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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보았지 별 하나 찾기 힘든 그곳,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지
다만 오래도록 태양을 쏘아보던 사내가 있었고
한결같이 힘들고 외로운 길 위에서
직녀성을 향하여 쏘아올린 닿지 못할 꿈이 있었지
원주율 속에 숨겨진 비밀을 따라 컨택트의 꿈을 찾다
너무 비싼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야
창백한 푸른 점, 비닐 포장에 둘러싸인 두터운 책 표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안을 속옷처럼 엿보고 싶어 했지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창백한 푸른 점을 가득 채웠지
너도 그 안에 있고 모두가 그 속에 살고 있지
단풍 같은 마음은 빛바랜 채 유구한 것
도시의 야경 너머로 보이지 않는 별이 그 자리에 멈추어
시린 밤이 새도록 창백히 떨고 있었지
무릎마저 젖어드는 새벽녘 짧은 꿈길
홀로 부유하며 창백한 푸른 점에 귀를 기울이면
그리운 숨결이 아직은 들리고 있지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거문고 가락이 하늘 길을 따라 창으로 흐르고 있지

 

+칼 세이건

 

/1999. 10. 7.

빗방울로 걸다

띄엄띄엄 외우지도 못할 긴 번호입니다. 벽지 구석마다 얼룩이 잦아들면 빗방울 소리가 나를 대신합니다. 부엌 창틀에 빗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다르고, 팬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다릅니다.
띄엄띄엄 알지 못할 긴 번호를 눌러 봅니다. 낮은 구름장이 붉은 빛을 띤 새벽, 발신음도 들리지 않았는데 급한 걸음들이 달려갑니다.
추적추적 떨어지는 그 소리는 늘 틀림없는 번호로 이어집니다. 계란 껍질 가지런히 둘러져 있는 화분에 닿는 소리가 다르고, 철벅이는 발자국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다릅니다.
마음의 틈새마다 사방 벽지마다 그리던 모습대로 떠오릅니다. 잠들 무렵이면, 어두운 손길마다 하나씩 훤히 불이 켜지고 머리칼의 길을 따라 빗소리가 참하니 나를 다듬습니다.
띄엄띄엄 외울 필요도 없는 길고 긴 통화입니다.

 

 

/1999. 9. 16.
/2025. 9. 14. 마지막 줄 추가.

신용사회

“나를 믿을 수 있어?”
“아니, 널 믿을 수 없어. 너는 너무 무능해. 너의 ST가 너무 나빠.”

