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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사랑받은 한편

몇 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주 긴 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줄엔 행복이 묻어 있었고 어떤 줄은 금세 끊어질 듯 위태롭게 떨렸습니다. 산문이 되었다가 모르는 사이 운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줄인다고 줄여지지도 않고 애써 늘인다고 늘여지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쓴 것도 아니고 혼자 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동자 속에 몇 개의 형용사가 있었는지 수더분한 옷과 재빠른 걸음걸이가 3/4조였는지 7/5조였는지도 잘 모르는데 어찌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나 있었겠나요.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했나요. 이별에 관해 그 무슨 공감각적 표현이 있을지, 그리움에 무엇을 보태어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verfremdung effekt)’를 만들어내었는지요.

가끔은 두 줄씩 보기 좋은 쌍을 이루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엇박자로 어지러웠습니다. 역류라면 모를까 감정이 넘쳐나는데 그 무슨 이입이 있을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고 절정도 없는데 기승전결은 또 무슨 허황된 서류에 붙어 있는 이름일까요.

하지만 진짜 시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자신의 운을 맞추었겠지요. 멋진 배경 속에 14행을 넣어서 소네트라 이름 붙였겠지요. 한 줄이 되었다가 전집이 되었다가 두서없이 흩어졌고 그리고 또 흩어진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원본이며 제대로 베껴 쓰지도 못한 마음만의 한 편입니다. 결코 제대로 옮기지 못한 한 편이 여태 마음에 그려집니다. 세상 어딘가 틀림없이 그 한 편을 위한 진짜 작가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그 한 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6. 2. 23.

믿지 못할 나의 금연기

: 그의 마지막 담배

 

사람들에게는 끊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마약, 도박, 음주, 연애, 인연, 담배 등등. 어떤 이는 그 가운데 하나에 그러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기도 한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것을 끊고자 시도한 적이 있다. 지독한 중독이었으나 별스레 특이한 방법을 택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하루, 한껏 그것을 들이마신 채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심신에 모두 스며들기를 기다렸다.(그 시간이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또는 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렇게 멈추어 있었으면 싶었다. 그 순간의 집중에 성공했기 때문에 중독을 끊었다고 믿는다면 그리 생각해도 좋다.

 

하늘 끝 길은 멀어 혼이 날아가기 힘들고
꿈속의 혼이 관산을 넘기 힘드니…
ㅡ 이백

 

담배의 경우는 또 그랬다. 하루 세갑을 피웠으며 그 사이의 꽤 긴 세월 동안 단 한번도 담배 끊을 생각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담배끊기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내 경험상 그것은 어떤 계기가 있는 날(새해 첫날이나 생일날 등등)에 시작하는 것이 좋고, 가능한 한 많은 곳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사실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피우는 형태의 금연보조제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 그것은 맛이 너무 고약한 까닭이다. 나는 새해 첫날에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별하겠노라고 알렸고 그리고 그리 어렵지도 않게 그렇게 했다.

그 동안 비슷한 것과 가짜들과 엉뚱한 것들이 빈 자리를 차지하였고 어느 날엔가 중독은 내게로부터 사라졌다. 모든 것이 너무도 천천히, 그리고 아무런 뚜렷한 경계도 기약도 없이 시작되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스르르 끝이 났기에 이별에는 날짜도 없었다. 
그리움 또한 비슷하게 끊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를 끊어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다. 그들 가운데 몇몇을 싹둑싹둑 잘라내고도 또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끊기 어려운 것은 끊기 어려운 것이고, 새로 무엇인가 끊기 어려운 것을 마음에 담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금연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 했으나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담배끊은 인간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움에 관해서는 어떤 격언이 합당한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담배
사라진 연기 내 안에 가득하여…
(이 링크는 지워져 노래를 들을 수 없다.)

 

 

/2006. 2. 7.

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기억

그것을 당신들은 몰랐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부족은 몇 세대 동안이나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 티마이오스

 

그것은 손치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집트 신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사이스에서 한 신전의 관리인으로 봉직할 때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을 만나 자신이 작성한 꿈의 조서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킬허의 고전적인 지도를 통해 그의 꿈을 다시 돌아보았고 한스 헤르비거의 논설에서 그 기억의 편린을 그렸다. 비미니 제도의 해저 사진들에 등장하는 거대한 돌벽들을 통해 상상의 자재를 마련하였고 도시의 이름으로 제목 붙여진 어느 히피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몽롱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도시의 실체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이그내티어스 도넬리는 장대한 저술로 대홍수 이전의 세계에 관한 희미한 기억을 복잡하게 기록하였고, 블라바트스키 부인은 아카사 기록을 통해 그 비밀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에드가 케이시는 도시의 환영이 어느 특정한 해에 인류에게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으나 그 예언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파울로 쉴리이만의 맹랑한 주장 또한 내 아련한 느낌을 의사과학과 고대사로 어지럽혔을 뿐이었다.

도시에 관한 전설은 남극에서 화성까지, 놈모와 오안네스의 신화를 통해 시리우스의 보이지 않는 반성 포 톨라까지 뻗어나갔으며 물위의 도시라 불리우는 아즈텍의 테노치티틀란 또한 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회상에 일조를 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최근에는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카디스 근처의 늪지대 ― 마리스마데 이노호스에서 장방형의 구조물과 그것을 둘러싼 동심원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것은 내가 보았던 도시의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베게너에 의해 제안된 판구조론은 도시의 존재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으나 그것이 나의 희미한 기억을 흐트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빈약한 증거 위에서 언제나 흔들리는 이름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전설에서조차 황폐해져버린 그 땅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찰스 햅굿 교수의 지각이동설이 도시의 존재에 관한 새로운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작은 바다 바깥의 장대한 바다, 작은 대륙 바깥의 진정한 대륙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같은 것은 아무렇지 않게 넘을 수 있다. 오직 상상의 잔영만이 오늘까지 남아서 빛을 발할 뿐, 그것이 아니라면 불꽃같은 광채를 발한다는 오리칼크의 형상에 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인리히 쉴리이만이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믿었던 황금 마스크는 그저 그의 바램이었을 뿐이지만 그 열망이 유구하고 방대한 유적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오리칼크의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 반대의 논리도 항상 유효하여 그것은 앞으로도 수많은 형상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결국 오리칼크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 도시에 대한 기억과 꼭 같다.

