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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 새가슴살

발라낼 뼈라도 있긴 있었을까
다만 콩닥대며 짧은 꿈 잠시 꾸었을 뿐
마음의 지붕에조차 올라본 적은 없었다
추려낼 꿈이라도 어디 있긴 있었을까
온갖 두려움과 낯 뜨거움과 부끄러움의 이름 너머
숨다 달아나다 잠시 퍼덕였을 뿐
이 하루 겨우 재울 양념에 절어서 사는
날개 없는 자의 걸음 같은 가슴살
이내 하루살

 
/2006. 7. 19.  0:47

 

 

 

+
스팸 피해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이트룸” 살펴보다
11년 전에 쓴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이 시간에……

<이작자 여인숙>에 썼던 마지막 글
2015. 9. 16. 13:38

(게시판 복원에 성공하여 ‘화이트룸’에 올렸던 마지막 글을 가져왔다)

 

 

이작자여인숙1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허수경

 

 

최근에 있었던 몇몇 일은 일말의 미련도 의미가 없음을 새삼 가르쳐주었습니다. 날짜는 절로 가는 것이니 앉아서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 보다는 여기서 그만 끝을 맺고 싶어졌습니다.

……왠지 ‘안락사’의 느낌이 듭니다.ㅎㅎ 安樂, 글자 그대로의 편안하고 즐거운 느낌을 상상해봅니다.

<이작자 여인숙 1999~2015. 모두의 사랑받는 이로 태어났으나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끝에 고적 속에 떠나다.>

이 홈페이지가 여기 있음을 바라보며 며칠이라도 더 번민하는 것이 편치가 않아서 얼른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천리안의 서비스 종료로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함으로 하여 오늘이 왔다는 점, 무엇보다도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직 내 탓입니다. 끝까지 이 고적한 공간을 찾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몇몇 분께 각별히 고마운 말씀 드립니다.

here till here is there, 혼자만의 어떤 다짐들은 가능한 한 끝까지 지속하려 했으나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망 좋은 방에 어떤 노래가 흐르거나 멈추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그러함이 의미있는 일이겠지요.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니면 아닌대로 그러하겠지요. 이 달을 끝으로 이작자 여인숙은 사라지고, 나는 오늘로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잊어버린다는 것은 깡그리 잃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과는 좀 다른 무엇입니다. 어떤 눈먼 이가 내게 놀라운 방식으로 가르쳐준 것입니다 . 그것은 결코 지워지거나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글에서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을 보내던 그들이 그랬듯이 여인숙의 마지막 밤에도 수돗물은 잠가주시고 가벼이 정리도 해주세요.^^ 나는 바보였고 비겁했고 모자라는 사람이었지만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 (몇 번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완성을 하지 못한 내 시 제목처럼),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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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사랑받은 한편

몇 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주 긴 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줄엔 행복이 묻어 있었고 어떤 줄은 금세 끊어질 듯 위태롭게 떨렸습니다. 산문이 되었다가 모르는 사이 운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줄인다고 줄여지지도 않고 애써 늘인다고 늘여지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쓴 것도 아니고 혼자 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동자 속에 몇 개의 형용사가 있었는지 수더분한 옷과 재빠른 걸음걸이가 3/4조였는지 7/5조였는지도 잘 모르는데 어찌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나 있었겠나요.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했나요. 이별에 관해 그 무슨 공감각적 표현이 있을지, 그리움에 무엇을 보태어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verfremdung effekt)’를 만들어내었는지요.

가끔은 두 줄씩 보기 좋은 쌍을 이루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엇박자로 어지러웠습니다. 역류라면 모를까 감정이 넘쳐나는데 그 무슨 이입이 있을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고 절정도 없는데 기승전결은 또 무슨 허황된 서류에 붙어 있는 이름일까요.

하지만 진짜 시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자신의 운을 맞추었겠지요. 멋진 배경 속에 14행을 넣어서 소네트라 이름 붙였겠지요. 한 줄이 되었다가 전집이 되었다가 두서없이 흩어졌고 그리고 또 흩어진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원본이며 제대로 베껴 쓰지도 못한 마음만의 한 편입니다. 결코 제대로 옮기지 못한 한 편이 여태 마음에 그려집니다. 세상 어딘가 틀림없이 그 한 편을 위한 진짜 작가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그 한 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6. 2. 23.