오래 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오래 전이 얼마 만큼의 시간인지 그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분명 몇달 또는 1, 2년 보다는 더 흘렀음을 알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대형 크레딧 매장에 들러 맥주를 사고 싶었다. 모처럼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고…
체커. 언제나 매장의 정문을 들어서거나 나올 때는 신기했다. 어떻게 알수 있을까… 눈을 인식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손의 지문을 비접촉의 교묘한 방식으로 판독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빈털털이인 그의 마음을 검색하는 것일까. 단층촬영의 방식으로 그의 갈비뼈에 뫼비우스 코드를 기록하고 스캔하는 것일까…
어딘가에 블랙박스가 있었고 그것은 물론 조난 이후라야 개봉 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이 안정된 사회 속에서 물가는 결코 변동이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은 일정 수준에서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다른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좀처럼 수정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불변의 경전이었다.
그럼에도 물가는 결국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 가격과 자신의 크레딧의 조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용신뢰도는 급전직하의 추락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숫자를 볼 때마다 마음은 더 참담했다. 어디 공동 작업 센터나 리싸이클 센터로 가면 어느 정도는 레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힘겹게 다니는 노인을 잠깐 도와주거나,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거나,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지만… 정신지체아동을 위해 약간의 도움을 줘서 그가 도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ST 레벨을 잘 유지하려면 좀 귀찮고 비참한 것이라 해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고난에 빠진 누군가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억지로 휴지조각을 찾아서 줏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참담함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그는 점진적 개선이라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낮엔 우연히 시동이 잘 안걸리는 자동차로 애를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도와주었다. 그냥 그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랬을 뿐…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이미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없는 세상이었다. 착한 일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수치로서 보상받고 처벌받으니 모두가 자업자득인 것, 자신의 행운이고 문제일 뿐이었다.
만약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면 넘어져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운 자신이 그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내 ST를 향상시켜줘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상냥한 미소를 보내거나, 아무런 까닭도 없이 고맙다 생각하고 말해도 ST는 조금씩 개선되는 법이고 실제로 그렇게 즐겨 말하는 구두쇠 같은 인간들도 몇몇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지쳐 있었고 피곤했고, 너무 많은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CM의 출구 ㅡ 자신이 서 있는 줄에서 그의 ST 레벨이 최악의 수치로 출력되었을 때 그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급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몹시도 부끄러웠던 한 순간이 지나고 허탈한 느낌이 몰려왔다. 그리고 의혹의 그림자도 거기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왜 자신보다 더 낮은 신용도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뒤처진 낙오자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은 진정 의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미지근한 캔 맥주를 따서 마셨고, 간소한 침대에 누워 Self-Vision을 켰다. SV조차도 그의 크레딧 폭락을 가장 큰 화젯거리로 다루고 있었고, 끊임없이 경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SV도 그러할까. 이런 도덕-경제 이야기만 가득하고, 노래는 캠페인 송만 나오고, 영화는 의식고양을 위한 교훈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분명 그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딘가 향기가 분명 있었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힘겹게 채널을 돌릴 수 있었다. 어느 채널에선가 신용과 사회에의 기여에 관한 지루해 보이는 영화가 시작될 참이었다.
