타임) 사라졌으나 어쩌면 그냥 팝송, 흘러갔거나 흘러갈 팝송처럼 또 비가……
어디에 소용있는 그리움일까
화분 홀로 시들한데
남의 일인양 비 쏟아지는 창가에는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rain, patty griffin
+
10여년쯤 전에 쓴 두 줄은 말 그대로 드라이하고, 오늘 고쳐써본 글은 보다 디테일하다.
다시 쓸 때는 고친 것이 좋아 보이더니 결국엔 사족이거나 헛수고인 듯도 싶다.
패티 그리핀의 노래 영상에 내 글과 비슷한 느낌이 있어 여기 시를 붙였다.
나의 마음 속에 항상 들려오는
그대와 같이 걷던 그 길가의 빗소리+
는 아니다. 소리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1984년 채링턴 문방구의 다락방에서 윈스턴 스미스와 쥴리아가 마셨던 ‘진짜 커피’ 같은 느낌 ㅡ 예전에 좋아했던 어떤 원두커피의 조합이 생각난다. ‘마일스톤’이라는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아이리쉬 크림’에 ‘프렌치 바닐라’를 살짝 섞어 연하게 커피를 내리면 ‘아이리쉬’라는 단어의 어감처럼 맑고 깔끔한 맛이 났다. 그 커피 맛을 본지는 10년은 더 된 듯, 특별히 고급스런 제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느 아이리쉬 가수가 흥청망청 즐거이 노래할 때 그녀의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 무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앉아서 아코디언(반도네온)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내 눈을 끌었다. 마치 삶과 음악과 어울림의 기쁨으로 충만한 듯한 이의 모습 같았다. 그런 척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즐거움 밖에 없는 것 같아, 웃음 밖에 없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좀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찾아보려 했으나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웃지 않는 그녀의 사진을 찾기가 쉽지 않듯이. 삐아솔라 류의 어떤 엄정함도 고뇌도 없이, 케이준/자이데코의 고락과 애환도 아닌 시끌벅적한 축제만 있을 뿐이어서 그녀 자신이나 그녀가 참여한 곡 가운데 딱히 좋아할만한 연주나 노래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녀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묘하게도 내게 조금 위안이 된다. 그래서 가끔 그녀를 찾아서 본다. 도저히 풀 길 없는 마음에 약간의……
그리고 단 한곡, 그녀가 아코디언을 연주한 어떤 라이브는 마음을 울렸다. 슬픈 곡조여서 그런 것은 아니고, 연주와 보컬(그녀가 노래한 것은 아니다)이 무난히 마음에 들었던데다 그 곡이 내게 주는 의미가 각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지만 피들과 틴 휘슬 연주도 곧잘 한다. 그녀는 1968년에 태어났다.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데+
80년대의 허전한 끝자락은 그렇게 흩어졌으나 아코디언보다도 노래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오래 전의 아이리쉬 커피맛과 그것을 기억나게 하는 그녀의 웃음이다. 1968년으로부터의 웃음이 시끌벅적한 이국의 잔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어떤 구경꾼의 눈을 가득 채우며.
(커피는 결국 찾았다. 역시나 내 기억의 흠결 ㅡ 마일스톤이 아니라 밀스톤이었다. 그래서 다시 살펴보니 조금 달라진 포장의 프렌치 바닐라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이리쉬 크림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이리쉬의 향은 아이리쉬에게서 맡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
이영훈.
아직 히우에서는 올림픽이 진행중이다. 소식이야 매일같이 듣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는 나라의 제일 큰 도시에서 열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에사 히우 올림픽의 마스코트를 보게 되었다. 이름이 비니시우스였다. 비니시우스라면 나는 단 한 사람을 깊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니시우스의 곁에는 또다른 마스코트도 하나 있었다. 장애인 올림픽을 위한 것인데 그의 이름은 ‘통’이었다. 비니시우스와 통,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브라질의 시인이자 외교관, 가수, 작곡가, 그리고 영화 평론가였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작곡가 안토니오 까를루스 조빙이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비니시우스란 캐릭터는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늘이고 체력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은 좋은 일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통의 머리를 덮고 있는 변화무쌍한 잎과 열매는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지한다고 한다. 지금은 ‘비니시우스와 통’을 검색하면 온통 마스코트가 먼저 나온다.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 사실 마스코트에서 그들의 음악과 사연은 전혀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 모습이 히우의 올림픽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하였다. 그리고 마스코트로 본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레 Carta ao Tom을 생각나게 했다.
꼬무 지지아 이 뽀에따 ㅡ 이 노래에 대해 비니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텅 빈 호텔 방에서 나는 톰을 그리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내지 않은 숱한 편지들처럼 그에게 편지를 쓰고자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낑요을 불러 새로운 노랠 쓸 시간이라고 했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멋진 보싸노바의 시대와 우리가 했던 것들을 회상했다. 그 곡의 이름은 ‘톰에게 보내는 서신 74’이다.”
1974년의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그것이 74번째란 생각도 한다. 두 사람이 “이빠니마의 소녀”를 만든 나씨멘뚜 씨우바 거리 107번지 ‘통’의 집에서 엘리제찌 까르도주를 위해 “깊은 사랑의 노래”를 쓰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곡의 피아노 전주는 노래 가사 속에도 나오는 ‘헤덴또르(예수상)’가 있는 언덕의 이름 ㅡ “꼬르꼬바두”의 주제부를 상큼하게 차용하고 있다.
