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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dust

: 별을 들여다보다

 

위인전과 고전음악과 서가에 꽂힌 명작전집들에 괜스런 반감을 가졌던 어린 시절처럼 스탠다드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한 어리석음을 나는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도 몇몇 있기는 있었나 보다.

재즈, 특히 스탠다드 재즈가 그러하였고, Stardust란 제목(‘노래’가 아니라 ‘제목’이다)의 경우도 비슷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영어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그 무슨 뜻인지 얼른 닿지 않는 단어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사전 찾아볼 생각은 않고 노래 제목 보면 star에 그 무슨 dust일까… 뭐 별무리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단어 그대로 ‘성진 星塵’일까… 그런 생각들을 했을 뿐이었다.

Hoagy Carmichael B&W Gallery Wrapped Box Canvas Print (Wearing Hat)

 

호기 카마이클의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또다시 그런 엉뚱한 생각들을 반복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한 곡이라 우리 귀에 더 편한 스타일도 많겠지만, 나는 작곡자의 옛스런 분위기 그대로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잔잔하고 게으른 분위기의 피아노 연주와 나직한 목소리, 그리고 휘파람 소리까지가 그러하다. 어쩐지 <카사블랑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사람 같은 느낌도 든다.

열 네 살 적에 우연히 백일장에 나가게 되어 <그림자>라는 정해준 제목으로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혼자 앉아 밤하늘을 들여다 보며…”라는 구절을 넣었는데 스타더스트 듣다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사전을 열어 찾아본 결과는 ‘小星團 소성단’, ‘宇宙塵 우주진’ 그리고 ‘恍惚 황홀’이었다.(코케인의 은어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도 노래 속의 스타더스트가 지닌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렵지만 노래로부터 그 단어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는 있다.  이 노래는 호기 카마이클의 원곡과 피아노 연주가 주는 옛스러움에 빠져드는 것도 좋고, 까이따노 벨로주가 조곤조곤 속삭이듯 노래하는 버전도 충분히 아름답다.

스타더스트가 그리움을 노래하는 이 밤, 아주 낡고 오래된 별빛이 아스라히 (아마도 42광년쯤의 거리로부터 날아와) 부서지고 있다. 그림자도 따라서 밤하늘을 들여다본다.

 

Sometimes I wonder why I spend
The lonely night dreaming of a song
The melody haunts my reverie…

 

2006. 12. 1. Rever Lee (from “Reverie”)

어 토이 인 디 애틱

노래 속의 이름은 ‘리자’였고 이야기 속의 이름은 ‘리사’였다. 그게 같은 철자의 다른 발음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Lisa’라는 이름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실 그 얼굴이란 내가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또는 상상 속의 얼굴이다. 그녀는 대단한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였고 리사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몇시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던.

어떤 청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녀의 ‘제작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녀 가슴에서 박동 대신 들려오는 시계바늘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였고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약간의 죄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이후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읽던 시점에서 말한다면 일종의 ‘미래의 기억’, 또는 ‘미래에 일어난(나는 이것을 과거형으로 썼다) 잘못에 관한 선험적인 죄의식’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그저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라면 더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리사의 심장이 짹각대듯이 내 가슴엔 감당하지 못할 버거움이 쿵쾅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체스터튼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뭇잎이 되어 숲에 묻혔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삭아가는 장난감이 되었고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에서 전혀 눈에 뜨일 없는 볼품없는 이야기책이 되었다. Sad Lisa, 하지만 슬픈 것은 리자가 아니라 와전된 한 줄처럼……

“Tell me what’s making you sad, Li?”

 

 

Sad Lisa / Marianne Faithfull

폼페이에 관한 단상

당신의 기침 소리“와 “pink floyd의 pompei live“에 관한 부언

 

나는 한권의 책을 통하여 <당신의 기침 소리>를 썼다.(폼페이에 관한 자료들은 여러 권 갖고 있지만 시를 쓸 때는 폼페이 발굴에 관한 단 한권의 책만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시 속의 집이나 직업, 풍속 등 그 모든 내용과 이름들은 거의 실재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폼페이에서의 7월은 선거의 달이었으며, 아셀리나의 술집 역시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 술집의 벽에는 팔미라, 아글라이, 마리아, 즈미리나 등의 이름이 낙서로 남아 있었다. 또한 이들이 행정관에 출마한 폴리비우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자 그는 난감한 상태가 되어 화를 내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도 그는 평소 ‘아셀리나의 특별한 술집’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기침 소리>의 비장한 분위기에 약간의 유머를 주기 위하여 나는 폴리비우스를 언급하였다. 기타 내가 언급한 모든 이름과 장소는 실재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약간의 ‘시적 진실’이 포함되긴 했지만 거의 넌픽션인 셈이다.