잠결이어서일까… 그 영화의 주인공은 꼭 자신처럼 보였다. 그의 상대역은 오래전에 가버린 그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른한 마음은 이미 눈을 감았고 잠결에 큰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깨어보니 그녀 혼자 남몰래 눈물 흘리며 크레딧 마켓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잠깐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밤새 행군을 하고 온 사람처럼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창문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한때 이 방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전 세계의 많은 음악들을 집대성한 보기드문 최고의 데이타 베이스가 있었고, 아무 쓸모 없지만 정교하고 아름답게 생긴 항해용 나침반도 있었다. 곰팡내가 날만큼 오래되었고, 무슨 의미를 담고있는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몇 권의 아름다운 책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텔레비전, 냉장고, 간단한 주방도구와 세면대,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SV, SR(Self-Radio)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했다. 아침을 먹는 고역을 대신하여 반컵 정도의 우유를 마시고는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자 했다.
어디에나 있는 체커. 이 슬럼가에서조차도 그는 거의 최저 레벨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카운터가 0을 켜고 있었다. “쳇, 0이라니. 고장인데도 아무도 관심도 없군…”
하지만 주거지역을 벗어나 교육지역을 통과할 때 살펴본 체커에도 어김없이 그는 0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숨이 막히고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0. 그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꿈의 숫자였다. 인도 최고의 마법, 마야의 신관과 천문가들이 헤아리고 싶어했던 꿈, 충만과 공허의 극점에 있는 무엇… 그것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가슴 벅찬 일,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나눌 수 있는 황금의 열쇠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모든 체커는 어김없이 자신이 레벨 제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불신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Meta Market으로 달려가 한구석의 Sound Part를 뒤졌다. 그리고 뛰는 가슴으로 물건을 골랐다. ㅡ Virtual Sphere Sound System.
자신의 신체를  정확히 계산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반경에서 마음껏 실컷 큰 소리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허리띠 버클형의 VS3를 구입하였다. 정말 얼마만에 들어보는 음악인가.
그가 자신의 VS3와 음악 데이타를 고민끝에 처분해버린 것은 ST 유지를 위한 비참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거의 아무도 거기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길고 혹독했던 외로운 시간, 한번씩은 그녀에 관한 느낌 만큼이나 그리운 소리들이었다.
VS3의 소리 반경을 개방시키면 공공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에 ST 레벨이 나빠지겠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꿈도 꾸지 못할 너무 높은 레벨이었기에 기꺼이 소리로 이루어진 구의 장막을 열었다.
엄청난 볼륨이 사방으로 뻗어나갔을 때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깐 놀랐을 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들은 모두 영상-감각합치형의 Meta Sphere를 좋아할 뿐이었다. MS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결국 세상의 중심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Self-Radio에서 나오는 지리멸렬한 노래들을 잠깐 떠올리다 뛸 듯이 기뻐했고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걷고 달리다 보니 지구라트형으로 건축된 휘황찬란한 큰 건물이 보였다. “참,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방구석에 처박혀 지낸 것일까. 이 근처에 이런 건물이 있는지도 몰랐다니…”
건물의 영롱한 네온싸인에는 Karma Hotel이라는 이름이 날렵한 글씨로 적혀 있었고, K.A.R.M.A.가 순차적으로 소멸하고 다시 켜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Karma 네온이 어둠에 잦아들 때면 형광빛 램프로 “Well, We All Shine On!”*이라는 글자들이 대신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레벨 제로의 당당함으로 KH의 화려한 입구를 거리낌없이 통과하였다.
그를 맞이한 호텔 웨이터는 ST 레벨이 준수한 아주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따뜻하게 그를 접대하였고, 그의 마음에 꼭 들만한 최상층의 가장 매력적인 룸으로 그를 안내하였다. 그 방은 Flashback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호텔 최고의 시설이었고 평생토록 꿈꾸어온 순간이 거기 있었다. 놀라운 방에 관한 경외감과 찬사로 그는 웨이터에게 소정의 ST를 주고 싶었지만 그는 미소로 정중히 거절하였다.
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거기 자신의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극단의 꿈의 향연이었고 악몽의 조합이었고 아파도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무한에 고양되고 도취된 그는 온갖 즐거웠던 순간들의 꿈을 꾸며 달콤하고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룸 써비스가 전혀 필요없는 그 방 자체가 완벽한 세계였다. 그는 그 긴 밤의 한 가운데서 그녀를 만났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레벨 제로의 길을 보았다.