도시를 설계했던 최초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의 영토에서 시인을 추방하였다고 한다. 그가 ‘거주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004. 6. 7. JJ.Lee ⓒ

 

단 한 장의 책

마침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장소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책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절판된 책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소실된 책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책에 이름만 올라 있는 책을 찾는 일조차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옛 알렉산드리아나 대영박물관, 혹은 의회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 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책의 내용은 고사하고 책을 분류하는데만 평생을 바쳐도 모자랐을 만큼인 것이다. 장정이 훌륭한 책이 많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 도서관의 책들이 세상 다른 곳의 책들과 다른 것은 별로 없다. 책의 두께나 도안, 글꼴이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였으나 모든 책에는 일정하게 비슷한 형식이 있었다. 책의 뒷표지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인데 뒷면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지은이에 대한 소개, 책 내용에 대한 간결하고도 훌륭한 요약,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비평이 그것이었다. 유명 작가나 작품의 경우 수많은 소개와 요약, 그리고 해설과 비평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들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만큼이었다. 특히나 명망높은 몇몇 작가들의 책은 여러 권에 걸쳐 책과 작자의 소개가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책 자체의 판형이 굉장이 크거나 (조금 따분한 내용의 양서일 경우) 매우 작은 글씨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의 사서들은 더 이상 책을 살피거나 분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방문객들은 그곳의 책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어느날 도서관에 들러 오래도록 읽고 싶어 했던 <심문 審問>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진실을 보았다. 책의 뒷면은 여느 책과 비슷하게 아주 작은 글씨로 지은이에 관한 소개가 있었고, 그리고 짧은 요약과 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장정과 제본 또한 훌륭하여 오랜 세월과 풍상을 버틸 수 있어 보였는데 등표지와 그 반대편 양쪽 모두가 투명한 접착제로 잘 마무리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수천의 페이지를 포함하고 있는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삶도 그곳에 꽂혀 있었다.

 

 

/2004. 2. 29. JJ.Lee ⓒ

알렉산드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와
도저히 복구 불가능한 기억.
― 크리스티나 펠리 로시*

 

항구는 모처럼 동방을 돌아온 배의 소식으로 흥청거렸다. 나의 일터와 항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내 마음의 설레임은 배가 들어옴으로서 생긴 것임을 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각별한 친밀감으로 맺어진 항구의 관원은 그 배의 물건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먼저 빌려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나는 먼 미래에 그의 직업이 어떤 것으로 불리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 하여 나는 늘 발품을 덜고 꼭 그만큼 확장된 영토에 상상의 깃발을 꽂는 즐거움을 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기다려왔고 그 기다림은 파라오 네코의 명을 받아 대륙을 일주한 페니키아 함대의 모험담보다도 중요한 무엇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질나쁜 파피루스와 가끔씩 애를 먹이는 필사 도구가 있음이 지금처럼 기쁠 때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전달자들 ― 반어반인의 형상을 지닌 양서류의 신화에서 깃털 달린 뱀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다양한 형상이 있지만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전달자는 나름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께짤꼬아뜰과 콘티키 비라코차가 그러하였고 헤르메스와 오안네스가 그러하였다.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틈만 생기면 세상을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최소의 정보가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은 최대의 상상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 ‘글자들’을 사랑한다. 심지어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이국의 파피루스까지도 내게는 늘 신성한 무엇이었다. 그 불가해함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또 해독 가능한 세계란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 바다의 끝은 그토록 아득한 것이어서 태양을 응시하기를 좋아하던 어떤 소년*은 여전히 그 바다의 기슭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파피루스를 이어 붙이는 동안 향긋한 풀 냄새를 상상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역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른다. 아니, 나는 거기서 짜릿한 어떤 기운을 느낀다. 전달자들이 떠나기 전에, 더 많은 재촉을 받기 전에 잘 벼린 칼로 마무리를 해서 필사본을 제자리에 꽂고 나면 내 자신이 그 파피루스의 한 페이지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잊어버리는 데 사용하는 거대한 기억장치* ― 복구 불능의 기억까지 온전히 포함한 채 내가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불완전으로 하여 그들이 전달자의 일을 계속하고 있듯 나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나 자신의 일은 점점 하찮은 것이 되어 잊혀질테지만 내가 베낄 수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시에네의 우물에 관한 파피루스를 읽고 세상의 크기를 짐작하였고, 어떤 이는 별의 지도를 그렸다. 어떤 이는 증기기관과 자동기계의 꿈을 설계하였고 어떤 꿈은 파피루스와 더불어 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영 잊혀진 것은 아니다.
갠지즈의 모래알에서 옛 그리스 이발사의 갈대숲의 기억까지 세상의 팰림프세스트에 수많은 사연이 쓰여지고 또 읽히는 한 내가 사는 곳엔 (그곳이 어디든) 바다가 펼쳐져 있고 파로스의 등대 같은 빛이 밤새 바다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등대가 사라져도 남아 있는 그 이름과 같은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도서관의 명멸과는 전혀 별개이고 나는 천사들이 어떤 직업을 지녔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어떤 형상으로든 세상 어디에 있든,
알렉산드리아의 충실한 관원에게.

