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만에 <스타맨 Starman>을 다시 봤다. 1984년의 SF영화는 더욱 촌스러웠다. <브라질>(1985)이나 <블레이드 러너>(1982)와 비교하면 더 그런 느낌이다. 제프 브리지스를 꽤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외계인 연기는 (인간으로의 적응 과정이라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행동하는 것이 좀 어색해 보였다. 차라리 표정 없는 ‘스타맨’ 데이빗 보위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소박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 허술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가 묘하게도 마음을 끈다. 제프 브리지스와 상대역인 캐런 앨런이 노래한 <All I have to do is dream> 또한 비슷하니 엉성함에도 나는 그 대목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외로움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로이 오비슨 버전을 좋아하지만 영화 속의 노래엔 풋풋한 느낌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제프 브리지스는 더 허술한 액션 영화 <R.I.P.D.>에서도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영화의 발단이 되었던 보이저호는 2018년 태양계를 벗어났다. 머지 않아 기능이 정지된 채 가없는 우주를 항행하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All I have to do is dream, Jeff Bridges & Karen Allen
When I want you in my arms When I want you and all your charms 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dream, dream
When I feel blue in the night And I need you to hold me tight 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 Anytime, night or day Only trouble is, gee whiz 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 I love you so and that is why 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I can make you mine, taste your lips of wine Anytime, night or day Only trouble is, gee whiz I’m dreamin’ my life away
I need you so that I could die I love you so and that is why Whenever I want you,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Dream
말할 수 없는 그것이란 제목으로 처음 쓴 것을 찾아보니 2010년의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애초의 그것은 ‘시’였다.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그것이었고, 말하기 힘든 그것이었고, 형언하지 못해 형언하지 못할 괴로움을 내게 주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게 처음은 아니었고 나는 여태 시에 관한 시를 꽤 여러 편 썼다. 한참 예전에 장난처럼 쓴 누구…시온지…가 그랬고, 절망과 헛된 희망이 교차하는 내가 쓴 가장 좋은 시, 쓰라린 포기각서 같았던 이하의 마지막 말이나 라면은 보글보글도 어쩌면 그렇다. 제대로 쓰진 못했지만 미련스런 할 수 없는 노릇도 그랬다. 이하의 마지막 말을 썼을 때 나는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심히 서글픈 심정이었지만 그 굴욕의 시간을 오늘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내가 시를 쓴다는 꿈 또한 이하의 마지막 말의 깨어나지 못한 꿈 같은 서글픈 변종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말할 수 없는 그것이란 제목으로 또 다른 시를 썼다. 처음엔 ‘더 말할 수 없는 그것’, ‘영영 말할 수 없는 그것’ 등으로 붙였지만 결국엔 ‘말할 수 없는 그것’으로 환원되었다.
이 시는 앞선 것들과는 달리 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꼭 그만큼이나 ‘말할 수 없는 무엇’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초라하고 서글픈 마음이었음에도 나는 시를 쓰고서 좀 기뻤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조금 자랑스러웠다.(그 느낌으로 “보내지 않은 메시지”를 썼고, 거기서 간지러운 몇줄을 빼서 실행한 것이 보낸 메시지다) 사실을 들여다보면 심히 아픈 이야기지만 내 마음에 관하여 가능한 만큼 제대로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것은 의미를 알려줄 수 없는 “메르우트”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히에로글리프로 쓴 한줄은 ‘메르우트, 엔 메르우트’라고 읽을 수 있다. 다만 발음은 조금 미묘한 차이를 두고 슬쩍 다르게 표기했는데, 의미를 찾기 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뜻을 알고자 애를 쓴다면 전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몇 글자가 심오한 의미를 지닌 문자이거나 비밀은 아니다. 평범하고도 위대한 무엇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그 시는 히에로글리프 한줄이거나 끝의 네줄이 전부다.
