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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9, 변함없이

아주 아주 오래전…  어느 시인 흉내를 내며 시 몇편 끄적인 적이 있다.
그때 쓴 것 가운데 일년 전에 보았던 바다에 관한 글이 있었다.
‘변함 없음’에 관한 한켠의 부러움과 한켠의 탄식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 노래는 1년 아닌 10년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메시지가 사회적인 것인지 또는 개인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인 의미로 돌아다 본다.
1999년의 겨울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내 부족함에 관한 알지 못할 신랄함으로
이 노래에 대한 중독성은 더욱 강렬한 것이 된다.
누군가의 앨범 제목처럼 인후부가 어찌 어찌 되든.

 

1999-2009

 

2009. 12. 7.

 

 

 

호랑이가 있었다

금슬의 정이 비록 중하나
산림(山林)에 뜻이 스스로 깊다
시절이 변할까 늘 근심하며,
백년해로 저버릴까 걱정하누나*

 

일로 해서 <삼국유사>를 펼쳤다가 또다시 읽고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남녀의 목욕과 성불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도 미처 생각못한 일이었으니 ‘金물’ 아닌 ‘禁物’로 하여(처녀로 현신한 관음보살과 함께 金물에 목욕하고 성불했다) 무엇인가 초현실적인 감각도 없지 않아 보였다.

유사에 수록된 향가들도 인상적이지만 말미마다 은근슬쩍 붙어 있는 그럴듯한 풍월로 해서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이상하게 그것에 관해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절에서 만들어내는 작은 책자에 넣기 위해 선택한 삼국유사의 한 편은 <김현감호 金現感虎>였다. 오늘 어디엔가 이 땅의 야생호랑이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만 나로 말하자면, <이생감호>의 한 시절에 관해 믿지 못할 경험담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줄 안되는 축약으로라도 이야기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정말 호랑이였으나 나는 허당 같은 ‘이생(李生)’일 뿐이었다. 호랑이는 내게 목을 맡겼으나 나는 찌르지도 못했다… <김현감호>의 후반부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또 좀 다른 類다. 한 세월을 부부로 살다 옛 고향집에서 호랑이 가죽을 발견하고선 남편도 자식도 잊어버린 채 달아나버렸다. 어쩌면 나는 호랑이 아내의 가죽을 훔쳐서 숲속으로 숨어버린 또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김혼공의 딸에게 반해 낙산사 관음보살 전에 그녀와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다 평생 같은 헛꿈만 꾸다 끝이 났거나.(세규사의 스님에 비할 길 없어 나는 깨어나지도 못했다.)

지금도 어쩌다 탑돌이를 나가지만 결코 호랑이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했다고 믿은 어떤 선택이 참 어리석고 못난 짓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호랑이가 있었다. 불꽃 속에 연꽃이 있었다.

 

홀아비는 미인을, 도둑은 창고를 꿈꾸네
어찌 가을날 하룻밤 꿈만으로
때때로 눈만 감아 청량에 이르리*

*삼국유사

 

2010. 1. 23. mister.yⓒmisterycase.com

 

whispering in my ear

2009년의 마지막 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역에선가 황급히 일어나던 아저씨 주머니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것을 본 듯 싶었다. 출구를 향해 달려가던 분을 불렀으나 못들었는지 그냥 가시기에 목소리를 좀 더 올려 열쇠가 떨어진 것을 알려줬다.(이럴 경우 부르는 사람이 더 부담스럽고 무안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나이를 먹으면 이런 부끄러움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도 그쪽으로는 도대체가 발전이 없는 인생이다.)

듬성듬성 자리가 빈 객차의 맞은편에는 살짝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아가씨 내지 아주머니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복장에다 70년대 단발머리 같은 촌스런 머리에 촌스런 머리핀을 아무렇게나 꽂고 있었다. 거기다 몇번씩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나는 괜스레 시선을 다른데로 돌려야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내에서 내렸고, 자리는 점점 더 여유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녀가 갑작스레 내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더니 잠시 눈치를 살피다 귀에다 대고 말을 걸었다. 그녀의 표정이나 복장과는 달라 보이는 멀쩡한 목소리며 억양이었다.

당황한 탓에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있다 또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 유리창에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그녀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진주 쪽에서 왔는데 차에서 졸다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오빠가 모텔에서 재워주면 안되나요? 갈 데가 없어 하루종일 지하철만 타고 있어요.”3분쯤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차비에 보태도록 2천원만 주시면 안되나요?”. 그게 일종의 수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의 저녁은 그렇게 저물었고 열쇠를 잃어버린 어떤 고단한 삶이 한참을 내 귀속에 머물러 있었다. 귀(ear) 또는 누군가의 세월(year) 속에.

 

/2010. 1. 2. 19:28