 

2003. 11. 6.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우주와 자연에 대한 뉴턴 자신의 비유와 일화.
*유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빗방울을 읽다

불가해한 순열의 초록빛 문자는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소식이던지 방충망의 모눈을 따라 드문드문 물방울 맺혀 나 모르는 세상의 철자가 되었습니다. 낯설고도 반가운 사연, 그렇게라도 듣게 되는 장문의 소식입니다. 빗줄기를 따라 사연도 그만큼 길었던가요. 의미 없는 의미의 심장 ― 거기에 뜻 있겠거니 모눈의 마음이 부지런히 받아서 적었습니다. 어느 아침 햇살에 잊혀지는 꿈처럼 해독解讀은 오히려 해독害毒, 조금 틀렸거나 잃어버려도 상관은 없겠지요. 밤이 오면서 창 너머로는 환한 방이 보이고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수심愁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잠기어 있고 지금쯤엔 저마다의 답신이 송골송골 맺혀 있을 것입니다.
 

 

/2002. 9. 1.

물의 마법사

물속으로 떨어지면서 물의 표면에 파문을 만드는 조약돌처럼,
물의 깊이를 측량하려 한다면 나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ㅡ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올해는 모두에게 평화로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 막 희생된 처녀들 이외에는 어떤 제물도 필요하지 않으며, 옥수수 농사는 이번 카투운에서 유래가 없는 풍작이 될 것입니다. 쿠쿨칸께서는 이제 치첸이차에 흑요석의 단검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더이상 태양의 신고를 위해 심장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리라 하였습니다.”

멀리 카라콜에는 이 깊은 밤에도 누군가 하늘을 헤아리고 있겠지만 돔의 창문에 불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이야말로 밤하늘을 가장 많이 닮은 곳, 별빛이 있는 한 불을 밝힐 수 없는 장소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밤도 새벽을 지켜보며 별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직업이기 이전에 그의 삶 자체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야의 많은 여인들이 그러하듯 그의 베개 밑에 장미꽃을 넣지도 않았다.

대신에 아름다운 엘 카스티요에서 착물의 가슴에 꽃을 바치며 그녀는 기도했었다. 하나의 단과 사방으로 제각각 91개의 계단을 가진 그 신전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간절히 염원했었다. 계단의 총합은 1년의 완성임과 동시에 기원의 실현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치첸이차의 외곽 마을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사시斜視가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딸들의 눈 앞에 조그마한 공을 달아 사시로 만들지 않았고, 아들들의 이마에 판자를 묶어 마야의 피라밋처럼 생긴 우아한 두상으로 변형시키도 않았다. 따라서 그들 남매들은 결코 미남도 미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답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성스런 연못을 두려워 했다. 태초의 바다 같은 그 짙은 초록빛이 무서워 그녀는 연못속에 손 한번 넣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공포는 많은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듯 그 심연에 무시무시한 용이나 거대한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데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깍아지른 바위벽에 둘러싸인 연못을 떠도는 것은 그런 추상적인 괴물이 아니며 그것에 관한 진정한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녀는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이차 부족이 ‘아(하)’라고 부르는 물, 그들의 이름 또한 ‘물의 마술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물에 매혹된 물의 노예들인지도 모르겠다.

성스런 연못은 전사의 신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멀리 남쪽의 중앙지역으로는 카스티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해골 장식이 가득한 촘판틀리와 마야에서 가장 큰 구기장이 펼쳐져 있다.(그녀는 폭타폭을 한번도 관람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차의 모든 두려움과 기원은 이 연못에 집중되어 있었다.

해마다 19의 달  ㅡ 불길한 와이엡의 마지막날에 연못에서는 물의 신을 위한 제전이 열린다. 이곳에서는 포로들의 심장이 흑요석 단검으로 도려내어지는 대신 아리따운 처녀들이 수장되는 것이다. 제관의 뜻과 가문의 순번과 정교한 천문법칙에 의해 오래전에 그녀가 선택되어 있었다. 아무도 공공연히 그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녀 자신의 태도야말로 가장 당당한 것이었다. 카라콜 별지기가 수십년 동안 바라보았던 어떤 별빛보다도 초롱초롱한 눈빛이그것을 말해주었다.

제관 하약스킨이 건네주는 황동의 잔을 받아 팔체를 마신 그녀의 정신은 서서히 혼미하였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늙은 하약스킨의 눈빛이나 주민들의 기도와 함성이 그녀를 연못 속으로 밀어넣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그토록 무서워하던 연못 위를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의 마술사는 마술사가 아니었기에 꽃으로 치장된 뗏목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곧장 아래로 아래로 빠져들었다. 그녀를 포함한 다섯명의 처녀가 똑같은 운명에 처해 있었다. 다들 환각상태였음에도 호흡에의 본능을 어찌하지는 못해 비명을 질러대고 손을 휘저으며 허우적대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만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헤엄을 쳐서 빠져나오기에는 너무 깊은 곳이기에 그녀는 차라리 그 물을 호흡해야 했다. 어둡고 탁한 그 물은 비의 신 챠크의 숨결같은 것, 그녀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침착하게 손가락 마다에 끼워진 금박이 입혀진 구리반지를 빼내어 뿌연 물길 속으로 던져넣었다.

그 순간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형체를 잘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그녀를 향해 아주 느리게 헤엄쳐 오는 것을 보고는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칫 물 위로 올라갈뻔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그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괴물이 아닌 오래전에 이곳으로 쓰러져 썩어버린 큼지막한 나무둥치였다.