4행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첫번째 줄은 잇사의 인용으로 시제만 과거형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줄은 나의 시점, 셋째줄은 잇사의 시점이기도 하지만 형식상 그것을 빌렸을 뿐, 내 시각이라 할 수 있으며 (“눈에” 다음에서 좀 뻔하고 감상적인 글자 세자는 생략했다) 마지막 줄은 100퍼센트 내가 보는 것이다.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은하수+
암흑과 광년의 세상을 가로질러
남루한 그 옛날의 눈에 맺힌
당신이라는 이름의 눈부신 오늘이어요
하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이 시를 배신했다. ‘말할 수 없는 그것’에 관해 하루아침에 깡그리 다 설명해버리고 말았다. “○○는 하되 XX는 하지 않는다”던 방중술의 오래되고 미심쩍은 어떤 금언을 지키지 못한 느낌 같은 것,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허탈하고 참담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평소의 조심스러움, 소심함이나 신중함과 달리 나는 대책없이 직선적인 사람이고 그런 쪽으로 마음을 감추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느꼈기에 가만 있기가 더 힘들었다. 사실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비할 수 없이 온당치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약간의 소소한 이야기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은 하루만에 ‘말해버린 그것’이 되었다.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이라 했지만 내 마음보다 슬프지는 않다.
+잇사.
+뭔가 빠진 시가 하나 있었는데 왜 그걸 빼먹었던지 모르겠다. 내가 시를 쓴다던 꿈, 이제사 생각이 나서 한줄 집어넣었다. 매일같이 그 캄캄한 화면에서 뭔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2019. 11. 29.
+<시인합니다>가 그랬듯 시 쓰기에 대해 나는 가끔 끄적여 왔다.
그때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지금, 하지만 비슷하기도 한 지금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얼마전에는 할 수 없는 노릇이란 제목으로 또 그랬다.
무엇인지 어디인지 모를 중심(그런 게 있다면)의 언저리를
여전히 기웃거리면서 말이다.
적어도 수십년 전, 장터도 아닌 외갓집 앞 포장도 되지 않은 길 한켠에서 약장수가 판을 벌였다. 둘 다 한 자 정도 크기나 되었는가 모르겠다. 주인공은 그다지 멋져 보이지는 않았던 장난감 로봇과 몸서리쳐지도록 커다란 기생충을 담아 둔 유리병이었다. 시원찮은 말주변으로 약장수는 슬그머니 로봇 자랑을 했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그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앞쪽의 나사 구멍 같은 홈으로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로봇 가슴의 사각형 부분에 텔레비젼이 장착되어 있어 로봇이 찍어온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약간 미심쩍긴 했으나 로봇과 달과 환상이 한참 더 컸기에 나는 경악스런 회충약 선전까지 귀를 기울이며 지겨운 줄도 모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회충약은 잘 팔리지 않았고 내 가슴 어딘가도 아픈 것만 같았다. 파장이 되도록 로봇은 끝내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그 새카만 사각형은 한번도 켜진 적 없이 새카맣게 끝이 났다. 그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천불 소득 백억불 수출로 선진국이 된다는 꿈도 그랬다. 세기가 바뀌도록 내가 시를 쓴다는 꿈도 그랬다. 적어도 수십년, 그냥 그랬는데 속에 천불만 났을 뿐 언제적 파장인데 아직도 그 새카만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약장수는 사라졌고 약장수는 따로 있고 나는 어딘가 틀림없이 아픈 것만 같다.
시는 스님께서 서기 760년 쯤에 쓴 것이고요, 그럼 그 가지는 어디쯤 있었던 걸까요. 어리석은 현장검증에 착잡했던 여름날을 기억합니다. 절터가 있던 낮은 산길을 걸을 적에는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피리를 불어 달을 밝히던 스님, 그에게서 시가 된 그 일이 실제론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상상을 가끔 합니다. 그럼 그 시는 아주 오래된 화두이거나 또는 그날에서 오늘까지, 수천년까지의 수많은 어느 날을 위해 준비된 의미심장한 메시지 같은 것일테지요. 그리하여 나는 하염없이 마음 속에 마음을 옮겨 쓰며 그것들이 다른 글자들로 이루어진 같은 문장이 될 날의 꿈을 꾸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한자 쉼표 하나 다르지 않게 그것이 똑같은 문장이 되어도 같은 사연은 결코 아니겠지요. 어떤 이가 들려줬던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처럼요. 정말이지 분명 다른 이야기일 거예요. 만약 제대로 베껴 쓰지 못한다면 오늘처럼 비루한 영원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살이로 지내다 말 것입니다. 꿈인지 生인지 분별키 힘든 아주 아주 긴 하루를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는 스님께서 서기 760년 쯤에 지으신 말씀이고요, 그 몇줄 되지 않는 글을 나는 아직 옮겨 쓰지 못했어요. 가을 이른 바람에 날아간 잎새는요.
