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별고 없으신지요. 이별 작별 헤아리다 반쪽이 되어 별꼴 다 보였지요. 별빛에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 잦아드네요. 별안간 그리움에 하늘 돌아보네요. 청천 하늘에는 잔별도 많았더라. 저무는 바닷가엔 석별도 많다더라. 전별 송별 다 보내고 결별 고별 지웠지요. 별의 별별 모두 떠난 자리 홀로 채워가며 기별 하나 빛날 날만 기다리지요. 지은이도 모르는 별, 어디 별뜻이야 있겠습니까만 각별이 타고 남은 빈 자리 하나 이 몸 이루었으니 너와 나 따로 없어 하나같이 드물고 별난 일입니다.
[태그:] 오비영
별과의 이별
그럼 이만총총,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 노래 제목이 무엇이던지 별로 끝나는 별의별 글자 다 떠올리며 별이란 별은 모두 나의 것이라 생각한 적 있었지요 각별한 심정은 어느 별을 향하여 멀어져 갔나요 정녕 마음 헤아릴 별 수 없었나요 별유천지 비인간, 아무래도 별맛이었나 봅니다
이별이 흐릿하니 깜빡이네요 어둔 별자리엔 기약 없는 작별만 반짝이네요 별스런 일도 아니었지요 고적한 마음 하늘을 채우고 별천지 이루었어도 밤하늘이 어찌 밝을 수 있겠나요 별별 짓을 다 하고도 분별없던 이 마음 스스로 지어낸 별 서성이며 쏟아지는 대로 주워 담고 싶네요 별초군 불러다가 마저 쓸고 싶어요
정말이지 별걱정을 다 하는군요 아직도 모르시나요 청산에 별곡이거나 벽해에 별장이거나 이 별은 이별이 아니랍니다 작별은 내가 만든 별이 아니랍니다 밤마다 꿈마다 한 세상 이루었던 휘황한 별바다인들 이별은 나의 별이라던 작별은 나의 별이라던 적막한 그 빛 이제 더 볼일도 없어요
2001. 12. 5. 별.정직.로봇
M.C.
그때 나는 기공식장을 서성이고 있었어요. 흠흠… 지겹고 졸리우는 알파 파형의 무조 팡파레를 기다렸는데… 어딨더라 불연속 문양으로부터 둘, 셋, 다섯, 일곱 나비가 쏟아져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노랑나비는 까만나비, 호랑나비는 흑백나비, 1 아니면 자신뿐인 외로운 숫자들입니다. 그것 참 몇마리 뿐인 것 같은데 한량없이 이어집니다.
흘흘… 그때 누군가 마구 흔들어 나를 깨웠습니다. ㅡ 아니 이제 꿈꿀 시간이래요, 미스터 M.C. 하얀 새는 밤으로, 까만 새는 낮으로 날아가는데 경계선이 없음은 당연지사인가요. 끌끌… 어떤 파도도 움직이지 않는 상대성입죠. 물밑으로 새가 나는 유연성입죠. 알파 수면의 번성을 위한,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빠른 눈 운동입죠.
쯧쯧… 모르스 부호처럼 위태로운 탄식입니다. 난조에 빠져버린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그의 길을 따라가며 얻는 것, 그의 물길을 따라가며 유실하는 것, 그의 문양을 헤아리다 분해되는 퍼즐입니다. 부실한 유한각체는 꿈을 꾸어보지만 흑흑… 숨차고 눈물나는 지금 이 길은 비내리는 고모령입니다. 절체절명의 마인드 컨트롤 ― 들쑥날쑥 랜덤으로 출력되는 페시미즘입니다.
어쩌면 주사위 일곱개로 펼쳐질지도 모를, 해설이 필요없는 진짜 현실입니다. 펜로즈의 삼각형을 따라, 비슷한 곡률을 지닌 회색 무지개를 따라가는 오르막 내리막입니다.