함께 제물이 된 처녀들은 하나같이 가쁜 숨을 참지 못하고 물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관의 물음에 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기에 숨쉬기에 바빴고 그들은 곧장 막대로 떠밀려졌다. 그녀는 안타까워 힘껏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자신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으니 그네들에게 전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홀로 두려움에 떨며 기다렸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물의 흐름이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전의 통나무는 서서히 그쪽으로 움직여갔다.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는 빛을 모두 삼켜버린 듯 사방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풍요로운 한해가 되기 위하여
나는 물길속을 걸어가네
이 땅을 풍족하게 할 비를 위하여
나는 물길속을 걸어가네
부모님과 제관과 질투어린 눈길을 위하여
나는 물길속을 걸어가네
내겐 없다고 믿는 적의 창을 위하여
나는 물길속을 걸어가네
하나뿐인 그 사람을 다시 보기 위하여
그의 하늘에 단 하나의 광점이 되기 위하여
나는 물길속을 걷네

 

모든 처녀들이 죽임을 당한 후에야 그녀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가 겨우 깨어난 곳은 전사의 신전 곁에 있던 조그만 움막이었다. 하약스킨은 그녀가 대신 읊어준 예언에 적이 만족하였지만 이제 더이상의 제물이 필요없다는 그녀의 말에 몹시도 실망한 듯 눈을 홀겼다. 하지만 쿠쿨칸의 전갈이라는 말에는 그도 어쩌지 못하고 몸을 움찔하였다.

착물은 여전히 피의 쟁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치첸이차의 연못에서는 그다지 많은 여인의 뼈를 볼 수 없기를 그녀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친지들과 수많은 이웃들의 축복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저멀리 카라콜의 현창 사이로 달이 그윽한 빛을 발하고 있다. 어느 창에선가 이 밤에도 그는 하늘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박투운의 세월이 스무번 돌아가는 동안 그녀의 눈빛도 그곳에 있었다.

 

 

/2000. 6.

 

 

 

+이 글에 나오는 단어들 가운데 제관의 이름을 제외하고 지어낸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실재하는 건물이거나 장소이거나 단위의 명칭이며, 오래 전에 쓴 글이라 흐릿하지만 제관의 이름도 그의 캐릭터에 맞추어 마야에서 사용했던 두 단어를 붙여서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나와틀어에서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가진 단어와 다른 단어 하나를 붙여서 만든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엘 카스티요(쿠쿨칸의 신전)’는 윗쪽 사진의 피라밋이고, 그 앞에 있는 석상은 ‘착물’이다. 폭타폭은 인신공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기 경기의 이름이며, 그가 있었던 카라콜은 천문대이고 사진은 낮의 카라콜을 네가티브로 바꾼 것이다. 박투운은 날짜를 재는 단위로 144,000일, 그러니까 약 400년에 해당한다.(‘카스티요’와 ‘카라콜’은 스페니쉬다.) 하지만 카라콜에서 별을 헤아리던 이는 몇해 지나지 않아 그곳으로부터 영영 달아났다. 박투운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2000. 6.

 

Agua de Estrellas를 듣다 여기 링크했다. 우측 상단의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들을 수 있다. (그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릴라 다운즈의 노래가 여기 있었나 보다. 하단의 까라꼴 그림 링크까 깨어져 있어 바로잡았다. /2021. 1. 7.

 

신용사회

“나를 믿을 수 있어?”
“아니, 널 믿을 수 없어. 너는 너무 무능해. 너의 ST가 너무 나빠.”