카르마 호텔의 웨이터가 방을 정리하기 위해 손님의 부재를 확인하고 들어왔을 때 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는 신용유지국의 확인증을 보는 아주 짧은 순간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는 그게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아주 길고 험난한 시련을 넘어 발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리고 망각해버린 무엇이었다. 그는 즐거운 휘파람을 불며 FB의 문을 잠갔다.
그가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방의 이름은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영원토록 지속될 Feedback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부재에 다시 직면할 때까지.

ㅡ 나를 믿을 수 있어?

 

1999. 8. 17. jjlee(c). * Instant Karma

 

싸이카

ㅡ 금지곡을 위하여

 

달려, 불꽃이 날리기 시작했지 굉음이 터져야 할텐데 모기 소리만큼도 들을 수 없었어 터널로 들어섰는데 바깥이 더 이상해 보였어 사실은 그 바깥이 정말 터널 같았지 난 시계가 고장난줄 알았어 계기판이 빙빙 돌아 미친줄 알았지
그걸 좋아하니 너도 알 수 있을 걸 느끼고 싶어하니 너도 가고 싶을 걸
가로등이 휘어지면서 앞길이 옆으로 펼쳐지기 시작했어 물고기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느낌 알고나 있을지 몰라 어안렌즈가 장착된 카메라가 아닌 다음에야 볼 수나 있을지 몰라
아득히 멀리 바늘 귀같은 점이 보이는 순간 나는 거대한 흑점 안에 있었어 그 차가운 점 안에 있다고 느낀 순간 점은 사라져버렸어
달려, 있는 힘껏 달려 가슴이 벅차올라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나는 돌아올 때 역회전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만약 따라간다면 요람까지 만약 좇아간다면 무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순찰차 경광등이 깜빡이는 순간이 천년이나 되는 줄 알았어 경관이 잽싸게 총을 뽑았지만 그건 정지화면이었지 경관이 부리나케 총을 쏘았지만 거북이 놀음이었어 그랬어, 난 너를 위해 그 총탄을 가져왔지 기어오는 총알을 잠시 기다리다 슬쩍 낚아챈 것이야
꿈길마저 온갖 이름의 수갑을 채우려 한다면 그나마 자유가 아니라면 달려, 목청이 터질 만큼 고함지르며 달리고 싶어 힘줄이 끊어질 만큼 지금 당장 달리고 싶어
아, 다시 한 번 또 그렇게 해보고 싶어
너랑 같이 누워서
그 짓을 해보고 싶어

 

 

/1999. 8. 6.

싸이카

ㅡ 금지곡을 위하여

 

달려, 불꽃이 날리기 시작했지
굉음이 터져야 할텐데 모기 소리 만큼도 들을 수 없었어
턴넬로 들어섰는데 바깥이 더 이상해 보였어
사실은 그 바깥이 정말 턴넬 같았지
난 시계가 고장난줄 알았어
계기판이 빙빙돌아 미친줄 알았지
그걸 좋아하니 너도 알 수 있을 걸
느끼고 싶어하니 너도 가고 싶을 걸
가로등이 휘어지면서
앞길이 옆으로 펼쳐지기 시작했어
물고기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느낌 알고나 있을지 몰라
어안렌즈가 장착된 카메라가 아닌 다음에야
볼 수나 있을지 몰라
아득히 멀리 바늘 귀같은 점이 보이는 순간
나는 거대한 흑점 안에 있었어
그 차가운 점 안에 있다고 느낀 순간 점은 사라져버렸어
달려, 있는 힘껏 달려
가슴이 벅차올라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나는 돌아올 때 역회전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만약 따라간다면 요람까지
만약 좇아간다면 무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순찰차 경광등이 깜빡이는 순간이
천년이나 되는 줄 알았어
경관이 잽싸게 총을 뽑았지만 그건 정지화면이었지
경관이 부리나케 총을 쏘았지만 거북이 놀음이었어
그랬어, 난 너를 위해 그 총탄을 가져왔지
기어오는 총알을 잠시 기다리다 슬쩍 나꿔챈 것이야
꿈길 마저 온갖 이름의 수갑을 채우려 한다면
그나마 자유가 아니라면
달려, 목청이 터질만큼 고함지르며 달리고 싶어
힘줄이 끊어질만큼 지금 당장 달리고 싶어
아, 다시 한번 또 그렇게 해보고 싶어
너랑 같이 누워서
그 짓을 해보고 싶어

 

 

/1999. 8. 6.

라듸오 1973

맑은 소리가 없던 시절입니다. 반쯤 망가진 미닫이문의 촘촘한 창살 사이로 덕지덕지 붙은 글자 ― 라듸오 수리.

총천연색, 완전입체음향 스테레오의 빛바랜 색상을 가진 포스터와 양판 표지였습니다. 망가진 꿈의 전파상, 그 글자의 한 획이 세월 따라 떨어져 라디오가 되었습니다.

맑은 소리로 가득한 시절입니다. 아득한 사이렌처럼 우주의 꿈을 좇는 탐색자의 소리처럼 정성 들여 찾아야 했던 주파수입니다. 이제는 자동 선국 ― 오토 튜닝으로 바뀐 지 오래, 그나마 듣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쩌다 그리운 순간입니다.