Ah que saudade…… 그들의 음악과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그리고 내 귀가 온통 브라질을 향해 있던 시절을 그들처럼 그리워하며 나도 편지를 쓴다. 2분 36초의 시간을 하염없이 늘여가면서.


+첫곡은 오리지널이고 두번째는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세상을 떠난 후 이루어진 추모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것이다. 원곡처럼 산뜻하고 상큼하지는 않지만 그 어떤 공허감을 나는 알고 있다. (1974년 이후 조빙은 자신에게 온 편지에 답을 붙였고 그래서 Carta ao Tom / Carta do Tom으로도 불리우곤 했다.)
++비니시우스와 통. 그런데 파서의 발음으론 좀 그래서 그냥 ‘통’으로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ㅌ과 ㄸ의 가운데쯤, 그리고 통과 토의 가운데쯤(비음)인 듯 싶다.
더위만이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는 오전의 한산한 거리, 겨우 햇빛 가릴 정도의 평상에 늘상 술 드시는 아저씨가 어김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평소 배경처럼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도 쌀집 할머니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그의 곁엔 행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남편도 없는데 딸이 섭섭하고 빌어먹을 담배값은 너무 비싸다. 숨막히는 열기에 내 속이 세상 같고 세상이 내 속 같은데 한숨으로 탄식으로 정처없이 떠돌며 간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나를 따라 오고 있다. 한참을 그들과 더불어 걷다 육교 위로 올라갔다. 우산처럼 보이는 양산을 든 여인이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머리 위로 햇살인지 빗줄기인지 모를 사선이 하염없이 내려꽂히고 있다. 육교를 내려온 그녀는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느리고 뜨거운 바람을 타고 그들이 부유하고 있다. 길가에는 터지지 않은 폭죽이 납작하게 일그러진 채 흩어져 있었고 석달간 파지를 모았으나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뵐 수가 없다. 어디서 얻었는지 지난 겨울 내내 그분이 입고 있던 낡고 두껍고 하얀 미키마우스 털옷을 생각하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머지 않아 파지가 될 종이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그분의 불편한 한쪽 손보다 더 불편한 것 같은 손으로. 나도 생각도 종이처럼 얄팍해지고 있다.
금강경에 관한 어느 책에서 승조 스님의 일화를 보았다. 환속하여 재상이 되기를 바라는 황제의 요청을 거부한 까닭에 죽음을 당하게 된 그는 마지막 칠일 동안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궤뚫은 <보장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스님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보르헤스를 생각나게 했다. <허구들>에 실린 단편 ‘비밀의 기적’이 그랬다. 사형을 기다리는 8시 44분에서 9시 사이, 그리고 격발의 순간에서부터 총알이 자신을 뚫고 지나가기까지의 찰나를 1년의 시간으로 연장시키며 자로미르 홀라딕은 필생의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9시 2분, 창작의 희열 속에 그는 죽었다.
그리고 또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관한 회상이라고나 할까… 스파이크 리의 <25시>에는 수감을 앞둔 주인공 몬티의 행복한 미래의 삶이 꿈처럼 이어진다. 가석방을 마치고 7년의 형기를 채우기 위해 교도소로 가는 길,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속에서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아버지의 계획과 선택을 따라 교도소로 가지 않고 달아나는 것이다. 그는 어느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옛 사랑을 다시 만나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모든 것이 교도소로 가는 길에 꾸었던 짧은 꿈이었다. 그는 반성하지만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고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환영 속에서 잠깐 현실을 잊었을 뿐이다.

또 필립 K.딕의 단편 ‘냉동여행’은 반대로 크고 작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에 사로잡혀 무한한 고초를 겪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광속 여행의 와중에 지난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광년의 거리와 시간을 과거의 잘못과 고통들을 반추하며 보내는 것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인생 또한 마찬가지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비밀의 기적과 고통의 무한반복이라는 극단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지점들이 있다. 내가 알거나 들었거나 전혀 모르는 비슷한 수많은 사연들이 거기 있을 것이다. 焉敢生心 , 홀라딕이나 승조 스님의 이야기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게으름과 무기력을 물리친다면 소소한 몇 페이지 일기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밀의 기적’의 서두에 적절하게 인용된 코란의 구절 역시 이들 모든 이야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를 100년 동안 죽게 한 다음
그를 살려냈고,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ㅡ 너는 얼마 동안 여기에 있었는가?
ㅡ 하루 또는 하루의 일부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하루 또는 하루의 일부. 또는 지상에서의 매미의 일주일 같은 삶의 길이는 찰나에서 거의 무한에 이르기까지 다른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승조 스님이 남긴 열반송을 사족처럼 여기 덧붙여 본다.
四大元無主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
五陰本來空 다섯 가지는 본래부터 비어 있었네
將頭臨白刀 장차 흰 칼날이 내 목을 자를 것이나
猶似斬春風 마치 봄바람을 베는 일과 같을 뿐이네
(‘사대’는 세상 만물을 이루고 있는 흙, 물, 불, 바람의 4원소를 의미하며 ‘다섯 가지’는 생멸과 변화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을 상징하며 그 각각은 물질, 감각, 지각, 마음의 작용, 마음을 의미한다.)
mister.yⓒmisterycase.com,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