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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와 함께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책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책을 펼치면 몇줄을 읽지도 못한 채 나는  난독증에 빠지곤 했다. 어쩌면 건조한 묘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모자람이 비할 수 없이 확실한 원인일 것이다. 어슐러 르 귄의 모든 작품 가운데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당연히, 그리고 운좋게도 <오멜라스를 떠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번역한 분으로부터 직접 원고를 받아 보았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고 번역본을 받은 때로부터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길지도 않은 그 글을 읽었다. <어둠의 왼손>이 여전히 내 책꽂이에 있지만 나는 그것을 다 읽지 못했고, 단편집에 관해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오멜라스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에 비해 너무 많은 고결함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던,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내 소감에 대해 희미한 죄스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동조하기는 어려운 어떤 느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의 세상에 그녀의 영혼이 함께하기를 나는 기원한다.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대신하여 오멜라스에서 홀로 고초를  겪고 있는 비천한 한 소년 곁에 오래도록 머물렀기를 나는 기원한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의심에 싸인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할 것이고, 그녀를 조금 더 빛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어슐러 르 귄.

 

 

ursula kroeber le guin, 1929. 10. 21~2018. 1. 22.

 

 


/the ones who walk away
‘오멜라스’로부터는 아닌지 모르지만…

 

바람의 열두 방향

그게 2000년대의 중반이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르귄의 단편집이 나온 것을 보고 곧장 구입했다. 아마도 세부 쯤 구해서 하나는 선물을 했고, 잘 펼쳐지지 않는 작은 책이 불편했던 나는 책을 잘라 링으로 묶었다.(선물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어딘가에 원본 그대로의 책이 또 하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여전히 다 읽지 못했다. 나처럼 책읽기에 서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녀의 책을 읽는데 뭔지 모를 어려움이 있다.

보르헤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고 해도 한줄 한줄 새겨 읽을 수 있었지만 르귄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다. 허사처럼 보이는 묘사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면 스스로도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멜라스에 대해 가졌던 나의 오래된 어떤 거부감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Ursula K. Le Guin, Acclaimed for Her Fantasy Fiction, Is Dead at 88 - The New York Times

 

그리고 좀 비루한 변명 같은 그 결과,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은 여기저기 구멍난 스폰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십수년에 걸쳐 피셔킹을 보았고 다른 몇몇 영화와 책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하기는 좀 곤란한) 비슷한 과정들을 경험했다.

르귄에서도 그럴지는 십여년의 시간을 보낸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그 열두 방향 가운데 하나였던 <파리의 사월>을 여전히 좋아한다. 고독한 어떤 마법사가 꿈같은 마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친구를 만들고, 애인을 만나고, 친구의 애인까지 엮어서 파리의 사월을 즐거이 거니는 이야기다. 부러운 심정으로 그 이야기를 처음 보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르귄의 단편집보다는 한참 이전이었다.

나는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슈롭셔의 젊은이를 옛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분이 대신해서 올려주는 형식으로. 그 시가 지닌 문학적 의미에 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내 마음 같았던 시간을 나는 알고 있다.

 

 

/2017.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