감히 말할 수 없는 그것 - 카르투슈에 둘러싸인 파라오의 신성한 이름처럼 섣불리 발음조차 할 수 없는 그것 텅 비어 있는 왕의 자리처럼 감히 그릴 수 없는 그것
새벽 꿈길에 흔적 없이 왔다 가고, 폭풍처럼 한 순간에 나를 채우곤 했네 어떤 전통은 그것을 14행으로 노래하려 했고, 어느 나라에선 세 줄이거나 한 줄만으로도 충분하였다네
어떤 이의 이야기 속에서는 뭔지 모를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꿈꾸었고, 다른 이는 300행에 달하는 재나두의 꿈을 끝내 옮겨 담지 못했네
그 속에 형상 없는 재료로 이루어진 유구한 사원이 있으나 진실한 믿음은 결단코 흔치 않은 법, 적어도 내 안에서는 흘러간 적 없는 옛 시인의 노래는 연인의 눈동자에서 그것을 본다고 했네
미다스의 이발사처럼 복두장이의 비밀처럼 주체할 수 없는 답답함을 내게 주는 그것 그 어떤 한적한 갈대밭도 찾지 못해 세상 많은 이들을 방황케 하는 그것
그대 있으니 나 또한 있고 그대 없으면 나도 또한 없음이라 말로 이루어진 사원을 꿈꾸었으나 有와 無를 모두 세우지 아니한다 했으니+ 쉽사리 발설했다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면서도 말하지 못해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바로 그것
/2010. 5. 27.
+爾有我亦有(이유아역유) 君無我亦無(군무아역무)
有無俱不立(유무구불립) 相對觜盧都(상대취로도) /冶父 頌
<金剛經五家解>에서 변용하였고, 相對觜盧都 또한 “말할 수 없는 그것”이어서 넣지 않았다.
누구시온지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비루한 행색으로 아 이런, 오 저런 시답잖은 생각만 읊어대었습니다. 밤낮없이 낯 뜨거운 일이었어요. 시집은 어떤가요 장가도 못갔는데, 시시각각 독수공방 시나 읊어볼까요. 책 하나 만든다면 정말 좋겠는데 어디 더 보태어 책 잡힐 일 있나요. 누구 책 망할 일 있나요. 시시콜콜 웃을 일이 아닌데 그냥 웃고 말아야 겠어요. 당신도 이쯤에서 웃어주시고.
시샘도 가물 가물, 가물어서 이토록인가. 적당히 폼잡고 고개 끄덕이며 시인은 아무나 하나.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데 풍류는 고사하고 시류도 모르오니 정말이지 시인 못할 노릇이라는 건 시인해야 하겠군요. 아무렴, 그래야지요. 시인도 아니 되고 부인도 없다는데 천번 만번 꾸벅꾸벅 인가받기 힘든 빌어먹을 시인일랑 밤새도록 계속해야 하겠어요.
잘못한 것 많아서 시인합니다.
온갖 부끄러운 일로 모두 시인합니다.
죄스런 일 많다한들 깡그리 빠짐없이 시인합니다.
밝지도 편안하지도 즐겁지도 않았음에 시인합니다.
무조건 시인합니다.
그리움에 펼쳐보고 잘잘못에 새겨가던
저의 책임에 시인합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당신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당신
대체 누구시온지, 누구의 시온지 부끄럽사오나
오늘의 험한 꼴을 박대 마소서.
이 남루 훨훨 털고
성장 차려 다시 뵐 날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