엿장수 가위질처럼 다듬이질 장단처럼 부드러운 저음이 없던 시절입니다. 초봄의 온실 속에서 울려 퍼지던 나른한 라디오 음향이 가끔 나를 부릅니다. 표지가 달아나 버린 낡은 기억들, 세월 따라 한 획 두 획 떨어져간 추억은 어떻게 발음하고 선국하는 것일까요.

마우스로는 불러낼 수 없는 주소입니다. 잡음 속 희미한 소리로나마 잡히기만 한다면 최대출력으로 증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 귀로 들어오기보다는 내가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잡음은 음악처럼 나를 가득 채우겠지요.

맑고 깊은 고음이 가득했던 시절, 한 획 두 획 시간을 주워 담는 내 가슴도 따라 뛰고 있습니다.

 

 

/1999. 7. 17.

變心 : Sad Lisa

로버트 블록

 

 

“여섯시에요, 할아버지.”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시계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말썽장이 피노키오가 시계 소녀로 바뀐 것 같습니다. 피노키오의 할아버지같은 솜씨 좋은 시계공이 만든 필생의 ‘예술품’이 그녀였습니다.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짧고도 동화같은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래된 시계를 고치러 울리치 클레임 시계점에 들렀다 우연히 알게 된 리사를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결혼을 필사적으로 반대했고, 리사 역시 할아버지의 편이었기에 주인공은 결국 그들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속일 수는 없는 법, 리사는 병(물론 가슴에 병이 났겠지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밤낮 리사를 간호하던 할아버지는 그녀의 병을 고치고는 탈진해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래도록 어둠 속에 혼자 버려져 있던 리사를 찾아 끌어안은 나는 깊은 연민과 후회 속에 그녀의 가슴에서 째깍대는 시계소리를 들었습니다.

리사. 착하고 순결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시계였습니다. 리사의 가슴에서 들리는 시계 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그였습니다.

<싸이코>를 쓴 로버트 블록이기 때문일까요. 공포소설이 가지는 반전의 매력에 집착한 작가의 조금은 냉정한 선택이라 해야 할까요… 그를 탓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만 도망치는 나는 너무 무정하였습니다.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또는 내가 글을 썼다면 ― 그것이 좀 시시하고 유치한 끝맺음이라고 해도 ―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나왔겠습니다.

현실 속에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도망쳤을 것이고, 어쩌면 많은 리사가 지금 이 순간 어두운 방안에 쓰러져 있겠지요. 그걸 생각하면 더욱 그녀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이 단편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Cat Stevens의 Sad Lisa가 떠오릅니다. 물방울 소리같은 피아노 아르페지오에 이어지는 애처로운 멜로디입니다.

 

Sad Lisa (by Cat Stevens)

 

She hangs her head and cries in my shirt
She must be hurt very badly
Tell me what’s making you sadly
Open your door don’t hide in the dark
You’re lost in the dark, You can trust me
Cause you know that’s how it must be
Lisa, Lisa, sad Lisa, Lisa

Her eyes like windows, tricklin’ rain
Upon her pain, getting deeper
Though my love wants to relive her
She walks alone from wall to wall
Lost in her hall she can’t hear me
Though I know she likes to be near me
Lisa, Lisa, sad Lisa, Lisa

She sits in a corner by the door
There must be more I can tell her
If she really wants me to help her
I’ll do what I can to show her the way
And maybe one day I will free her
Though I know no one can see her
Lisa, Lisa, sad Lisa, Lisa

 

하지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나’입니다. 마네킹 인형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그린 존 콜리어의 단편 <특별배달>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마네킹 ― 전적으로 플라토닉한 사랑이었습니다 ―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날 신세가 된 앨버트 베이커는 ‘그녀를 훔쳐서’ 여기 저기 도망다닙니다. 그 사이 말못할 고초를 겪지만 오직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 그녀가 망가지지 않게 지켜준다는 데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간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녀와의 사랑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지만 그는 그녀와 영영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쇼윈도 너머의 마네킹을 사랑하는 남자에 관한 페리 코모의 옛 스윙 넘버 ‘글렌도라’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차라리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주인공처럼 ‘괴물과의 결혼’이었다면 그의 도망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 끔찍한 결혼식장의 풍경을 목격하고 초라하고 혐오스런 집으로 돌아와 안도하는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나’는 정말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리사의 가슴은 기계처럼 세월을 지켰지만 ‘변심’은 그녀가 아니라 그의 것이었지요.