믿지 못할 나의 금연기

: 그의 마지막 담배

 

사람들에게는 끊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마약, 도박, 음주, 연애, 인연, 담배 등등. 어떤 이는 그 가운데 하나에 그러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기도 한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것을 끊고자 시도한 적이 있다. 지독한 중독이었으나 별스레 특이한 방법을 택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하루, 한껏 그것을 들이마신 채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심신에 모두 스며들기를 기다렸다.(그 시간이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또는 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렇게 멈추어 있었으면 싶었다. 그 순간의 집중에 성공했기 때문에 중독을 끊었다고 믿는다면 그리 생각해도 좋다.

 

하늘 끝 길은 멀어 혼이 날아가기 힘들고
꿈속의 혼이 관산을 넘기 힘드니…
ㅡ 이백

 

담배의 경우는 또 그랬다. 하루 세갑을 피웠으며 그 사이의 꽤 긴 세월 동안 단 한번도 담배 끊을 생각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담배끊기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내 경험상 그것은 어떤 계기가 있는 날(새해 첫날이나 생일날 등등)에 시작하는 것이 좋고, 가능한 한 많은 곳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사실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피우는 형태의 금연보조제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 그것은 맛이 너무 고약한 까닭이다. 나는 새해 첫날에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별하겠노라고 알렸고 그리고 그리 어렵지도 않게 그렇게 했다.

그 동안 비슷한 것과 가짜들과 엉뚱한 것들이 빈 자리를 차지하였고 어느 날엔가 중독은 내게로부터 사라졌다. 모든 것이 너무도 천천히, 그리고 아무런 뚜렷한 경계도 기약도 없이 시작되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스르르 끝이 났기에 이별에는 날짜도 없었다. 
그리움 또한 비슷하게 끊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를 끊어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다. 그들 가운데 몇몇을 싹둑싹둑 잘라내고도 또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끊기 어려운 것은 끊기 어려운 것이고, 새로 무엇인가 끊기 어려운 것을 마음에 담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금연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 했으나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담배끊은 인간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움에 관해서는 어떤 격언이 합당한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담배
사라진 연기 내 안에 가득하여…
(이 링크는 지워져 노래를 들을 수 없다.)

 

 

/2006. 2. 7.

단 한 장의 책

마침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장소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책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절판된 책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소실된 책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책에 이름만 올라 있는 책을 찾는 일조차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옛 알렉산드리아나 대영박물관, 혹은 의회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 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책의 내용은 고사하고 책을 분류하는데만 평생을 바쳐도 모자랐을 만큼인 것이다. 장정이 훌륭한 책이 많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 도서관의 책들이 세상 다른 곳의 책들과 다른 것은 별로 없다. 책의 두께나 도안, 글꼴이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였으나 모든 책에는 일정하게 비슷한 형식이 있었다. 책의 뒷표지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인데 뒷면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지은이에 대한 소개, 책 내용에 대한 간결하고도 훌륭한 요약,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비평이 그것이었다. 유명 작가나 작품의 경우 수많은 소개와 요약, 그리고 해설과 비평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들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만큼이었다. 특히나 명망높은 몇몇 작가들의 책은 여러 권에 걸쳐 책과 작자의 소개가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책 자체의 판형이 굉장이 크거나 (조금 따분한 내용의 양서일 경우) 매우 작은 글씨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의 사서들은 더 이상 책을 살피거나 분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방문객들은 그곳의 책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어느날 도서관에 들러 오래도록 읽고 싶어 했던 <심문 審問>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진실을 보았다. 책의 뒷면은 여느 책과 비슷하게 아주 작은 글씨로 지은이에 관한 소개가 있었고, 그리고 짧은 요약과 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장정과 제본 또한 훌륭하여 오랜 세월과 풍상을 버틸 수 있어 보였는데 등표지와 그 반대편 양쪽 모두가 투명한 접착제로 잘 마무리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수천의 페이지를 포함하고 있는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삶도 그곳에 꽂혀 있었다.

