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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리 포지, 애플비, 하찮은 미스터리

내가 어렸을 때 병 속에 쪽지를 넣어서…
그 쪽지엔 내 이름과 주소를 적었지.
그런 다음 병을 바다에 던졌지.
그리고 그걸 누가 발견 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어.

 

어느 하루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으니 잠꼬대 같은 소리로 대신할 수 밖에 없는가 보다.

<침묵의 질주>를 처음 본 것은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젼을 통해서였다.  여전히 인상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엉성한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 나는 외딴 우주의 작은 섬 같은 식물원 ㅡ ‘밸리 포지’에 있는 듯하다. 거기서 혼자만의 세계를 가꾸는 프리먼 로웰과 별로 다르지 않다.

 


(도입부의 우주선 모습, 프리먼 로웰이 밸리 포지에서 수확한 야채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스탠리 엘린의 ‘애플비’처럼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누군가의 세상에 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질서바른 세계를 뭉개버리는 결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끝나지 않는 세계 말이다. 프리먼 로웰이 서투른 로봇들과 벌이던 카드게임 같은 짓을 계속하면서.

 

 

 

그리고 캄캄한 하늘을 드높이 선회하는 별과 닿지 못할 아득한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떠나가는 비행선의 꿈을 꾸었다.  사무엘 우리아의 노래가 비장하게 흘러나올 때 홀로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 했을지도 모르겠고, 그 반대일지도 알 수는 없었다.

(서두의 인용은 프리먼 로웰이 자폭을 결심한 후 로봇들에게 건넨 말 가운데 일부다. 그 대사는 어릴 적에도 뭔지 모르게 허무한 느낌을 들게 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폭 직전의 우주선, 고장난 드론  휴이와 함께.)

 

 


/Aeromoço, Samuel Úria

두번째 종류의 고독

<침묵의 질주 Silent Running>, 더글러스 트럼불, 1971
오랫동안 한 척의 우주선도 오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난 것일까?
ㅡ 두번째 종류의 고독, 죠지 R.R. 마틴

 

영화를 어디에서 봤는지가 가끔은 영화 자체보다도 더 선명하게 기억날 떄가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엔 승객이 거의 없는 고속버스 안에서 비디오로 보았고 <침묵의 질주>는 고등학교 1학년 쯤엔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제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 영화를 방영했으나 내가 본 것이라곤 겨우 마지막의 폭발 장면뿐이었다. 금세 조안 바에즈의 테마가 흘렀고… 그럼에도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오래전에 보았던 바로 그 영화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제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래되고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영화는 흑백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더불어 굉장히 적적하고 고독한 느낌뿐이었다. 그리고 우주선과 식물원을 관리하는 조그만 로봇들과의 카드놀이가 이상하게 기억이 났다.
최근에 다시 한번 보았지만 이번에는 자막도 없는 것이어서 그림만으로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스토리를 엮어보면…

토성 궤도 근처의 우주 식물원에서 지리한 업무를 이어가는 4명의 승무원들에게 스테이션을 폭파시키고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나 이곳을 몹시 아끼고 사랑했던 주인공은(이름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을 죽이고 홀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다지 변한 것은 없다. 영화 초반부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던 트럼프 게임이 로봇들과의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 고적감을 감당하지 못해서였는지 죄책감 탓이었는지 그는 결국 식물원 일부를 떼어내어 우주 공간에 남겨두고 자폭을 선택한다.

 


우주선 Valley Forge의 현창에 비친 자폭 직전의 장면

 

영화는 오래도록 우주 스테이션에서 혼자 지내다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두번째 종류의 고독>이라는 죠지 R.R. 마틴의 단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4년 여를 혼자 고립된 채 지내온 우주의 간이역 근무자가 자신과 교대하러 온 우주선을 ‘작위적인 사고’로 파괴시키고는 또 하염없이 교대자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다. 엉뚱하게도 나는 <두번째 종류의 고독>이 이 영화의 진짜 제목 같은 느낌이 든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특수효과를 맡았던 사람이라고 하던데 시대에 따라 급속히 변화하는 테크날러지의 허망함이라고 해야 할지 요즘 방식의 현란한 볼거리는 전혀 없었다.
마치 50년대의 UFO 목격자들이 그린 우스꽝스런 비행접시마냥 우주선과 로봇들은 너무 촌스럽고 폭발 장면도 매우 밋밋하고 단순하다. 또 어떤 이는 이 영화가 너무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했고 그런 이유들로 좀 엉성하게 망가진 영화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질주>에는 나로 하여금 심정적인 일치감을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물기가 너무 많아도 그렇고 너무 메말라도 살기는 어렵다.
내가 보고 기억한 것은 과학적 논리적 맹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고독과 고립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이 넘쳐났다 스러져도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할 때 그 제목이 생각난다. 자폭하고 싶을 때 더 생각난다. White Pale Dot, 하염없는 공간에 떠 있는 어떤 고적한 방 하나를 잠시 그려본다.

…나는 어디에서 너를 보았을까.

 

 

2005.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