리사와 마네킹. <특별배달>의 소심한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둘을 바꿀 수 있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나는 용기없는 인간이지만 만약 내가 리사를 만나 사랑했다면 평생토록 그녀와 행복하였겠습니다. 기꺼이 시계공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하며 리사를 돌보았을 것입니다. for Happy Lisa…

“리사, 지금 몇시지?”
그녀의 행복한 가슴이 째깍째깍 뛰고 있습니다.

 

 

/1999. 7. 7.

 

 

 

일러바치기 심장+

 

귀를 대어보세요.
그녀의 가슴이 째깍거립니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리는 법
한 시간이 한순간처럼 지나갑니다.
다들 그러하듯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그곳
그냥 그대로 얼어붙은 초점입니다.
그러던 내 가슴에 손 얹어보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귀를 대어보세요.
다들 그러하듯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도무지 이길 길 없어 멈출 법도 했건만
한 번쯤 참지 못해 달아날 법도 했건만
찰나를 세월처럼 지켰습니다.

 

1999. 7. 6.

 

 

+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The Tell-tale Heart>에서 따온 제목.
이 시는 <변심>에 관한 글보다 하루 전에 썼는데 비슷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담았다.

 

 

Roy “the Breast-bone” Harper 

<Stormcock>, Roy Harper
● 1971

 

Producer : Peter Jenner
Sound Engineers : John Barrett, Peter Bown, John Leckie, Phil McDonald, Alan Parsons, Nick Webb
Additional musicians : David Bedford, Jimmy Page

Stormcock is arguably Roy’s finest achievement. It contains four long songs, and to me it shows the very best of both Roy’s writing and playing ability. The songs are so strong that they are still played in live sets today. The album includes some very appropriate arrangements by David Bedford, and guitar by S. Flavius Mercurius, also known as Jimmy Page.

 

경솔한 마음의 잘못으로
어느새 죄를 이몸에 지녔도다
청정하신 신이여,
어여삐 여기시어 연민을 베푸소서.
<물종기에 걸린 사람이 바루나에게 용서를 비는 노래, 리그베다>

 

Roy Harper. 그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쉽지가 않습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때로 부드럽고, 때로 격렬하고, 아름답게 울려퍼지다 추악한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Donovan의 목소리처럼 처량하게 울려퍼지는가 하면 Albert Hammond처럼 껄쭉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하지만 더 깊은 목소리라고나 해야 할까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David Gilmour처럼 노래하는가 하면 Roger Waters처럼 뒤틀린 삶을 공박합니다. 장정일은 또다른 로이 – 로이 뷰캐넌을 가리켜 “그 자신이 기타였던 로이”이라고 했지만 난 그걸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 로이 하퍼는 자신의 기타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현을 울립니다.

 

 

Hors d’Oeuvres (8:37)
잔잔한 슬픔과 아름다움이 있는 노래입니다. 무심한듯 한음씩 낮아져 가는 기타 소리가 반복되며 무게를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저음에서 가성까지 Harper의 목소리가 참 슬프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약함과 강함, 슬픔과 정열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스캣 창법으로 부르는 대목이 참 듣기좋은 곡입니다.