오래 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오래 전이 얼마 만큼의 시간인지 그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분명 몇달 또는 1, 2년 보다는 더 흘렀음을 알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대형 크레딧 매장에 들러 맥주를 사고 싶었다. 모처럼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고…
체커. 언제나 매장의 정문을 들어서거나 나올 때는 신기했다. 어떻게 알수 있을까… 눈을 인식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손의 지문을 비접촉의 교묘한 방식으로 판독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빈털털이인 그의 마음을 검색하는 것일까. 단층촬영의 방식으로 그의 갈비뼈에 뫼비우스 코드를 기록하고 스캔하는 것일까…
어딘가에 블랙박스가 있었고 그것은 물론 조난 이후라야 개봉 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이 안정된 사회 속에서 물가는 결코 변동이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은 일정 수준에서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다른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좀처럼 수정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불변의 경전이었다.
그럼에도 물가는 결국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 가격과 자신의 크레딧의 조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용신뢰도는 급전직하의 추락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숫자를 볼 때마다 마음은 더 참담했다. 어디 공동 작업 센터나 리싸이클 센터로 가면 어느 정도는 레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힘겹게 다니는 노인을 잠깐 도와주거나,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거나,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지만… 정신지체아동을 위해 약간의 도움을 줘서 그가 도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ST 레벨을 잘 유지하려면 좀 귀찮고 비참한 것이라 해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고난에 빠진 누군가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억지로 휴지조각을 찾아서 줏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참담함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그는 점진적 개선이라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낮엔 우연히 시동이 잘 안걸리는 자동차로 애를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도와주었다. 그냥 그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랬을 뿐…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이미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없는 세상이었다. 착한 일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수치로서 보상받고 처벌받으니 모두가 자업자득인 것, 자신의 행운이고 문제일 뿐이었다.
만약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면 넘어져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운 자신이 그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내 ST를 향상시켜줘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상냥한 미소를 보내거나, 아무런 까닭도 없이 고맙다 생각하고 말해도 ST는 조금씩 개선되는 법이고 실제로 그렇게 즐겨 말하는 구두쇠 같은 인간들도 몇몇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지쳐 있었고 피곤했고, 너무 많은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CM의 출구 ㅡ 자신이 서 있는 줄에서 그의 ST 레벨이 최악의 수치로 출력되었을 때 그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급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몹시도 부끄러웠던 한 순간이 지나고 허탈한 느낌이 몰려왔다. 그리고 의혹의 그림자도 거기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왜 자신보다 더 낮은 신용도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뒤처진 낙오자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은 진정 의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미지근한 캔 맥주를 따서 마셨고, 간소한 침대에 누워 Self-Vision을 켰다. SV조차도 그의 크레딧 폭락을 가장 큰 화젯거리로 다루고 있었고, 끊임없이 경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SV도 그러할까. 이런 도덕-경제 이야기만 가득하고, 노래는 캠페인 송만 나오고, 영화는 의식고양을 위한 교훈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분명 그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딘가 향기가 분명 있었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힘겹게 채널을 돌릴 수 있었다. 어느 채널에선가 신용과 사회에의 기여에 관한 지루해 보이는 영화가 시작될 참이었다.
잠결이어서일까… 그 영화의 주인공은 꼭 자신처럼 보였다. 그의 상대역은 오래전에 가버린 그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른한 마음은 이미 눈을 감았고 잠결에 큰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깨어보니 그녀 혼자 남몰래 눈물 흘리며 크레딧 마켓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잠깐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밤새 행군을 하고 온 사람처럼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창문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한때 이 방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전 세계의 많은 음악들을 집대성한 보기드문 최고의 데이타 베이스가 있었고, 아무 쓸모 없지만 정교하고 아름답게 생긴 항해용 나침반도 있었다. 곰팡내가 날만큼 오래되었고, 무슨 의미를 담고있는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몇 권의 아름다운 책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텔레비전, 냉장고, 간단한 주방도구와 세면대,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SV, SR(Self-Radio)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했다. 아침을 먹는 고역을 대신하여 반컵 정도의 우유를 마시고는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자 했다.
어디에나 있는 체커. 이 슬럼가에서조차도 그는 거의 최저 레벨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카운터가 0을 켜고 있었다. “쳇, 0이라니. 고장인데도 아무도 관심도 없군…”
하지만 주거지역을 벗어나 교육지역을 통과할 때 살펴본 체커에도 어김없이 그는 0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숨이 막히고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0. 그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꿈의 숫자였다. 인도 최고의 마법, 마야의 신관과 천문가들이 헤아리고 싶어했던 꿈, 충만과 공허의 극점에 있는 무엇… 그것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가슴 벅찬 일,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나눌 수 있는 황금의 열쇠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모든 체커는 어김없이 자신이 레벨 제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불신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Meta Market으로 달려가 한구석의 Sound Part를 뒤졌다. 그리고 뛰는 가슴으로 물건을 골랐다. ㅡ Virtual Sphere Sound System.
자신의 신체를  정확히 계산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반경에서 마음껏 실컷 큰 소리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허리띠 버클형의 VS3를 구입하였다. 정말 얼마만에 들어보는 음악인가.
그가 자신의 VS3와 음악 데이타를 고민끝에 처분해버린 것은 ST 유지를 위한 비참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거의 아무도 거기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길고 혹독했던 외로운 시간, 한번씩은 그녀에 관한 느낌 만큼이나 그리운 소리들이었다.
VS3의 소리 반경을 개방시키면 공공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에 ST 레벨이 나빠지겠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꿈도 꾸지 못할 너무 높은 레벨이었기에 기꺼이 소리로 이루어진 구의 장막을 열었다.
엄청난 볼륨이 사방으로 뻗어나갔을 때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깐 놀랐을 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들은 모두 영상-감각합치형의 Meta Sphere를 좋아할 뿐이었다. MS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결국 세상의 중심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Self-Radio에서 나오는 지리멸렬한 노래들을 잠깐 떠올리다 뛸 듯이 기뻐했고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걷고 달리다 보니 지구라트형으로 건축된 휘황찬란한 큰 건물이 보였다. “참,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방구석에 처박혀 지낸 것일까. 이 근처에 이런 건물이 있는지도 몰랐다니…”
건물의 영롱한 네온싸인에는 Karma Hotel이라는 이름이 날렵한 글씨로 적혀 있었고, K.A.R.M.A.가 순차적으로 소멸하고 다시 켜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Karma 네온이 어둠에 잦아들 때면 형광빛 램프로 “Well, We All Shine On!”*이라는 글자들이 대신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레벨 제로의 당당함으로 KH의 화려한 입구를 거리낌없이 통과하였다.
그를 맞이한 호텔 웨이터는 ST 레벨이 준수한 아주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따뜻하게 그를 접대하였고, 그의 마음에 꼭 들만한 최상층의 가장 매력적인 룸으로 그를 안내하였다. 그 방은 Flashback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호텔 최고의 시설이었고 평생토록 꿈꾸어온 순간이 거기 있었다. 놀라운 방에 관한 경외감과 찬사로 그는 웨이터에게 소정의 ST를 주고 싶었지만 그는 미소로 정중히 거절하였다.
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거기 자신의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극단의 꿈의 향연이었고 악몽의 조합이었고 아파도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무한에 고양되고 도취된 그는 온갖 즐거웠던 순간들의 꿈을 꾸며 달콤하고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룸 써비스가 전혀 필요없는 그 방 자체가 완벽한 세계였다. 그는 그 긴 밤의 한 가운데서 그녀를 만났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레벨 제로의 길을 보았다.

카르마 호텔의 웨이터가 방을 정리하기 위해 손님의 부재를 확인하고 들어왔을 때 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는 신용유지국의 확인증을 보는 아주 짧은 순간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는 그게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아주 길고 험난한 시련을 넘어 발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리고 망각해버린 무엇이었다. 그는 즐거운 휘파람을 불며 FB의 문을 잠갔다.
그가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방의 이름은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영원토록 지속될 Feedback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부재에 다시 직면할 때까지.