 

 

/2004. 2. 29. JJ.Lee ⓒ

알렉산드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와
도저히 복구 불가능한 기억.
― 크리스티나 펠리 로시*

 

항구는 모처럼 동방을 돌아온 배의 소식으로 흥청거렸다. 나의 일터와 항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내 마음의 설레임은 배가 들어옴으로서 생긴 것임을 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각별한 친밀감으로 맺어진 항구의 관원은 그 배의 물건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먼저 빌려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나는 먼 미래에 그의 직업이 어떤 것으로 불리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 하여 나는 늘 발품을 덜고 꼭 그만큼 확장된 영토에 상상의 깃발을 꽂는 즐거움을 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기다려왔고 그 기다림은 파라오 네코의 명을 받아 대륙을 일주한 페니키아 함대의 모험담보다도 중요한 무엇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질나쁜 파피루스와 가끔씩 애를 먹이는 필사 도구가 있음이 지금처럼 기쁠 때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전달자들 ― 반어반인의 형상을 지닌 양서류의 신화에서 깃털 달린 뱀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다양한 형상이 있지만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전달자는 나름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께짤꼬아뜰과 콘티키 비라코차가 그러하였고 헤르메스와 오안네스가 그러하였다.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틈만 생기면 세상을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최소의 정보가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은 최대의 상상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 ‘글자들’을 사랑한다. 심지어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이국의 파피루스까지도 내게는 늘 신성한 무엇이었다. 그 불가해함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또 해독 가능한 세계란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 바다의 끝은 그토록 아득한 것이어서 태양을 응시하기를 좋아하던 어떤 소년*은 여전히 그 바다의 기슭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파피루스를 이어 붙이는 동안 향긋한 풀 냄새를 상상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역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른다. 아니, 나는 거기서 짜릿한 어떤 기운을 느낀다. 전달자들이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재촉을 받기 전에 잘 벼린 칼로 마무리를 해서 필사본을 제자리에 꽂고 나면 내 자신이 그 파피루스의 한 페이지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잊어버리는 데 사용하는 거대한 기억장치* ― 복구 불능의 기억까지 온전히 포함한 채 내가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불완전으로 하여 그들이 전달자의 일을 계속하고 있듯 나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나 자신의 일은 점점 하찮은 것이 되어 잊혀질테지만 내가 베낄 수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시에네의 우물에 관한 파피루스를 읽고 세상의 크기를 짐작하였고, 어떤 이는 별의 지도를 그렸다. 어떤 이는 증기기관과 자동기계의 꿈을 설계하였고 어떤 꿈은 파피루스와 더불어 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영 잊혀진 것은 아니다.
갠지즈의 모래알에서 옛 그리스 이발사의 갈대숲의 기억까지 세상의 팰림프세스트에 수많은 사연이 쓰여지고 또 읽히는 한 내가 사는 곳엔 (그곳이 어디든) 바다가 펼쳐져 있고 파로스의 등대 같은 빛이 밤새 바다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등대가 사라져도 남아 있는 그 이름과 같은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도서관의 명멸과는 전혀 별개이고 나는 천사들이 어떤 직업을 지녔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어떤 형상으로든 세상 어디에 있든,
알렉산드리아의 충실한 관원에게.

 

2003. 11. 6.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우주와 자연에 대한 뉴턴 자신의 비유와 일화.
*유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불멸

나무 끝의 부용화
산 속에서 붉은 봉오릴 터뜨렸네
개울가 집이라 적막하여 인적 없는데
어지러이 피었다간 또 지는구나
/신이오, 왕유
木末芙蓉花  목발부용화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辛夷塢, 王維

 

그 이름을 기억하거나 외우고 간직하는 것만이 영속성을 보증하는 틀림없는 방법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 ㅡ 사람들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 한 구절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자격이 없을 때도 있고, 타고난 부끄러움 탓일 수도 있고, 어떤 가능한 방법도 없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아무리 많은 꽃이 피어난들 하나 같은 꽃이 없으며 어제의 그 꽃도 물론 아니다. 심지어 말로 꽃을 피움에야…

문득 3년여 전의 편지들을 찾아 hotmail에 들렀다가 나는 그 계정이 비워져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탓이다. 나는 기억만을 복구하는 것이 싫어 애써 그것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j.j. cale의 어느 노래 가사에 관한 번역과 닭죽 요리에 관한 짧은 언급을 기억한다. 연꼿 속에서 나비가 날아오르는 보색대비의 그림과 옷걸이 속에 펼쳐진 영상들, 그리고 모질게도 힘들었던 어느 하루에 관한 푸념도 기억한다.
나는 상심하고 심란한 마음이 되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머리맡에 있던 보르헤스의 책을 뒤적이며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에서 그리고 <알렙>에서 내 마음 같은 글을 이미 보았기에 불멸에 관한 그의 간결한 생각과 겸손함이 약간의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다.