그럼 나는 준공식을 기다리며 망상어를 풀었습니다. 잠시 시선을 잃은 사이 그것은 또다른 바다에서 또다른 뭍으로 숨쉬며 기어가는 몇억묵은 고집같은 공극어로 문양을 바꾸어 갑니다. 파도가 있다면 그것은 바다, 바다가 있기만 하면 어딘가 뭍은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 오늘도 당신은 즐겁고 지루한 여행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門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 家庭, 이상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가정家庭은 꾸리지 못하고 가정假定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기꺼이 꿈을 꾸라면, 더딘 이 밤 함께라면…… 하는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이지요 화기엄금의 썰렁하고도 위태로운 밤이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어느 작자 말과는 달리 절로 발길 닿는 곳, 문 잡아당기면 잘도 열리어 그 안에 가정이 충만하였습니다 꾸벅꾸벅 내 안에 넘쳐납니다 더러는 보셨는지 아시는지요 IF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의 상표입니다 지겹도록 우려먹던 정겨운 라면의 이름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낮은 소리로 끓고 있습니다 짙은 라면 냄새가 허기를 재촉하며 요동치는 밤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안경엔 뽀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이왕 내친 김인지 안경 벗어도 똑같이 뽀얗습니다 허기진 마음인지 부족한 마음엔지 내 그릇이 조금만 컸더라면 싶었습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열심히 면발을 뽑아봅니다 고르고 골라가며 마음 다잡아 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 같이 드실래요? 정말 배가 고픕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운이 너무 잘 따르는 나의 그리운 포에티카입니다
/2002. 9. 19.
꿈을 찍는 사진관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그리운 얼굴 거기 있었지요
할미꽃 꺾어들고 봄노래 부르던
아련한 추억도 거기 있었지요
눈감으면 더 가까운 그리운 그곳
동쪽으로 5리, 남쪽으로 5리
서쪽으로 5리만 가면 되었지요
일곱빛깔 무지개 너머 일곱글자 파아란 글자
꿈을 찍는 사진관이 거기 있었지요
새하얀 창문에 새하얀 지붕
꿈을 찍는 사진관이 거기 있었지요
불도 안 켠 그 방이 어찌 그리 환했나요
깨알 같은 하늘빛 글씨가 어찌 그리 눈부셨나요
1호실 3호실 5호실 지나면 꿈을 찍는 7호실
어둡지도 않은 방이 꿈 그리면 어찌 그리 캄캄했나요
꿈을 찍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꿈을 꾸는 일
허기진 마음에 미안하지만
하룻밤 그냥 주무세요 꿈을 꾸세요
그리운 이 만나는 꿈을 꾸세요
하얀 종이에 파란 잉크로 꿈을 쓰면 되었지요
그리운 얼굴 마음 속에 그리면 되었지요
책갈피에 꽂혀 있던 노란 민들레 카드
넘길 때 마다 그 얼굴 보여 주었지요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그리운 얼굴이 거기 있었지요
/2000. 5. 5.
16년 전의 어린이날에 동시처럼 썼지만 알다시피 이 글은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요약하고 조금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동화는 박화목의 <봄>과 더불어 내 삶의 어떤 지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나 자신의 한 부분처럼(심지어 내가 쓴 글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들의 쉽고도 놀라운 글 안에는 보르헤스가 있었고 싸이키델릭한 환상이 있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道’가 있었나 보다. 내게 있어 <꿈을 찍는 사진관>은 시집의 제목처럼 느껴지고 그 이야기는 크고 작은 상실과 그리움에 대한 시처럼 여겨지곤 한다. 순이 대신 민들레 카드만 마음 속에 품은 채.
원일점
아무렴,
기약 없음과 하염없음이야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내 마음 어딘가에 묻어둔 뼈가 있어
나날이 새겨가던 그리움이라
마디마디 사무치던 옛 하늘의 기록처럼
깎듯이 달이 차고
기울어 가고
/2000.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