ㅡ 나를 믿을 수 있어?

 

1999. 8. 17. jjlee(c). * Instant Karma

 

안개 속의 거울

내 믿지 못할 경험을 세상에 밝히도록 격려해준 P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글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도 되지 못한 이 글을 내어놓는다. 나 또한 진실을 확신하지 못한채…

 

실재 reality : 
약간 머리가 돈 철학자가 꾸는 꿈 
만일 사람이 환영이라는 것을 분석 시험한다 하면, 
도간 속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 
공허의 핵심 
ㅡ A. 비어스, <악마의 사전>에서. 

 

 

글머리에.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별다르게 쓰라린 삶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운명의 계시나 지배를 받아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체험했거나 아니면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던 조용하면서도 특이한 사건들의 기록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기괴한 현상들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했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간단하고도 확실하다. 나처럼 한번의 그런 이상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치 그물이 던져진 것처럼 연속적인 체험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것은 융의 공시성처럼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인 모양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러한 우연의 그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신비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그런 우연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나는 결코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초자연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고 있기에)에 무관심하던 나는 조금은 다른 사고방식들을 가지게 되었고, 내 경험들을 글로서 남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짧은 글솜씨에 그 이야기들을 조금도 가감없이 적고자 무척이나 고심하고 노력하였다. 아니, 짧은 솜씨이기에 가감이 없음이 가능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기도 하고, 내게 그 체험들을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글재주 없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사실을 기록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아는 게 없는 사람이고, 글을 지어내는 것은 더욱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내가 겪었던, 또는 겪었다고 믿는 어떤 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결코 소설이 아니라 실재로 내가 겪었던 일이며, 조금의 가감도 없음을 분명히 고백한다. 
적어도 그것은 내 삶의 어느 한순간에 실재한 사실이거나 또는 착란에 의한 도착과 환영 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가에 대해선 이 글을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맡길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로 경험한 일이라는 것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1993. 10. 2. 토. 초고.

 

나는 언제나 적당히 쪼들린 채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뛰어난 재능이나 능력이 없는 나의 밋밋한 삶처럼 별로 특별한 게 없는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단 한 시절,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 시절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한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또는 시절이 여태 나를 묶어두고 있다. 알 수 없는 자책감 속에 나는 그 포박을 운명과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하는 방법도 배워왔다. 이제 그 믿어지지 않는 일에 관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내가 그 낡고 허름한 목욕탕에서 무엇인가 보게 된 것은 지금부터 4년 전, 정확히 말해서 오늘이다. 오늘같이 심하게 흐린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낮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나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1달씩 교대로 밤근무를 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것은 밤근무 후 돌아와 늦잠을 자고 낮에 목욕탕엘 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내 하숙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목욕탕은 변두리 동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목욕탕이었다. 늙은 아저씨가 박스 카운터에 앉아 돈을 받고, 시장 아주머니가 말 안 듣는 어린 아이들을 질책하며 황급히 몰아세우고, 술취한 아저씨가 목욕탕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몇몇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탈의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평범한 목욕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날 목욕탕엔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부대끼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약간의 되먹지 못한 결벽증이 있어, 그들이 머리를 감을 때 튀는 비눗방울이나 물을 본의 아니게 뒤집어 쓰기가 싫어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목욕을 했다. (나는 목욕탕 위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보이는 그날 낮 하늘의 이상스런 어둠과 조용한 목욕탕에 간혹 들리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의 독특하고도 음울한 느낌들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다!) 
그리 긴 시간을 목욕탕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혼자 조용히 목욕을 마치고 이제 탈의실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섰다. 탈의실과 탕 사이에는 큰 미닫이 유리문이 있었는데 그 문 유리창에 목욕하는 사람들이 비쳤다. 