위대한 영혼의 불멸을 믿는 것과 똑같이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들도 그러하다고 말하는 그의 강의는 철학적이기도 하거니와 사적이기도 하고 또 심지어는 정치적 평등에까지 이르는 함축적인 이야기였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아카사 기록처럼 우주적인 규모의 ‘백업 장치’이건 혹은 내 마음 속의 ‘운항기록계’이건 혹은 보르헤스의 <과학에 대한 열정>에서처럼 ‘그 자체’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그 자체가 어떻게 황폐해졌는지 다들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대체 왜 존재의 증명을 요구해야 한단 말인가. 내 안에는 당신에 관한 보다 명백한 증거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르헤스를 뒤적였다고 해서 전적으로 마음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약간의 ‘척’이라도 할 수는 있다. 지금은 그것만이라도 필요하고 그것으로라도 족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2003. 10. 17.
+<불멸>, 보르헤스 강연집

 

라면은 보글보글

門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 家庭, 이상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가정家庭은 꾸리지 못하고 가정假定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기꺼이 꿈을 꾸라면, 더딘 이 밤 함께라면…… 하는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이지요 화기엄금의 썰렁하고도 위태로운 밤이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어느 작자 말과는 달리 절로 발길 닿는 곳, 문 잡아당기면 잘도 열리어 그 안에 가정이 충만하였습니다 꾸벅꾸벅 내 안에 넘쳐납니다 더러는 보셨는지 아시는지요 IF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의 상표입니다 지겹도록 우려먹던 정겨운 라면의 이름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낮은 소리로 끓고 있습니다 짙은 라면 냄새가 허기를 재촉하며 요동치는 밤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안경엔 뽀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이왕 내친 김인지 안경 벗어도 똑같이 뽀얗습니다 허기진 마음인지 부족한 마음엔지 내 그릇이 조금만 컸더라면 싶었습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열심히 면발을 뽑아봅니다 고르고 골라가며 마음 다잡아 봅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 같이 드실래요? 정말 배가 고픕니다 라면은 보글보글, 운이 너무 잘 따르는 나의 그리운 포에티카입니다

 

/2002. 9. 19.

과거를 묻지 마셔요

이별초 작사/오작교 작곡/장탄식 노래
(슬로우)

 

흘러갔나요 이젠 잊어버린 건가요
묻지 말라는데 다시 생각 말자는데
저 하늘에 달뜨고 이 가슴이 달뜨면
궁금한 마음 되어 당신 불러 봅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을 잊어셨나요
당신 생각에 부풀은 이 가슴도 묻어셨나요
잊어버리자는데 과거를 묻는다는데
노래하던 꽃마차 타고 산너머 남촌까지
만리포라 내사랑에서 밤깊은 마포종점까지
번지 없이 떠돌던 주막강산이었나요
무너진 사랑탑이던가요
그럼 당신 지금껏 갖고 계신 건 무엇인가요
그럼 당신 버리고 가신 건 또 무엇인가요
어느 산골 이름모를 계곡에 두고 왔나요
우리 지난 날 다 묻어신다 하면 그리 하셔요
그리 해 보셔요
함께 뱃놀이 갔던 호수 만큼이여요
둘이 지새운 깊고 깊은 그 밤 만큼이어요
가련다 떠나련다 유정천리 무정천리
제발 묻지 마셔요
적막강산 이 마음을 어이 하나요
청산유수 이 노래를 다 어찌 하나요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그리운 사람
미련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당신 마음 어떤지 눈에 선해요
묻지 마셔요
다시 볼 날 기약하여 우리 과거를 묻지 마셔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이곳에
아주까리 초롱 밑에 홀로 앉아서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노라니
파초의 푸른 꿈을 부디 묻지 마셔요

 

 

/2001.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