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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의 피투성이

17세기에 다정했던 사람 누구 떠올라?
하지만 그 시절 음악은 모두가 기억하지.
/콜름 도허티, <이니셰린의 밴시>

 

대척점에 서게 된 두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촌뜨기 파우릭 설리반을 연기한 콜린 파렐의 망가진 모습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콜름 도허티(브렌던 글리슨)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웠지만 영화는 끝까지 편치 않았다. 마음이 아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쓰라린 느낌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불편함을 피할 길이 없었다. 블랙 코메디라고 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황은 과하게 심각한 ‘피투성이’였다. Read More

카프카

거기 온갖 현학적인 추론과 해설을 갖다붙여봤자
그건 본질을 흐리고 생각을 어렵게 만드는 지방덩어리일 뿐이다.
무슨 잘못을 저잘렀는지도 모른 채 당해버린 K의 소송,
그게 무엇인지 자명하니 그는 ‘안개화법’으로 흐려놓았다.
소송에서 이길 방법은 없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울 수는 있다.
삶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당해버린 소송이다.
Entwurf는 그럴 듯한 허사일지도 모를 일,
중국 마술상자처럼 열어나간다 한들 필패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찌질함에서 위대함까지 선택의 여지를 지닌 삶의 매순간이다.
소송이라는 이름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