고독한 환경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멋부리기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유달리 거울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탈의장 정경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내 모습을 습관적으로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나친 자아의식에서 오는 이상한 자책감으로 해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지 목욕탕 여기 저기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감고, 어떤 사람은 샤워를 하고, 어떤 사람은 탕 안에 있고, 모두가 자신들의 몸 씻기에 나름대로 몰두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모든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에 소름이 돋곤 한다. 
목욕탕 제일 안쪽 편으로는 한증실과 냉탕이 있었는데 냉탕 바로 앞에는 유리 칸막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치거나 으스대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찬물을 여기 저기 튀겨 목욕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그만 배려였다. 그런데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창의 넓은 반영 가운데 유독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탈의실의 형광등 탓으로 워낙 희미해서 정확히는 볼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냉탕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씻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몸을 씻는 그 몸짓은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를 풍겼고, 나 역시 꼭 이전에 이러한 상황을 겪은 듯한 몸 떨리는 기시감(旣視感)을 느꼈으며, 그 사람의 모습과 자세가 어딘가 어색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등을 돌린 자세라서 그런 것일 테지… 하고 나는 문을 열고 목욕탕을 나왔다. 그리고 몸을 말리고 옷을 입느라 그 일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옷을 입고, 다시 거울을 보는 순간 그 어색한 포우즈가 떠올라서 목욕탕 쪽을 바라보았다. 즉흥적인 묘한 기대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곳에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없길 바랬으며, 역시 그 바램대로 냉탕 부근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목욕탕을 슬쩍 훑어보았지만 유리창에 비친 그 모습의 주인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이겠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주일 뒤 다시 목욕탕엘 갔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되어 날씨가 꽤 쌀쌀했다. 따뜻한 물이 예전보다 더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계절이었다. 그날은 지난 번 왔을 때보다 사람이 적었다. 겨우 대여섯명 될까, 그 정도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역시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아서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문 앞에 섰다. 잠깐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다 별생각없이 문을 열려다 문득, 또는 혹시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 목욕탕을 살폈다. 
갑작스레 지난주에 잠깐 보고 느꼈던 묘한 감정이 떠올라서 나는 탈의실 유리창에 비친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유독 한 사람만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냉탕 앞에 또 다시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기시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자세는 여전히 뭔가 어색하게 보였다. 목욕탕의 습기와 열기로 인한 김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이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자세히 살폈다. 몸에 비누칠을 하는 동작도, 머리에 물을 붓는 동작도 모두가 무엇인가 어색하고 연약하게 보여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무엇일까,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몸이 무척이나 왜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등 아래, 거의 허리 윗부분에 있는 엄지손톱 만한 크기의 점까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이길래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눌러가면서 잠깐을 더 멍청히 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돌렸다. 
누구일까? 불현듯 그 냉탕이 있는 자리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 
그것은 기우였다. 밤근무로 점철되는 오랜 비정상적인 일과가 헛된 망상만을 키워온 탓이리라. 한 사람이 비스듬히 등을 돌린 자세로 냉탕 앞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한순간, 세상에 특별한 기적 같은 것은 없는 법이고, 내 삶에 어떠한 파란도 일어나지는 않으리라는 안도감과 묘한 실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허리가 굽은 초로의 사람이었고, 야위기는 했지만 분명 창에 비친 사람은 아니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몸을 돌린 각도가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가 두 번이나 보았던 유리창에 비친 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유리문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그곳엔 초로의 남자가 흐느적거리며 비누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인쇄일을 하면서 인쇄된 ‘종이들’을 읽은 적은 사실 별로 없었다. 인쇄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연판에 이상이 없는지, 또는 색상이 알맞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종이를 정리하고 시끄러운 옵셋 인쇄기 돌아가는 엄청난 소리 속에서 책의 내용을 살필 여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2절지 한장에 페이지는 얽혀 있기에 찾아가며 읽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부분 만큼은 얼른 눈에 들어와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목욕 :
종교상의 예배에 대신하는 일종의 신비적인 의식 
다만 영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지금까지 결정된 바 없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가난하게 살았고, 인쇄소에서 겨우 혼자 별다른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갈 만큼의 월급을 받고 있을 뿐이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고, 한달에 두어번 몇몇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것 말고는별다른 취미도 없다. 환영이나 귀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공포영화는 경멸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얼이 빠진 채 탈의실로 나오니 목욕탕에 일하는 사내가 나를 미친 사람 보듯이 빤히 바라보고 있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니, 부끄러움을 생각할 여유가 내겐 이미 없어져버린 것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다음 주부터는 한달간 낮시간 근무로 전환되었다. 
목욕탕을 나올 때마다 떨리는 가슴으로 유리창을 바라보았지만 냉탕 앞의 사람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 동안 네번 목욕탕을 찾았지만 한번도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결국 헛것을 보았군. 나는 그저 피곤함으로 잘못 보았겠지 생각하면서 그 일에 대해서 거의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다음달, 그러니까 처음 그 사람을 본 이후 세째달로 접어든 때였다. 이제 그 낮시간에 목욕탕엘 왔으니 어쩌면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날은 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이 무더기로 목욕탕에 오는 바람에 너무 소란스러웠고, 그들의 우람한 모습에 가려 설사 냉탕 근처에 그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볼 수 없을 판이었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서둘러 목욕탕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목욕탕이 새로 하나 생겨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자주 가던 목욕탕은 거의 사람이 없었다.
평일낮의 목욕탕은 대개가 두 세사람 뿐이었고, 어쩌다가는 혼자 목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안도의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났을까. 내가 평새토록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날의 낮은 매우 어두웠다. 찌푸린 날씨가 몹시도 을씨년스러웠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바람은 매우 심했다. 
다시 그 희미한 유리창의 이미지, 아니 그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의문을 품고 있던 거의 모든 것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가 목욕하는 동작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던가에 대하여. 왜 내가 그토록 그 환영에 관심을 기울였는지에 대하여.
탈의실로 나오던 나는 습관적으로 닫은 유리문을 살펴보았다.
그 순간 유리창에 다시 그가 보였고 나는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약간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약간 긴 머리와 섬세한 선… 그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던 것이다. 왜소한 체구의 그녀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노인의 쇄잔하고 힘없는 모습도 아니었고, 목욕탕의 열기 때문에 생긴 환영도 아니었다. 분명히 한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여긴 틀림없는 남탕이다. 바깥 풍경, 그러니까 창문으로 보이는 전봇대의 윗부분이 여기가 2층에 있는 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대개의 목욕탕이 그러하듯이 여탕은 1층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녀가 있었다.  여전히 등을 돌린 자세로. 냉탕 가까이에.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겁이 덜컹 났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령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여자 목욕탕엘 들어왔단 말인가…… 혼란스럽고, 무섭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깨고 싶었다. 유리창에 비쳤던 그 이미지가 지금 실체로 앞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야말로 평소의 나 답지 않게 용기를 낸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문을 열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한걸음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간절했다. 
한걸음.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한걸음. 
그녀가 내게 왜 나타났는지. 
한걸음. 
왜 그녀가 몸을 씻는 동작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왜 남탕에 여자가 와 있는지, 그리고 왜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는지……

