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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aph

괜찮아
그냥 단어들일 뿐이야
물로 쓴……+

 

세상의 숱한 묘비명들 가운데 딱히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없다. 킹 크림슨의 Epitaph처럼 Confusion이 내  Epitaph이 될 수도 없다. 존 키츠의 묘비명에 깊이 공감하였고, 묘비명은 아니었지만 “Ames Point”라는 이름이 붙은 표지석을 나는 기억한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2000년의 여름, 위스칸신의 위네바고 호수 제방 끝자락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읽었으나 나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서야 작은 동판에 새겨진 글 전부를 알게 되었고 거기 새겨진 궁금했던 한 줄은 아래와 같다. Read More

一茶頃

오고 또 와도
서툰 꾀꼬리
우리 집 담장+

 

겨우 스물 두셋 시절 일다경에 대해 뭔가 끄적인 적 있었다
얼핏 그럴 듯해 보였지만 득함이 없는 시늉이었을 뿐,
그래서 굳이 ‘頃’자를 붙여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삶을 돌아본다

아들 셋과 딸 둘, 세 사람의 여인을 만나 함께 하였으나
닿는 것 스치는 것 모두 찔레꽃인양+ 그다지 사랑받지 못한 삶
가진 것 없이 온통 잃어버린 삶이 열 일곱 글자로 오늘까지 남았네
초여름에 와서 한겨울로 떠난 사람
벼룩과 모기, 파리와 개구리에서도 삶을 읽어낸 사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예순 다섯의 모진 꿈 너머로
새록새록 꿈꿀 자리 만들었는지
서툴고 서툰 길에서 사랑받지 못한 삶을 사랑한 사람
패터슨++의 운전사처럼
一茶 할 적이면 또 一茶를 생각하네

 

열 일곱 글자
어렸던 눈물인가
잇사가 처음

 

 

+고바야시 잇사
++패터슨, 짐 자머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