 


빵가게 부부의 초상

 

이들이 <당신의 기침 소리>에 등장하는 스타티아와 페트로니아 부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빵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인 것은 확실하다. 불행히도 시에서  언급한 스타티아의 빵가게는 너무 작은 곳이어서 폼페이 복원지도에도 나와 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임의로 조금은 후미진 스타비아 목욕탕 부근에 빵가게가 있는 것으로 상정하였다.
내가 읽은 한 책에서는 이 벽화를 ‘장부와 첨필을 든 꼼꼼한 부부’로 묘사하였고, 또다른 책에서는 신혼의 의식을 기념한 그림이라고 하였다. 물론 나는 학술적인 고찰에 상관없이 빵가게를 운영하던 신혼부부의 언약이 담긴 초상이라 믿는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여덟조각으로 나눠진 빵

 

이것은 실제로 빵가마에서 발견된 2000년된 빵이다. 빵공장에는 응회암으로 만들어진 맷돌이 있었는데, 노예가 돌리는 것과 노새나 말을 부려 돌리는 두 가지가 있었다.
시 속의 저녁식사에서 언급한 ‘가룸’은 소스와 소금을 뿌린 물고기 요리로 모두가 즐기는 식품이었으며, 가룸의 생산은 몇몇 부유한 가문에 의해 독점되었다고 한다. 포도주 역시 폼페이의 유명 생산품이었다.

 

   
신비의 별장에서 발견된 세멜레의 입문의식(좌)  / 비너스와 마스의 벽화(우)

 

폼페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외에 있는 ‘신비의 별장’은 디오니소스에게 봉헌된 프레스코 벽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별장의 예배실에는 모두 29명의 인물상이 실물 크기로 그려져 있는데 한 신부가 디오니소스의 비교에 입회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의식의 클라이막스는 물론 성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세멜레의 입문의식은 핑크 플로이드의 폼페이 라이브 필름에서 로저 워터스가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부를 때 상세히 보여주는데, 세멜레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다.

 


고대의 포르노그라피

 

폼페이에서는 이런 류의 퇴폐적인 벽화가 많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외설적이고 관능적인 그림들을 대단히 즐겼다. 약사 베티우스의 집에서 발견된 위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이며, 과장된 신체를 지닌 남자의 모습을 그린 또다른 그림이 베티우스의 현관에 그려져 있었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주인 가운데는 발레리아 헤도네라는 여인도 있었는데, 그녀의 성-헤도네는 그리스어로 쾌락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티우스나 헤도네와는 전혀 다른 취향의 인물도 있었다. 바로 아리우스 크레센티우스인데, 그의 집은 통상 ‘도덕주의자의 집’으로 통한다. 그의 식당에는 “말다툼과 논쟁을 자제할 수 없다면 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라든가 “다른 사람의 아내를 욕망의 눈으로 보지 말라.”는 경구들이 적혀 있었다. 그의 식탁에서는 유리병과 청동항아리, 국자, 사슬 달린 램프, 커다란 사발 등이 온전히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도덕주의자의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폭격으로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아이러니 속의 아이러니 ㅡ 포르노그라피는 영원하고 도덕주의자는 사라진 셈이다.

 

 

폼페이의 건물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시가지의 복원도를 보면 오늘날의 건물들이 얼마나 비미학적인 것인가 새삼 느끼게 되고 도대체 무엇이 발전했는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난방장치(보일러) 마저도 그 자체로서 우아한 작품이었다.

공공목욕탕 역시 대단히 예술적인 것이었는데 냉탕, 온탕, 그리고 증기탕에 탈의실까지 갖추어진 매우 화려한 건물들로서 남탕과 여탕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절대다수의 현대인들조차도 이 정도의 고급스런 목욕탕을 이용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는 이 대중탕의 나른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를 <Tepidarium (증기목욕실, 목욕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며 몸을 말리는 폼페이 여인들)>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폼페이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아마도 시신들일 것이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신은 화산재에 뒤덮인채 그대로 석화되어 오늘날 석고상으로 온전히 복원되기도 했다. 상태가 좋은 시신의 경우 본뜬 석고상에서조차도 얼굴 표정이나 옷의 주름 부분까지 세밀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번민과 고통에 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비극적 예술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자연학 문제집>을 통하여 폼페이의 재앙을 묘사하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온세상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디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의 말대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이 땅이 쪼개지고 흔들린다면, 무엇이 그 토대가 될 것이며, 어디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인가?”

‘파괴가 만들어낸 영원’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 번민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을 것이다.

 

 

/1998.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