The Same Old Rock (12:25)
비장한 느낌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ㅡ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특히나 빛을 발합니다. 보컬 파트는 한동한 장조의 잔잔한 멜로디로 이어지다 점차 단조로 바뀌어 갑니다. 보컬 시작 부분은 영국 민요 같은 느낌이 있는데, ‘슬픔과 평안’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노래가 급격히 단조로 바뀌어가면… 미칠 것 같은 슬픔.
이 노래의 후반부는 꽤 격렬한 포크 기타와 보컬을 들려주는데 그것은 결코 ‘기승전결’의 절정이 아닙니다.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감정의 폭발같은 격렬함이며, 내 마음도 그 폭발을 따라가는 기분을 갖곤 합니다.
이 앨범의 모든 노래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적절한 베이스와 드럼이 사용되었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기타와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입니다. My breast bone harper…

One Man Rock and Roll Band (7:23)
반드시 성공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특이한 사운드를 가진 곡입니다. 블루스 록 풍의 곡임에도 보코더를 사용하여 목소리는 변조된 채 약간은 기계적으로 들립니다. 지미 페이지의 기타는 Led Zepplin을 연상케 합니다. 역시 드럼과 베이스를 사용하고 정상적인 세팅으로 녹음되었다면 상당히 멋진 블루스 넘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아쉬움이 있더라도 무엇이든 용서가 가능한(!) Stormcock입니다. Harper 자신은 이 곡에서의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에 대단히 만족해 했습니다.

Me And My Woman (13:01)
슬픔 속의 Stormcock.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Neil Young이 사춘기적 감성으로 날카롭고도 깊은 외로움을 노래한다면 Harper의 노래 속에는 주체하지 못할 슬픔과 무르익은 열정이 배어 있습니다. 낮은 읊조림에서나 거친 고음에서나 텅빈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는 그의 아픈 목소리…… 가성으로 높게 올라가며 “Me and my little woman”이라고 노래하는 그 목소리를 듣노라면 그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우는 게 아니라 내가 우는 듯한 느낌입니다. “Whatever Happened to Jugula” ㅡ 내가 그를 노래합니다.

 

그대 노래하는 이는
물속 한가운데 서있어도
갈증은 그로부터 사라질 줄 모르니,
어여삐 여기시어 연민을 베푸소서.
<물종기에 걸린 사람이 바루나에게 용서를 비는 노래, 리그베다>

 

1999. 6. 7.

PS.
(Peter) Jenner로부터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Her Breast-bone Harp

<Cruel Siste>,  Pentangle

 