이제 그녀와의 거리는 1m정도로 가까워졌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1초도 안되는 한 순간에 나는 모든 의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었다. 
촉촉한 눈매. 등 아래의 점. 슬픔. 
그 짧은 순간에 경악이나 당황, 충격 보다는 왠지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뒤에 충격이 왔다.  그녀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한걸음 뒤로. 하지만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한걸음 뒤로……
탈의실엔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탈의실을 지키는 젊은 청년도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옷을 입었다. 뿌연 유리창 너머로 여전히 누군가 목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내 하숙집이 있는 골목의 가운데 쯤에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한걸음 뒤로. 
그녀는 왼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서 제대로 앉아서 몸을 씻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한걸음 뒤로. 그녀의 몸이 움츠려들었다. 한걸음 뒤로, 뒤로, 뒤로……

나는 탈의실로 통하는 유리문 앞에 섰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고 나는 유리문을 통해서 다시 그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두려워하던 비명소리는 결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입었고, 마지막으로 욕실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한달 뒤 그녀는 이사를 갔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특별했다. 금방 눈을 돌려 버렸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친 것이었을까.
나는 그때까지 그녀의 이름을 몰랐지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렸다. 회사도 그만두었다는데 도무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 4년이 흘렀지만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 내가 미쳤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지금껏 정상적으로 살아왔고, 인쇄소의 기사로서의 생활 역시 열심히 해왔다. 말이 별로 없고, 사교성도 좋은 편이 못되지만 성실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 몇달 간의 사건을 돌이켜 볼 때내가 전적으로 미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한다. 역시 기묘한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그 목욕탕은 결국 문을 닫아 몇년전부터 인쇄소로 바뀌어 버렸고, 나는 더이상 그녀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언론인이자 특유의 풍자로 일세를 풍미했던 앰브로우즈 비어스는 남미로 여행을 떠난 이후 실종되었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분명 비어스는 남미로 떠났고,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죽었다. 그가 떠나기전에 말했듯이 그 자신은 그것을 멋진 죽음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어스의 시신 조차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의 글만이 이 세상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녀도 이제는 내가 찾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그녀가 이사를 떠난 후 나는 그 사건들을 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느 정도는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여탕에 침입했을 가능성을 솔직히 인정할 수도 있었다. 그 목욕탕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주인이 돈을 받는 카운터 박스는 여탕보다 훨씬 정문에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벌거벗은 상태에서라도 2층 남탕에서 내려와 여탕으로의 침입이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처음, 그리고 두번째로 그녀를 유리문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 다른 사람들 – 다른 남자들이 목욕탕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보았던 날, 벌거벗은 그녀(그때까지는 여자인지도 몰랐지만)에 정신이 팔려 멍청히 서있는 나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목욕탕 종업원 사내도 나는 기억한다. 물론, 이것 마저도 내 정신의 환각으로 돌려버린다면 그만이겠지만.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내 정신의 착란으로 돌린다 해도 그녀의 등 아래쪽에 나 있던 점 만큼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 내가 여탕으로 몰래 침입했다는 사실 마저도 나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그 이전에 나는 그녀의 점을 보았다. 
사실, 내가 여탕에 침입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때는 그 목욕탕이 헐리기 얼마전이었고, 새 목욕탕 때문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기에 목욕탕 입구의 계산대 박스에 있는 사람도 졸기가 일쑤였고, 박스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여탕 입구와 계단이 나란히 있었기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도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여탕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긴 했을 것이다. 단, 그 순간 1,2층 모두에 그녀와 나만 있었다는 전제하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남탕인지 여탕인지 또는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공간이었든지 그녀를 만났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단 한마디의 대화 조차도 없었었지만, 그녀와의 만남을 하나의 계시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와 나를 이어주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4년이 지나버린 지금도 나는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녀에게 어떤 초자연적인 마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녀가 내게 무엇인가 강력히 구하고 있었는지, 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나는 왜 그전에 그녀와 말 한마디 못하고, 인사 한번 나누지도 못한 것인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 아프고 후회스럽다.
그녀에게 다가선 순간에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괴로움과 자책 속에 살아왔다. 그 이유를 알아야 했고, 그 슬픔을 달래줬어야 했는데…… 아니, 그때 그녀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었는데, 분명히……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지금껏 나를 괴롭혀 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찾고 있고, 아직도 믿고 있다.

표리부동 이이제이. 가끔식 그녀를 생각하면 인쇄용 필름같은 네가티브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이미지들은 대개 의미 그대로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때로 괴기스런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네가티브의 영상이 인쇄기를 통과하면 그와는 반대의 느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만드는 빛일 수도 있고, 빛을 깨닫게 하는 어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포지티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거꾸로된 상 그대로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 그녀 또한 내 삶에 있어 빛을 인식케 하는 어둠이거나, 아니면 그녀 자체로서 빛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어둠이라면 그 광점은 너무 작고 너무 밝아 종이를 뚫고 책을 뚫고 내게로 온다. 잡은 가득한 레코드 판을 뚫고 음악을 뚫고 안개 가득한 거울 너머로도 분명하게 보인다. 어디선가 읽은 뉴트리노 입자처럼 내 눈을 뚫고 내 가슴을 뚫고도 내게 머문다. 내가 타버리거나 내 안에서 어둠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우울한 음악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안개낀 날, 오직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습한 공기가 어둔 거리를 휩싸고 도는 날, 어디선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다. 그녀의 등 아래에 있는 점은 내 믿음의 상징이 되었고, 그녀의 촉촉한 눈매는 나의 약속이 되었고, 그녀의 절뚝거리는 다리는 나의 종교가 되었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이란 말인가?
막 자정을 통과하는 마지막 시내버스의 컴컴한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며 지친 몸을 기대고 있을 때 여자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면, 아기를 업고, 무거운 짐을 든 젊은 신부가 혼자 가파른 산복도로를 올라가며 한숨을 내지른다면,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느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는 환상의 유리문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어스의 말대로 공허의 핵심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그것은 현실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1993-.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