포크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어릴 땐 막연히 70년대 청바지를 떠올리며 통기타나 어쿠스틱 악기들을 사용하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여길 것이며, 그것이 전혀 틀린 생각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포크 음악이라는 것은 민요와 구전가요의 전통을 이어받은 음악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옛음악의 계승이나 재현, 또는 발전이라는 형태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어쿠스틱 악기들을 사용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한 전자악기나 드럼을 사용한다고 해서 포크음악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역시 편견이라고밖에 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포크음악은 ‘포크가수’로 불리우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오해와 왜곡을 불러일으켰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의미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민요의 전통은 너무 많은 곳에서 ‘그대로 따라하기’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외면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경우라 다른 면들도 많겠지만 Pentangle은 바로 그런 점에서 민요의 본질을 잘 파악한 포크 그룹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의 네 장의 앨범을 들었습니다만 어느 앨범에서나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결같았습니다. Pentangle에 관한 그러한 느낌들은 Omie Wise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내 머리 속에 박혀버렸습니다.
Spirogyra나 Magna Carta, Mellow Candle, Clannad 같은 포크 그룹들의 특출함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Pentangle처럼 철저하게 포크의 전통을 이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Spirogyra는 흔히들 말하듯 art rock적인 성격이나 록큰롤의 분위기를 함께 갖고 있으며, Magna Carta는 팝적인 성향이 많습니다. Mellow Candle이나 Clannad는 켈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면서 뉴에이지적인 성향과 팝적인 성향을 가지다 보니 때로는 얄팍한 면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Fairport Convention은 비교적 Pentangle과 비슷하지만 보다 현대적인 느낌이지요. 그런 면에서 Pentangle은 가장 영국적인 포크 그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ruel sister 앨범 또한 민요와 구전가요의 전통을 잘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타이틀곡 Cruel sister는 유럽의 동화에서 가끔 발견할 수 있는 ‘엽기적’인 대목을 포함하고 있지만 슬픔과 비장함의 확대를 위한 장치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자매간의 이야기를 그린 이 곡에서 언니(Cruel sister)는 욕심과 질투로 동생을 바다 구경 시켜준다며 데려가 물에 빠져 죽게 합니다. 두사람의 음유시인이 해변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좀 끔찍합니다만) 그녀의 breast bone과 three locks of yellow hair로 하프를 만듭니다. 그 슬픈 악기를 가지고 그녀의 집으로 가니 하프가 혼자서 구성지게 울려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Pentangle판 공무도하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누군가 Cruel Sister 앨범에 관한 리뷰에서 타이틀곡 Cruel Sister를 듣는데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내공이라는 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지만 반복되는 리듬임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 네 줄의 노랫말(그것도 두줄은 늘 똑같은 것)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같은 곡조가 무려 열아홉번이나 반복되지만 악기가 추가되면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와 함께 가끔씩 등장하는 시타의 환상적이고도 미묘한 애드립이 그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John Renbourn이 연주하는 시타는 이 곡에서 동양풍이 아닌 어쿠스틱 기타 스타일의 음계를 들려주는 것도 특이합니다. 더불어 Danny Thompson의 더블베이스는 단순하게 연주되면서 서러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Terry Cox의 dulcitone(dulcimer의 변형?) 연주도 대단히 아름답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물론 Jacqui McShee의 보컬은 변함 없이 구성진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이 곡의 단순함과 지루함에 식상해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들의 빼어난 악기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즐겨 들을만한 Cruel Sister일 것입니다. 제가 들어보았던 Pentangle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 곡마다의 색채가 부족한 앨범이었지만, Cruel sister만으로도 나는 이 앨범을 가끔 듣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나의 자매 같은 느낌 – 하염없이 파도 속으로 잠기어 가던 breast-bone harp의 울림을 함께 나누며.

 

 

 

There lived a lady by the North Sea shore
(Lay the bent to the bonnie broom)
Two daughters were the babes she bore
(Fa la la la la la la la la la)

As one grew bright as in the sun
So coal black grew the elder one

A knight came riding to the lady’s door
He’d travelled far to be their wooer

He courted one with gloves and rings
But loved the other above all things

Oh sister will you go with me
To watch the ships sail on the sea?

She took her sister by the hand
And led her down to the North Sea strand

And as they stood on the windy shore
The dark girl threw her sister o’er

Sometimes she sank, sometimes she swam
Crying sister reach to me your hand

Oh sister, sister let me live
And all that’s mine I’ll surely give

It’s your own truelove that I’ll have and more
But thou shalt never come ashore

And there she floated like a swan
The salt sea bore her body on

Two minstrels walked along the strand
And saw the maiden float to land

They made a harp of her breast bone
Whose sound would melt a heart of stone

They took three locks of her yellow hair
And with them strung the harp so rare

They went into her father’s hall
To play the harp before them all

But as they laid it on a stone
The harp began to play alone

The first string sang a doleful sound
The bride her younger sister drowned

The second string as that they tried
In terror sits the black-haired bride

The third string sang beneath their bow
And surely now her tears will flow

 

/1999. 5. 10. 월.

압점

그녀가 사다준 조그만 지압기
지하철에서 샀을까 아니면 길거리 좌판에서 샀을까
말랑말랑한 고무 재질에 뭉툭한 바늘이 가득하다
가끔씩 그녀를 생각하며 그걸 손에 꼭 쥐어본다
약간은 시원하고 약간은 아픈 느낌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만지고 싶은 느낌
손바닥을 펴면
압점마다 박혀 있는
수많은 그녀

 

1999.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